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2월 16일 | ISBN 9788932039459

사양 변형판 120x188 · 420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그 애는 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날 알아볼 거예요”

셜록 없는 세상 속 왓슨들의 사건 일지
한 사람의 시간을 넘어 나에게로 이어지는 사랑의 계보

역사의 빈틈과 가려진 오늘을 기록하는 작가 한정현의 두번째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 2022)가 출간되었다.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줄리아나 도쿄』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장편이다. 이 소설은 그동안 한정현이 시도해왔던 작업, 공식적 역사에서 누락되었거나 주류 역사가 삭제시킨 흐릿한 이름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삶을 소설 안에서 만나게 하면서 새로운 역사의 지도를 그려내는 ‘한정현 유니버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번 소설은 기억을 잃은 설영과 기억을 잊지 못하는 연정이 설영의 사라진 기억 속 ‘셜록’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단서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한정현은 공식적 역사로 기록되지 못했고 공적 제도가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가만히 부르고 눈을 맞춘다. 다시 한번, 견고해 보이는 대문자 역사의 폭력의 계보를 사랑의 계보로 대체해나가려 한다.

반짝이는 이 소설의 끝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기억이 금지당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할 것을 기억하면서.
김초엽(소설가)

왓슨은 어떤 그럴듯한 추리를 해내거나 사건을 해결하진 못하지만 기록하고 보관한다.
물론 사실 그대로를 베껴 쓰는 게 아니라 왓슨 나름대로의 재구성물로.
그게 아마 소설이었을 것이다. 코넌 도일이 만든 진실을 추적하는 방법으로의 탐정소설.
_본문에서


일단은 추리소설, 아마도 연애소설, 그리고 역사소설

일본에 살고 있는 연구자 윤설영은 몇 년 전 우연한 사고로 기억의 일부를 잃었다. 어느 날 설영은 사고 즈음 사라진 친구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는다. 이름보다 먼저 생각나는 친구의 별명은 셜록. 절친했던 사이인 둘은 빨치산 여성 생존자에 대한 공공보건 사례를 주제로 한 소논문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마침 논문과 관련된 한국에서의 임용 기회가 생겨 공동 저자인 셜록과 연락이 닿아야 하는 상황. 몇 년 만에 낯설어진 서울로 돌아온 설영은 셜록의 담당의였던 성형외과 의사 구연정과 함께 셜록이 남긴 수수께끼 같은 메일의 알 듯 말 듯한 단서를 추적해나간다. 셜록이 사라진 세상, 자신들을 기록자 왓슨이라 부르는 사립 탐정이 등장했다. 이 왓슨들은 셜록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겪는 일들은 지금도 너무나 비슷해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그곳의 문제는 여전히 지금 이곳, 이 사회에서 반복되는 문제라는 것.
많은 피해자가 피해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숨을 죽이고
사회의 바깥에서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_「작가의 말」에서

왓슨들은 셜록의 메일 속 자료를 확인하고 힌트를 풀이해 숨겨진 장소를 찾아가며 논문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단서를 추적하는 동안 점점 드러나는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설영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연정의 잊지 못할 기억을 다독이는 ‘과정’ 자체다. 왓슨들은 기억을 헤집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를 찾아낸다. 설영과 연정이 현실에서 마주하고 기억에서 떠올리는 이들은 국가폭력, 젠더폭력, 혐오 범죄의 피해자 혹은 생존자다. 산에서는 동지에게, 내려와서는 공권력에 성폭력을 당한 빨치산, 엘리트 가족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정체성을 억눌러야 했던 성소수자, 집단의 명예를 위해 사라져버린 퀴어 청소년과 인터섹스. 공식적 역사로 기록되지 못했거나 공적 제도가 구하지 못한 ‘사연 있는’ 사람들.

문학평론가 김건형의 해석처럼 이 소설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폭력의 계보를 보여주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배제하는 사회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추적한다. 정치・사회적인 영역에서 일상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남성-제도-국가’로 이루어진 ‘정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지워버린 대문자 역사. 그 반대편에 “기성의 역사 서술의 무게와 싸우며 인물에게 역사적 실재감을 부여하려”는 한정현의 새로운 역사가 있다. 나아가 이 소설은 피해자의 고통을 노골적으로 재현하거나 쉽게 애도하지 않는다. 왓슨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피해/생존자를 넘어서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고 말하는 법을 가진 사람들”이다(김건형). 빨치산 내 성폭력 피해자였던 김춘희와 이의선은 폭력의 경험 이후 자신이 겪은 폭력의 구조를 파악하며 스스로를 치유해냈다. 삶의 마지막 시기에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 했고 다른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갔다. 그들을 기리는 남겨진 이들의 기억을 통해 되살아나 왓슨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 사람들. 이제 세상에 없더라도 춘희와 의선은 납작한 희생자나 슬픔의 상징이 아닌, 실체 없던 고독한 고통을 함께 겪고 또 다른 왓슨들을 치유해내는 동료로서 시간을 넘어 살아간다.


