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22년 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2월 28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68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동시대 한국 문학의 별자리들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삶이 벌써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일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느 정도의 불안과 무기력을 안고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문득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는 이즈음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버렸다면,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우리는 어쩐지 점점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진영을 막론하고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 합의되는 이 상황에서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아니 대체 누가 ‘나’를 대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뜻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용어가 훼손되는 무수한 장면을 목도하면서, 이러한 진흙탕 싸움 속에서 오히려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정치적 무관심의 태도만이 유일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눈에 띄었다. 펜싱 꿈나무였던 여고생이 IMF로 인해 학교 펜싱부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감독에게서 듣게 된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 여학생에게 감독은 이 모든 게 ‘시대 탓’이라고 오히려 화를 내며 말한다. 금메달리스트인 동갑내기 펜싱 선수를 동경하던 그 여학생은 우여곡절 끝에 그가 있는 다른 학교 펜싱부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리고 기적처럼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기회를 잡는다. 꿈을 잃지 않은 여학생에게 그녀를 새로 맡게 된 여성 감독이 이렇게 말한다.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왔다. 시대가 너를 돕는다.” 매번 절망하는 사람에게 위기가 기회라거나 버티는 자가 오히려 승리한다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리는지 모르지는 않지만, 비 오는 날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우산이 떨어지는 장면처럼, 언젠가 찾아올 그 기적 같은 날을 위해, 그러니까 정말로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희망을 말하는 방법까지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희망을 말하는 방법은 문학 안에서 가장 손쉽게, 그리고 다채롭게 찾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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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호 하이픈에서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 11인의 작업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하면서, 2020년대 ‘현장의 문학’을 성실히 읽고 ‘미래의 문학’에 대해 천천히 숙고해보고자 하는 『문학과사회』의 큰 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문학과사회 하이픈』이라는 별권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여, 한두 명의 시인이 집중 조명되는 방식을 지양하면서, 최근 한국 시단의 다양한 목소리를 한자리에 담고자 했었다. 이번 호 『하이픈』에서는 범위를 넓혀 여덟 명의 시인, 소설가를 읽는 본격 비평을 모아보았다. 편집동인들의 토의 끝에 강보원, 김리윤, 박지일, 윤은성 시인과 김멜라, 서이제, 신종원, 이미상 소설가가 그 대상이 되었다. 금정연 서평가와 김나영, 양순모, 오연경, 이소, 박혜진, 이희우, 소영현 평론가가 값진 평문을 보내왔다. 『문학과사회』의 동인들은 작년에 출간을 시작한 〈시 보다〉 시리즈를 비롯하여 그간 〈소설 보다〉 시리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현장의 작품들을 꾸준히 읽어왔다. 이번 기획은 이러한 단행본 시리즈들의 성과를 기념하고 결산하는 의미도 한편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론 혹은 작가론의 형태로 한 명의 시인, 그리고 소설가를 깊이 있게 읽어보고 동시대 문학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한곳에 모았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의 더 큰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에 대한 것은 아닌」은 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는 금정연의 글이다. “물론 시는 수수께끼가 아니다”는 시인의 문장에 이어 “21세기에도 여전히 시를 쓰고 또 읽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라는 서술로 시작된 이 글은 강보원에게 시를 쓰는 행위가 “슬픔을 비우고 슬픔이 다시 고이도록 단어를 배치하고 문장을 만드는 것”, 그러한 행위를 통해 시를 쓰는 일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행위라고 분석해낸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시를 쓰고 읽는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는 물론,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왜 이 글을 썼는가”라는 수수께끼에도 스스로 답하지 못했다는 능청으로 금정연의 글은 마무리되고 있는데, 금정연이 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서 물론 ‘기쁨’을 발견했으리라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김나영의 「현실의 이면을 투영하는 시」는 본격적으로 시도되는 최초의 김리윤론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한 글이다. 