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의 규약

원제 Lepacte autobiographique

필립 르죈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8년 4월 5일 | ISBN 9788932009773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2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이 연구 분야에서는 이미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서로서, 자서전이란 장르에 대해 시학적 비평적 역사적 접근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독특하게 다루고 있다. 최근 수많은 자서전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자서전의 정의와 위상, 그 기능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서문]

이른바 자서전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우선 서구에서 18세기 이후 발전한 자아(自我)의 글쓰기가 문화의 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이며, 자서전과 관계된 행위가 기억의 문제, 인격 형성의 문제, 자기 분석의 문제 등 광범한 여러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서전은 하나의 문학 텍스트로 주어진다. 이 책에 수록된 연구들을 통해 내가 시도한 것은 자서전 텍스트가 기능하도록 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그것을 읽는 독서 행위를 통하여 자서전 텍스트의 기능 작용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서전 읽기는 두 가지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자서전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로서, 이 책의 서론과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그 두 부분 사이에, 루소Rousseau와 사르트르Sartre의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연구하였고, 또 지드Gide에게 있어서의 자전적 ‘기도(企圖)’를 소개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모두 프랑스 작가들만을 다룬 셈이다.

우리의 분석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자서전 장르와 그 장르가 사용하는 형식에 대한 이론적 서술로서의 시학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해석하는, 다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해석적 독서로서의 비평이다. 나는 이 책에서 시학과 비평이라는 이 두 가지 태도를 혼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하나의 입장이 다른 하나를 제어하도록 하면서, 두 태도가 상호 보완적이 되도록 애썼다. 어떤 것을 이론화할 때면 언제나 내가 독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려고 했으며, 반대로 내가 어떤 것을 해석할 때는 텍스트의 구조에 가능한 한 가까이 머물려고 했다.

여기 모인 시학과 비평 연구는 모두가 내가 이미 『프랑스의 자서전』(A. Colin, 1971)에서 제시한 바 있는 전반적인 관점의 연장선에서 1972년에서 1974년 사이에 씌어졌다. 그중 몇 가지는 자서전 텍스트에 관한 독서를 좀더 발전시켜 출간했던 다른 연구들과 연결된다. 특히 지드에 관한 소개는 『모호성 연습, 『밀알이 죽지 않으면』 읽기』(Lettres Modernes, 1974)에 적용되어 있다. 레리스Leiris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은 『레리스 읽기, 자서전과 언어』(Klincksieck, 1975)의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시학의 측면에서 제기되는 첫번째 질문은 문학 장르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시작과 끝에서 본론의 연구를 감싸고 있는 두 연구는 자서전 장르를 정의하려 했던 이전의 나의 시도들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것은 결국 자서전에서 출발하여 좀더 일반적인 문제들, 즉 문학 ‘장르’들이 어떤 양식으로 존재하는가, 그에 적용될 수 있는 연구 방법들은 무엇이겠는가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첫번째 연구 「자서전의 규약」에서 내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자서전 장르가 그에 포함된 형식적 요소들보다는 그 텍스트에 대한 ‘읽기의 계약’에 의해 정의되며, 따라서 역사적 시학은 읽기의 계약의 체계, 그리고 그 계약들의 통합적 기능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문학 장르는 상당수의 변별적 특성들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양태로 결합된 총체이다. 우리는 그 특성들을 우선 주어진 어느 한 시대의 일반적 독서 체계 속에서 공시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며, 또한 그것들을 다양하게 계층화할 수 있는 수많은 요인들을 서로 분리시키면서 분석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 연구 「자서전과 문학사」에서는, 자서전 연구의 현상태를 소개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서전에 관한 비평 연구들이-그 자체가 이미 제도로서의 장르에 참여한다-흔히 통시적인 혹은 시간을 초월하는 종합을 지향함으로써, 자서전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만큼 그와 동시에 자서전 장르를 끌어올리고 이상적으로 관념화하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줄 것이다. 한 장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영구불변이라는 항속성의 환상을 버려야 하며, 또한 그것을 규범화하려는 유혹이나 관념화의 위험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장르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장르로부터 벗어나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 책의 중심부를 이루는 ‘응용 시학’적인 연구들이 자서전 장르의 ‘미학’을 정의하거나 어떤 ‘원형(原型)’-루소에 있어서이건 다른 작가에 있어서이건-을 재구성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란 것은 단지 구체적인 텍스트의 독서를 통하여, 자서전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제기되는 문제점들, 극히 다양한 해결책이 주어질 수 있는 그 문제점들을 검토하려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친 중요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 작가의 전체 작품에 있어서 자서전 텍스트가 차지하는 위치와 그 기능의 문제이다. 이것은 모든 작가들에 해당되지만, 특히 지드의 경우 자세히 분석되어 있다. 그 다음이 자서전에 있어서 이야기의 순서의 문제로, 루소의 『고백록』과 사르트르의 『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또 다른 문제로 화자가 수화자 그리고 자기의 ‘주인공’과 맺는 관계의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특히 루소와 지드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연구되었다.

