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너머의 역사

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

김기봉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10월 28일 | ISBN 9788932040622

사양 변형판 140x210 · 328쪽 | 가격 17,000원

책소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후 위기와 팬데믹까지
인간과 비인간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가는 오늘날,
우리의 자기 인식으로서 역사는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가

지도 밖으로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뉴노멀 시대,
‘온고지신’ 역사학에서 미래 문명의 ‘내비게이션’ 빅히스토리로

사극, 역사소설 등 대중 역사문화 전반에 걸쳐 역사비평을 수행하고, ‘역사학의 역사’ 연구로 역사학의 경계를 꾸준히 탐문해온 역사학자 김기봉이 이번에는 ‘빅히스토리’라는 화두를 역사학에 던진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역사학 너머의 역사—빅히스토리, 문명의 길을 묻다』를 통해서다.
저자 김기봉은 전작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에서 근대 거대 담론 역사가 종말을 고한 오늘날에도 “진보의 과정으로서 역사”에 대한 믿음을 설파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어제의 역사학’으로 비판하는 한편,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모색한 바 있다. 이 책 『역사학 너머의 역사』 또한 저자가 그간 수행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빅히스토리를 깊이 살펴봄으로써, 인류세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맞아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그려본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학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류의 과거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동안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된 역사라는 ‘삶의 지도’를 통해 현재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비정상이 새로운 정상(뉴노멀)이 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문명사적 변화를 앞두고 “지도 밖으로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우리 시대에는 전혀 다른 역사가 요청된다. 과거 인간만을 중심에 두고 쓴 ‘온고지신 역사’를 넘어, 문명의 새로운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 역사’가 그것이다.

역사란 과거 인간이 살아온 집단적 삶의 기억을 이야기로 편집하여 집대성한 아날로그 데이터다. 그것은 오랫동안 삶의 지도로서 유용했다. 하지만 이는 인간 기억을 중심으로 모은 주관적 정보라는 한계가 있다. 〔……〕 인간중심적으로 집단 기억을 축적하는 지식 체계로서 역사학의 한계 지점에 봉착한 것이다. _190쪽에서

이 책은 과학으로 학문 패러다임이 전환된 오늘날, 역사학이 과학을 지렛대 삼아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역사는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3요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플롯으로 쓰이는데,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시간을 138억 년으로, 공간을 지구와 우주 차원으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 종으로 넓혀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역사학 또한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근대 역사학은 인류 역사를 자연사로부터 구분하고, 비인간 존재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근대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는 인류세에 이르러 위기를 맞았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인류세에 접어들며 인간과 비인간은 역설적이게도 동등한 행위자로서 더욱 밀접하게 얽혀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단적인 예다. 팬데믹을 겪는 동안 우리는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백신을 통해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지금껏 본 적 없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며, 포스트휴먼 같은 비인간 존재나 기후 위기까지 이미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동맹의 집합체’로서 역사학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 공간, 인간에 대한 앎을 확장하며
역사학 너머로 나아가는 역사, 빅히스토리

