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 시인을 위한 변명

강동수 소설집

강동수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7년 8월 29일 | ISBN 978893200931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94쪽 | 가격 6,000원

책소개

지난 시기를 정면에서 노골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채 출구가 없는 이 세기말의 황폐한 나날과 지난 시대의 뜨거운 기억을 끊임없이 편린으로 끌어내면서 주변부 인생들의 방황을 차분하게 그린 강동수의 첫 소설집. 뿌리 뽑힌 자들의 삶의 막막함이 가슴 아픈 회색빛 정조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 소개

강동수 지음

1961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몽유 시인을 위한 변명」이 당선되어 데뷔했다. 소설집 『몽유 시인을 위한 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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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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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10 =

  1. banga0097
    2009.06.26 오전 8:15

    너 때문에 나도 글을 쓰보고 싶어.

    근데 너 닮네 아무리 쓰도.

    다른 건 어떤지 함 뵈즐래?

    瑞雪

    ‘그날의 아침’을 떠올리면 눈이 내린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해보지도 않았다. 공연히 그런 걸 알려고 들었다가 혹시라도 비밀이 누설되어 다시는 눈이 내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다. 비밀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하는 거고, 또 영역을 보전 할 수 있는 거라 믿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그날의 아침’이 언제인지 조차도 모른다.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날의 아침’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그날의 아침’을 찾아 갈 수 있는 건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보였던 행동들이 단서가 되어주기 때문에 ‘그날의 아침’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의 아침’의 바로 전날. 아버지가 보였던 행동은 아주 이상했다. 늘 방에서만 계시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다섯 부의 생활정보지와 무료신문 두 부를 가져오신 거였다. 깨알 같이 자잘한 정보지 속의 글자들을 샅샅이 뒤지며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밑줄을 그어댔다. 그러다 정보지에 실린 내용이 맞는지, 전화로 가끔 확인도 했다. 만약 일을 시켜 준대도 하시지 못 할 아버지께서 왜 그러시는지 몰랐다. 나중에 가서 대충 눈치 챘지만 참견은 하지 않았다.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라도 그랬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십 년째 방안에서만 계셨던 아버지가, 교실에서 있었던 그 일을 어떻게 아셨을까? 그리고 그 일이 왜 아버지 당신에겐 그렇게도 충격적이셨던 것일까?.

    “이 핸드폰 네 꺼니?”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나는 책장을 넘기는 대신 얼마 전 누나가 사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가져보는 거라 너무도 신기해서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버튼들을 눌러보기도 하고 고 있는데 담임 쌤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녀도 나의 핸드폰을 보고는 예쁘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삼성거니? 엘지거니? 하며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이상야릇한 웃음을 짓는 거였다.

    “너 학교에서 급식 지원받지 않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온몸에서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나에겐 ‘사정이 어려워 밥값도 못내는 주제에 핸드폰을 가지고 다녀?’란 말로 들렸다. 나는 아니 친구들이 먼저 그녀의 잔인한 논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친구들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게 민망스러운지 자신들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자신들이 대신 기절하고 싶다는 표정들 이었다. 어떤 얘는 ‘전세 살면 자가용도 못 타겠네.’ 라는 말까지 했다. 물론 저희들끼리 귀엣말로 했으므로 그녀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친구들은 그녀가 이제껏 부르짖던 정의란 게 고작 ‘분수에 맞게 살아라’ 정도인가 싶은 배신감이 아주 큰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언제나 신비한 힘으로 틀에 박힌 우리 또래의 사고를 재고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늘 장애인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여성 같은 약자의 편에서 분개하던 사람이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그녀의 야누스적인 두 얼굴에 심한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친구들만큼은 아니었다. 배려 없이 친구들 앞에서 함부로 까발리는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심각해 하진 않았다. 왜 그 일이 아버지 당신에겐 그렇게도 충격적이셨던 것일까?

    어쨌든 그날, 자율학습 시간에 조그만 소동이 있었다는 것을 아신 아버지는, 아니 십 년 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누나가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고 갔다는 것을 아신 아버지는 그 후부터 마치 실어증 환자가 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침부터 가져오신 다섯 부의 생활정보지와 무료신문 두 부에 동그라미나 밑줄만 하루 종일 그어대었다. 생활 정보지와 무료신문을 가져와 자잘한 글자들 밑에 밑줄을 긋는 일이 아버지의 중요한 하루 일과가 되어 버린 듯 보였다.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러다 언제부턴가는 차차 입맛에 맞는 일자리 찾기가 만만찮다는 것도 알아차리신 듯 했다.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것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슬슬 터득 하신 듯 했다. 이를테면, 월수 500이라거나, 이사직 공동투자 운운하면, 그건 십중팔구 팔기 힘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영업직이고, 그 일을 하려면 아버지의 허약한 연줄까지 총 동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더 이상 피라미드를 쌓아야 하는 그런 일자리 밑에 밑줄을 치시지 않았어요. 대신 집에서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가내수공업’ 같은 일을 찾으셨어요. 인형에 눈알을 붙인다거나, 실로 염주 알을 꿴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장에 쓰이는 부속품을 조립한다든지, 하는 그런 일 쪽에 밑줄이 그어진 게 더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 사람들이 사업을 망치려고 작정을 했으면 모를까, 걸어 다니지도 잘 못하는 아버지 당신에게 일을 맡길 리는 만무해 보였어요. 아니 그쯤은 눈치 빠른 아버지 당신이 먼저 알고 있을 텐데도 도무지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다섯 부의 생활 정보지와 무료신문 두부를 가져 오셔서 동그라미나 밑줄을 그어대던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그날 아침 여섯시 반에 맞추어 놓은 알람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였어요. 눈을 떠보니 희끄무레한 빛과 함께 방안의 물건들이 시야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늘 보던 그 물건들이 낯설어 보였어요.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니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처럼 보였어요. 누군가 밤새 다녀갔을 리도 없었고, 도둑이 들었을 리도 없는데, 생경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상한 느낌이었지요. 그래서 주위를 다시 한 번 더 휘둘러보는데, 그때 발자국 소리가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거예요. 작은 자갈들이 깔린 골목길을 걸어오는 신문배달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였어요. 왠지 그 소리가 예전과는 사뭇 달랐어요. 예전의 소리보단 훨씬 부드럽고 희미하게 들렸어요. 마치 카펫 위를 사뿐 사뿐 밟고 오는 듯 가까이 와서야 들려왔어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뒤이어 우유배달부 아줌마의 발자국 소리도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신문배달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보다도 포근했어요. 그리고 신문배달부의 발자국 소리보다도 더 가까이 와서야 희미하게 들려 왔어요. 전날까지만 했어도 신문 배달부나 우유 배달부의 발자국 소리는 모두 골목의 일곱 번째 집에서부터 들려왔는데, 그날은 바투 바투 몇 집을 건너뛰어 더 가까이 와서야 들려왔던 거였어요. 그러니까 신문배달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는 바투 다섯 번째 집에서부터 들렸고, 우유배달부 아줌마의 발자국 소리는 바투 바투 세 번째 집에 다다라서야 들려왔던 거예요. 이상했어요. 나는 ‘왜 그런 그지’,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어요. 그러다 이내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뱉었어요. 그제야 눈 때문이란 걸 걸 알았어요. 바로 눈이 내렸기 때문에, 눈의 부드러움 때문에, 둘의 발자국 소리가 두 서 너 집을 건너 띄어 더 가까이 와서야 들려왔던 거였어요. 그리고 신문배달부 아저씨와 우유배달부 아줌마의 발자국 소리가 서로 각기 다른 곳에서 들렸던 것도, 그동안 둘의 시간 차이가 있었고, 그 사이 눈이 더 내렸기 때문에 우유배달부 아줌마의 발소리는 신문배달부 아저씨의 발소리 보다 두 집을 더 건너뛰어 바투바투 세 번째 집에 와서야 들렸던 거였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어요. 눈은 떴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어요. 그대로 가만히 이불 속에 누운 채, 이불 속의 온기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상상해 보았어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 모양의 작은 자갈들이 깔린 골목길에는, 그 자갈들의 형태대로 고운 눈이 소복소복 쌓였을 터이고, 그 골목길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키 큰 가로수 나무에도 꽃잎보다 더 예쁜 눈꽃이 피워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매일 지나다니며 항상 눈살이 찌푸려졌던 그 지저분한 쓰레기장에도 새하얀 눈이 쌓여 깨끗하게 덮어 버렸을 것 같았어요. 연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스멀스멀 밀려오는 흥분 때문이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어요. 그런데, 아뿔싸! 이게 뭐란 말인가! 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창밖에는 동쪽 하늘에서부터 붉은 햇살이 떠오르고 있었어요. 내가 예상했던 눈은 내리고 있지 않았어요. 골목길에는 눈 대신 샛노란 햇살이 금속처럼 매끄러운 자갈들의 표면을 애무하고 있었어요. 나는 얼마나 충격적이든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도저히 눈앞의 현실을 긍정 할 수 없었어요. 온 세상이 다함께 공모하여 나를 속이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내가 미친 것인지. 확인해 줄 사람은 없었지만, 그것은 꿈을 꾼 것도, 미친 것도 분명 아니었어요. 설마 하며 꼬집어 본 팔뚝이 아프다며 ‘아’, 하고 따끔하게 말해주었어요.

