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림

성석제 소설집

성석제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9년 11월 1일 | ISBN 9788932011189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68쪽 | 가격 11,000원

수상/추천: 동서문학상

책소개

특유의 해학과 풍자, 능청스런 과장과 익살로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도 예의 그 날렵한 입담과 재담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춤판 노름판 술판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의 희극과 비극, 다양한 인간의 속성들을 거침없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놓았다.

[작가의 말]

20세기가 노루 꼬리만큼 남은 지금 또 책을 묶는다.

근래에 4백 년 전에 살다 간 가조(家祖)의 문집을 얻었다. 예순이 넘는 생애에 몇 편의 시와 만언(萬言)의 소(疏), 유언이 남겨진 글의 전부인데, 간명하고 아름다운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송구스러웠다. 생전에 흉금을 터놓고 지내던 벗들이 보탠 추모글의 간절함은 4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머리칼을 빳빳이 곤두서게 만든다. 그 각각의 문장(文章)들조차 자신의 이름으로는 단 하나의 문집을 남겼을 뿐인데, 나는 벌써 내 이름이 박힌 책을 십여 권 넘게 내고 말았다. 어떻든 나는 행운아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소설들은 모두 ‘인간’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경우에 따라 그런 부제가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드러낼 경우에는 제목에 표시했고, 기다리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 죽는 인간, 즐거운 인간, 우주와 직통으로 대화하는 인간 등은 숨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정형화하려는 섣부른 시도로 보이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

십 년인가, 십오 년 전에 나는 어딘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길, 세속의 다양함을 숭상한다”고 적었는데 그 생각은 여전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십여 년 전에 비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십 년, 혹은 십오 년이 지난 뒤에는 어떨까. 4백 년 뒤에는?

나를 곳곳에 데려다준 길의 은혜를 칭송한다. 나이를 먹게 해준 시간의 두터운 은덕을 찬양한다. 나를 머물게 해준 집들, 그 주인의 너그러움을 기린다. 이 책을 빌려.

1999년 10월, 죽산(竹山) 비봉산(飛鳳山)에 올라, 성석제

목차

꽃 피우는 시간: 노름하는 인간
해방: 술 마시는 인간
소설 쓰는 인간
홀림
협죽도 그늘 아래
붐빔과 텅 빔

이무기

[해설] 소피스트의 세계: 놀이와 해방의 산문 김만수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성석제 지음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간행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재미나는 인생』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이다』 등이, 장편소설로 『인간의 힘』 등이 있으며,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유쾌한 발견』 등을 펴냈다. 1997년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으며,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8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8월 28일

ISBN 978-89-320-1118-9 | 가격 7,000원

독자 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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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2000.02.09 오전 12:00