기존 역사학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저자 김기봉이 제안한 화두는 ‘빅히스토리’다. 빅히스토리는 빅뱅에서 현대 인류 문명에 이르기까지 138억 년을 포괄하는 ‘모든 것의 역사’다. 과학기술에 기반한 빅히스토리는 우리의 기원과 정체성에 관해 가장 종합적인 설명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는 이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이는 근대 역사학이 “실증할 수 있는 자료에 입각해 과거 사실의 범주를 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역사시대 이전을 “역사학의 연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성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의 근본 지식은 차축시대 이후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지적되어왔다.
저자 김기봉은 이렇듯 과학이 시간과 공간, 인간에 대해 알아낸 지식들을 바탕으로 쓰인 빅히스토리 모델들을 살펴본다. 역사가 서로 다른 플롯으로 쓰이는 것처럼, 빅히스토리에도 몇 가지 서로 다른 플롯이 있다. 복잡성의 증가를 수학적으로 나타내는 ‘에너지 비율 밀도’를 고안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에릭 체이슨이 쓴 ‘진화의 서사시,’ 정보의 증가에 따라서 시대를 구분한 프레드 스피어의 ‘거대 정보 역사’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저자가 특히 주목한 빅히스토리 역사 서술 모델은 우주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생겨난 순간을 여덟 단계로 구분한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빅히스토리와, 유약한 유인원에서 ‘지구의 정복자’로 변모한 인류가 종국에는 자멸의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이들 간의 비교를 통해, 저자는 과학 지식만을 엮어낸 과학사적 빅히스토리가 제시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관계일 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과학사적 빅히스토리의 한계를 넘어, 문명사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실과 의미를 연결하는 빅히스토리 모델을 위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결국 인간 생로병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찍이 막스 베버가 근대 학문의 딜레마로 지적했듯 우리가 ‘과학적’ 세계관을 가질 수 있지만 ‘과학’ 그 자체를 세계관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인간 없는 과학은 무의미하며 불가능하다. _241쪽에서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 「이야기꾼 인간과 인문학」에서는 어떻게 인간이 집단 학습을 할 줄 아는 이야기꾼 인간, 호모 나랜스가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현생인류가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종으로 손꼽히게 된 데는 무엇보다 언어와 이야기를 발명해 ‘문화’를 진화시킨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부 「인문학 대 과학」은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 패러다임이 이야기 기반의 인문학에서 수학 기반의 과학으로 전환된 과정을 되짚어본다.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 인문학은 두 가지 원인, 즉 ‘세계의 탈주술화’로 일컬어지는 세계관 변동과 ‘갈릴레오 과학혁명’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이곳에서 저자는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은 당대 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3부 「인문학과 역사학」은 과학혁명 이후에 집단 학습으로서 역사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자연과학의 발달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듯 보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처럼 역으로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사마천과 헤로도토스, 랑케와 신문화사로 이어지는 역사학의 흐름을 통해 근대 역사학 패러다임을 상대화하는 한편,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자연사와 통합되는 방향으로 역사학이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4부 「모든 것의 역사, 빅히스토리」는 3부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에 따라 빅히스토리를 검토한다. 인문학과 과학의 지식 대통합이 일어나는 오늘의 학문 지형도에서, 빅히스토리는 가장 넓은 인식 지평으로 인간과 우주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을 접합한 이 역사 서술 모델은 문명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마지막으로 5부 「인문학 3문과 빅히스토리」에서 저자는 과학적 빅히스토리와 인문학적 문명사를 융합하는 빅히스토리 문명사의 관점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종합적으로 성찰한다.


■ 책 속으로

인간은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집단 학습을 통해 그 선택의 자유와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건설해왔다. 인류세란 그런 문명사의 전개가 임계점에 이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빅히스토리가 앞서 말한 3문 가운데 마지막 물음에 답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강화하려면,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와 존재 의미에 관해 더 많이 성찰하고 전망하는 문명사적 문제의식을 가진 빅히스토리 모델이 요청된다. (13쪽)

현생인류는 미래의 리스크에 대비하고 꿈의 실현을 목표로 사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야기를 매개로 집단 학습을 한 인간은 미래를 대비하고 기획한 덕분에 문명을 건설했다. 인류 문명의 원천은 ‘이야기꾼’이라는 인간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이야기는 남아서 미래 후손들에게 문화 유전자를 전달한다. (80~81쪽)

갈릴레오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의 연구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의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과학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발견한 것보다는 그의 문제제기로부터 세상을 보는 방식이 중세 기독교적 믿음에서 과학적 사고로 바뀌었다는 데 있었다. (140쪽)