    그런데 더욱 이상한 건, 그날의 그 일만이 다가 아니란 사실이에요. 만약 그 일 뿐이고 뒤이어 나타 난 일이 없었다면 그 일은 깜도 되지 못하고 잊어졌을지도 모를 거예요. 그것보다 더 이상하고 충격적인 건, ‘그날의 아침’에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였어요. 그 후부터는 어쩐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나, 혹은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볼 때마다 ‘그날의 아침’을 떠올려 보고 싶어지는 거예요. 이를테면, 생활 정보지를 가져와 밑줄을 그어대는 아버지를 보거나, 미각을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춘복이 아저씨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특히 인수분해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수학 시간 같은 때에는 자꾸 ‘그날의 아침’을 떠올리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날의 아침’을 떠올리면 이렇게 서설(瑞雪)이 내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나는 수학 쌤이 칠판을 향해 돌아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그날의 아침’을 떠올리고 있어요. 칠판에 방정식의 문제를 적는 순간, 꼭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서서히 신문 배달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가 먼저 들려오고, 뒤이어 우유 배달부 아저씨의 발소리가 들려오며 눈이 내리고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점점 더 많아져 가고 세상의 소리들은 그에 반비례로 점점 더 희미해져가요. 눈이 운동장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의 흔적들이 덥힐 즈음에는 소근 거리던 친구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더니, 관목들의 어깨 높이까지 쌓였을 땐 수학 샘의 목소리도 점점 들리지 않아요. 나의 시야에는 온통 하얀 눈뿐이에요. 하나도 때가 묻지 않은 이런 순백색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심장은 마치 겨울 동면에 들어 간 동물처럼 박동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요.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설명 할 수 있을까요? 엄마의 자궁 속에서 걱정 없이 있는 듯 안온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직 나의 표현 능력으론 이런 기분을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겪어본 기분 중에 분명 최고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나는 이런 기분이 혹시라도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손가락 하나도 까닥 않아요. 거미줄처럼 늘어져 나간 나의 신경이 임계점에 다다르자, 눈은 마치 하늘에서 큰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어요. 눈 깜짝 할 사이 눈은 관목들의 머리꼭지까지 덥고, 동백나무의 허리까지 기어오르고 있어요. 이젠 ‘코드가 같은 공통인수는 앞으로 빼내고, 나머지는 괄호 안에 넣어야 한다.‘ 는 수학 샘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요.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아요. 과외를 해서 이미 ‘인수분해’를 터득한 아이들은 자기들 끼리 코드를 맞추어서 혼자서도 갈 수 있는 화장실도 서로 같이 다니고, 심지어는 고래 잡는 병원에까지도 어울려 다니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아니 코드를 찾아낸다 한들, 공통인수가 되지 못하고 나머지들끼리 살아야 할 나에게, 인수분해 같은 건 오히려 깎아 놓은 손톱 마냥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무턱대고 실현 불가능한 헛꿈을 꾸다가, 꿈꿀 수 있는 희망마저 잃어버리는 게 나에겐 더 절망적이잖아요.

    길바닥 위에서부터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아가는 눈. 눈은 가끔씩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덮어 가고 있어요. 이제, 인수분해가 어쩌고 방정식이 어떠니, 하는 수학 샘의 말이 완전히 들리지 않아요. 그러면서 마음은 마치 백지의 끝을 도달한 노승처럼 평온해져 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네요.

    “너 요즘 들어 뭘 그렇게 골몰히 생각하니? 선생님이 세 번씩이나 불러도 대답도 없고?“

    수학 샘의 목소리 때문에 눈들이 화들짝 놀라서 사라지자, 나는 일본 왜경들에게 붙잡힌 독립투사들만큼이나 억울한 마음이 들어요. 그러나 금방이라도 쫄 듯이 표독스럽게 눈을 치뜨고 대적하는 독립투사와는 달리 나는 대꾸 한마디 하지 못해요. 수학 샘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칠판에 적혀 있는 방정식 문제를 풀려고 나가요. 물론 방정식도 너무 어려워서 손을 델 수가 없어요. 아직까지 한 번도 사각거리며 살아보지 못해서 일까요? 사각에서만 이루어지는 방정식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다른 친구들은 잘도 읽어내는 양수와 음수의 코드를 나는 도무지 찾아 낼 수가 없는 거예요. 아니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춘복이 아저씨가 운영하는 문성 반점에서 일할 내가 왜 그 딴걸 알아야 하는지부터가 이해되지 않아요. 올라갈 수 없는 나무는 처다 보지도 말아야 하듯이, 될 수 없는 일들에 매달리는 것도 헛수고잖아요. 삶이란, 자기하기 나름이고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은 진적에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수분해나 방정식은 손도 대지 않은 건지도 몰라요. 애초부터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도 없어요. 무엇이 유의미하고 무엇이 무의미한 것인지 조차도 몰라요. 그 때문에 과녁은 늘 흔들렸고, 궁수인 나는 번번이 조준 한번 해보지 못한 채 화살을 내려놓아야만 했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나에겐 그저 눈만 탈 없이 내려주면 그만이에요.

  2. banga0097
    2009.06.26 오전 7:59

    함 봐주세요?
    몽유시인의 변명하고, 내꺼하고. 표절이나 모방이다 싶으면 버리께여.

    열연

    박팔갑산

    나는 ‘지혜 병원’ 이라고 쓰인 간판을 바라보았다. 지혜는 귀여운 딸내미 이름일까 아니면 아내에게 감추고 싶은 옛 여자의 이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때론 길 건너편의 철길에서 열차가 ‘ㅊ ㅋ ㅊ ㅋ‘ 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면, 언젠가 배웠던 ‘격음화 현상‘에 대하여 새삼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첫 출근이이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그날, 공연히 창밖을 바라보며 허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사내가 벌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까맣게 기른 콧수염과 박박 밀은 머리 때문에 도무지 정체를 대중해보기가 힘든 사내였다. 아니 군데군데 벗겨진 머리의 버짐 때문에, 마치 물이 마른 개울에서 수초와 부대끼며 살다가 비늘이 군데군데 벗겨진 물고기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상갑 씨였다. 상갑 씨는 사무실을 한 바퀴 휘둘러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디서 얌전하게 생긴 샌님 한분이 와 있었네, 그래. 어디보자, 눈알이 새파란 게, 한 몇 년 밥 도적질 잘 하면 한 소식 하겠는 걸. 하하하하….”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던 상갑 씨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어 제쳤다. 그 웃음소리 때문에 소파에서 점심내기로 화투를 치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이 지방의 유지들 같았는데, 나에겐 아직 초면인 사람들이었다.

    “야, 상갑이 이놈의 자식! 오랜만에 나타났으면 어른들한테 인사부터 할 줄 알아야지, 게서 뭣 하는 짓이야!”

    머리가 희끗한 게, 예순 줄은 좋이 됨직한 신사가 나서서 나무랐다. 그러자 상갑 씨는 오히려 나무라는 신사 쪽을 향해 다가갔다.

    “아이고, 김 사장님 오랜 만입니다요. 한, 서너 달 만에 세상에 나와 보니, 이거 눈이 어두워져서 사장님 계신 것도 미처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요.”

    “이런 화상 하구선…. 그래, 그동안 어디 가서 누굴 등 쳐 먹었어?“

    “아이고, 김 사장님. 왜 이러 십니까요? 제가 남의 등을 치다니요. 전 드라마를 보더라도 그 드라마의 광고는 기꺼이 봐주는 사람입니다요. 광고가 먼저 있기 때문에 드라마도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요? 저는 광고가 아무리 성가시드라도 절대 채널 돌리지 않는 사람입니다요. 그런 양심의 제가 어찌 남의 등을 치시겠습니까요. 안 그렇습니까요?”

    “이런 화상 하고선. 그럼 대가리를 박박 깎고 콧수염까지 기르고서 뭘 하며 지냈던 거야?”

    “히히. 제가 이래봬도 말이지요. 그동안 토굴에 틀어박혀 고시 준비를 했던 몸이 올습니다요.”

    “뭐, 네 놈이 고시 준비를 했다고?”

