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지음 | 윤진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11월 26일 | ISBN 9788932039244

사양 변형판 128x187 · 258쪽 | 가격 14,000원

분야 채석장, 인문

책소개

영혼의 모든 자연적 움직임은
물질계의 중력 법칙과 유사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은총만이 예외이다.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에 맡겨진 인간의 불행과
초차연의 빛인 은총의 순간
모든 인간이 처한 근본적 삶의 조건을 파헤친 인간 탐구의 기록

좌파/기독교 신비주의자, 전쟁에 반대하고 약자들을 위해 투쟁했던 운동가/유토피아와 혁명의 비전을 거부하고 ‘수난’에 주목했던 사상가, 광신적 금욕주의자/모든 아웃사이더들의 수호성인. 일직선상에 놓기 힘든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수식어들로 호명되어온, 프랑스의 철학교사이자 노동운동가, 사상가 시몬 베유의 대표작 『중력과 은총』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중력과 은총』은 베유 사후, 사상가 귀스타브 티봉이 베유가 맡겨둔 열 권이 넘는 공책들 중에서 단장들을 고르고 각 장에 제목을 달아서 출간한 것이다.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에 맡겨진 인간의 불행과 초자연의 빛인 은총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인 주제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베유의 독특한 신학을 아포리즘적인 문장 속에 담아낸 일종의 종교적 수상록이자 모든 인간이 처한 근본적 삶의 조건을 파헤친 인간 탐구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력과 은총』을 비롯한 베유의 글들은 알베르 카뮈, 앙드레 지드, T. S 엘리엇, 아이리스 머독, 플래너리 오코너, 앤 카슨, 조르주 바타유, 조르조 아감벤 등 수많은 작가 및 사상가 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이후로는 지성계를 넘어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을 생각할 때, 베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자주 오독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올겨울 세 출판사에서 시몬 베유의 세 작품 『중력과 은총』(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이종영 옮김, 리시올),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이종영 옮김, 새물결)을 공동으로 출간한다. 세 작품을 가로질러 읽음으로써 베유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는 『중력과 은총』은 개정판본으로 번역가 윤진이 기존 번역을 세심하게 수정했고, 책에 등장하는 문학작품 및 성경 인용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덧붙였다.


“우리는 가상의 낙원보다 실재하는 지옥을 선호해야 한다.”
중력 혹은 맹목적 필연의 구속을 받는
인간의 불행에 대한 주시

1909년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1943년 영국의 한 요양원에서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시몬 베유는 하나의 틀 안에 정리해 넣기 힘든, 상당히 복잡한 삶의 경로를 밟아왔다. 고등학교 철학교사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고, 공장으로 가서 직접 노동을 한 급진적인 운동가였으면서도 공산주의는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이며 약자가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권력의 양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영성 체험을 한 후로 종교에 몰두하면서도 세속 교회와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으며, 그리스 비극을 통해 신앙의 신비를 설명하려 하기도 했다. 또한 나치 치하에서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면서도 유대 역사 및 유대교에 대해서는 더없이 적대적이었다.
베유 삶의 각각의 국면들이 하나로 수렴되기 어려워 보이는 것만큼이나 베유에 대한 반응 역시 양극으로 갈리곤 했다. 베유의 정치적 면모에 주목하는 이들은 베유가 이후 종교에 몰두하게 된 것을 두고 전쟁 경험을 통해 비관주의에 빠진 결과라거나 심리적 불안정으로 해석하면서, 종교에 ‘물들기’ 이전의 저작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고, 베유의 종교적 면모에 이끌리는 이들은 베유의 정치적인 경험을 통과의례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정치적 색깔을 삭제한 채 텍스트를 독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베유에게 이 두 가지 면모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특히 『중력과 은총』은 베유 신학의 중요한 관념들을 담고 있는 책으로 간주되어 초기에는 종교적 의미를 찾는 독자들에게 더 많이 읽혀왔으나, 근래에는 중력, 은총, 필연, 우연, 폭력, 사랑, 악, 아름다움, 탈창조 등 베유가 독특하게 재정의하고 있는 관념들을 중심으로 복합적인 관점에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텍스트는 베유가 생전에 출간을 염두에 두고 완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저자의 의도이고 어디까지 엮은이가 개입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지점이 적지 않다. 여기에 단장의 나열이라는 형식적 특징까지 더해져, 매우 간결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모호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베유의 목소리는 마치 선지자의 음성처럼 허공에서 울려 퍼지며,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들인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은총은 받아들이기 위한 빈자리가 있는 곳에만 들어온다.”