    성석제, 그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소설이 눈송이같이 찍혀나오고 소설가는 갈대같이 많은 세상이 아니라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변방을 떠돌아다니며 여항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패관이 되었거나, 시골 장터서 매번 조금씩 이야기를 보태가며 옥중의 춘향이를 불러내는 입심좋은 구수한 판소리꾼이 되었거나, 말한마디로 대동강물을 팔아먹는 ‘성삿갓’이 되었거나, 이별하는 청춘남녀의 장면에 애절한 목소리를 입히는 무성영화의 변사가 되었거나, 어쨋든 ‘입’과 ‘이야기’로 살아가는 재간꾼이 되었으리라.
    이처럼 그의 글은 글로 읽히기보다는 말로 들린다. 줄창 이야기를 하는 누군가의 옆에 앉아 웃음을 터뜨리기도 흘낏 눈물을 비치기도 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기분. 그 이야기엔 자못 리듬이 녹아있어, 이야기를 듣는 이는 울림좋은 커다란 북을 두드리며 구성진 추임새를 넣고 싶어진다.
    이 재주좋은 이야기꾼이 이번엔 우리에게 여덟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들은 아주 오래되어 곰삭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더없이 익숙하면서도 아직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 바로 인간이라는 주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퍽 매력적이다. 몹시도 별나지만 썩 잘나지 않은 인간들. 제법 잘난 우리는 마음껏 비웃고 헐뜯어도 죄책감 따위는 들지 않는,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녀석들이다. 삼대의 가계에 걸쳐 인생들을 풍비박산 낸 술의 내력을 거나하게 털어놓는, 낮밤 없이 술을 마시다 알콜중독자가 되어 허비적거리는 인간.(「해방」) 풍류사기꾼의 인생역정을 유장하게 보여주는, 노름하고 춤추는 별난 재능을 타고난 인간.(「꽃 피우는 시간」, 「소설 쓰는 인간」) 일상적인 말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괜한 빈축을 사고 다니는 정신박약아.(「이무기」) 이렇게 약간 기우뚱 비뚤어진 그들은 스스로, 혹은 남의 입을 빌어 그 굴곡많은 인생들을 정말이지 유쾌하게 털어놓는다. 목을 축일 새도 없이 속살대고 재잘거린다. 그 달고 시큼하고 때로는 쓰디쓴 인생에 호기심이 생겨 문득 귀를 기울여 듣기 시작한 이들을 끝까지 놔주지 않는다.
    「협죽도 그늘 아래」나 「붐빔과 텅빔」에 이르면 이 번잡스러움은 조금 추스려진다. 그것은 우리의 저 모자란 인물들이 죽음이라는 사건을, 시간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풍화의 흐름을 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은 지나간 시간을 가지런히 정돈한다. 그들은 가끔씩 어그러진 아비의 초상들을 거듭 꺼내어 기억의 거리를 확인한다. 한결 차분해진 그들이 동일한 인물을, 혹은 동일한 공간을 통과해나간 숱한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가만히 회상하는 장면에선, 낭자한 입담에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져 어떤 애잔함마저 스며나온다. 그늘의 정체는 세상이 모든 유한한 것들이 자기의 길이를 깨달았을 때의 겸손한 쓸쓸함.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의 조용함.
    이쯤되면, 이야기에 솔깃해있던 우리는 말그대로 ‘홀려버린다’. 우리를 홀린 그들의 이야기는 온통 거짓말이었다. 술과 춤과 노름으로 세상의 도를 깨우친 달인들이 온갖 허풍을 섞어 너스레를 떨고, 도대체 확인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이야기 속에 버젓이 자리를 잡았으니. 하지만 잠시 정색을 하고 물어보자. 지금 누가 거짓말과 참말을 말끔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거짓말이 거미줄처럼 세상의 날실과 씨실을 짜고 있는 시대. 어떤 말들을 거짓말이라고 가볍게 비웃어버릴 수 있을까. 때로는 거짓말이 오히려 투명하게 그 아래 세상을 비출 수도 있는 것을.
    그래서 K라는 도시 ―「꽃피우는시간」에 등장하는― 는 거짓말이기도 하고 참말이기도 하다. 돈이 되는 것과 팔리는 물건에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는 경박한 소비의 도시 K. 이 흥청대는 도시는 돈을 묻힌 이방인과 떠돌이에게 더없이 관대한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영악스레 자기 자리 주위에 울타리를 둘러치며 자신들만의 묘한 동질감을 과시한다. 이 익숙한 거짓말 도시 K에는 거짓말이 차고 넘친다. 우리의 이야기꾼은 터무니없는 잡스런 이야기를 태연자약하게 늘어놓는다.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도박사 피스톨 송선생 초청 특별강연” 이라는 선명한 현수막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그 엄청난 도박사는 노름에는 이성과 지식, 계획, 목적이 개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둥 목표를 정하되 과욕하지 말라는 둥 거창한 노름의 철칙을 웅변하면서 어차피 모두 인생의 노름꾼인 우리가 하나뿐인 인생을 가짜나 사기로 살 수는 없지 않겠냐는 고단수 사기까지 올려친다. 이야기를 듣는 눈들이 동그래진다. 그러나 거짓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야기꾼은 다시 한번 전복을 노린다. 토박이 K시민의 입을 빌려, “그걸 믿어?”라고 차갑게 쏘아붙인다. 당황한 청자에게 ‘자네는 K를 전혀 모르는구만’ 하고 비웃어 버린다.
    이렇게 흠씬 사기를 맞고 두 번 뒤집히고 나면, 거짓말을 거짓말로 만들고 나면, 어느새 우리는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에서 가장 적나라한 참말을 발견하고 만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적나라한 진실. 발을 딛은 이 딱딱한 땅이 사실은 얄팍한 껍데기라는 진실. 멍하니 홀려 한껏 취해있던 우리는 그 순간 매캐한 각성을 경험한다.
    이 기묘한 이야기다발. 이 녀석은 대체 무엇일까. 성석제의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선입관들, 소설읽기의 매뉴얼들을 점검하게 한다. 갈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맺어지는가, 사람의 성격은 어떻게 묘사되어야할까 등등. 이에 작가는 치밀한 설계도 대신 한붓으로 쓱 그린 엉성한 그림 한 장을 들이댄다. 근대가 발명한 정교한 인과관계와 암시의 실험실이 아니라 “그런데 그때 춘향이가 들어오는디”라고 이야기꾼이 판을 만들어버리면 만사가 그만인 세계로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다. 그 곳에서 갈등은 불현듯 나타났다 씻은 듯 사라지고, 속을 꺼내보일 듯 솔직하고 순진했던 인물들은 어느새 등을 후려치며 달아버린다.
    이 난처한 모양을 들여다보면서 그 엉뚱함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진지함을 가장한 쭉정이들이 신나게 바스러지는 모양을 목격한다. 그러나 한편 키득거리는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끝에 이르면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기도 한다.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기억이 깡그리 날아가버린다. 이 휑덩함을 채우려면, 이 재미난 이야기가 말하자마자 증발해버리지 않으려면, 이 유쾌한 도망이 철없는 가출로 끝나지 않으려면, 작가의 엉뚱한 글쓰기는 좀더 날카롭게 엉뚱해져야 할 것 같다. 좀더 정교하고 진기한 알레고리의 세계를 기다려본다.