    “그런데 산중이라 부식이 부실해서 영양실조에 걸릴 판이라 도리 없이 산을 내려왔지요. 히히히,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예술 공부도 좀 하긴 했는데, 어디 말나온 김에 김 사장님께서 먼저 한 번 보시지요.”

    상갑 씨가 어께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렸다. 그 속에서 사진 몇 장을 끄집어내서 김 시인의 눈앞으로 들이 밀었다.

    “선생님 사진 중에 예술성 짙은 것들로만 쫙 뽑아 왔습니다요.”

    김 사장은 마지못해 벗어 두었던 안경을 다시 꼈다.

    “쯧쯧쯧. 예술 작품 어쩌고 하더니, 이건 저번에 찍어 놓았던 사진을 확대한 것뿐이구먼.”

    “아이고, 선생님. 왜 이러 십니까요. 김 사장님 같이 예술의 조예가 깊으신 분께서 촌로처럼 마구잡이로 이러시면 어쩝니까요? 지금 거실에 걸려 있는 낡은 사진들은 다 떼어 내시고 이 사진으로 떡하니 봐 꿔 달아 보십시오. 사진 속에서 우러나는 선생님의 인품에 모두들 존경해 할 겁니다요.”

    상갑 씨가 김 사장이 있는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며 ‘씨익’ 하고 웃었다. 김 사장은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 아니, 더 이상 버터 봐야 소용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지갑을 끄집어내었다.

    “이 화상. 몇 달 보이지 않 길래 이젠 좀 조용해지나 했더니….”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상갑 씨의 수작이 조금 경박한 듯 했지만 그것보단 재미있다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다.

    김 사장으로부터 몇 장의 지폐를 받아든 상갑 씨가 이번에는 옆에 앉은 신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아이고, 이제 보니 박 선생님도 마침 여기 계셨네요. 박 선생님 작품도 같이 준비해 왔는데 어지간하시면 한 번 보시지요. 폼 나는 것들로만 쫙 뽑아 왔습니다요.”

    상갑 씨는 또 다시 바랑 속에서 사진 몇 장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박 선생의 얼굴 앞으로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화상이 나한테까지 왜이래! 김 사장한테 몇 푼 받았으면 그걸로 됐지. 저리 치워!“

    “에이, 우리 지역에서 제일 인정 많기로 소문난 분께서 왜 이러 십니까요? 혹시, 이런 사실을 선생님의 제자들이 아시고 수악하다고 놀리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박 선생은 처음부터 버터 볼 엄두가 나지 않는지, 사진도 보지 않고 지갑부터 끄집어내었다.

    “이 화상 수법에 하도 당해서 다시는 안 당한다 했는데….. 곡식알은 거꾸로 떨어져도 반드시 위를 향해 크는 법이라는데, 이 화상은 어느 모양으로 심어 졌기에 이러는지 몰라.”

    박 선생으로부터 몇 장의 지폐를 더 받은 상갑 씨는 또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옆에 있는 뚱뚱한 오십대 초반의 중년신사를 먹잇감인 양 음흉스럽게 바라보았다.

    “어이, 김 교수! 아니, 돈 교수, 오랜 만이야. 그동안 얼굴에 게 기름이 번지르르한 걸 보니 돈푼께나 벌은 모양 같은데, 돈 다 벌어 뭐 할 거야? 죽어서 싸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그 돈으로 내 카메라나 한 대 바꿔주지? 이제 실력도 완숙의 경지에 올랐겠다, 자네가 요즘 대세인 디지털 카메라 한 대만 장만해주면 폼 나는 것들로만 쫙 뽑을 수 있겠는데 말이야.”

    상갑 씨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김 교수가 용수철에 튕기듯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상갑 씨의 수작이 자신에게까지 이르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 자식이 남의 사무실마다 찾아다니면서 뭐하는 짓이야! 안 그래도 화투장이 안 풀려서 열불이 터져 죽겠는데, 네 놈까지 와서 깝죽거려!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일이지 어디서 기어 나와 개수작을 부리는 거야! 그리고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나 보고 뭐 돈 교수라고?“

    상갑 씨는 김 교수의 갑작스런 행동에 저어기 당황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돈 씨를 돈 씨라 부른 건데, 그게 뭐 어째서?”

    “김 씨가 네 놈 주둥이 속에선 어째 돈 씨가 되어 나와? 응?”

    “이밥 얻어먹고 금 씨를 김 씨로 바꾼 건, 그럼 뭐야?”

    나는 상갑 씨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상갑 씨가 김 씨를 돈 씨라고 부르는 것은, 황금 금 씨를 쇠 김으로 바꾸어 부른 것을 두고 그러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 옛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 되었을 때, 나라를 장악한 이 씨들은 임금을 상징하는 금 씨 성을 쓰는 사람들을 곱게 보아주지 않았다. 그에 겁을 먹은 금 씨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신들을 낮추겠다는 뜻으로 금 씨를 김 씨로 바꾸어 불렀다. 그래서 이 씨들은 그 대가로 자신들이 먹는 쌀밥 즉, 이밥을 주었는데, 상갑 씨는 지금 그 사실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였다. 줏대 없이 성을 팔아 이밥을 얻어먹었다는 것을 빗대어 돈 씨라고 비아냥거리는 거였다.

    “이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말하는 본세가….”

    김 교수가 대번 상갑 씨의 멱살을 두 손으로 낚아채었다.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상갑 씨를 사정없이 구석으로 밀어 제쳤다. 그제야 상갑 씨는 장난이 아님을 알아차렸는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돈 교수! 왜이래? 이 앞발 좀 놓고 말로 해. 말로 하자구.”

    “너, 이 자식! 네 발로 나갈 거야 아니면 내가 끌어낼까 응?”

    “돈 교수! 알았어. 내발로 나갈 테니까, 자네 앞발이나 좀 풀어 줘“

    그러나 김 교수는 상갑 씨를 개 끌듯이 끌며 문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씨름 선수처럼 다리를 거두어서 복도에 내동댕이쳤다.

    “너, 이 자식! 다시 한 번 더 이곳에 나타났다간 그땐, 다리몽둥이 부러지는 줄 알아? 알겠어?”

    잠시 후, 계단을 타고 일층으로 함부로 뛰어 내려가는 상갑 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김 교수에게 당하면서도 그의 오동통한 손을 빗대어 앞발이라고 하고, 김 씨를 돈 씨로 부르며 가는 상갑 씨의 표정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불쑥 생겨났다. 아니, 그 보단 왜 상갑 씨라는 사내는 그런 식의 무례한 작별 인사를 당하고 가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연민 때문에 그를 자꾸만 뒤 돌아 보게 끔 했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어쨌든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에서 내려다 본 극장 앞 사거리에는 상갑 씨가 시인들에게 받은 지폐들을 하나하나 세어 보고 있었다. 다시 척척 잘 접어 승복 앞주머니에 찔러 넣은 다음, 이층 사무실을 향해 손으로 엿 먹으라는 시늉을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야, 이놈의 새끼들아! 잘난 네놈들끼리 잘 쳐 먹고 살아라!”

    그르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상갑 씨는 언제 그랬나는 듯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이, 샌님 다음에 또 보자고.”

    나는 상갑 씨가 돌아간 후,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자들이 펄떡 펄떡 뛰어 오르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했다. 마치 자음과 모음들이 편을 나누어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판에서 손길을 거두고 시계를 보았다. 오후 두 시를 가리킨 벽시계 밑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장을 보았다.

    단장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김 사장을 향해 대뜸 물었다.

    “근데 상갑이 그 놈 왜 그러죠? 오다가 요 앞 길가에서 마주쳤는데, 인사도 않고 씩씩거리며 그냥 가네요? 혹시 여기서 무슨 일 있었어요?”

    “특별히 무슨 일이랄 거 까진 아니고…. 상갑이 그 놈이 김 교수한테 디지털 카메라 하나 사달라고 수작 부리다가 조금 당했어.”

    김 사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떻게요?”

    “여기 있는 김 교수 말이야. 이제 보니 앞발 아니, 손아귀 힘이 여간 아니더라고…. 상갑이 그놈도 김 교수한테 멱살잡이 한 번 당하니까 옴짝 달싹 못하더라고.”

    “음, 그런 일이 있었었군요. 그래서 그 놈이 단단히 삐친 거였군요.”

    단장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김 교수의 옹졸한 행동마저 긍정 할 수 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단장은 그런 떨떠름한 시선으로 김 교수를 힐끗 바라 본 후, 윗도리를 벗어 걸었다.

    “어이, 김 단장!”

    “말씀하세요. 김 사장님.”

    “근데, 저기 있는 젊은 친구는 누구야? 여기 있을 사람이라면 우리들한테도 소개를 좀 시켜줘야지.”

