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22년 가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8월 31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2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가을호를 펴내며

문학적 경험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좋은 문학작품을 만나기를 바라고, 텍스트와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특별한 시각과 태도를 얻기를 희망한다. 문학이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을 담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남다른 세계 인식과 감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은 문학을 지탱하는 오래된 신념 중 하나일 것이다. 더 나은 삶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는 의지 속에서 문학은 세계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문학에 대한 수많은 이론적 탐구와 비평적 논의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는 가운데, 문학의 본질적 기능과 위상을 해명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주지하듯, 이와 같은 모색들은 다른 예술 장르들과 구별되는 문학만의 장르적 특수성을 규명하고, 그것의 시대적 의미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확장되어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으로 수렴될 수 있는 비평적 언어들은 문학만의 독자적 가치와 그 존재의 정당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문학의 사회적 위상이 축소되고,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의 비판적 흐름들은 문학의 본질(문학성)이 존재한다는 전통적인 시각이 모종의 차별과 배제를 낳은 주요 원인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문학은 더 이상 ~이 아니다’라는 해체주의적 규정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들의 반복이 ‘문학에 대한 회의주의’라는 역설적 믿음을 오히려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문학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확고한 시각이나, 문학을 특별한 예술 장르로 간주하는 낭만주의적인 관점이 다소 시대착오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거의 관습적인 담론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마저 포기하게 된다면, 우리는 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단순하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욕망과 기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날 문학의 변화를 사유하면서도, 그것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능한 한 긍정적인 어휘로 탐색하려는 새로운 의지가 아닐까. 동시대 작가와 독자 들이 문학을 경유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바를 검토하고, 그것이 어떠한 내용과 형식 속에서 충족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우리는 문학에 대한 새로운 동시대적 개념 정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의 주제인 ‘문학적-경험’은 문학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새로운 사유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제안된 키워드이다. ‘문학적 경험’은 그 자체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작품과 독자 사이에서 발생한 예외적이고 특수한 체험을 광범위하게 일컫는 말이자, 특정한 텍스트와의 만남 속에서 형성된 소중한 상호 교류의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 독자로서 우리가 ‘문학적 경험’을 했다고 토로할 때, 그 말에는 이미 작품에 관한 비평적 판단과 더불어 작품과의 조우 속에서 어떤 이례적인 가치를 발견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적 경험’은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하여,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다양한 문제의식이 형성되는 감각적 진원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적 경험’이라는 말의 본질과 성격을 해명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이러한 어려움은 ‘문학적’이라는 수식어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문학적 경험’을 다른 예술적 체험과 구별시켜주는 요소와 근거까지 고려한다면, 질문의 복잡성과 막연함은 한층 심화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영화, 연극, 음악, 시각예술 등의 다른 예술 장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문학적 경험’을 발견한다. 이러한 주관적 반응은 그것을 불러일으킨 대상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가령 문학적 영화, 시적 연극 등의 수사적 표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적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문학적 경험’이라는 사건은 여전히 많은 해명을 필요로 하는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계기를 통해 ‘문학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모종의 예외적인 체험을 가리켜 ‘문학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과연 ‘문학적 경험’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믿고 있듯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른 장르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체험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을까?

이번 특집에서 독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접근하는 다양한 생각의 경로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문학 바깥의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업을 전개해온 비평가들의 글에 주목해보자. 유운성의 「문학과 위생─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적 존재론에 대한 밀도 높은 사유를 보여주는 글이다. 최근 문학적인 영화로 호평받았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매개로, 유운성은 문학이 영화 안에서 정치적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검토한다. 수많은 영화적 아카이브를 오가며, 그가 도달하는 결론은 매우 도발적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도,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소재로 등장해서도 아니다. 핵심은 문학이 역사적 기억을 영화적으로 표백하기 위한 위생적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문학적’이라는 어휘를 단순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관습적 기대를 다시 한번 흥미롭게 전복한다. 한편 김신식의 「‘시적인 사진’을 경험한다는 것」은 제목이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듯 “시적인 사진”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경험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글이다. 시각 예술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김신식은 시각 이미지에서 발생하는 시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경험’이라는 말에 주목하고, ‘시적인 사진’에 관한 다양한 증언을 통해 그 경험을 복원하려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사진을 통해 내가 시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 속에서 “시적인 사진을 향한 탐험을 재개하고 싶다”는 김신식의 결론은, 결국 시적인 경험과 자아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증언한다. 두 분의 글에 대한 일독을 권하며, 더불어 실제 창작의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문학적 경험’을 기록한 여덟 작가(권박, 손보미, 유희경, 윤은성, 이유리, 천희란, 한유주, 함윤이)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에세이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번 호의 창작란에도 독자들에게 놀라운 ‘문학적 경험’을 선사할 작품들이 적지 않다. 황동규, 이기성, 하재연, 서윤후, 안희연, 이영재, 이지아, 장혜령, 이린아, 여세실 시인의 신작 시와, 이서수, 양선형, 김채원 소설가의 새로운 단편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호부터 황정은 작가의 새 장편소설 연재가 시작됨을 기쁜 마음으로 알린다. 리뷰란에서는 어김없이 지난 계절의 주목할 만한 신간에 관한 예리한 분석과 평을 확인할 수 있다. 진기환, 전청림, 황유지, 성현아, 염선옥, 최선교, 최다영 평론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비평란에서는 이광호, 이희우 평론가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이광호의 「비평의 시대착오」는 최근의 비평 담론을 폭넓게 돌아보며 그것의 공과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평의 현재와 미래를 근본적으로 재성찰하기 위한 방법론을 사유하는 일종의 메타 비평이다. 그가 강조하는 ‘비평의 시대착오’에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러한 역사철학적 이중성은 비평의 비판적 사유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희우의 「문학적 자유주의의 막다른 골목」은 정지돈의 최근작 『…스크롤!』을 분석하는 글이다. 그의 글은 작품론으로서도 매우 날카롭지만, 정지돈의 텍스트를 경유하여 현재의 문학적 실험이 직면하고 있는 동시대적 난관과 딜레마를 조명하는 지점에서 단순한 작품론을 넘어선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전한다. 문학과지성의 2세대 동인이자 문학과지성사의 대표를 역임한 홍정선 문학평론가께서 최근 별세하셨다. 한국 문학의 발전과 동행해온 그의 비평적 여정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문학에 헌신해온 고인의 삶을 『문학과사회』 역시 충실히 계승할 것임을 모든 분들께 약속드린다.

편집동인 강동호

▶문학과사회 139호 (2022년 가을) 보기

목차

문학적 –경험

유운성
문학과 위생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김신식
‘시적인 사진’을 경험한다는 것

권박
마더Mother
—나는 어떻게 쓸 것인가

손보미
말해질 수 없는 것

유희경
달과 한 장의 사진
—세 편의 기억으로 살펴보는 문학적 경험에 대하여

윤은성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문학적 경험과 비(非)구원적 구원

이유리
글자, 열쇠, 힘

천희란
문학과 문학가의 자의식–자의식과잉

한유주
경험들

함윤이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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