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리의 굴곡, 공가의 파동, 꽃 그림자 등으로 지어진 이 시집은 이제 막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듯, 혹은 이제 막 사라지려는 것 같아 아른아른하지만, 무슨 정자 같기도 하고 절 같기도 하다. 과다 노출된 흑백 사진처럼 환하고 고요한 이 시집은 마음의 무늬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포착하여 우리에게 언어로 된 아름다운 정물화를, 삶의 아픔이 실린 깊은 소리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시인의 산문]
남쪽 산에서 집으로 옮긴 춘란의 꽃대가 둘 올라왔다. 꽃을 피운 춘란의 느낌이나 향기는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헝클어지거나 보이지 않는 실처럼 한 줄로 이어진다. 감각을 스쳐가는 琴線에는 꽃대에서 꽃으로 옮긴 겨울 우레가 숨어 있다. 춘란의 꽃을 상처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가을에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춘란은 이듬해 봄에야 꽃을 피운다. 저 꽃대는 겨울을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근심이 연갈색 꽃대에 깃들여야 한다. 춘란의 꽃을 나는 꽃의 긴장으로 읽는다.
긴장이란 내 글의 속셈이기도 하다. 가장 바람직한 시란 노래말이리라 믿는 나에게 긴장이란 노래말까지의 旅程이다. 아니 노래란 나에게 너무 무거워서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걸러내고 따지고 깎아내고 싶은 것은 노래 바로 전의 단순하고 소박함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함을 학습으로만 익혀왔다. 단순함을 삶으로 말할 수 있는 경지란 너무 아득하여 나는 겨우 미묘함과 팽팽함을 내 글의 화두로 남길 뿐이다. 꽃핀 춘란의 이유에 내 짧은 시를 비교하고 마는 이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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