    김 사장이 턱짓으로 까닥 나를 가리켰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이 거, 상갑이 그 놈의 자식 생각하다가 깜박 했습니다. 진명아 어서 인사드려라.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이곳에서 내어 놓으라 하는 유지님들이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만 조금 숙여 보였다.

    “제 사촌 동생인데 당분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사이 김 교수와 박 선생의 점심내기 화투도 끝난 모양이었다. 둘은 뭐라 뭐라 하더니,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느낌으로 보아 박 선생이 이긴 것 같았다.

    “공동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게 여간 영리해 보이지 않는데, 뭐하는 친구지?“

    단장은 마치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을 했다.

    “이 친구 이래 뵈도 서울에서는 알아주는 연극 감독입니다. 작년에 문제작으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란 작품도 이 친구가 연출한 겁니다. 근데 제 놈의 자식도 예술가 아니랄까봐서 융통성 하나 없이 꽉 막힌 똥고집이 문제지만…. 글쎄 제작자가 여배우 배꼽까지만 좀 벗기랬다고 때려치웠다지 뭡니까.”

    “젊은 사람이 그만한 고집은 있어야지. 예술 하는 사람이 줏대 없이 시속(時俗)만 따라 다니면 어디 쓰나.”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번 참에 이 친구를 통해 우리 지방 문화를 조금 업그레이드 시켜 볼 요량으로 제가 불러 내렸습니다. 이번 춘계공연 때, 올릴 작품을 책임 질 겁니다.”

    그 말에 김 사장이 나의 아래위를 다시 한 번 더 훑어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눈가에 총기가 서려 있어 일을 당차게 아주 잘 처리 할 것 같은데… 언제 술자리 한번 마련해봐. 우리도 서울서 돌아가는 얘기를 좀 들어놔야지.”

    *

    해가 지고 유지들이 다 돌아간 후, 단장과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저녁대신 소주를 마셨다. 음복술도 여자가 따라주어야 맛이 있다며 자꾸만 술잔을 채워주는 삽상한 주모 때문에 평소의 나는 주량보다 배는 더 마셨다.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그렇게 취하지가 않았다. 얼굴 위로 뜨거운 기운만 조금 솟아오를 뿐 정신은 오히려 명징해 지는 것 같았다.

    “형님. 아까 사무실에 왔었던 그 사람은 누구죠?”

    나는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 그 친구. 이름은 천 상갑이고, 사진작가지.”

    “사진작가요?”

    “몰라. 자칭 사진작가라면서 광대 같은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는 놈이야.‘

    “이 고장 사람은 아니죠? 그 사람 말투에 가끔씩 섞이는 억양으로 보아 이곳 토박이는 아닌 것 같던 대요?”

    “그래, 이 곳 토박이는 아냐. 한 십여 년 전부터 슬그머니 이곳에 나타났을 걸. 돈푼께나 있는 유지들이 잘 다니는 사무실이나, 다방 같은 델 돌아다니면서 구걸 아닌 구걸을 하기도 하고, 또 목에 걸린 사진기 너도 봤지? 그 걸로 돈 푼께나 있는 유지들은 무작정 찍어 놓고 기신기신 몇 푼씩 뜯어내어 먹고 사는 놈이야.”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곳 유지들이 겉으로는 귀찮아하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그 사람에게 시달리는 걸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던 대요?”

    “그런 면도 있지. 사실 동생 말대로 상갑이가 이곳 유지들에게 꼭 피해만 주는 건 아냐. 이율배반이랄까? 아이러니랄까? 이곳의 문인들은 상갑이에게 얼마만큼의 시달림을 받아야 제대로 행세하는 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어찌 보면 상갑이가 이곳 유지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는 비공인 감별사인지도 몰라.”

    그기까지 말한 단장이 갑자기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그 안경알을 닦으며 금간 유리창 너머 먼 데를 바라보았다.

    “사실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간이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그때, 광주지방 난리 때, 특수부대요원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한 후부터 정신이 저렇게 망가져 버렸다나봐.”

    순간, 온몸이 감전 된 듯 찌르르해 왔다. 상갑 씨란 사람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줄은 이미 알았지만, 5. 18에 관계 되었다고는 미처 짐작 하지 못했다. 나는 80년 광주의 5.18 때문에 정신이 망가져 버렸다는 말에 금세 취기가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죄책감 때문에 그렇겠지. 공수부대 요원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것은, 타의든, 명령이든, 그것은 분명한 죄악이고…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가 저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자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나는 단장의 말을 들으면서 그때 광주의 잔인한 전쟁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또 한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외삼촌이었다. 외삼촌도 광주의 전쟁에 의해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이었다.

    나는 단장과 해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외삼촌을 생각하다 상갑 씨를 생각하다 했다. 그런데 상갑 씨를 생각할 땐, 왠지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닮아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나 누구를 닮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며칠 뒤, 대본을 다시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상갑 씨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그 누군가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대본 속에서 등장하는 망나니1이었다. 시대는 서로 다르지만 둘의 전력이 마치 ‘도플갱어’처럼 빼닮아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

    차 맛이 약간 이상했다. 외삼촌이 산야를 돌아다니며 손수 채취했다며 부처 준 차 맛은 조금 씁쓰름했다. 아니 씁쓰름하긴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뭐랄까. 그 맛은 마치 장인들이 만든 명품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같은 것이 씁쓰름함과 함께 섞여 있는 그런 맛이었다. 아무튼 언어로는 쉽게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맛을, 주말의 여유와 함께 즐기고 있을 땐데, 불쑥 단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쁜 일들은 거의 다 매조지 해 논 상태라 그리 부산스러울 것도 없는데 단장은 오자마자 수선을 떨었다. 알고 봤더니 김 교수의 딸 결혼식이 있는 날인데 깜빡했다는 거였다. 나도 이쪽 형편을 살필 겸 같이 따라나서는 게 좋겠다고 했다. 늦었다며 서두르라고 하도 채근을 하는 바람에 축의금 봉투도 챙기지 못하고 단장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우리가 예식장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식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영광스러운 이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 수고해 주실 분은, 오랫동안 사물에 숨겨진 물료적 본성을 추적하고 존재의 내면을 드러내는 인식론적인 시작들을 발표해 오신 ()시인이십니다. 해박한 지식과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름 없는 이웃들의 삶을 놓치지 않는 따스한 가슴을 간직한….”

    흰머리가 성성한 주례가 입석하고, 뒤이어 신랑신부가 입장하자 객석 통로에서 사진을 찍어대던 사내가 그들이 서있는 단상 앞으로 다가갔다. 상갑 씨였다. 상갑 씨는 단상 앞에선 신랑신부의 다리아래 붙어 서서 위를 향해 카메라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엉거주춤 쭈그려 않아서 그들을 찍었다. 그렇게 몇 장을 찍더니, 다시 자세를 교정하여 반 쯤 드러누워 찍었다. 또 그렇게 몇 방을 찍던 상갑 씨가 이번에는 완전히 드러누웠다. 다리와 허리를 바닥에 붙이고 모로 누운 자새로 플래시를 펑펑 눌러댔다. 핫팬츠나 다름없는 반바지를 입은 상갑 씨는 마치, 여배우가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에서 요염한 몸매를 과시하듯 보였다. ‘킥’ 하는 웃음이 절로 나오려는 찰라였다.

    “저 놈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저 놈 자신에게는 일종의 의무 같은 거야.”

    “예?”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 단장을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만약 저 놈이 저런 식으로 한 번씩 못난 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의 구걸 성 이미지는 곧 상실 될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우리들에게 몇 푼 씩 우려먹을 수 있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지.”

    단장은 비밀을 캐낸 사람처럼 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런 게 다 ‘쇼’란 말 이예요?

    “근데 왜 하필이면 김 교수의 결혼식장을 찾아와서 그러는지 알아?”

    “왜죠?”

    “그건 자네도 알다시피 평소 고집이 세고 인정머리 하나 없는 김 사장의 콧대를 꺾어 보기 위함에서야. 저렇게 일부러 핫팬츠를 입고 연출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 김 교수가 아무리 섦 삶은 말 대가리처럼 뻣뻣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면 그도 별 수 없이 더 이상 자신을 무시 하지 못한 다는 뜻이지.”

    어쨌든.

    하객들은 상갑 씨의 행동에 한 두 사람씩 킥킥 거리며 서로 따라 웃었다. 그러다 그 웃음소리가 여러 명의 웃음소리에 섞이고 자신의 웃음소리가 특별날 게 없는 것이 되자 마음 놓고 웃기 시작했다. 마침내 온 식장은 떠나갈듯 한 웃음바다로 변해갔다. 김 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광경에 난감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 대었다.

    “흠, 흐흠. 저 놈, 끌어 내!”