대부분의 시편에서 ‘빛’을 사용하고 있는 김리윤의 시를 읽기 위해 김나영은 ‘본다’라는 감각에 대해 숙고한 뒤, 그녀의 시가 세계의 어느 “작은 부분”을 강렬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분명한 언어로 담아내려는 시선의 운동”으로 씌어진다고 분석해낸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녀의 시가 “여성의 삶을 직접적으로 힘주어 쓰진 않지만, 여성의 구체적인 삶을 통과해 새로 생겨나는 세계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라고 읽어내는 부분은 흥미롭다. 김나영이 지적하듯 이러한 성취는 김리윤의 시가 “가장 사적이고 고유한 것을 다룰 법한 자리에 성도 나이도 문화도 다른 수많은 이의 눈과 귀와 입을 빌려 와 그들의 사유와 감각을 참조해 한 편의 시를 쓴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이다.
시 제목을 패러디한 “세잔과 지일”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박지일론에서 양순모는 현상학적 개념들에 기대어 박지일의 시가 “현상학적 환원을 시도하며 새로운 애도의 글쓰기를 모색하는 한 문학적 실천일 것”이라고 분석해낸다. 방대한 이론들을 토대로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의 개념, 그리고 독자의 행위와 비평의 역할을 숙고하는 양순모의 글은, 박지일론을 경유하여 ‘문학이라는 행위’의 근본적인 의미까지 사유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큰 글이라고 판단된다.
「‘주소 없는 거주자’의 목소리」에서 오연경은 윤은성 시에 나타난 “현실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견디는 나날의 세목”을 읽어내면서, “시인의 관심은 현실의 극복이나 의지의 관철이 아니라 깨지고 금이 간 우리의 ‘소울’에 있”을 것이라고 말해본다. 시의 화자들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에 “경계와 다정, 의심과 기대, 연민과 질타, 피로와 위로, 불안과 평온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다”고 읽으며 오연경은 윤은성 시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여럿 찾아내 보여준다. 가령 “타자들의 얼굴 안에 손을 넣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해독하기 어려운 표정을 손의 감각으로 읽어내려는,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촉감으로 가닿으려는 간절한 심정”을 읽어내는 부분에서 우리는 윤은성 시인의, 나아가 그 시인을 읽어내는 평론가의 또 다른 간절함을 절실히 느껴볼 수 있다.
「키치 대신 미래를 드립니다」에서 이소는 김멜라의 소설이 “소설 외부와 내부를 상호 순환하는 수행성”이라는 근래 퀴어 서사의 주된 전략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키치’라는 용어로 김멜라 소설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자신이 옳고 마땅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 것에 대해 그 어떠한 반성도 없는 미학”으로 ‘키치’를 정의하면서 이소는 “정상성과 규범성에 얽매여 타인에게 ‘퀴어’라는 딱지를 붙이는 자들이야말로 키치하”다고 말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김멜라의 소설이 “비균질적인 표면으로 덮여 쉴 새 없이 꿈틀대는 퀴어한 것, 이미 존재하는 몸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예언을 증언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키치’에 투쟁하는 진정한 ‘퀴어소설’이 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무기력」에서 박혜진은 서이제의 첫 소설집과 근작 소설들을 꼼꼼하게 읽으며 그녀 소설의 주된 정조인 ‘무기력’의 다양한 함의를 읽어내고자 한다. 통상 무기력의 상태가 절망의 세계를 받아들이거나 그 세계를 살아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전략이라고 한다면, 달리 말해 무기력이 ‘달관’이나 ‘체념’이라는 사회문화적 현상이거나 ‘우울’이라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서이제 소설에 나타난 무기력은 나의 무기력을 세계의 무기력으로 확장하며 세계의 존재 자체를 약화하는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무기력’이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이 되는 이유는 “한 세계의 약화는 다른 세계가 출현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서이제 소설의 자조가 절망스럽게 읽히지만은 않았던 이유를 박혜진의 글에서 확인하게 된다.
「신시사이저 은하계」에서 이희우는 “바로크적 운명론” “하이브리드의 교환” “생동하는 명사들” “탈–알레고리”라는 키워드들로 신종원 소설의 의미를 거시적이고도 정교한 관점으로 읽어낸다. 신종원 소설을 “복잡한 유기체”로서 파악하여 “음악적 질서와 거기서 벗어나는 소설의 힘”에 관해 논하는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은 예술에 관한 폭넓은 사유와 마주하며 문학을 읽는 색다른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는’ 여자들」은 최근 여러 편의 문제작을 통해 한국 문단에 그 이름을 새롭게 각인시킨 이미상의 소설을 읽는 소영현의 글이다. 소영현이 정리하듯 이미상의 소설은 “전체를 읽고도 읽었다는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없거나 부분들만 읽었다고 느끼게 하는, 역설적으로 없는 전체를 상상하게 하는 힘의 작동이 소설 한 편의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 그런 작품이다.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까다롭게 느껴지는 이미상의 소설을 꼼꼼하게 읽어내며, 이 글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와 문단의 변화들을 고려하면서 이미상 소설이 지닌 의미와 그 가치를 충실하게 발견해내고 있다.

