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뽀송해

문학과지성 시인선 570

이지아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5월 26일 | ISBN 9788932040226

사양 변형판 128x205 · 298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너가 좋아하는 거, 그게 될 거야”
경쾌하고 능청맞게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

2022년 제4회 박상륭상 수상작 수록
‘비극을 가지고 노는 시인’ 이지아 두번째 시집 출간

억압, 고정관념, 폭력, 이런 고집쟁이 아이들의 너저분한 머리를 밀어주기 위해 저는 오랫동안 외로웠고 무서웠고 어려웠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개념과 시의 범주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마음껏 쓰고 싶었습니다.
―이지아, 박상륭상 수상 소감에서

시 바깥의 시를 쓰는 이지아의 두번째 시집 『이렇게나 뽀송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오트 쿠튀르』(문학과지성사, 2020)를 통해 “층층이 포개어지고 요동치면서 무한을 향해 끊임없이 질주”(조재룡)하는 세계를 선보인 후 2년 만이다. 전위의 상징 ‘오트 쿠튀르’를 내세웠던 전작과 달리 이번 시집은 제목 “이렇게나 뽀송해”에서 드러나듯 한층 경쾌하고 능청맞은 얼굴로 시의 중심과 경계를 해체한다. 5부로 나뉜 77편의 시를 엮었으며, 수록 작품 중 「반생물을 향한 빵과 칩과 계」 외 13편은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자신만의 야멸찬 언어로 사정없이 내지르는 자유로운 광기”라는 찬사와 함께 2022년 제4회 박상륭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지아는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부문과 2015년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으로 데뷔한 이래, 희곡과 시의 발판 위에서 극시(劇詩) 장르를 개척하며 한국 시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시집을 읽는다면 공연을 전제로 한 시극(詩劇)이 아닌 극시의 형식에서 태어난 낯선 목소리를 주목함 직하다. 모종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순간 섣불리 규정되기를 거부하며 도망가는 시편들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풀자면 풀리지만, 풀면 사라지는 시
오롯이 살아 움직이는 신비로운 생명체

우주는 이미지 같으오, 아니 이미지 벌레 같으오
작고 꾸물거리며 탄생하오
―「반생물을 향한 빵과 칩과 계」 부분

시집의 첫 장을 열자마자 “작고 꾸물거리며 탄생”하는 기척이 엿보인다. 『이렇게나 뽀송해』가 마련한 세계에는 우주와 벌레의 간극만큼 아연한 패러독스가 들끓는다. 여느 날의 오후를 함께 보내는 과일과 동물, 인공지능 로봇과 판소리 무당이 공존한다(「원형 D」 「원형 A」 「회전하는 편지」). 때로는 가까운 미래나 지구가 아닌 행성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차렵이불’ ‘간장종지’ ‘만리장성’이 아무렇지 않게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질문을 던진다(「키의 발표와 기자 간담회」). 서로 다른 세계의 대척점에서 불쑥 튀어나온 비인간 존재들, 배경과 시대를 가로지르며 종횡무진하는 인물들은 흔히 기대할 법한 공감과 위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오롯한 생명체로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전작 『오트 쿠튀르』에서부터 꾸준히 내비쳐온, 이 세상의 비극을 슬픔과 외로움으로 명명하기보다 시 자체로서 형상화하겠다는 의지는 두번째 시집에서 여전히 경쾌하고 발랄하게 이어진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전통적 의미의 알레고리를 구성하거나 쉽게 상징으로 도약하지 않는 “이 시를 읽는 방법은 이미지들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구성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승인하며 분위기와 정동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풀자면 풀리지만, 풀면 사라지는” 시 속의 현실은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메타포시스적 상상력과 SF적 상상력을 발산한다.