상당수의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들을 나는 이른바 대작들에서부터 접근한 셈인데, 물론 작품 선정에는 이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임의적으로, 더구나 단 한 나라의 문학 작품 중에서 선정된 몇몇 뛰어난 작품들을 연구하는 것만으로 시학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시학이 성립되려면 좀더 광범하고 평균치에 가까운 연구 대상을 수집하여 자서전 읽기의 계약 체계를 분석하여야 할 것이며, 다양한 형태의 ‘일인칭’ 이야기들이 갖는 변별적 형식 요소들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분석 대상이 된 텍스트의 선정은 해석자의 ‘비평적 욕망’으로도 설명된다. 사실 이 책에 수록된 한 연구에서 나는 텍스트의 기능 작용을 관찰하기 위하여 해석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데, 그것은 특히 루소의 첫번째 고백을 연구한 부분에 해당된다. 그런데 심사숙고된 해석은 순진한 독서만큼이나 텍스트를 변형시킨다. 나는 그 과정에서 해석자가 누리게 되는 유희나 즐거움을 감추지 않고, 그와 같은 텍스트의 변형이 아주 명확한 상태로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해석자를 제어하여 ‘그대로의’ 쾌락, 즉 임의의 독단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구절들을 분석하면서 멋대로 토막내지 않고 그 구절들이 속한 전체 속에서 보여주려고 애썼으며, 또한 텍스트를 정확히 분석하여 검증할 수 있는 것들만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한 작업을 이끌어준 것은, 오늘날 누구라도 정신분석학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다. 자서전을 읽는 독자가 정신분석학에서 귀중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이유가, 그 이론이 한 개인을 그의 역사와 유년기의 체험을 통해 설명해주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신분석학이 개인의 역사를 그의 담론 속에서 파악하며, 그때 언술 행위가 바로 그 탐구의 (또한 그 치료의)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진술된 이야기 속에서 어떤 증상이나 상징을 추적하고 사례 연구를 재건하는 작업이 그 자체에 머물게 된다면 그것은 헛된 방법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레리스 읽기』에서 그의 『성년기』의 시작 부분을 다루면서 그와 같은 방법을 적용했는데, 그때 언술된 내용에 대한 나의 해석은 결국 화자의 행동과 욕망, 미망(迷妄)과 또한 진실 앞에서의 머뭇거림을 그의 담론 내부에서 분석하기 위한 가설적인 하나의 발판에 불과한 것이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그러한 탐색이 연장된 시도를 보게 될 것이다. 루소의 고백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인 ‘아이들을 벌주기’와 관련된 고백을 분석하면서, 나는 그 고백이라는 것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는 고백 자체가 역시 그 같은 잘못을 이야기 속에서 반복하는 것임을, 말하자면 고백이란 결국 욕망의 우회적인 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자서전의 한 독자로서 내가 제시하는 이 연구들은 그러므로 외관상으로는 서로 대치되는 양극 사이에 긴장된 상태로 위치한다. 이 연구들이 시학의 정립을 목표로 한다는 데에서 한쪽에는 과학이 위치하며, 비평 행위라는 것이 결국 이차적인 문학 행위라는 점에서 다른 한쪽에는 문학이 위치한다. 그 둘은 상호 보완적인 작업이다. 이론을 보다 잘 정립하고 또 그와 동시에 작품에 대한 보다 적합한 해석을 이끌어낸다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루기 위하여 나는 두 작업 모두에 엄정함을 기하려 했다. 요컨대 시학 연구와 분석적 해석은, 그 둘 모두가 자서전을 무엇보다도 한 언어 현상으로서 연구한다는 사실에서 서로 맞닿는 것이다.

– 1974년 12월, 필립 르죈

목차

서문

제1부 규약
자서전의 규약

제2부 자서전 읽기
아이들의 처벌, 루소의 고백록 읽기
『고백록』 제1권
지드와 자전적 공간
사르트르의 『말』에서의 이야기의 질서

제3부 역사
자서전과 문학사

역자 후기

작가 소개

윤진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자서전의 규약』 『페르디두르케』 『사탄의 태양 아래』 『위험한 관계』 『목로주점』 『문학 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알렉시·은총의 일격』 『주군의 여인』 『파울리나 1880』 『루』 『만』 『물질적 삶』 『에로스의 눈물』 『태평양을 막는 제방』 등이 있다.

필립 르죈

파리-노르 Paris-Nord 대학의 교수로, 20여 년이 넘게 자서전이라는 한 가지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자서전 연구를 위한 고전적 이론서가 된 『자서전의 규약』(1975) 외에도 『프랑스 자서전』(1971), 『모호성의 연습, 『밀알이 죽지 않으면』 읽기』(1974), 『레리스 읽기, 자서전과 언어』(1975), 『’나’는 타자이다』(1980), 『나 역시』(1986), 『기억과 모호함, 자서전 작가 조르주 페렉』(1991) 등 자서전에 관한 많은 이론서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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