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의 나라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 황선진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10월 31일 | ISBN 9788932040585

사양 변형판 130x200 · 446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해”
이 말을 그녀는 앞으로 자주 듣게 된다

이국에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타인들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욕망

공쿠르상 수상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장편 소설 『타인들의 나라』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79번으로 출간되었다. 2014년 데뷔 이후 단 두 편의 소설만으로 큰 주목을 받아온 레일라 슬리마니는 프랑스어 진흥 대통령 특별 대사로 임명되는 등 완벽하고 매력적인 프랑스어 문장을 인정받은 작가이다. 슬리마니의 세번째 소설 『타인들의 나라』는 주인공 마틸드와 같이 프랑스 출신으로 모로코로 이주한 작가의 조모와 모로코 최초의 여성 전문의인 어머니 등 자신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대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프랑스 군인으로 입대한 모로코 남성 아민과 프랑스 알자스 출신 여성 마틸드는 전쟁이라는 혼돈 속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프랑스와 모로코, 식민-피식민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도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은 결혼 후 모로코로 이주하고, 모로코에서 마틸드는 자신이 외국인·여성·아내, 타인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남편의 나라에 살게 된 마틸드와 그의 가족, 각기 다른 이유로 이주한 모로코의 외국인들, 바뀌는 시대에도 여전히 억압적인 삶이 요구되는 모로코 여성들의 절망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모로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작가 본인의 가족사를 모티프로 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주권 없는 식민지, 남성들의 나라인 타인들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세밀한 묘사와 힘 있는 필치로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오렌지와 레몬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이 합해진 열매, 시트랑주
전쟁 이후 프랑스인 부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모로코 남성 아민은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비옥하게 가꾸고자 바삐 움직이며 일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딸을 정원으로 데려와 오렌지나무 줄기에 레몬나무 가지를 접붙이는 것을 보여주며 말한다. “너는 말이야, 이 새로운 종의 나무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렴.”(89쪽) 모로코와 프랑스라는 서로 다른 나라의 부모 아래서 태어난 딸에게 오렌지와 레몬이 만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아민은 딸 아이샤의 눈앞에서 두 나무의 결합을 보여준다. 이후 두 나무를 접합시켜 만든 ‘시트랑주’라는 새로운 품종은 아민과 마틸드의 가정을 상징하는 나무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은 오렌지나무에 레몬나무 가지를 끼우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마틸드는 모로코라는 이질적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며 살아가야 하고 딸인 아이샤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환경과 외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에두아르 글리상의 제사(혼혈, 이 단어에 내려진 저주를 책장에 큰 활자로 써넣도록 합시다)처럼 혼혈이라는 존재와 그 이질성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개인은 사회의 반응을 다시 어떻게 감지하며 때로는 이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를 작가는 냉정할 정도로 철저하게 서술한다.

남자는 그녀가 저 다혈질의 아랍인과 성행위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결합으로부터 나온 역겨운 열매를 복도에서 목격했던 만큼 그 장면을 상상하기가 훨씬 쉬웠고, 그래서 비위가 상하고 분노가 폭발했다. (167쪽)

아민은 […] 시트랑주의 열매들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과육이 딱딱하고 맛이 써서 눈물이 솟구쳐 오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세계가 식물학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한 종種이 다른 종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서 어느 날 오렌지가 레몬을 이기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될 것이며, 그런 후에야 나무는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열매들을 맺게 될 것이다. (408쪽)

소설은 아민의 의견처럼 오렌지나 레몬 어느 한 쪽이 우위를 차지하는 모습을 그리지는 않는다. 다만 시트랑주로 상징되는 이질적인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자신 앞의 세계를 인식하며 부딪쳐나가는지를 피하지 않고 생생하고 힘 있게 보여줄 뿐이다.


바로 여성들의 목소리
레일라 슬리마니의 첫 소설 『그녀, 아델』은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직시하며 거침없이 드러낸 작품으로, 슬리마니는 이 데뷔작으로 많은 호평을 받으며 라마무니아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공쿠르상을 수상한 두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는 아이를 살해한 보모의 내면을 그린 작품으로 “나의 영원한 주제는 여성”이라는 작가의 인터뷰처럼, 슬리마니는 소설을 통해 여성들의 욕망과 목소리를 생생하고 섬세하게 드러내왔다.
오랜 전쟁으로 청소년기를 공습의 위험 속에서 보냈던 마틸드에게 군인 아민은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사랑이자 욕망의 대상으로 모든 것에 굶주린 열아홉 소녀와 젊은 군인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을 강렬히 원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모로코의 가족과 함께 살며 겪는 여러 부침 속에서도 이 부부가 어떻게 서로의 몸과 욕망을 직시하는지 슬리마니는 마틸드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마틸드가 아민을 처음 만난 나이와 비슷한 나이의 아민의 여동생 셀마에게 모로코는 너무 좁고 시시한 곳이며, 셀마는 자신을 억압하는 오빠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언제나 간절히 원한다. 모든 소년이 사랑하는 매력적인 셀마는 자신을 채워줄 남성을 원하는 동시에 지루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원한다. 작가는 불온한 공기와 위태로운 매력을 함께 가진 셀마를 통해 프랑스에서 모로코로 온 마틸드와 다른 의미로, 그러나 남성 중심의 세상이라는 점에서 셀마와 마틸드 등 모든 여성이 타인들의 나라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첫 소설인 『그녀, 아델』로 프랑스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발표한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는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큰 찬사를 받은 이후 발표한 다음 소설인 『타인들의 나라』는 “예술가로서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야심찬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하는 모로코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새롭게 나라를 만들어가는 모로코와 그 모로코라는 나라에 도착한 프랑스 여성 마틸드를 중심으로 이민자, 여성, 혼혈, 식민-피식민 관계 등 여러 주제가 강렬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읽는 사람 자신과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의식하고 확인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 책 속에서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해.”
이 말을 그녀는 앞으로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마틸드는 자신이 외국인, 여성, 아내, 타인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2~23쪽)