이 여덟 편의 글들이 여덟 명의 시인과 소설가에 대한, 나아가 지금의 한국 문단에 대한 다양한 토론들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동시대 한국 문학의 별자리를 섬세하고도 뚜렷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잦아들 줄 모르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 문학의 현장은 활발하다. 본권의 창작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허연, 이장욱, 진은영, 김현, 박세미, 최지은, 차호지 시인께 감사드린다. 은모든, 이미상, 김유림 작가의 노고에도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지난 계절에도 여느 때 못지않게 흥미로운 신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리뷰〉 코너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들이 많지만 다른 기회에 그 작품들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난겨울 출간된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고 묵직한 비평을 보내주신 김언 시인, 김영임, 소유정, 안지영, 김미정, 양윤의, 박서양, 서영인, 윤경희 평론가께도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리뷰〉 코너의 풍성한 글들과 더불어 이번 호 〈메타비평〉 코너의 비평 두 편을 함께 읽는다면, 최근 한국 문단의 고민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슬기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계절 몇 잡지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주제로 유의미한 기획을 마련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응답으로서 이번 호 『문학과사회』에서는 오혜진, 최가은 비평가의 의견을 청해 듣고자 하였다. 가히 2021년의 문제작이라고 할 만한 김멜라의 「저녁놀」을 분석하는 오혜진의 글은 이 소설이 인류사의 유구한 남근 지배나 ‘이대남’의 백래시backlash 수사학을 전복하는 소설에 그치지 않는 점에 주목한다. “‘성애 없는 여성 서사’ ‘섹스 없는 섹슈얼리티 서사’ ‘명분 없이 성립하지 않는 여성 성애’ ‘탈정치화된 퀴어 서사’”라는 퀴어 서사에 관한 그간의 “입바른” 비평을 유쾌하게 배반하는 것으로 「저녁놀」을 고평하면서 오혜진은 그간의 퀴어 서사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을 시도한다. 최가은의 글은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최근 몇 년간의 논쟁들을 경유하여 “질문을 다시 제기하”는 “노출의 쓰기”를 반복하는 것이 최근 비평의 책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성〉 코너에는 비평가이자 연구자인 정과리가 한국 불어불문학의 제2세대에 속하는 정명환 교수의 근작 『프루스트를 읽다』를 비롯 그간의 저작을 일별하며 그가 연구자로서 보여준 예외적 지성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한국 지성사의 한 흐름을 해설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아가 학문을 하는 정직한 태도에 대해서도 배우는 바가 클 것이다. 제18회 마해송문학상에서는 아쉽게도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심사 과정에 대한 섬세한 보고를 꼼꼼한 심사평을 통해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_편집동인 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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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동시대–별자리

금정연
물론—! 시에 대한 것은 아닌
—강보원론

김나영
현실의 이면을 투영하는 시
—김리윤론

양순모
세잔과 지일
—박지일론

오연경
‘주소 없는 거주자’의 목소리
—윤은성론

이소
키치 대신 미래를 드립니다
—김멜라론

박혜진
정치적 무기력
—서이제론

이희우
신시사이저 은하계
—신종원론

소영현
‘하는’ 여자들
—이미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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