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11월 20일 | ISBN 9788932039251

사양 변형판 120x188 · 223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이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일상을 지속하라.”
꿈과 현실, 너와 나의 구분을 지우며 내달리는 구병모의 문장들!

현실과 비현실, 이곳과 저곳, 이것과 저것, 끝내는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대해 이토록 집요한 소설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이장욱(소설가)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요약할 수 없는 글, 그러니까 메시지를 섬멸한, 어긋난, 바로 엊그제의 일, 눈 깜짝할 사이, 어쩌면 1년에 관한 글. 조재룡(문학평론가)

2009년 첫 책을 출간함과 동시에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폭넓은 팬층을 단번에 확보한 작가 구병모의 새 장편소설 『상아의 문으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등단 이후 꾸준히 신작을 발표해온 그가 2021년 연말을 앞두고, 계간 『문학과사회』(2020년 가을호~2021년 여름호)에 연재했던 소설을 묶어낸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등에 등장하는 ‘상아로 만든 문’과 ‘뿔로 만든 문’이라는 아이디어에서 빌려왔다. 이들 서사시에서 말하길, 상아의 문으로 흘러든 꿈들은 거짓된 것이고, 뿔의 문으로는 진실된 것들만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두 가지 문 중 ‘상아의 문’으로 향해 갈 것이다. 이 문을 지나면 그 뒤에 등장하는 감각,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심지어 ‘나’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명확한 논리, 의지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사라진 문장들 사이에는 오로지 지금 명멸하는 사태만이 있다.
때문에 『상아의 문으로』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려는 의지를 담보한 채 매 순간 등장하는 새로운 문장들을 맞이할 때에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쳐 들었다면 문장을 가로질러 섣불리 결말을 찾고자 하는 시도보다는 하나의 문장을 읽을 때 살짝 켜졌다 다시 사그라드는 눈앞의 사태에 집중하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할 것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도시
현실을 가격하는 꿈 증상의 시작

이 증상이 시작된 뒤로는 매 순간이 직전 순간에 대한 분석과 다음 순간에 대한 예기(豫期)의 도구가 되며 그 행위는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들여다본 거울 안에는 뒤편의 수건걸이에 비뚜로 걸린 붉은 수건이 영원히 교차되지 않는 건널목의 신호처럼 비칠 뿐 진여 자신의 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이제 그런 모습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데 익숙해진 진여는 수도꼭지를 돌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양손에 물을 받아 역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통상 얼굴이 붙어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자리를 향해 물을 던지듯이 하여 씻는데 이 같은 동작과 얼굴에 닿는 찬물의 감각이 진여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p. 10)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에 차가운 물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보통 ‘나’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상아의 문으로』에서는 이 당연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울 안에서 ‘진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얼굴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습관적으로 물을 끼얹는다. 얼굴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곳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만이 ‘내’가 있다,라는 것을 감지하게 해준다. 이 소설에서는 이처럼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상황을 “증상”이라고 부른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증상’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잠에서 깬 것도 아닌 상태를 만들면서, 꿈이 “무시로 현실의 급소를 가격”(p. 199)하는 지경으로 몰아간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공간이 됐다기보다는, 그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p. 29) 공간으로서의 도시에서 하나하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거나, 일관된 논리를 생성하는 일 따위는 들어설 수 없다. 고정되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이러한 사태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주에 속해 있었을지 모른다고 받아들임으로써”(p. 32) 서로의 모습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부터 의심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계속해서 읽게 되는 것 역시 하나의 고정된 목표점이나 지향점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기보다는, 거울에조차 비치지 않고 실체도 불분명한 ‘진여’의 눈앞의 사태, 액체처럼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며 순간에 충실한 문장들일 것이다.


일상과 질서가 파괴된 세상 속
비연속적으로 단절된 순간을 만들어내는 문장

볼품없어 보이는 반복이야말로 의외로 유일한 진실일 때가 있지요. 의미는 인식의 기착지가 될지는 몰라도 종착지는 되지 않습니다. 때로 의미가 두드러져 보이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것이 허상임을 알 때 인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미에 있지 않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그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인지 모를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 191)