세상이 정의한 이름을 헤치고 너에게 가는 길

소설에 따르면 공식적인 한국 최초의 성형수술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들여온 언청이 수술”이다. 그러나 한정현 소설의 사람들은 1940년대 초반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있는 사람을 성형수술해서 성을 되찾아줬다는 기사”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이 소설의 제목은 왜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혐오받는 얼굴”, 마릴린 먼로. “아름답다고 추앙하다가 거부하면 부숴버릴 듯 달려드는 사람들”은 다른 “여자들을 마릴린 먼로에 비교하면서 여자들조차 마릴린 먼로를 비난하게” 한다. “권력자가 만들어낸, 권력 없는 사람들끼리 물어뜯는 구조” 안에서 마릴린 먼로는 추앙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왔다. 체제에 순응하던 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 했을 때 쏟아졌을 세상의 손가락질”과 “비난”은 “외모와 자주 결합”되곤 한다. 작가는 아름다움에 집착하길 권하면서도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는 사회의 모순을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인 연정을 빌려 이야기한다. ‘주류 규범적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원본을 파괴하는 속물적인 행위라며 지탄받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성형은 선천적으로 타고나 변형 불가능한 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드는 일일 수 있다’(김건형). 연정은 생각한다. 애초에 “그 원본이라는 것도 결국엔,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진짜 같은 무언가”이며 “원본이라는 것은 없고 고정된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설 안에서 무게감 있게 강조되는 연정의 저 말은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위안으로, 헛된 규격에 따라 타인을 배제하는 사람들에게는 질타로 느껴질 듯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을 폭력의 계보 안에서 힘센 사람들의 분류에 따라 왜곡되어온 이름을 새로운 의미로 바꿔 부르자는 의도로 읽어볼 수도 있겠다. 당신과 나는 여전히 대의명분이나 당위 혹은 섭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얄팍한 질서를 어렵게 벗어난 나 자신과 내 곁의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겪는 일들은 지금도 너무나 비슷해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세상은 무척 더디게 변한다. 소설 속 이 문장은 인류가 계속되는 한 유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쯤 달라진 오늘의 나를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면 이 말은 이제 희망으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소년」에서 한정현은 말했다. “그리고 낙관할 것.” 이번 소설에서 그는 순진한 낙관의 힘을, “폭력 속에서 최대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단단하고 투명한 사람들의 삶이 분명 있다고 다시 한번 힘주어 이야기한다(「작가의 말」).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는 그렇게 쉬운 절망 대신 어려운 낙관을 말하려 한다, 모두의 용감하고 단순한 사랑을 위해.


추천의 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인물들과 그림자만 드리우던 질문이 선과 선을 맞대며 형상을 드러낸다. 언뜻 의아하고 낯선 풍경, 그 속에서 점차 선명해지는 존재들이 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온다. 금지당한 사람들,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서도 끝내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기는 존재들, 그럼에도 온갖 모순을 끌어안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용감한 존재들. 내가 언제나 마음을 쓰게 되는 그 얼굴들이 한정현의 이야기 속에 있다. 반짝이는 이 소설의 끝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기억이 금지당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할 것을 기억하면서. 김초엽(소설가)


본문에서

“우리 다 마릴린 먼로 같지 않나요? 아름답다고 추앙하다가 거부하면 부숴버릴 듯 달려드는 사람들. 여자로서의 삶은 평생 어딘가에 전시되는 것만 같았어요. 내 몸은 마치 공공 기물 같은 느낌이었죠.” (p. 314)

“왠지 이건 내 일이기도 한 것 같아서 그래.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 확실히 모두의 일 같아서 그래.” (p. 327)

“사람들은 가끔 자신들이 정해놓은 것만 원본이라고, 진짜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 (p. 352)

어쩌면 사랑이라는 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천재 탐정도 완벽하게 추리해낼 수 없고, 가끔은 그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는 것, (p. 356)

“[…] 나, 가끔 우리의 삶이 추리소설에서 탐정이 하는 가장 긴 추리 같아. 진실이 쉽게 밝혀지지 않아서 절망도 하고 실망도 많이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그 끝엔 답도 있고 진실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는…… 설사 그게 세상이 정한 답하고는 다를지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살아내자. 살아내서 저기 인간의 시간을 벗어난 세상에서 만나서 말하자. 행복하게 살았다고, 누군가 이 기나긴 삶의 끝에 기다리고 있어서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 누군가에게 내가 통과한 시간을 말해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기억하고 더 열심히 두리번거렸다고.” (p. 360)

“원래 어설프게 권력 지향적인 사람들은 유사 권력만 봐도 잘 졸아붙잖아요. 뭐 하러 진짜를 가지고 가겠어요?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건 하수나 하는 일이죠.” (p. 376)

목차

■ 차례
프롤로그•초대장
제1장•도착한 과거
제2장•도쿄의 파루치잔
제3장•사라진 배우들
제4장•임시 휴업
제5장•서울, 이번 추리소설의 무대
제6장•일단은 추리소설, 어쩌면 연애소설
제7장•왓슨들
제8장•아득히 가까운 곳
제9장•피크닉 가기 좋은 계절
제10장•두 번 쓰는 이야기
제11장•죽지 않는 마녀의 숲
제12장•우리는 오래 그 마음에 남아
에필로그•초대장
해설•도쿄와 서울의 파루치잔, 퀴어 가족의 탐정소설_김건형
작가의 말
부록•소설을 쓰며 참고한 것들

작가 소개

한정현 지음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가 있다. 제43회 오늘의작가상, 제1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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