무일랄라에게 세상은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선들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 이슬람교도,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인들 사이. 그래서 그녀는 서로 잘 지내려면 너무 자주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128쪽)

식사 준비에 녹초가 된 나머지 마틸드는 칠면조의 배 속에 양손을 쑤셔 넣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생색도 못 낼 그런 가사노동을 애써 하며 간신히 속을 채운 그 짐승을 이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자 지레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단두대로 향하는 심정으로 식탁으로 걸어와, 아민 앞에서 두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이 다시 차오르게 하여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이 행복해하고 있다 믿게 만들었다. (151쪽)

나체로 탈진해 있는 프랑스 여자를 앞에 두고, 남자는 그녀가 저 다혈질의 아랍인과 성행위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결합으로부터 나온 역겨운 열매를 복도에서 목격했던 만큼 그 장면을 상상하기가 훨씬 쉬웠고, 그래서 비위가 상하고 분노가 폭발했다. 물론 의사도 세상이 변했다는 걸 알았다. 인류를 항아리 속에 밀어넣고 휘저은 다음—자신의 입장에서는—서로 접촉하지 말았어야 할 육체들을 서로 만나게 한 것처럼, 전쟁이 모든 규칙, 모든 관례를 무너뜨렸다는 사실도. 이 여자는 머리가 덥수룩한 저 아랍인, 그녀의 육체를 차지하고, 그녀에게 지시를 내리는 저 천박한 남자의 품에 안겨 잠을 잔다. 이 모든 것은 부당하고, 이치에 어긋나며, 저런 사랑은 무질서와 불행을 파생할 뿐이다. 혼혈은 세상의 종말을 부른다. […]

“부인,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런데 궁금해서요.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곳에 떨어지게 되신 겁니까?” (167쪽)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포기한 만큼 더욱더 그들을 사랑했다. 이를테면 행복, 열정, 자유같은. (269쪽)

며칠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부부는 몸을 섞었다. 벽에 기대어 선 채 문 뒤에서, 그리고 한번은 지붕으로 향하는 사다리에 기댄 채 밖에서. 남편에게 망신을 주고자 그녀는 모든 수치심, 모든 조심성을 팽개쳤다. 그의 얼굴로 자신 속 성욕과 여성미를, 악과 색色을 내던졌다. 마틸드의 노골적인 명령들에 아민은 마음이 상한 동시에 더욱더 흥분했다. 마틸드는 그에게, 그녀 안에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더럽지만 그가 결코 더럽힐 수는 없는 어떤 것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녀 소유의, 그는 결코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을 그녀만의 암흑이. (368쪽)

아민은 딸의 두 귀를 살짝 잡고 아이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간 다음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문을 조심스레 닫고 복도로 나온 뒤, 시트랑주의 열매들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과육이 딱딱하고 맛이 써서 눈물이 솟구쳐 오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세계가 식물학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한 종種이 다른 종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서 어느 날 오렌지가 레몬을 이기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될 것이며, 그런 후에야 나무는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열매들을
맺게 될 것이다. (408쪽)

작가 소개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모로코 라바트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1999년에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다. 그랑제콜 준비반을 거쳐 파리정치대학에 진학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까지 기자로 근무하였으며, 2013년에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2014년에 갈리마르에서 첫 소설 『아델, 그녀』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2016년에 두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로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독자와 문단, 언론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 완벽하고 매력적인 프랑스어 문장을 인정받아, 프랑스어 진흥 대통령 특별 대사로 임명되었다. 2017년 모로코 여성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쓴 『섹스와 거짓말』을 출간하는 등, 여성이 사회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표명하며 이를 날카롭고 섬세한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그려내었다.

『타인들의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프랑스 출신 여성 마틸드가 모로코 출신 남성 아민을 알자스의 작은 마을에서 만나 결혼을 한 뒤, 남편을 따라 모로코로 이주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 2020년에 1부 『타인들의 나라—전쟁, 전쟁, 전쟁』이, 2022년에 2부 『춤추고 있는 우리를 좀 보세요』가 출간되었으며, 2024년에 3부가 출간될 예정이다.

황선진 옮김

파리 10대학에서 학사 과정으로 고고학과 미술사학을, 석사 과정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현대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현재 미술사 강의와 프랑스 문학 번역을 하며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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