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본다

신해욱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12월 13일 | ISBN 9788932039299

사양 변형판 120x185 · 191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쓰다’의 매혹이 만드는 경계 없는 산문의 세계
문학과지성사의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 2차분 2권 출간

문학과지성사의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의 2차분으로 백민석 『과거는 어째서 자꾸 돌아오는가』와 신해욱 『창밖을 본다』가 동시 출간되었다. 2019년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이광호 『너는 우연한 고양이』 등으로 시리즈를 처음 선보인 이래 2년 만이다. 2022년에는 나희덕, 하재연, 한유주 등의 산문으로 3차분이 출시될 계획이다.

〈문지 에크리〉는 지금까지 자신만의 문체로 특유의 스타일을 일궈낸 문학 작가들의 사유를 동시대 독자의 취향에 맞게 구성·기획한 산문 시리즈다. 에크리란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그/그녀가 무엇을) ‘쓰다’라는 뜻이다. 쓰는 행위를 강조한 이유는 이 시리즈가 작가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최대한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지 에크리〉는 무엇, 그러니까 목적어의 자리를 빈칸으로 남겨놓는다. 작가는 마음껏 그 빈칸을 채운다. 어떤 대상도 주제도 될 수 있는 친애하는 관심사에 대해 ‘쓴다’. 이렇게 태어난 글은 장르적 경계를 슬쩍 넘어서고 어느새 독자와 작가를 잇는다.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으로만 접해 속내를 알기 힘들었던 작가들과 좀더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읽음에 의해 비로소 이 책은 씌어진다.
읽은 자리에 백색의 글자가 드러날 것이다”

텅 빈 프레임 속에 펼쳐지는 무한히 아름다운 풍경들

신해욱 시인의 산문집 『창밖을 본다』가 <문지 에크리>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신해욱은 자신만의 섬세하고 견고한 시 세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비성년열전』 『일인용 책』 등 일상 속 미세한 파문을 포착해내는 산문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꿈의 이미지를 다룬 소설 『해몽전파사』로 신비로운 감각의 공유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한 작가가 이번 산문집에서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공책(空冊)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공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노트로서의 공책이 아닌. 책으로서의 빈 책인 듯이. 포화 상태의 백색소음을 해독하겠다는 듯이. [……] 읽은 후에야 읽힐 것이 따라온다.
(「空冊」, pp. 13~14)

『창밖을 본다』는 친구 재옥으로부터 한 권의 공책을 선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잘 써라. 어떻게 썼는지 나중에 보고해”라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어떤 문장도 기입할 수 없는 나날의 풍경을 작가 특유의 세심한 관찰력과 시적 사유로 담아낸다. 결국 신해욱은 쓸 수 없음을 읽기라는 형식으로 돌파한다. 페이지의 공백을 마치 백색의 문장을 따라 읽듯이 응시함으로써 선후 관계를 초월한 글쓰기의 영역에 이르고자 한다.

나는 앞장서 글을 끌어가기보다는 글에 끌려가는 축에 속한다. 글 속의 공책에 끌려가면서야 흩어져 있던 문장들을 모을 수 있었고 글 속의 재옥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 공책을 만들 수 있었다. 따라 하기 위해. 뒤를 밟기 위해. 썼다.
(「작가의 말」, p. 188)

이러한 작법은 책 속에서 작가가 무시로 건너다보는 창문이 텅 비어 있는 동시에 매 순간 변화하는 이미지로 충만하다는 역설적 상황과도 맥락을 함께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간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무한한 찰나” 속에서 언뜻 스치고 휘발되는 언어들을 붙잡아두려는 문학적 모험을 연상케 한다. 그 과정에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생경한 아름다움이 “어딘가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 당신의 마음”과 연결되기를 염원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 본문에서

창밖엔 눈이 쌓인다. 눈 위에 눈 그림자가 날린다. 소리는 없다. 흩날리는 음소거의 풍경. 백색소음에 갇힌 기분이다. 색소에 소리가 흡수된다. 없는 소리가 백색 입자로 응결된다. 백색소음 같은 글을 쓸 수 있다면. 공책을 편다. (「空冊」, pp. 12~13)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픽션이 섞이지 않은 글은 없다. 과학적인 글의 논리와 가설도 일종의 픽션이고 에세이에 담긴 생각과 판단도 넓은 의미에서는 픽션이다. 추구하고 기대하는 바가 픽션이 아닐 뿐이다. (「헬멧을 쓴다」, p. 84)

풍경화를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제목을 가린다면 어디가 어딘지 알 길 없는 숲과 바다와 들판과 거리에 내 마음은 미치지 않았다. 지금은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의 눈에 내 눈을 겹쳐보곤 한다. 창밖을 본다. 직하하는 빛이. 비끼는 빛이. 투과하는 빛이. 반사되는 빛이. 신엽과 구엽과 상엽과 하엽에 닿아 만드는 저 무한한 찰나의 녹색을 팔레트에서 내 손으로 직접 재생시키면 좋을 것이다. 캔버스에 붙잡아두면 좋을 것이다. 창밖의 일기를 쓰는 나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북쪽 창」, p. 122)

나는 다른 하루 속에 있다. 감은 눈 속으로 잠은 오지 않았고 잠 없이는 하루와 하루 사이에 금이 그어지지 않는다. 달력의 날짜가 바뀌고 밤이 물러가도 하루는 끝나지 않고 하루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럴 때 하루와 하루를 가르는 것은 창문이다. 창밖엔 오늘이 시작되고 나는 어제를 이어가고 있다. 나의 오늘은 계속되는데 창밖엔 내일이 흐르고 있다. (「liquid winter」, p. 185)

목차

1 空冊
2 북쪽 창
3 독고숙의 블로그
4 남쪽 창
5 헬멧을 쓴다
6 우먼센스
7 북쪽 창
8 북행 열차
9 밤의 소리
10 은미네
11 liquid winter

작가의 말
미주

작가 소개

신해욱 지음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무족영원』, 소설 『해몽전파사』, 산문집 『비성년열전』 『일인용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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