“영혼의 모든 자연적 움직임은 물질계의 중력 법칙과 유사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은총만이 예외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문을 여는 『중력과 은총』은 중력 혹은 맹목적 필연에 구속받는 인간의 불행과 이와 대립되는 은총의 빛을 이야기한다. 베유는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거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의 섭리가 있다는 식의 믿음을 통해 종교에서 위안을 얻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그 고통에 대한 위로이다. 고통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죄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고통의 최고 가치이다.” 고통을 ‘실재’로 인정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에 대한 믿음이나 맹목적 필연에서 해방된 세계를 약속하는 혁명 역시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고 인간이 한계를 대면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베유에 따르면 “필연은 그 본질에 있어서 상상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가상의 낙원보다 실재하는 지옥을 선호해야 한다.” 베유는 고통을 통해 우리가 처한 조건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신이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주체로서의 자아를 비움으로써 비로소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빈자리가 마련된다. “은총은 채운다. 하지만 은총은 받아들이기 위한 빈자리가 있는 곳에만 들어온다.” 그러고 나면 여기에 미약하지만 어떤 가능성이 생겨난다. “인간은 아주 짧은 섬광 같은 순간에만 세상의 법칙들을 벗어날 수 있다. 정지의 순간, 관조의 순간, 정신적 빈자리의 순간, 도덕적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런 순간에 인간은 초자연에 이를 수 있다.”

어떠한 위안도 구원의 약속도 없이 오로지 인간이 처한 비극적 조건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고, 인간 주체의 힘과 세계를 능동적으로 변혁시킬 가능성을 부정하는 베유의 주장을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녀의 사유는 유럽 사회가 오랫동안 믿어온 합리성과 진보가 부조리한 전쟁 속에서 무너져버린 시대적 상황 속에서만 온전한 의미를 띤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가운데 모든 가치를 탐문에 부쳤던 베유의 치열함은, 오늘날 일상성이라는 견고한 보루 안에서 중력에 더욱 강력하게 붙들린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은총의 빛과 “중력의 법칙들을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짧은 섬광 같은 순간”에 대한 베유의 아이디어를 ‘베유에 반(反)하여’,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하여 사용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 밖의 이야기

1.
데보라 넬슨은 『터프 이너프』에서, 알베르 카뮈가 “베유의 문학적 실행자”였다고 말한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파늘루 사제의 모습이나 그의 강론 내용은 베유를 중요하게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페스트의 도래 그 자체를 신의 자비의 증거로 파악한다는 강론이나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관련해 『중력과 은총』에서 유사한 구절을 찾을 수 있다.

2.
앤 카슨은 자신의 책의 제목을 『중력과 은총』에서 중심적으로 논의하는 ‘탈창조’라 붙이고, 이 개념을 바탕으로 사유를 전개해나간다.

3.
베유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세월』에서 학생들이 종종 ‘사상가’ 시몬 베유와 ‘정치가’ 시몬 베유를 헷갈리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났었다고 쓴 바 있다. 에르노는 1974년 정치가 베유가 임신 중단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남성들로 가득 찬 의회에서 홀로 분투하는 것을 보고, 그런 오해를 하는 학생들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 추천사

『중력과 은총』은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에 맡겨진 인간의 불행과 초자연의 빛인 은총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인 주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넘친다’는 기독교적 구원관을 잇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종교적 수상록이라기보다는 기독교적 비극성에서 출발하여 모든 인간이 처한 근본적 삶의 조건을 파헤친 인간 탐구의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_「옮긴이의 말」에서

어떤 이들은 베유가 파스칼에 버금간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위험한 이단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천재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_『뉴욕타임스 북 리뷰』

그렇게 그녀는 모든 아웃사이더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_앙드레 지드


■ 책 속으로

영혼의 모든 자연적 움직임은 물질계의 중력 법칙과 유사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은총만이 예외이다. (중력과 은총, 7)

두 가지의 힘이 우주를 지배한다. 빛과 중력. (중력과 은총, 7)

은총은 채운다. 하지만 은총은 받아들이기 위한 빈자리가 있는 곳에만 들어온다. 그 빈자리도 은총이 만든다. (빈자리를 받아들이기, 19)

빈자리를 채우고 고뇌를 달래주는 믿음들을 물리칠 것. 불멸성에 대한 믿음, 죄의 효용성에 대한 믿음,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의 섭리가 있다는 믿음. 한마디로 사람들이 종교에서 얻으려 하는 위안들을 물리칠 것. (집착에서 벗어나기, 24)