  2. 박란희
    2000.02.02 오전 12:00

    90년대 우리 문단에서 성석제 씨는 참 도드라져 보이는 존재이다. 다양성 없이 30대 여류작가들의 의해 거의 주도되고 있는 우리의 소설 시장에서 그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소수의 매니아지만 그를 추종하는 팬들이 죽 이어지고 있는 것이 다양한 소설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추측도 해본다.
    <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시인이 아닌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첫 작품에서부터 소설을 뭐 거창한 것이 아닌 잡문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계속된 그의 작품 세계는 마치 짧은 단막극을 보듯이 휙휙 지나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농담을 하고,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장과 허풍이 세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아버지고 형제고 이웃들이다.
    성석제의 소설을 읽으면 정말 웃음이 난다. 재미있고 황당하지만 그 속에 또 아릿한 슬픔이 있다. 세상을 엄숙하고 어렵게 풀어내는 방식도 있지만, 성석제 씨는 독자들에게 그냥 세상 쪼가리 한 부분을 던져주는(그것도 재미있게 요리해서) 방식을 택한다. 나는 그래서 성석제 씨의 소설을 참 좋아한다.
    < 호랑이를 봤다>에 이어 < 홀림>이란 책을 또 펴냈다는 소식에 당장 책을 잡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나를 홀릴 지 한껏 기대를 품고서. 이 책에서 성석제 씨는 ‘어떠어떠한 인간’이란 부제를 붙였듯이 다양한 인간의 사소한 모습을 그렸다. 노름하는 인간, 술 마시는 인간, 소설 쓰는 인간 등 참말인지 거짓말이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이전의 소설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문체나 내용적 구성에서 좀 진지해진 소설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장사를 서술한 홀림, 대비된 삶을 살았지만 결국은 같은 길을 걸어온 형제의 삶을 그린 붐빔과 텅빔,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은 한 노과부의 생이 담긴 협죽도 그늘아래, 이외에도 방, 이무기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 작품들에서는 성석제 씨의 촌철살인식 해학과 풍자가 다소 줄어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즐겁고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읽혔으면 좋겠다. 사회와 개인의 불화 속에서 점점 내면적인 글쓰기만을 고집해온 여성작가들이 주도해온 90년대 우리 문단과, 출판시장의 주고객인 20대 여성독자들을 타깃으로 때로 수준 낮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양산해온 우리 출판계에 자극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문학을 비롯한 문화의 다양성이야말로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기에, 성석제의 소설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