더듬으며 전진하는 목소리들
개구쟁이 만만세의 천진한 세계로

24시현금지급기:
생각 없이 살게, 아무것도 없이, 오랜 철학자나 지식인이 밝혀냈던 그 이론들을 들어봤나? 음…… 라쿤이나 프로이털을? 하하하, 그 새끼들은 칠칠맞지 못한 인물들이라네, 꼭 중요한 걸 하나씩 빼먹지, 잃어버리고 난리법석을 떨지, 특히나 레비나수는 달콤한 티라미수를 하루에 백 개씩 먹느라 경제에 대해선 똥기저귀 수준이라네
―「바니네 반바지와 연관된 극시」 부분

‘24시현금지급기’가 저명한 철학자들의 이름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대목은 천진한 웃음을 자아낸다. 극적 대화의 형식을 빌려 탄생한 목소리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욕망을 지닌 채 기존의 논리로 지어 올린 세계를 비틀고 부정한다. 유치하고 근엄한, 위트와 허풍이 섞인 대화 속에서 의도적으로 혹은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은 시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밀어붙이며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그중 말더듬증을 앓는 이들이 눈에 띈다. 같은 말을 반복하던 말더듬이의 발화는 어느새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뜻으로 치환된다(“비스킷과 크래커, 비스킷과 크래커, 비스킷과 크래커, 바스켓과 크레인”, 「ㅐㅐ」). 한 아이는 냄비를 두드리며 “ㅋ피피피 ㅌㅎㅎㅎㅎ Wqqqqq ㅉ……” 하고 웅얼거린다(「1인 판소리 곁에 작은 시」). 부딪치고 충돌하며 터져 나오는 파열음은 새로운 언어를 위한 발성 연습인 걸까. 한 편의 시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 역할극을 수행하던 이들은 던이데아 총을 들고 지구를 떠난다. “우리가 앞으로 헤쳐나갈 어마어마한 세상을 응원한다면, 주먹을 들어라”(「새로운 식량과 파트너」). 여기서 ‘던이데아’는 시인이 만든 시적 분법으로 완성된 감탄스러운 이데아를 뜻한다.
‘시 바깥의 시’가 결국 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결말이 정해진 비극이라면, 시인은 그 “비극을 가지고 노는 직업”(시인의 말)을 선택한 이다. 그것은 넘어지고 후퇴하며 “영원에 닿기 위해/계속 생명이 죽음을 연습하”(「회전하는 편지」)는 일일 테지만, 시인은 결코 멈추지 않고 진지하지만 서늘하게, 비참하지만 우아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상상·불온·리듬·도약을 넘어서, 개구쟁이 만만세를 만나”(시인의 말)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내가 내 무릎을 만지고 있는 것은,
사랑을 경험한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달팽이가 내 무릎을 핥는 것은 지평선을 넘겠다는 것이다. 내가 내 허벅지를 만지는 것은 소화기 근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동이 없다. 간지럽다. 배고프다. 싫다. 생명 끝. 누나는 식어가면서 읊조렸다.
“엄마·사탕 음, 엄마·사탕 음”

천국은 어디지?
그건 침대 파는 가게에 있어.
―「아가·사탕·별ⅱ」 부분

기어이 시 대신 앵두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오랫동안 비열했고 피했고 응했다

기꺼이 신 대신 분비물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베란다에 만약이라는 화분을 키우며

줄기차게
세차게

소나기는 내 어깨를 자른다
―「앵두와 몽롱과 비탈」 전문

비는 모든 난간의 각주들을 지우므로 비는 쓸모가 있다. 비는 축약되는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며, 비는 맑은 날을 향해 인내하다 터진 세계이며, 비는 썩 나와 잘 통한다.
―「순무의 고백」 부분

“저는 호기심과 직감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주장과 연설이
귀여워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너무 귀엽고 황당해서
추가와 뒷받침하는 말이 없도록
제대로 된 꼴림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의 발표와 기자 간담회」 부분

[……] 안나가 말했다, 저 구름은 참 맘에 안 들어, 내가 신나서 말했다, 그럼 내가 치울까, 뭐? 하하하하, 안나가 말했다, 저 별은 더 싫어, 그럼 내가 영원히 삭제할게, 안나는 잠시 조용했다, 세상은 참 복잡하지 않니? 나는 물고기가 안나의 발을 물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물속을 보았다, 안나가 울면서 다시 말했다, 넌 뭐가 되고 싶니? 어른이 되면,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물속에 비친 플라타너스를 보았다, 너가 좋아하는 거, 그게 될 거야, 그 후 안나는 작은 고니가 있는 강에서 죽었다
―「회전하는 편지」 부분


■ 작가의 말

◇.