“규정되지 않는 미래”와 “고착되지 않은 과거”(p. 33) 사이에 수많은 가능성들이 열리기 마련이고, 이 가능성을 품은 채 ‘진여’는 예측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낸다. 어디로 출근하는지 알 수 없지만 늘 그렇듯 출근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타던 대로 열차에 오른다. 분명 어제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학생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놀랄 것은 없다. 과거에 일어난 사태는 오늘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일관된 질서를 생성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능한 이야기일 뿐, 일상도 질서도 파괴된 등장인물 ‘진여’에게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끝내 ‘진여’라는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읽는 일이, 진여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의 실체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일이 바로 뒤 문장에 의해 해체되고, 그다음 문장에 의해 무력화된다. 소설은 계속해서 확실하게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지우며 파편화된 순간의 사태에 몰두한다. 믿어왔던 것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어제와 오늘,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없도록 집요하게 몰아가는 구병모의 문장들을 그저 묵묵히 따라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우리가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책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이 책 밖의 질서가 갖춰진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인 것은 아닐까. 거울 속에 비치지 않는 존재 ‘진여’를 좇아가는 일은 의미를 찾겠다는 일반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앞선 인용했던 문장을 다시 한번 옮겨 적어본다.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요약할 수 없는 글, 그러니까 메시지를 섬멸한, [……] 문장들이다”(조재룡 문학평론가). 지금 읽고 있는 문장만이 그다음 문장을 불러오는 출구 없는 미궁을 헤치며 페이지를 넘길 때 비로소 구병모 작가가 열어 보이는 새로운 독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전화기를 열어 검색창을 띄운다. 환각 증상, 환각 현상, 환각을 봅니다, 환청이 들립니다, 몸이 붕 떠요, 환시, 환촉, 환취, 환미 등을 입력하여 여러 가지 결과를 참고하고 오(誤)기억이나 위(僞)기억은 물론 뮌하우젠 증후군이며 백주몽(白晝夢) 항목도 검토하는데, 그 과정에서 조현병에 대한 설명과 치료 과정에 대한 명료한 안내 및 완곡하고도 간곡한 권유로 이루어진 문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가끔 문학과 영화, 미술 등 예술가적 집착과 광기의 산물들에 관련되어 제시되는 설명도 있는데 화면에 나타난 영화나 명화는 어쩐지 진여가 처음 보는, 그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진여는 자신의 검색어를 잊거나 검색 결과가 나타난 웹 페이지를 해독할 수 없게 된다.
(p. 17)

이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모두가 직접 거둔 호밀로 빵을 굽고 꺼져가는 호롱불 밑에서 베틀로 옷감을 짜던 시대로 귀환하여 최소한의 삶을 살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 같은 분위기는 위기감만으로는 자연스레 형성되거나 정착하지 않으며, 폭력 혁명에 준하는 행위를 동원하여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기꺼이 가난해지고 소박해지자는 집정자들의 강경한 메시지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되돌아가지 않을 거라면 우리는 건강하고 창의적인 삶에 대한 기준을 지금부터 과감히 바꾸는 수밖에 없고, 일련의 현상을 상시 역설수면 상태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한편, 눈앞에 출몰하는 모든 비논리적인 사태들을 일상으로 수용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p. 29)

생과 사를 한 문장 안에 담보한 보통의 인간으로, 살아 있지도 죽어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에 놓이자 진여는 오히려 정신이 명료해지고 이번에는 어떤 오류도 착각도 없이 녹색 선의 H 역에 내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서 몸을 돌린다. 깨어 있거나 꿈을 꾸거나 꿈꾸지 않고 잠들었거나, 또는 그 어느 쪽도 아니면서 그 모든 것을 동시에 구현한 상태로, 죽어 없어진 모습으로 삶을 살기 위하여.
(p. 56)

실제로 치명률이 높은 전염병이 돌 때도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느니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기를 선택하는 환경에서, 고작 꿈을 이유로 휴가를 낸다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칠 뿐이며, 한편 꿈 증상이 경미하여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정받은 이가 고의로 연휴에 붙여서 유급휴가를 내는 사례도 있으니 어느 쪽이든 부작용은 작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 행동이나 불안 요소를 제때 보고하지 않고 자기 관리에 실패한 직원은 과연 다음번 재계약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p. 77)

진여는 누구의 진로도 방해할 뜻이 없었고 누구의 발목도 잡고 싶지 않았으며 매 순간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성실하게 직시한 게 잘못인가 싶은데, 그걸 마주 바라봄 없이 혼자 들여다본들 무슨 소용이냐고, 마주침이나 조율과 교환을 동반하지 않은 일방적인 응시란 자기만족 아니냐고, 그토록 눈이 많은 자의 눈을 한 번이라도 마주해본 적 있느냐고—
(p. 140)

이에 처음에는 구성원들이 증상자에게 각별히 신경 써주고 편의를 봐주는 듯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과 파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일상 영역에서의 배려에 한하며, 간혹 드물게 중요한 평가 고사에 입실하지 못한 증상자에게는 사정이 딱하지만 재시험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p. 149)

목차

상아의 문으로

미주 ‧ 참고 문헌
추천의 말

작가 소개

구병모 지음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중편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詩』,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 『네 이웃의 식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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