    김 교수의 말에 신랑 친구들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낮은 포복 자세로 누워 있는 상갑 씨를 일으켜서 들쳐 업었다. 그러나 상갑 씨는 그들에게 들쳐 업혀 가면서도 엉하는 어린애처럼 등을 뒤로 제쳤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하객들을 향해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그런 상갑 씨를 지켜보던 하객들은 또다시 박장대소하고, 식장은 다시 한 번 더 난장판이 되었다.

    상갑 씨의 괴상한 행동 때문에 식이 흐지부지 되자, 예식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애저녁에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허, 거참, 그 놈은 어쩌자고 신성한 그런 자리에 나타나선 행사를 망치는 거야?”

    김 사장이 매우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우리들이 너무 물러서 그 놈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거라고”

    박 선생이 말을 받아주자 김 사장이 다시 말했다.

    “하여튼 그 친구도 참, 재미로 봐 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김 시인과 박 시인 외에도 합석한 많은 문인들이 상갑 씨를 나무랐다. 그러나 말들은 다들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오히려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는 모습들 이었다.

    “어, 저 친구가 여긴 어떻게 알고 나타났지?”

    누군가가 내 뱉은 말꼬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상갑 씨가 식당 문을 밀어 제치며 막 들어오고 있었다. 상갑 씨는 식당을 한 바퀴 휘둘러보더니, 재빠르게 방으로 올라와 주례를 맡았던 노시인의 맞은 편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그리고 그만이 할 수 있는 넉살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이고, 선생님. 언제나 몽매에도 그리던 선생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요. 제가 얼마나 선생님의 시를 좋아 하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겁니다요. 선생님은 진실로 시의 스승이십니다요. 저는 말이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선생님의 시를 외라면 몽땅 다 욀 수 있습니다요.”

    하며 상갑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과장된 신파조로 시를 큰소리로 낭송 했다. 그런데 상갑 씨가 노시인의 시라며 낭송한 것은 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소양강 처녀’ 라는 대중가요 노랫말이었다. 그에 노시인은 심기가 불편한 듯 몇 번 헛기침을 해 댔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김 교수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눈에서는 도저히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그런 다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야! 상갑이 이놈의 자식! 네놈이 사람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어디서 하던 짓거릴 하는 거야! 그래, 네놈이 여기 또 무슨 국물이나 없는지 기웃거리는 모양인데, 옜다 이놈아, 여기 있다. 다 처먹어라!”

    머리끝까지 화가 난 김 교수가 지폐를 꺼내어 상갑 씨의 얼굴 위에 내어 던졌다. 지폐는 상갑 씨의 얼굴에 부딪혀 찬바람 맞은 늦가을 낙엽처럼 후두둑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야, 이놈아! 이 돈을 손으로 줍지 말고 네 주둥이로 물어 올려봐! 그럼 네놈에게 다 줄 테니까! 네놈은 사람이 아니라 개새끼나 똑 같은 놈이니까 먹이를 챙기려면 손이 아니라 주둥이로 챙겨야지. 안 그래?”

    지켜보고 있던 노시인의 미간이 점점 찌그러졌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우리나라의 지성들을 가르친다는 대학 교수가…. 나, 원, 참, 이 사람 많이 취했구먼. 무슨 이런 봉변이 다 있나. 여보게들 나 이만 먼저 가네.”

    노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르는 문인 몇 명도 따라 일어났다. 노시인 일행이 나가고 나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김 교수는 마구잡이로 소리 질러 댔다.

    “야, 이 자식아! 빨리 주둥이로 돈을 물어 올려보란 말이야! 이 게 바로 네 놈이 제일 좋아하는 돈 아니냔 말이야! 어서 물어 올려봐 이놈아! 네 놈 따위에게도 체면이란 게 있어?”

    김 교수의 모진 다그침에 상갑 씨의 넉살은 이미 살아진지 오래고, 얼굴은 납덩이처럼 차갑게 굳어져 갔다. 상갑 씨의 시선은 자신이 따라 논 술잔에 꼼짝없이 붓 박혀 있었다.

    “이, 개 같은 새끼!”

    김 교수가 맥주 컵을 집어 상갑 씨를 향해 날렸다. 맥주 컵은 상갑 씨의 이마와 면상 쪽을 강타한 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동시에 상갑 씨도 얼굴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이 기생충 같은 자식이 감히…. 이런 자식은 불구덩이에 확 처넣어 버려야해!”

    맥주병을 날리고도 분이 삭혀지지 않는지 김 교수는 쓰러진 상갑 씨를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꽤 오래 동안 일방적으로 그랬다. 모두들 지금쯤은 상갑 씨가 초주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기운이 생겼는지 상갑 씨가 김 교수를 밀어 제치고 벌떡 일어났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불씨라도 떨어지면 금방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그래, 말 잘했어. 어디, 네 놈이 날 불구덩이에 처넣어 봐!”

    상갑 씨가 갑자기 한창 고기가 타고 있는 불판위에 자신의 손을 갖다 눌렀다. ‘치이익‘ 하며 살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워 올랐다. 상갑 씨는 군데군데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 손을 김 교수 앞으로 들이 밀었다.

    “그래, 이 자식아! 어디 이 걸, 네놈이 처먹어 봐! 잘난 네놈이 이 개고기를 처 먹어보란 말이야!”

    갑작스런 반전이었다. 김 교수는 방금 전의 시퍼런 서슬은 간데없고,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자식아! 어서 이 개고기를 처먹어 보란 말이야!”

    얼마나 더 소리를 질렀을까. 상갑 씨의 모습이 꼭 분노의 핏기가 다 빠져서 흐물흐물해진 고기 덩이 같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치던 상갑 씨가 그만 제풀에 픽 쓰러져 내렸다. 쓰러진 모습이 꼭 불타다 남은 자리같이 쓸쓸하게 보였다.

    “젊은 사람이 장승처럼 멍하니 서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그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애꿎은 나를 향해 나무랐다. 나는 할 수 없어서 상갑 씨를 등에 업었다. 상갑 씨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마침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나는 응급실에 상갑 씨를 눕혀놓고 의사들이 조치를 취하는 동안 밖의 복도로 나왔다. 의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다행이도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간호사가 소독 솜을 문지를 때마다 꿈틀 하는 상갑 씨의 어깨가 왠지 손과 이마에 생긴 상처보다 마음의 생채기가 더 욱신거린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복도로 나온 나는 커피 자판기 앞으로 다가가서 동전을 넣었다. 그런데 아뿔싸! 커피 자판기에는 ‘고장. 동전 넣지 마셔요’ 라고 적혀 있었다. 그동안 경황이 없었던 탓에 미처 자판기에 붙은 쪽지를 보지 못하고 동전부터 넣은 거였다. 이럴 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는데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왕 동전을 넣은 김에 버튼을 눌러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혹시나 했던 게 역시 나가 되었다. 자판기가 ‘치리릭 치리릭’ 하는 기계음을 내더니 덜컥하고 잔을 내려 커피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 공짜로 집어 삼킨 돈도 미안 했는지, 그 동안 모아졌던 동전들을 ‘추르르’ 하고 한주먹이나 토해 내었다.

    나는 ‘고장 동전 넣지 마셔요’란 쪽지를 떼어내고 창가로 다가갔다. 그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창가에는 까맣게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호오‘ 하고 유리위에 연기를 내어 뿜었다. 뽀얀 입김이 손바닥만 하게 서리면서 어둠이 차단되었다. 그 위에 손가락으로 < 고장>이라는 글자를 섰다. 그러자 < 고장>이라는 글자가 뽀얀 입김을 가르고 시커먼 벌레처럼 꿈틀 하고 살아났다.

    *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동안 미뤄놨던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데, 상갑 씨가 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날따라 들어오는 발걸음이 객지 밥 먹다가 석 삼년 만에 제집을 찾아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렸다.

    “아직 점심 전이면 나랑 같이 나가지.“

    나는 들어오자마자 점심부터 먹자는 상갑 씨를 빤히 보았다. 커서 명태가 되지 못할 노가리로 아직 초면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점심을 얻어먹으려 그런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작금의 정치인들처럼 본말을 왜곡시키고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허수아비 논법’을 써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아직 그러기엔 이른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헛걸음을 하셨네요. 휴일이라서 문인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으셨는데, 수금을 못해서 어떡하죠?”

    “오늘은 수금하러 나온 게 아냐. 독수공방 하고 있을 샌님이 생각나서 점심이나 같이 하려고 왔다고.”

    “이거, 어떡하죠. 전 아침을 느지막하게 먹어서 별로 생각이 없는데요. 그리고 아직은 천 선생께 점심공양 대접 할 여력도 없고요.”