문학과 도덕. 상상의 악은 낭만적이고 다채롭다. 실재하는 악은 음산하고 단조롭고 삭막하고 지루하다. 상상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재하는 선은 언제나 새롭고 경이롭고 도취시킨다. 그러므로 ‘상상력의 문학’은 지루하든가 아니면 부도덕하다(혹은 두 가지가 섞여 있다). 문학이 지루함과 부도덕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려면, 예술의 힘을 빌려 어느 정도 실재 쪽으로 가야 한다. 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일. (악, 97)

죄 없이 고통 받는 사람은 죄를 느낀다. 진짜 죄는 느껴지지 않는다. 죄 없이 고통 받는 사람은 가해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참모습을 안다. 죄 없이 고통 받는 사람 안에서 느껴지는 악은 가해자 안에 있지만, 가해자는 그 악을 느끼지 못한다. 죄 없는 사람은 죄를 고통으로만 안다. 죄지은 사람 안에서는 죄가 느껴지지 않는다. 죄 없는 사람 안에서는 죄 없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죄 없는 사람이 지옥을 느낄 수 있다. (악, 99~100)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 이반이 한 말. “이 거대한 건축물이 더없이 훌륭하다 한들, 이것을 얻기 위해 어린아이의 눈물 한 방울이라도 치러야 한다면 나는 거부하겠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린아이의 눈물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면, 인간 지성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 어떤 동기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초자연적인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 즉 신이 원했을 때는 예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나는 어린아이의 눈물뿐 아니라 악에 지나지 않는 세계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악, 105)

고통의 외침. “왜?” 『일리아스』 전편에 울려 퍼지고 있다.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그 고통에 대한 위로이다. 고통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죄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고통의 최고 가치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는 부재한다, 152)

집단적인 사고는 사고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물들로 옮겨 간다(기호들, 기계들…). 그로 인해 역설이 가능해진다. 즉, 이제 사물이 생각하고 인간은 사물의 상태로 환원된다. (대수학, 204)

민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다.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모든 도덕의 타락은 시가 없을 때 일어난다. (노동의 신비주의, 240)

목차

중력과 은총| 빈자리와 보상 | 빈자리를 받아들이기 | 집착에서 벗어나기 | 채우는 상상력 | 시간을 포기하기 | 대상 없이 욕망하기 | 자아 | 탈脫창조 | 사라지기 | 필연과 복종 | 환상 | 우상 숭배 | 사랑 | 악 | 불행 | 폭력 | 십자가 | 저울과 지렛대 | 불가능 | 모순 | 필연과 선의 거리 | 우연 |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는 부재한다 | 무신론의 정화 | 주의력과 의지 | 길들이기 | 지성과 은총 | 읽기 | 기게스의 반지 | 우주의 의미 | 중간적인 것 | 아름다움 | 대수학 | 사회적 낙인 | 거대한 짐승 | 이스라엘 | 사회의 조화 | 노동의 신비주의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시몬 베유 지음

프랑스 철학자.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부임했다. 이때부터 베유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의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지역 노동자 파업과 광부 노동조합 등을 지원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1934년에는 학교를 휴직하고 직접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파리 알스톰 전기 회사, 앵드르의 제련소, 파리 근교의 르노 자동차 공장 등에서 일한다. 이 시기 공장에서의 일과를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공장 일기」 는 사후에 다른 글들과 함께 『노동의 조건』으로 출간된다. 1936년 에스파냐 내전이 일어나자 바르셀로나로 가서 무정부주의자들의 부대에 합류한다. 하지만 한 달 반 만에 사고를 당해 때 이른 귀국을 하는데, 이때의 경험은 짧지만 그녀의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4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으나,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 위해 홀로 런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와 유대인 신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후방에서 투쟁을 지원해야 했다. 1943년 영국 애슈퍼드의 요양원에서 영양실조 및 결핵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베유의 글은 사후에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귀스타브 티봉이 베유의 아포리즘적인 글 가운데 선별해 출간한 『중력과 은총』은 강력한 지지 혹은 비판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내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그 밖의 저서로 『뿌리내림』 『노동의 조건』 『신을 기다리며』 『억압과 자유』 등이 있다.

윤진 옮김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자서전의 규약』 『페르디두르케』 『사탄의 태양 아래』 『위험한 관계』 『목로주점』 『문학 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알렉시·은총의 일격』 『주군의 여인』 『파울리나 1880』 『루』 『만』 『물질적 삶』 『에로스의 눈물』 『태평양을 막는 제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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