나는 하何오.
이토록, 하河오.
나의 시작詩作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나의 끝은 다를 것이오. 생각해보면 나의 탄생은 미지근한 비극 같았으나 뮈토스의 작별로 인해, 나는 비극을 가지고 노는 직업을 얻게 되었소. 그러니 어여, 그런 지점에서 계속…… 뜻하何오.

기억하건대 object G—저 멀리 먼지 없는 사랑에 닿고자 했으나…… 지금은 쓸쓸한 다차원의 공생기 시절이다. 발사와 발아만이 남은 곳. 나의 ‘추진 로켓’은 투명한 습지에 멈춰 있다.

그러니까 구석의 기지基地에서 바라보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어째서 그런 의문인가’라고 다시 묻는 것. 예술은 다른 방식의 글썽임과 호기심을 생기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루이 12세의 발레처럼 얇은 발목을 유지했을까.

요즘 내 꿈은—청초한 면봉 하나 들고, 뚜뚜루 새우가 되어서, 아득한 베링해를 건너는 일이다. 상상·불온·리듬·도약을 넘어서, 개구쟁이 만만세를 만나보고 싶다.

다행히 지구는 깨지지 않을 테니.

2022년 봄
이지아

목차

■ 차례

시인의 말

Ⅰ 단연코배우들의 총생성극
반생물을 향한 빵과 칩과 계
기쁨의 돌잔치
아가·사탕·별ⅰ
비재현 회화의 정당성을 키우기 위한 인육
아가·사탕·별ⅱ
바니네 반바지와 연관된 극시
스티커의 존재론
입체성
앵두와 몽롱과 비탈
기계처럼 책을 읽는다
Punk
새로운 식량과 파트너

Ⅱ 고리모양에테르
야구
배드민턴 공이 떨어진 나무
연합 인간
ㅐㅐ
커다란 집을 굴려 언덕을 넘어가는 사람의 촉매반응
한때 거위였던 자전거
모호한 재규어
영, 의, 탄생석
원형 A
원형 B
원형 C
원형 D
원형 E
달님과 고체들
모조품
숲속에서: 비가 멈추고 우탄AA의 발언
너의 이마는 꽃동산
짙은 안개: 줄기차게 기어 다니는 사촌들
나무 위에서: 미래의 일꾼
오보에

Ⅲ 주변머리 제조국가
소프트 인간의 형이상학적 사고, 혹은 수줍은 씩
포도에 관한 희곡을 14개 썼기에 포도들은 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솟구침 위에 자리 잡았다
성격 유형
상황극
구름과 나름과 생산성
용접공의 언어 학회
지금도 알 수 없는 소설의 장면들
이제 완벽하게
저 앞의 썰매 그룹
골수이식 「Neuron」
매개자의 음악극
귤보다 많이 태어나는 미니 인간
서사시와 이순신

Ⅳ 요정은 필요없음
기명절지도
순수 직관의 단계
가설을 빌려 오는 인물
s#. 라쿤의 꼬리로 접시를 닦습니다
그토록: 리터러시
야근: 객관적 판단과 우수함
논쟁을 좋아하는 쥐 떼의 결과와 쉬
순무의 고백
Ep. 재채기로 태어난 아이
미래 사업 보고서
쓰러져가는 독자와 독점 실험실
사람과 염소
레몬이 아닌 것

Ⅴ 또렷이 별걸
그러려면 신파에게 자격증이나 따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우주를 꿈꾸며 땡땡이 셔츠를 나눠 입었지
중간 연구
새로운 기술 시대의 힘과 크기
금융 시대, 딸기주스
원형 F
그 털실을 치워주오
후추 옆에서
키의 발표와 기자 간담회
침대와 침
클래스
인간 발달 사항과 mm
s#. 약국과 외계인의 상업 활동
우리의 승마가 준비되고
배의 안쪽
1인 판소리 곁에 작은 시
겨울 장갑: 녹차라테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너는 쓰러졌다
회전하는 편지

해설
메타모포시스와 존재론적 위상 변환의 열망·조강석

작가 소개

이지아 지음

시인 이지아는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희곡 부문)을 수상하고, 2015년 쿨투라 신인상(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오트 쿠튀르』가 있다. 2022년 박상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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