    “샌님이 보기보다 좀생이시네 그래. 그러지 말구 나랑 점심 공양이나 함께 하러 가자고. 어제는 천연기념물들한테 수금을 많이 해서 지금은 부자나 진배없다고. 자 보라고.“

    상갑 씨가 주머니에서 꽤 많은 지폐 뭉치를 꺼내어서 흔들며 보여주었다.

    “그 게 웬 돈 이예요?”

    나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천연기념물들한테 갔다고 했잖아.”

    나는 상갑 씨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리고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써야 하는 세상이란 걸,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 사람들 말이야.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이름도 생소한 문예지를 통해서 등단한 사람들 말이야.”

    나는 그제야 상갑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천 선생께서 그들을 찾아가면 그녀들이 천 선생한테 용체 써시라고 돈을 막 주시나요?”

    “그건 아니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조금 잔머리를 굴려서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서 기분 좋도록 해줘야지.

    “어떻게요?”

    “그러니까 그들은 기껏해야 무슨 문예 강좌나 아마추어 백일장에 입상해서 문인이란 호칭을 갖게 된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항상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하여 듣고 싶어 하고, 그것을 인정받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다 이거지. 행자님 머리 정도면 더 이상 뒷말은 안 해도 알아듣겠지? 조금 간지럽더라도 살짝 노가리를 풀어서 그들의 허한 가슴을 채워 주고 대가로 몇 푼 받아내는 거야. 배우고 싶으면 하는 일 때려치우고 나 따라다녀. 보기보단 수입이 꽤 짭짤다구”

    나는 가소로워 ‘쿡’ 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웃음을 밖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대신 조금 더 치켜 주어 보기로 하였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 기발한 생각은 아마 천 선생 아니시면 불가능 할 거예요.”

    “얼빵한 놈이 당수 팔 단이란 말도 있잖아. 행자님도 나 만만히 보지 마. 나 노가리 2급기능사 자격증도 있어. 그리고 난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의 빈틈과 급소를 보는 눈썰미도 있고….”

    “어찌, 제가 천 선생을 만만히 보겠어요. 전 벌써부터 천 선생이 고수이신 걸 알고 있었어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던데, 그럼 샌님도 고수신가? 그 말은 고수끼리 같이 점심공양 하러 가겠다는 말씀인가?”

    “그러죠. 오늘 점심공양은 천 선생한테 얻어먹어 보도록 하죠.”

    나는 상갑 씨를 따라 시장 쪽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일명 먹자골목이 나왔다. 그런데 상갑 씨는 식당들이 나란히 줄지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대도 자꾸만 골목을 거슬러 올라갔다.

    “천 선생님. 자꾸 어디까지 가실 거예요? 근처 아무대서나 간단히 한 그릇 먹고 말지요.”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이제 다 와 간다고. 요 앞 골목에 가면 보신탕을 아주 잘하는 집이 있어. 행자님도 먹어보면 알겠지만 맛이 아주 기가 막힌다고. 어서 가자고.“

    상갑 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한참이나 더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간 후에야 어느 허름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

    “바로 저 집이야. 보기에는 허술해도 음식 맛 하나는 기가 막혀. 주인 여자를 닮아서 음식이 맛있는지도 몰라. 나 한 때, 이집 주인 여자랑 큰 발명도 할 번한 사이였어.”

    “발명이라뇨?”

    “아이 낳는 것도 발명이잖아. 세상에 남자 여자가 정자 난자를 섞어서 아이 만드는 발명보다 더 큰 발명이 어디 있겠어.”

    나는 ‘픽’ 하는 웃음이 나왔다. 평소 상갑 씨가 객쩍은 소리를 잘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 때, 이집 주인 여자랑 그렇고 그런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표현 할 줄은 몰랐다.

    “그럼 천 선생님한테 무지 잘해 주시겠네요?”

    “아냐. 오히려 정 반대야. 제발 좀 오지 말래.”

    “왜요?

    “거 왜, 영감 장에는 못가도 할망구 버르장머리는 고치라는 말 있잖아.”

    나는 이번에도 상갑 씨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눈을 뜨악하게 뜨고 바라보기만 했다.

    “난 그 여잘 마누라다 생각하며 사업 자금 좀 챙겨 썼거든. 근데 그 여자가 돈을 어디에 썼느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그래서 속담처럼 버릇만 좀 고친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게 그만 잘 못 되서 큰 낭패를 본 거야. 알고 봤더니 난 그 여자에게 있어서 그저 채무자일 뿐이었어.”

    “그 돈으로 무슨 사업을 하셨는데요?”

    “거기까진 물어 보지 마. 좀 더 겪어보면 내가 말 안 해도 샌님이 저절로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샌님. 여자완 헤어져도 그저 덤덤하던데. 여자가 만든 음식 맛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거 있지. 얼굴 잘생긴 여자는 소박을 맞아도 음식 솜씨 좋은 여잔 소박 안 맞는다는 그 말은 사실 인가봐. 여태까지 격언이나 속담들은 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만은 인정해야겠어. 대체 이게 무슨 조환지 원, 아무튼 어서 들어 가지구.”

    “그런 사이시면 좀 껄끄러울 텐데요? 들어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이젠 괜찮아. 내가 오지 말라고 한다고 어디 안 갈 사람인가? 난 과거는 생각 안 해. 그녀와 난 한 때 모닥불을 같이 쪼였던 사이였을 뿐이야.”

    식당 안은 상갑 씨의 말대로 음식 맛이 기가 막혀서인지, 점심때가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아주 많았다. 상갑 씨는 겨우 자리가 빠진 구석진 테이블을 찾아 나를 앉히고 몸에 좋다는 보신탕 고기를 시켰다. 고기가 나오자 상갑 씨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기를 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입이 미어터지도록 고기를 집어넣었다.

    “이 봐, 샌님. 이게 이래 뵈도 남자 몸에는 아주 좋은 거라구. 이 거 한 달만 달아서 먹으면 할머니도 여자로 보인다는 말이 있어. 그렇게 앉아 있지만 말구 어서 먹어보라고.”

    상갑 씨는 계속해서 입이 미어터지도록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댔다. 나는 그런 상갑 씨의 모습을 저어기 바라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가증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가시 돋은 말이 나도 모르는 새 불쑥 입에서 튀어 나았다.

    “이봐요 천 선생. 아무리 낯이 두꺼워도 그렇지 부끄러운 줄 좀 아세요. 나잇살이나 먹은 양반이 만나는 사람마다 기신기신 푼돈을 뜯어내기 않나, 그게 대체 무슨 짓이냔 말예요!”

    그러나 상갑 씨는 나의 말에 아랑 곳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무시하고 입 속에 담긴 고기를 씹어 삼키는 데에 만 집중 했다. 나는 상갑 씨의 그런 모습에서 한층 더 가증스러움이 느껴졌다.

    “천 선생에겐 이런 일들이 도무지 부끄럽지가 않다는 말에요?”

    그제야 억지로 입속의 고기를 삼킨 상갑 씨가 정색을 했다.

    “뭐라고?, 부끄럽지 않느냐고? 내가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 이것 봐! 세상엔 나보다 훨씬 더 부끄러워해야 할 인간들도 많다고. 나는 내 나름대로 노동을 해서 벌어먹는 거야. 내 노동이 뭐냐고? 내 노동으로 말하자면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놈 못남 놈들에게 난 더 못난 꼴을 보여주면서 그 놈들이 제 멋에 사는 데 광을 내주는 게 내 노동이야. 그래, 내가 그 대가로 그놈들에게 몇 푼씩 얻어 내는 게 그렇게도 부끄러운 짓이야?”

    상갑 씨는 단숨에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나는 둔탁한 둔기로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 맟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상갑이란 사람은 마치 동물원 원숭이 새끼란 말인가. 원숭이 새끼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거꾸로 구경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나도 상갑 씨를 따라서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샌님은 내가 왜 이렇게 주접을 떨고 다니는지 모르지?

    서먹서먹한 시간이 얼마만큼이나 지났을까.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시던 상갑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분이 어느 정도는 풀린 듯 보였다.

    “샌님은 나처럼 머리를 박박 밀거나 콧수염을 길러 본적 있어?”

    “머리를 밀거나 콧수염을 길러 봤느냐고요?”

    “민머릴 하거나 콧수염 기른 놈들은 다 ‘고장’ 난 놈들이야. 말 못할 비밀들에 의해 축으로 몰린 놈들이지. 민머리나 콧수염이 그놈들에겐 비밀을 감추게 하는 일종의 ‘루어’다 이 말이야”

    “루어’라고요?“

    “가짜 미끼 말이야. 그놈들이 머리를 깎거나, 떡하고 콧수염을 붙이고 있으면, 인간들은 다 그들의 숨겨진 비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드러난 민머리나 콧수염에만 관심을 가잔다는 얘기야. 그놈들은 그런 인간의 습성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거란 말이야. 자신의 ‘고장’을 숨기고 있다는 거지.”

