무덤 속의 마젤란

정과리 비평집

정과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11월 10일 | ISBN 978893201116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82쪽 | 가격 13,000원

수상/추천: 현대문학상

책소개

이 비평집은 90년대 시(시인)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직 시(시인)만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90년대의 시가 문화 산업의 양양한 침범 속에서 활황을 구가한 소설과 달리, 혹은 소설을 대신해서 문학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를 몽땅 홀몸으로 떠맡고 체현했다고 본다. 이어 90년대의 시가 문학의 위기를 ‘꽁꽁 뭉친’ 상태로 ‘미리’ 겪어 보여주었다는 게 이 비평집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를 이룬다고 토로한다.

[책머리에]

문학비평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이며 동시에 소설가인 서양의 어느 작가는 최근의 소설에서 자신의 예술 취향을 잔뜩 늘어놓고 나서는 뜬금없게도, “하지만 우리에게 죽음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 이외의 다른 유용성을 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내가 미술관에서 자주 본 그림과 조각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죽음에 관련된 시련을 겪게 될 경우 의지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라는 아리송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왜 아리송하냐 하면 설혹 예술이 죽음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의 현학 취미와는 별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호들갑들을 볼 때면 죽음을 샴페인처럼 맛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권태에 짓눌린 호사가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데에 질려버리곤 하는데, 하지만 그가 정말 죽음의 샴페인을 맛나게 들이켤 솜씨가 있는지는 필력으로 보건대 의심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시인들이 90년대에 맞이한 죽음은 그런 유복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그 죽음은 저의 본성에 철저하기만 해서 단 한 번 닥치면서 지겹도록 느릿느릿 진행된다. 서양의 논객에게는 생이 권태롭기 짝이 없는 모양이지만 90년대의 한국 시인들에게는 죽음이 그렇다. 그 죽음이 이른바 전자 문명 시대에서의 문학의 위기로부터 오고 있다는 건 굳이 되풀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시인들이 실지로 겪은 적막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경험을 되새길라치면 저 침중한 개념도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90년대의 시는 문화 산업의 양양한 침범 속에서 활황을 구가한 소설과 달리, 혹은 소설을 대신해서 문학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를 몽땅 홀몸으로 떠맡고 체현해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바로 전시대에 시가 누렸던 ‘권력’ 때문에 90년대 시가 겪은 몰락은 급전직하의 형세를 이루었다. 그리곤 결코 생의 현장으로 귀환하지 못한 채로 막막한 사막 속을 끝없이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문학의 위기’는 주목받긴 했지만 만만치 않은 반론에 부닥친 명제이다. 문화 산업이 저의 팽창 전략의 일환으로 문학을 숙주로 삼았기 때문에 현상적으로는 문학 생산은 90년대 내내 활기를 띠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문학의 오랜 역사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 오늘날 문학의 위축은 곧 회복될 일시적인 현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의 위기는 현상적 위축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멀티미디어 문화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문학의 위기는 근대 이래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문화적 실천이 함의한 존재론적 의미의 위기를 뜻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현실에 대한 내적 반성의 소멸을 뜻하는 위기이다. 또한 이 위기는 문학의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위기가 아니라, 문학의 형질 변경을 강요받고 있다는 뜻에서의 위기이다. 전자 문명의 발달은 근대의 문화 제도에 대항해 배냇둥이의 싸움을 전개해온 문학으로 하여금, 문명의 장식이자 마개가 되도록 몰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새 밀레니엄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의 위기는 문명과 산업과의 거듭되는 길항과 삼투와 교합을 통해 아주 지긋지긋하게 장기 지속의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에 대한 이론적 탐색은 별도의 책을 통해 정리할 생각이지만, 90년대의 시가 이 문학의 위기를 ‘꽁꽁 뭉친’ 상태로 ‘미리’ 겪어 보여주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를 이룬다는 것은 밝혀둘 필요가 있다. 시의 죽음이란 물리적인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형질 변경이라는 위협의 압축적이고 예시적인 존재태를 가리킨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의 초점은 시의 몰락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가 죽음으로써 사는 방식, 즉 저의 본성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본성을 지켜가는 방식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 책은 죽음으로부터 생으로의 귀환이라는 오디세우스적 주제가 아니라, 탐험의 미궁 속에서 소실되어 스스로 탐험의 심연이 되어버린 마젤란적 주제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마젤란의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제국주의적 모험은 여기에서는 부동의 운명에 처한 유배자들의 소용돌이치는 순환으로 바뀌어 있다.

이 책을 처음 구상한 지 6년이 흘렀다. 글이 계속 쌓였는데도 책으로 꾸밀 엄두를 못 냈던 것은 90년대 시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만 하는 두 개의 관문 중 하나 앞에서 미적댔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현 선생이 쓰신 기형도 해설이 중압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기형도의 시를 그 자체로서 음미하기보다 90년대의 사회·문화적 정황 내에서 그것이 함축한 의미를 캘 필요가 있었다. 기형도의 시는 시인의 죽음과 함께 90년대 시의 상징도로 자리잡았다. 시가 문학의 죽음이라는 장기 지속적 과정을 예시적으로 비추는 상징 구슬의 기능을 하였다면, 기형도의 시는 그 상징의 상징, 거울의 거울이었다. 그의 시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때문에, 90년대 시의 존재태를 밝히는 데 핵심적인 관문을 이룬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글을 나는 올 봄에 그의 전집이 간행된 걸 계기로 간신히 쓸 수 있었다.

