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20

황지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8년 12월 21일 | ISBN 9788932010519

사양 신46판 176x248mm · 172쪽 | 가격 8,000원

수상/추천: 백석문학상

책소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지금-이곳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객관적인 삶의 이미지와 시인의 개별적인 삶의 이미지가 독특하게 겹쳐져 있는 특이한 시집이다. 슬픔과 연민, 정념들로 노출되는 시인의 사생활은 칙칙함이 아닌 투명성으로, 그리고 객관적인 삶의 풍경에는 개별 삶의 섬세한 주름들이 그대로 살아 어른댄다. 이는 시인의 ‘겹언어’ 사용과 무대화 형식에서 오는 기법적인 긴장과 자신의 욕망의 뿌리까지 파고드는 철저한 시정신에서 오는 긴장이다. 어떻든 이번 시집은 황지우 시인의 시집들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시사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시집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시인의 산문]

90년대 나의 전략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탐침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울, 상실감, 분열, 환각, 공포, FLIGHT OF IDEAS 증세와 관련된 ‘유사-광증’을 실험했으며 이는 앞서 말한 우리 삶에 유지되고 있는, 그래서 더욱 지옥 같은 혼돈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검은 유머라 하기에는 적이 재앙스럽고 위험한 장난일 수 있다. 병을 시뮬레이트하는 것 자체가 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나의 정신 역동 속에서 정신적인 꾀병은 실제로 헤어나올 수 없는 급격한 소용돌이와 현기증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모든 착란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어떤 착란적인 것’은 시적이다. 그것은 나에게, 모든 禪的인 것이 시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선적인 것’은 시적인 것으로 체험되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시적인 것’의 탐험이 자취를 남기는 내 문학 지도에서 이런 변화는 급전직하하는 심연에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정신병리에 대한 심취는 말하자면 나에게는 ‘어두운 禪’이었다. 나는 환자로서 병을 앓으면서 병을 가지고 깨달음을 실행했던 유마힐 생각이 많이 났다.

목차

▧ 시인의 말

아직은 바깥이 있다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진짜 빛은 빛나지 않는다
等雨量線 1
聖 오월
유혹
흑염소가 풀밭에서 운다
等雨量線 2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8월16일
망년
수은등 아래 벚꽃
太陽祭儀
이 세상의 밥상
안부 1
발작
재앙스런 사랑
당신은 홍대 앞에 지나갔다
몹쓸 憧憬
等雨量線 3
안부
거룩한 식사
춤 한 벌
저울 위에 놓인 바나나
세상의 고요

비닐 봉지 속이 금붕어
낮에 나온 별자리
거대한 거울
섬광
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
물 빠진 연못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聖 찰리 채플린
타르코프스키 監督의 고향
일 포스티노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뼈아픈 후회
11월의 나무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노스탤지어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우울한 거울 1
우울한 거울 2
우울한 거울 3
살찐 소파에 대한 日記
석고 두개골
제록스 CANON이 흑흑, 울었다
아주 가까운 피안
靑銅 마로니에 숲
펄프劇
나무에서 종소리가 났다
지하철역에 기대고 서 있는 석불
해바라기 씨앗
나무 崇拜

和光同塵
서해까지 밀려 있는 강
소나무에 대한 예배
감옥 안에 있는 떡갈나무
커피 자동 판매기가 꿀꺽, 침을 삼킨다
모래 지평선이 있는 유리 상자
모래 지평선이 사라지는 유리 상자
태양 연못 속에 칼을 던지다
흑염소떼가 조계사로 가다
햄릿의 진짜 문제
유리 끼운 塞寒圖
거룩한 저녁 나무
等雨量線 4
차 속에서의 사색

▨ 발문 ‘영원한 밖’으로 떠나고 싶은, 떠나기 싫은 – 이인성

작가 소개

황지우 지음

시인 황지우는 195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연혁(沿革)」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문학과지성』에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와 시선집으로 『성(聖)가족』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등을, 그 외 시극 『오월의 신부』,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1983) 현대문학상(1991) 소월시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9) 백석문학상(1999) 옥관문화훈장(2006)을 수상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거쳐 199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 리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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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5 =

