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인권 변호사 황인철, 그의 삶과 뜻

이석태 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8년 12월 25일 | ISBN 9788932010069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58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고통스러웠던 시절에 수난당하는 양심의 편에 서서 독재 권력과 대항하여 싸운 인권 변호사 황인철의 평전. 한 아름답고 용기 있는 인간의 향내가 가슴속 깊이 저며온다.

[책머리에]

우리나라에는 일제 시대 이래 의로운 일을 해왔던 법률가가 적지 않건만 어쩐 일인지 그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기념관은 고사하고 유명 대학 도서관이나 법과대학 복도 어디에도 외국의 경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법조 선배들의 사진이나 초상화 한 점 걸려 있는 곳이 드물다. 내놓고 치하할 만한 사람이 희소해서라기보다는 오늘의 안녕에 기초가 된 과거의 희생을 쉽게 잊어버리고 남이 한 좋은 일을 드러내 기리는 일에 인색한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인철 변호사는 엄혹한 군사 독재 시절에 극히 소수의 변호사들과 함께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권 변론 활동에 진력해왔다.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법원과 검찰이 국민의 호소와 기대를 저버린 채 집권 세력의 하부 구조로서 기득권 속에 안주하며 불법 무도한 법집행과 판결을 자행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희구한 죄로 학생들이 붙잡혀가고 노동자·시민들이 갖은 고문을 당하며 중벌을 받는 것으로부터 차마 얼굴을 돌리지 못했다. 그것이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을 시작으로 90년대 초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그를 경찰서로, 구치소로, 교도소로, 법정으로 바삐 가게 했다. 그가 1993년 1월 53세라는 장년의 한창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직접적인 원인은 의학적으로는 직장암이겠지만, 그 실제의 뿌리는 20여 년 가까이 군사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그의 내부에 알게 모르게 조금씩 침전되어간 고뇌와 신고에 찬 삶의 역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의 열정과 노력에 힘입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진전되어갔지만, 그 대가로 그의 삶의 에너지는 서서히 고갈되어갔던 것이다. 그는 5공 말기의 야수 같은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박종철군의 추모사업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죽음을 얼마 앞둔 시점에 이르기까지 고문의 근절과 방지를 주창해왔다. 그의 사후 1994년 12월 우리나라가 마침내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사실을 그가 뒤늦게 나마 천상에서라도 알게 되었다면 무척 기뻐했으리라.

1995년 1월 문학과지성사와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공동으로 황인철 변호사 추모문집간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라는 제목의 추모 문집을 간행했다. 이 문집은 인권에 관계된 몇 편의 논문을 싣는 외에 제목 그대로 특별한 형식 없이 가족·친지·동료 법조인들, 생전에 가까이 지내던 문인들 및 그가 변론을 맡아 했던 사람들로부터 그를 추념하는 글을 모은 것이었다. 출간 당시에 안고 있었던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 문집은 생전에 황변호사를 알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황변호사의 진실된 인간됨과 유덕을 기리는 공통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추모 문집의 성격상 그 책에 그려져 있는 황변호사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개개 인상의 집합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었고, 그가 관여한 시국 사건들은 하나하나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달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의 배경 및 전개 과정과 거기서 그가 맡아 한 역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또 그의 어린 시절을 비롯하여 청년기의 대학 생활,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개업하기 이전까지의 일상사 등 인간 황인철의 생생하고도 자연스런 면모가 빠져 있는 것도 미진함을 남기었다.