    상갑 씨가 사족을 달아주자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듣고 보니 상갑 씨의 논리가 꼭 궤변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그럼 천 선생이 민머릴 하고 콧수염을 길러서 다니며 하는 괴상한 행동들도 다 무언가 말 못 할 비밀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러시는 ‘루어’ 같은 거란 말에요? 고장을 감추기 위해서요?”

    상갑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가는 걸로 보아 내가 그만 멋모르고 급소를 찌른 것 같았다. 괜한 말을 했나 하는 미안한 맘이 들었다. 전자에 막무가내로 가시 돋은 말도 한 게 있고 해서 위로라도 몇 마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서없이 몇 마디 했는데, 해놓고 보니, 이건 도대체 위로가 아니라 아부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민머리나 콧수염의 차원에서 한참 못 미치는 완전히 형편없는 궤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비밀을 감추는 건 세인들이 그들의 차원으로 올라오지 않고, 세인들이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 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상투적인 세인들의 눈에는 그들이 오히려 고장 난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고요. 사실 우리 시대에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다 어딘가 한 부분은 고장 난 사람들이잖아요. 콧수염을 기른 아인수타인만 해도….”

    나의 비약된 비유 때문인지 심각했던 상갑 씨가 ‘쿡’ 하고 웃었다. 그 웃음까지가 그날 상갑 씨와 만났던 기억의 전부였다. 더 이상은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나는 다시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고 지워지고 있는 < 고장> 이라는 글자들 위에 다시 입김을 내어 뿜었다. < 고장> 이라는 글자가 뽀얀 입김에 다시 지워졌다. 나는 그 위에 이번에는 < 망나니1=천 상갑> 이라고 썼다. 그러자 < 망나니1=천 상갑>이라는 글자가 뽀얀 입김을 가르고 시커먼 벌레처럼 다시 꿈틀 하고 살아났다.

    나는 < 망나니=천 상갑> 이란 글자들을 바라보며 상갑 씨를 망나니1로 데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이성적인 논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자석에 끌리 듯 그에게로 마음이 휘어져갔다. 그것은 마치 마음은 거부하면서도 남자를 몸을 받아들이고, 희열하는 사십대 여인의 ‘업‘같은 것이었다. 나는 < 망나니=천 상갑> 이란 글자들을 한참이나 더 바라보다 다시 응급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상갑 씨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아픔들은 고스란히 손과 이마에 휘감겨진 하얀 붕대 속에 보이지 않게 숨어서 있었다. 잠시 간호사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데 상갑 씨가 눈을 떴다.

    “좀 괜찮아요?”

    내가 묻자 상갑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느 때처럼 말했다.

    “응. 이제 괜찮아. 잠시 깜박 잠이 들었나봐. 샌님 어서 가지.”

    상갑 씨가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지를 하지 않는 간호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퇴원하시고 통근 치료하셔도 괜찮으실 거예요.”

    다행이었다.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상갑 씨를 부축해서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혼자 묵고 있는 여관에 혼자 두기보단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상갑 씨를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아파트로 돌아와 이불을 펴서 자리에 눕히자, 약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자부름에 지친 탓인지, 상갑 씨는 피곤한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의 잠은 꼭 하얀 수의를 입은 천사처럼 잠시 죽어 봤으면 하는 듯이 보였다.

    *

    퇴근을 하려고 극장을 나서는데 단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평소에는 안하던 짓인데 이상했다. 역시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단장은 자꾸만 이상한 말들을 했다. 평소에는 내가 하는 일에 별 간섭이 없었던 단장이 배역에 대해 참견까지 하는 거였다.

    “아까 조연출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망나니1 역을 천 상갑이가 맡았다고 하든데, 설마 그 천 상갑이가 우리 천 상갑인 아니겠지?

    “맞습니다. 단장형님. 우리 상갑 씹니다”

    나는 선선하게 대답해 주었다. 언젠가는 그런 물음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자 단장은 ‘뭐 요런 녀석이 있어’ 하는 가소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배역을 정하는 건 감독의 고유 권한임은 알지만, 그래도 내가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겠는데, 상갑이 그 자는 연극 연자도 모르는 사람이잖아? 그건 감독 동생도 잘 알잖아? 그런 자가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괜히 그 자 때문에 이번 연극을 망치는 건 아냐? 설마 고만 고만한 작자들을 쟤다 끌어 모아 깍두기 담그자는 건 아니겠지?”

    단장은 내가 혹시 치기에 빠져서 그러는 건 아닌지 저어기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안심 하세요. 단장형님. 상갑 씨야 말로 어떤 연기자들보다도 더 잘 해낼 겁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번 연극은 그 사람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망나니1 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나는 세세히 설명을 하기 싫어 자신감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단장은 그런 나를 넋 나간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안다. 내가 아무리 애써서 말해도 단장과 같은 부류는, 특히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자신의 명예에 치장하려는 부류인 단장 같은 사람은 쉽게 납득 하지 못한다는 걸. 때문에 나는 우선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해 설명보단 목소리에 힘을 실어 단호하게 말했던 거였다.

    “상갑이가 감독 동생한테 배우 시켜 달라고 기신기신 따라 다니며 부탁이라도 하던가?”

    “아직요.”

    사실 그것도 문제였다. 나는 망나니1 역을 상갑 씨로 정해 놓기는 했지만, 아직 상갑 씨의 승낙을 받아 낸 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단장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번에는 마치 높은 곳에서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여 답답하다는 듯이, 오히려 단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 낼 곧 부탁을 해 올 겁니다. 상갑 씨가 부탁해 올 수밖에 없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

    사실 내가 취한 조치란, 출근을 하면서 자고 있는 상갑 씨의 머리맡에 대본을 둔 것이 다였다. 잠이 깨면 별로 할 일이 없는 상갑 씨는 심심해서라도 그것을 분명 읽어 볼 것 같았다. 그러면 대본 속의 망나니가 자신과 똑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상갑 씨는 분명 나에게 배우를 시켜달라고 부탁을 해올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황당한 논리였고, 밑도 끝도 없어 보였지만 왠지 꼭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임시방편으로 목소리의 톤을 한 옥타브 높여보았는데, 단장은 당연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차는 나의 아파트 앞에 다다랐다.

    “형님, 예술에는 감이란 것이 있어요. 그게 때론 논리보다 더 정확 하고요. 안심하세요. 제가 함부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니까요.”

    나는 단장을 겨우 달래서 보내고 서둘러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역시나, 내가 짐작했던 그대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갑 씨는 내가 머리맡에 두었던 대본을 읽고 있었다. 대본에 푹 빠져서 내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내가 ‘험험’ 하고 잔기침으로 인기척을 몇 번 해대자, 그제야 대본에서 눈길을 거두고 시선을 돌렸다.

    “뭘 하고 계셨어요? 사람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짐짓 나는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암 것도 아냐. 그냥 심심해서 머리맡에 대본이 있기에 읽어보고 있던 중이었어. 이 대본이 이번 공연 때 쓸 작품이야?”

    “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작품이던데….”

    나는 상갑 씨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범인을 심문하는 경찰관 같이. 그러자 상갑 씨가 황급히 손 사례를 치며 말문을 열었다.

    “샌님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 아냐. 정말 내 생각에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거야.”

    “그렇게도 의미 있게 생각 하신다면 천 선생도 같이 참여해 보시지 그러세요.”

    나는 상갑 씨가 정말 입질을 하고 있는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져 보았다. 그런데 그 말이 상갑 씨에겐 화살이 되어 정곡에 꽂혔는지 모처럼 눈가에서 선선한 총기가 살아났다. 보아하니 입질을 한지는 이미 오래 전이고 지금은 미끼를 덥석 물어 빼도 박도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게 분명해 보였다.

    “샌님이 방금 한 말 정말이야? 내가 원한다면 배우라도 시켜 줄 참이야?”

    “제가 언제 천 선생한테 허튼소리 하는 거 봤어요? 어디 맘에 드는 배역이라도 있던가요?”

    상갑 씨가 대본을 내밀며 접어놓은 부분을 펼쳐 보였다. 예상대로 맨 마지막 장이었다.

    “행자님 여기 좀 봐! 마지막 파트에 등장하는 이 망나니1을 좀 봐!”

    “망나니1 역이 맘에 드세요?”

    “모르겠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맘에 들어.”

    “그럼 해 보세요.”

    “연극은 아직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천 선생이라면 누구보다도 더 잘하실 거예요. 이제까지 천 선생이 살아오면서 한 행동들도 다 연극이나 마찬 가지였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긴 하지만 이건 그래도 진짜 연극인데….”