  1. 장기성
    2003.05.08 오전 12:00

    이 시를 읽을 때면 이런 문구…영화제목이 생각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구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나의 편.. 인생의 동반자..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연적으로..
    아니면 필연적으로 나와 인연이 된 사람. 혹은 사람들. 그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나의 가족. 고등학교 때 문득 안방에 들어가 주무시는 나의 부모님을 본 적이 있다.
    자식이 뭐길래.. 아니면 식구가 뭐길래..
    해주기만 하는 그런 존재에 불과한 데 이 두분은 우리를 위해서 인생의 반을 희생하신다.
    그때마다 하나씩 늘어나는 이마의 주름들..
    어느새 그 주름들이 우리의 가족수보다 많아졌다.
    식구의 존재는 깨어 있을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존재가 바로 식구(가족)라는 것을..

  2. 나정욱
    2000.06.18 오전 12:00

    황지우 그는 누구인가

    체중 90킬로그램을 넘을 것 같은 체구로 시를 쓴다는
    그와 체중이 맞먹을 자는 김정환 시인 정도 될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황지우 그는 누구인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왕성한 시론과 시창작을 펼치는 그가 지향하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그가 지향하는 개인적 인간의 모습은 또한 어떤 모습인가
    과연 체중 90킬로그램을 넘기면서 쓰는 시가 시다운 모습을 갖을 수 있는가
    그는 늘 “그렇다”라고 시집으로 대답하지 않는가

    이 글을 쓰는 나는 172센티미터에 72킬로그램으로 항상
    과체중에 내 쓰는 시에 자괴감이 들곤 했는데…
    내가 시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아마 10킬로그램의 체중 감량을 해야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동시대인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황지우도 항상 당신의 과체중에 괴로울 것이다
    과체중은 체질적 유전인가 정신적 태만으로의 비계살인가
    그의 이러한 자신의 몸에 대한 성찰은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또한 그의 몸을 연상시키는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
    그가 그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소파와의 동일시)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해 그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각도에서 살피는 것은 아닐까?
    몇십 년 전(황지우가 태어난 시대의 전후)에 비하면 한국 경제의 비만성은 문제되고 있다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한에서 그런건지
    사람들의 몸은 과체중 과영양의 비만 상태로 뒤뚱거리고 있다
    그 몸에 맞는 정신적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모습은 희극적이다 못해 비극적이다
    자신의 몸의 균형도 잡지 못하면서, 한국사회의 정신적 균형을 잡는답시고 시를 쓰겠다 나서는 시인들의 모습, 혹 나의 모습은 아닌가싶어 구역질이 난다

    정신적 초상으로서의 시인의 전형은 김수영(1921~1968)이지 않을까

    물론 황지우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나는 황지우가 무지 부럽다
    그가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나온 것도 부럽다
    그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이성복을 알고 있는 것도 부럽다
    그는 김지하와도 몇 시간에 걸쳐 대담을 할 정도로 대단한 철학과
    우리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분석력과 어떤 식으로든지 자기식으로
    자신과 우리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을 시로 표현할 수 있는 수사학적 능력이 있음이 또한 부럽다
    아직 시집 한권 상재하지 못한 나는 그의 모든 시집과 시집 곳곳에 드러나 있는 그의 세상 파악 능력과 표현 능력이 부럽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몸에 대해서는 전혀 부럽지 않으며 열등감이 없다

    그의 몸은 시인의 몸으로서는 낙제감이다

    그의 몸은 씨름선수에게나 어울리는 부피감이 풍만한 몸이다
    그런 몸을 갖고 있는 그가 김정환과 마찬가지로
    이정도의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불가사의함 만큼이나 내겐 신비롭게 느껴진다