이 때문에 민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추모 문집이 발간된 지 얼마 안 된 때부터 그가 관여한 중요한 시국 사건을 중심으로 황인철 변호사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형식의 책을 발간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리하여 몇 번의 논의 끝에 그가 주도하여 1988년 5월에 창립한 민변이 10주년이 되는 1998년 5월에 맞추어 이 책을 펴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이미 발간한 추모 문집에서 보듯 그가 관여한 분야가 워낙 넓은 범위에 걸쳐 있어서 한 사람이 그의 생애 전부를 쓰기에는 다소 벅찰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전적으로 이 일을 맡아 하는 경우 그의 사정에 따라 발간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어 추모 문집 발간 때와 유사하게 민변과 문학과지성사,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적절한 필자를 선정하여 나누어 글을 쓰고 그것을 다시 모아 체계에 맞추어 정리하기로 하였다. 필자들은 1997년 봄부터 문학과지성사에서 4회 가량의 모임을 가지면서 각자 써야 할 부분과 자료 수집, 책에 들어갈 내용, 문체의 통일 등등의 문제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었으며 구체적인 집필은 1997년 여름부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문학과지성사의 김병익 선생(제9장 「의에 순하다」), 황인철 변호사의 셋째동생 황인기 선생(제1장 「어린 시절」, 제2장 「젊은 법학도」),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황인철 변호사로부터 변호를 받기도 했던 문부식 선생(제5장 「문학과지성, 그 영혼의 쉼터에서」, 제7장 「귀의와 헌신」), 민변의 젊은 후배인 차규근 변호사(제4장 「독재와의 항쟁 속으로-70년대의 인권 변론 운동」), 도재형 변호사(제6장 「인권과 민주화를 위하여-5 17에서 6 10까지」)와 본인(제3장 「법률가의 길」, 제8장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이 필자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모여진 이 글들을 필자가 다시 읽고 첨삭 가감하며 전체의 글 흐름을 정리 윤문하는 일을 맡았다. 발간 날짜를 맞추어야 할 부담 때문에 미흡한 내용이 많았음을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나누어 쓴 까닭에 이 책은 민변의 10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펴낸다고 하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문체와 내용 등의 면에서 여전히 일관성이 부족한 흠이 남아 있는 상태로 마무리되었다는 자책감이 든다. 또 필자가 여럿인 까닭으로 각주의 통일성을 기하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이 책에서 인용한 참고 문헌을 일일이 밝히지 못하였는데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구체적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으며, 서중석의 「70년대 재야 변호사 그룹」(『신동아』, 1984년 6월호),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에서 펴낸 『김지하는 누구인가』, 이계창 신부의 『법정에서의 진실-명동 3 1 사건,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가톨릭출판사), ‘5공정치범명예회복협의회’에서 발간한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살림터) 등에서 직접·간접으로 인용하였다. 물론 황인철 변호사의 생애와 업적, 그의 정신과 인품을 가장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자료는 앞서 나온 문집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였다.

이 책은 민변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문학과지성사의 공동의 노력의 산물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황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 4인방’으로 불리며 인권 변론의 최일선에서 고락을 같이 나누었던 이돈명·조준희·홍성우 변호사로부터 많은 도움말을 들었으며, 민변의 전·현임 회장인 고영구 변호사와 최영도 변호사의 도움도 컸음을 덧붙인다. 특히 최영도 회장은 민변의 1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이 책의 발간을 기획함으로써 이 책의 발간을 현실화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40년 지기로서 황인철 변호사의 추모 작업에 노력해온 김병익 선생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가능하지 못했음을 이 자리에서 다시 밝힌다. 끝으로 원고의 편집과 교정을 도맡아 애쓴 문학과지성사 여러분들과 원고 정리에 도움을 준 조명희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황인철 변호사의 이야기를 쓰는 일에 참여한 것은 남다른 특권이었다. 화합보다는 분열이 횡행하고, 어떤 식으로든 깎아내리는 데 골똘한 각박한 이 사회에서 그는 이론의 여지 없이 그리고 그 누구의 비평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의롭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이 책의 한계로 고인의 고결한 정신과 인품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두렵다. 앞으로 그의 활동을 포함하여, 우리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와 법률가의 정신을 기리는 작업이, 이 책을 기회로 후속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란다.

– 1998년 5월, 필자들을 대신하여, 이석태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어린 시절
1. 황희 정승의 후손
2. 일찍 여문 배움의 씨
3. 대전 유학 생활
4. 도약을 위한 준비

제2장 젊은 법학도
1. 대학 입학과 낙향
2. 다시 고향으로
3. 고시 합격
4. 법무관 시절

제3장 법률가의 길
1. 짧은 판사 생활과 변호사 개업
2. 결혼과 가정 생활
3. 권씨 종중 사건

제4장 독재와의 항쟁 속으로
1. 유신과 긴급조치의 선포
2. 이병린·한승헌 변호사 등의 인권 변론 활동과 동아일보 사태
3. 민청학련 사건과 인권 변론의 시작
4. 강신옥 변호사 구속 사건
5. 김지하의 구속과 한승헌 변호사 필화 사건
6.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사건(KMCO 사건)
7. 3·1 민주구국선언 사건(명동 사건)
8. 동생 황인국의 구속
9. 이영희·백낙청 사건
10.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11. 오원춘 사건
12. 남민전 사건
13. 부마민중항쟁과 김재규 사건

제5장 문학과지성, 그 영혼의 쉼터에서
1. 어두운 시대의 지식인들 142
2. 1970년대와 『문학과지성』 152
3. 인간의 마을 156

제6장 인권과 민주화를 위하여
1. 새로운 시련의 시작
2. 전국민주학생연맹 사건
3.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
4. 송씨 일가 사건
5. 오송회 사건
6. 정법회의 창립과 5공 말기의 사건들, 6·10 항쟁

제7장 귀의와 헌신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 늦깎이 신앙인
3. 가톨릭을 통한 인권 운동

제8장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1. 군정 종식 실패의 실의를 딛고
2. 민변의 창립
3. 고문 금지를 위한 노력
4. 물러남을 위한 준비

제9장 의에 순하다

부록 황인철 유고
황인철 연보
글쓴이 소개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10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