책을 처음 구상할 당시의 제목은 ‘죽음 이후의 네 생’이었다. 그 동안 ‘문학의 죽음’은 사람들의 입을 전전하면서 닳을 대로 닳아버렸다. 또한 애초에는 죽음에 직면한 시가 나아갈 길이 주관성으로부터 이타성(異他性)으로의 이행이 되리라는 나름의 요량이 있었다. 『스밈과 짜임』(1988)의 후반부에서 그 징표들을 실험해보았었고, 거기에서 어떤 확신을 얻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을 하나하나 모아가는 기간 중에 이른바 ‘타자성’의 문제 또한 90년대의 상투적인 화두가 되어가는 걸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 산업과 전자 문명의 시대에 타자성이 편재적이고 상투적인 명제가 된 까닭은, 산업과 문명의 경탄할 만한 인테리어 기술이 그것을 주관성이 천방지축으로 뛰놀 놀이방으로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삶의 극단적인 향락과 동의어로 쓰이면서 잘살 권리를 부여받고 있었다. 요컨대 ‘죽음’과 ‘타자성’의 문제가 현실 원칙의 그물 안에,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해, 현실 원칙과 쾌락 원칙이 공모하여 짜놓은 행복한 질서의 그물 안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그 현실 원칙의 그물 안에서 죽음은 가장 씽씽한 역할을 배정받아 생의 무대에 등장하였으며, 타자성과 주관성은 가장 멋진 친구가 되었다. 이 생의 공모자로서의 죽음, 주관성의 확장으로서의 타자성과 생의 단호한 거부로서의 죽음, 주관성의 해체 기제로서의 이타성을 분별해내기란 이제 너무 어려운 일이다. 전자의 모든 행위들은 항상 후자의 깃발 아래서 시도되기 때문이며, 동시에 후자의 모든 투기는 어쨌든 전자의 형식을 통해서만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생의 단호한 거부로서의 죽음이 문자 그대로 죽음을 가리킨다면, 생과의 싸움은 시작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책 이름을 ‘무덤 속의 마젤란’으로 정한 것은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한 결과이다. 좀더 ‘죽음’을 형상적으로, 즉 체험적으로 지시할 방도를 찾으려 했고, 그 죽음 그 자체로서의 생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그 생의 방법론을 암시하길 바랐다.

책을 짜려고 보니 분량이 넘쳐나 불가피하게 몇몇 글들을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의 사회·문화적 정황에 죽음의 양식을 통해 응전한 시인들은 반드시 젊은 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대처해 적극적인 변모를 보여주면서 부단히 나를 충격한 7, 80년대 시인들에 대한 글들은, 우정과 경의의 형식으로 준비되고 있는 다른 책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무덤 속의 장정에 동참했던 모든 시인들을 다 다루지는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나의 게으름에 있다. 읽고 감동하였고 화답하길 갈망하였으나 차창 밖의 간판처럼 스쳐지나가고 만 시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시와 은밀히 교환할 눈길들을 나는 빈번히 회피하였다. 이 부족을 계속, 어느 시인의 말처럼, “부족으로 끼룩대며” 메워나가야만 하리라.

채호기 주간의 채근과 격려가 없었더라면 이 책의 출판은 더욱더 늦어졌을 것이다. 책이 이렇게 말끔히 나오게 된 것은 오로지 책임 편집자인 류명숙씨와 디자이너 조혁준씨의 공이다. 그리고 오종택 기자가 찍어준 사진 덕에 못난 용모를 조금 그럴싸하게 위장할 수 있었다. 두루 감사드린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제1부 생의 절정으로부터
절정의 곡예사들: 80년대 한국시의 전개
이자(利子)가 말한다: 장경린의 시세계
기억의 습지: 김갑수의 시세계

제2부 암전
빼앗긴 그리움, 혹은 한국적 여성주의의 파산: 진이정론
죽음, 혹은 순수 텍스트로서의 시: 『기형도 전집』에 부쳐

제3부 주검과의 키스
기억의 저편: 젊은 시인들의, 세상
주검과의 키스: 이승하의 사진·그림-시
폐허를 건너는 법: 이윤학의 시세계
아픈 사랑의 반란: 차창룡의 분변학

제4부 죽음 이후의 네 생
죽음 이후의 네 생: 채호기의 시세계
|보유| 사물들의 악몽: 채호기의 ‘너’에 대한 시들
새들과 부메랑: 조은의 시세계
적막의 바로크: 유하의 시세계
|보유| 둔갑술의 시학: 『세상의 모든 저녁』에 대해

제5부 범람과 빈혈
제도 탄생 이전의 음향들: 김태동의 시세계
무덤 속에서도 시는 꿈꾼다: 90년대 시인들
아흔여덟 개의 검은 凹와 한 개의 하얀 凸: 서시의 시학을 위하여

작가 소개

정과리 지음

1958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조세희론」으로 입선하며 평단에 나왔다. 저서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존재의 변증법 2』(1986),『스밈과 짜임』(1988),『문명의 배꼽』(1998), 『무덤 속의 마젤란』(1999),『문학이라는 것의 욕망─존재의 변증법 4 』(2005),『문신공방 하나』(2005),『네안데르탈인의 귀환─소설의 문법』(2008), 『네안데르탈인의 귀향─내가 사랑한 시인들·처음』(2008) ,『글숨의 광합성─한국 소설의 내밀한 충동들』(2009) 등이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8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8월 28일

ISBN 978-89-320-1116-5 | 가격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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