과학의 목표는 지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인문학의 제일 목표는 의식의 각성이다. 과학이 밖으로 향하는 인식이라면, 인문학은 내면을 성찰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인간이 자의식을 갖고 자기 인식을 추구하면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났다. 이런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왜’라는 물음을 토대로 ‘어떻게’의 문제를 푸는 방식을 지향한다. 〔……〕 인간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계기는, 모른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무지의 앎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 창의성의 원천이다. 결국 창의성은 자기 이해에서 비롯하는 이상, 메타-과학으로서 인문학이 과학의 나침판이 되어야 한다. (159쪽)

역사란 과거 인간이 살아온 집단적 삶의 기억을 이야기로 편집하여 집대성한 아날로그 데이터다. 그것은 오랫동안 삶의 지도로서 유용했다. 하지만 삶의 지도로서 역사가 제공하는 데이터의 한계는, 그것이 대부분 인간 기억을 중심으로 모은 주관적 정보라는 점에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인간 집단 기억의 데이터만으로는 팬데믹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중심적으로 집단 기억을 축적하는 지식 체계로서 역사학의 한계 지점에 봉착한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역사 인식의 지평을 자연의 거시·미시 영역으로 확장하지 않는다면, 문명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요컨대 집단 기억과 집단 학습을 하는 역사의 인식 범주를 인간 사회 밖과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로 확대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190쪽)

우주가 아무리 크고 영원하다고 해도, 그건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주가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주에 관한 정보를 생산하고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 의식의 차원이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궁극적으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가 어떤 의식을 갖고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298~99쪽)

앞서 갈릴레오와 튜링의 예로 설명했듯 과학도 인간의 마음으로 한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그들의 과학적 연구 과정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열정이 내재해 있다. 과학적 사실은 객관 세계의 재현이나 묘사가 아니라, 과학자가 우주에 참여 관찰함으로써 구성해낸 것이다. 라투르는 과학의 비밀이 기계, 텍스트, 사람, 동물, 언어적 진술 등 무수히 상이한 종류의 물질을 끊임없이 연결하는 과학자의 고통스럽고 창조적인 노력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했다.
이렇듯 고뇌하면서 노력하는 인간을 탐구해 이야기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질주하는 과학을 운전하는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뇌의 나’로 태어난 인간이 ‘나의 뇌’로 살려는 불굴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성찰하는 인문학은 필요하다. (309~10쪽)

목차

■ 차례

책머리에

프롤로그 │ 우주와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

1부 이야기꾼 인간과 인문학
1장 생각하는 인류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으로
2장 이야기꾼 인간과 문화 유전자의 탄생
3장 이야기와 인문학

2부 인문학 대 과학
4장 전통 시대 동서양의 인문학
5장 계몽운동과 도덕철학
6장 세계의 탈주술화와 베버의 문화과학
7장 갈릴레오 과학혁명과 인문학의 위기

3부 인문학과 역사학
8장 인문학의 존재 이유
9장 집단 학습으로서 역사와 역사학의 역사
10장 포스트코로나 시대, 역사란 무엇인가
11장 역사의 자연사로의 확대

4부 모든 것의 역사, 빅히스토리
12장 역사학 대 빅히스토리
13장 빅히스토리의 빛과 그림자
14장 빅히스토리 문명사와 물질적 전환

5부 인문학 3문과 빅히스토리
15장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16장 우리는 무엇인가
17장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에필로그 │ 인류세를 위한 작은 ‘빅히스토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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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기봉 지음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과 역사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역사주의와 신문화사―포스트모던 역사 서술을 위하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역사학과 대중 역사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꾸준히 역사비평을 해왔다.
본래 전공이 역사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역사학의 역사’를 다루는 사학사인 그는,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시대 “역사(학)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Historia, Quo Vadis”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역사학의 기능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역사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인공지능의 도전을 역사학자의 미래만이 아니라 인류 종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앞으로 역사학과 인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역사들이 속삭인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공저), 『가족의 빅뱅』(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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