    “진짜 연극 가짜 연극이 어디 있어요. 연극은 다 연극이지요.”

    “사실 내가 연극에는 문외한 이긴 해도 지금껏 연극 같은 인생을 살아 와서 그런지 자꾸만 이 망나니1 역만큼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 허락만 해준다면 정말 해보고 싶어.”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냈다. 먼저 상갑 씨에게 불을 붙여주고 나도 한 대 피워 물었다.

    “이 말을 믿어 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전 천 선생을 첨 본 순간부터 이 망나니1 역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었다. 나는 상갑 씨가 5.18로 인해 정신이 망가져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리고 병원에 데려간 후, 꼭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공권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젊음을 송두리째 버려야만 했던 상갑 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았다. 넘어져 빈 허공을 붙잡고 일어서려는 상갑 씨에게 넘어진 자리에서 손을 짚고 일어서야한다는 법을 말하고 싶었다.

    “그럼요. 혹자들은 이 배역이 등장 횟수가 그리 많지 않아 비중이 미미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매우 개성 있고 기이한 역이라서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을 놓고 볼 땐 비중이 아주 큰 역이에요.”

    “그런 것 같았어.”

    “그러니까 누가 보더라도 망나니1 역에는 천 선생보다 더 나은 적임자는 없다는 말들이 나오도록 열심히 해보실거죠?.”

    “그래야지”

    “허허허, 그러고 보니 죄인의 목을 뎅강 자르는 무시무시한 망나니1 역엔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또, 전력을 보더라도 천 선생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 봐도 돼?”

    상갑 씨가 비장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물어 보세요”

    “망나니는 왜 망나니가 되었지? 어쩌다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릿광대로 만들어 자학을 하는 거지? 거기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야?”

    상갑 씨의 눈에서 씨앗처럼 까만 게 언뜻 보였다. 상갑 씨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망나니1의 단면만 보고도 그의 전력이 자신과 빼닮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지금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망나니1도 애초부터 망나니는 아니었다. 그도 한때, 조병갑의 수하에서 포졸 노릇을 하던 자였다. 상갑 씨가 군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도 직속상관인 집사의 명령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기까지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도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하는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후부터 집사가 백성을 괴롭히는 부당한 명령을 내리면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명령을 하는 집사에게 잘못되었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엔 그 용기 때문에 하극상 이라는 죄명을 뒤 집어 쓰고 포졸자리 까지도 내놓아야 했던 자였다. 그런 일을 당하고 마음이 힘들어지자 차라리 모든 걸 다 잊어버리려고 광인처럼 살았던 거였다. 그러다가 그때 마침 동학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주저 없이 농민군에 가담하였다. 조 병갑의 수하들을 잡자 그는 그들을 처형하는 망나니가 스스로 된 자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건 단장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번 작품은 동학 농민군들이 봉기하여 고부군수 조 병갑의 수하들을 붙잡아 치죄하고 처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진짜 주제는 5.18 광주 민주화 투쟁에 관한 거였다. 이번 작품은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건 트릭에 불과하고 사실은 5.18의 알레고리였다. 이 대본을 쓴 작가도 지난 날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목도했던 사람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목도한 만행들을 글로서 아니, 연극으로 천인공로 하자고 했었다. 특히 그는 시민군들만이 피해자가 아니라 진압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도 같은 피해자라고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형장에서 열연하는 망나니 중에서 망나니1을 주요 망나니로 등장 시켰던 거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정권을 장악한 군부의 검열 때문에 그런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사실상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다른 좋은 방편이 없을까, 하고 여러모로 고민하다가 동학농민 봉기와 5.18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대는 다르지만, 여러모로 연관성이 많아다는 것을 깨닫고 동학 혁명을 앞세워 5.18을 고발 하고자 하였던 거였다. 그런 연유 때문에 내가 더욱 상갑 씨를 망나니1역에 넣으려고 하는 거였다.

    “상갑 씨가 짐작하고 있는 그대로에요.”

    “역시 그랬었군.”

    상갑 씨는 그것마저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상갑 씨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천정을 향해 연기를 내어 뿜었다. 연거푸 연기를 내어 뿜는 그의 목젖이 파르르 떨었다.

    “자의든, 타의든, 명령이든, 어떻든,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같은 나라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죄악이지! 그 죄악을 깨닫는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지. 안 그러면 매일 밤 들리는 아비규환의 환청 소리에 질려서 질식해 버리고 말거야.”

    나는 순간, 그가 왜 이제껏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행동해야만 했었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마따나 군인들에게 짓밟힌 시민들만이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해를 한 상갑 씨와 같은 사람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상갑 씨가 가짜 미끼를 단 루어 낚시꾼처럼, 수염과 민머리로 광인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또 지난겨울처럼 그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그때도 정신 병원에 있었어요.”

    상갑 씨가 정신 병력의 소유자란 걸 안 건, 배역을 정하려고 상갑 씨의 전력을 조사하다였다. 상갑 씨를 늘 곁에서 지켜보았다는 지인이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겨울에도 상갑 씨는 그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해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상갑 씨는 자신이 묶고 있던 여관에서 불현듯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듯 보였다고 했다. 지금 나는 뭔가? 난 왜 이렇게 남들의 등이나 치며 기생충같이 사는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연탄불처럼 뜨거운 적이 있었느냐? 하는 따위의. 어쨌든 상갑 씨는 그런 생각을 한 후에는 자꾸만 이상한 짓을 했다고 했다. 이를테면 밖에서 우는 아이가 있으면 과자를 사서까지 달래주었고, 또 때 묻은 아이가 있으면 그것이 마치 그로 인해 그렇게 된 것 인양 얼른 안고 들어와 목욕을 시켜 주었다고 했다. 그것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늙은 노인을 만나도 그랬다. 걸을 수 있다고 극구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인들을 무조건 업어서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며칠 지나면 그는 먹는 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하는 게 농부들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아 굶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그런 짓이 몇 주 쯤 더 지나면 이번에는 달력에다 숫자를 계산 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달력의 숫자들을 가로 세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하더니, 나중에는 그 기에다 자신도 겨우 알까 말까 하는 인수분해까지 해 대었다고 했다. 놀고먹는 그가 아는 채라도 해야만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상갑 씨의 그런 짓은 처음엔 자신의 방에서부터 시작해서 빈 방을 돌고 돌았는데, 결국에는 그 여관 전체 방의 모던 달력에다 그래 놓았다고 했다. 그리곤 여관주인의 눈에 뛰고, 또 경찰에 알려지고, 그래서 그는 다시 작년에 갔던 그 정신 요양원으로 연례행사처럼 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갑 씨가 이곳에서 보이지 않을 때나, 상갑 씨가 남들에게 토굴에서 고시 공부를 했었다는 말을 할 때에는 다 지병이 도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셈이었다.

    “가해망상증이라고 했어요.”

    요양원의 의사들이 상갑 씨에게 진단 내린 병명이었다고 했다. 상갑 씨가 누군가에게 가해를 하고 양심의 가책을 너무 심하게 느꼈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병을 고치는 방법은 단 하나, 병자가 뻔뻔해 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마치 밤새워 술을 마시고 아침이 되어 속이 쓰릴 때, 해장술을 다시 마셔서 속을 편하도록 하는 것처럼. 요상한 처방이지만 그것이 의사들이 내린 최선 없는 차선의 해결책 이었다고 했다.

    “이런 처방이 남들에겐 우스운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보기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처방이었어요.”

    그러나 상갑 씨는 그런 처방을 막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처음해보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고, 또 생각과 실천의 차이가 다 그렇듯이. 그런데 습관이란 참 무서운 거더라고 했다. 상갑이 한 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또 자꾸 자꾸 그러더니 어느 날 부턴가는 상갑 자신도 모르는 새 어느덧 몸에 배 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남에게 사기를 처도 부끄러움이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고 했다. 상갑 씨에게 당하는 당사자들 입장에 선 낭패일지 모르겠지만 상갑 씨로서는 그것만이 과거의 고통으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상갑 씨가 뻔뻔해 지려고 하는 이유가 꼭 지병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보다는 혈혈단신에 몸까지 망가지고, 거기다 정신병이라는 병력까지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그래서 아무대서도 일을 할 수 없는 그로서는, 그것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지인은 말미에서 이번에 만큼은 상갑 씨가 연극을 통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와 맞부딪혀서, 다시는 정신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자신의 바람도 덧붙였다.

    왜 그런 걸까. 나는 씨앗이 숨겨진 상갑 씨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다 문득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인데, 제목도 출연배우도 생각나지 않지만 줄거리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6.25 때였다. 몇 명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공산군의 땜을 폭파하러 떠났다. 다이너마이트를 한손에 쥐고 다른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