    다시 한 번
    황지우 그는 누구인가

    나는 아직 시집 한권 묶어놓지 못한 시인 지망생으로서 그의 시를 읽는다
    내가 시인으로 입신하면 입신할수록 그에 대해 나는 저자세로 나가야 될 것만 같다
    나는 그게 싫다
    시인이 되지 않더라도 좋을 정도로 나는 그게 싫다

    그는 시인으로서 절망적 제스처를 쓰지만 그의 몸이
    몸무게 90킬로그램을 넘고 있는 한 현실적으로그는 결코 절망적일 수가 없으며, 사람들 또한 절망적으로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사실 그가 시를 쓰지 않더라도
    그는 이 세상에서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부피로 이 땅을 나보다는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는
    어느날 정말 흐린 주점에서 흐린 눈빛으로
    내리는 눈비을 맞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보통 평범한 인간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싶을 지는 모르나
    그러나 그것은 그가 체중을 20킬로그램 이상을 줄여야만 가능할 것이다
    체중 90킬로그램을 갖고 제 아무리 평범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려 하여도
    우리 사회의 보통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보아주지 않는다

    그의 몸은 공처럼 부풀어 있으며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여 특별한 ‘소파’를 연상시킬 것이다
    그 보통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균 체중이 6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는 시인으로서 성공했다
    그가 아무리 평범하게 살아가려 하여도 그럴 수는 이미 없는 것이다
    체중 90킬로그램을 넘긴 상태로 시를 써서 성공한 그가 어떻게
    평범한 시인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황지우 시인이 그 평범을 넘어서는 하나의 방법은
    김수영식 저돌성이 있어야 될 것이다
    그것은 혁명이며 운동이며 그것은 피냄새와 땀냄새가 나야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선에서 진흙을 갖고 조각을 하였으며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선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며 그의 시를 연극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거기에서 얼마만큼 대리만족을 취할 것인가

    시인 김정환은 그의 에네르기를 지금 어떻게 발산하고 있는가
    시인이 아닌,
    김정환이 그의 무지 막지한 몸무게를 갖고
    그 넘치는 에네르기를 밤에 아내의 배를 타고 노는데만 쓴다면
    그짓이
    그와 그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시인이 아닌 나는 모른다
    김정환 형의 근황을 나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를 모르기에 그의 이름을 함부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씨름선수들을 보고 있을 때의 그 비극적 시선과
    시쓰는 황지우를 보고 있을 때의 그 희극적 시선의 양안을 갖고
    나는 이 시대의 사회를 바라보겠다

    그리고 이젠 나도 체중감량을 위해 뭔가 움직여야 할 때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못한다면 앉은뱅이와 다를 바가 없다
    박제가 되지 않으려면 황지우식 튀는 아이템과 김지하 김수영식 활동성을 갖춰야 될 것이다.

    황지우 형
    당신이 태어난 연대와 지역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체중을 줄인 몸
    소파가 아닌 나무로 만든 의자에서 나온 시를 기대합니다
    나 역시 그런 시를 당신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3. 한현진
    2000.05.17 오전 12:00

    누구를 위해 가는가 당신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타인을 위해서인지
    아마도 이시대의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을 지칭 하리라.
    황지우님의 시는 언제나 정감이 넘쳐난다. 또한 마지막에 주는 여운은 정말이지 잠을 못 이루게 하는 진한 한잔의 커피가 아닐런지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세상이 당신의 눈가에서 사라질때 까지

  4. 마진영
    2000.04.21 오전 12:00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를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황지우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국어 시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직 반독재 작가라 하면 김지하 밖에 모르던 저로서는 황지우라는 작가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겨울에 자비를 들여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라는 시집을 샀습니다.(자비로 산 최초의 시집) 하지만 대학교 신입생인 제 수준으로 그 시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벅차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출간된지가 얼마 안되어 아직 해설서도 도서관에 없을테고…… 하지만 꾹 참고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해가 될때까지. 황지우씨가 저희 학교에 강의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얼마 전 듣게 되었습니다. 꼭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