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미러

김덕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5월 24일 | ISBN 9788932038605

사양 변형판 134x197 · 298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오늘의 절망은 어디에 하소연할까”

현실과 몽상의 위태로운 역전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 쓰는 존재들

정밀한 문장과 예상을 뒤엎는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김덕희의 두번째 소설집 『사이드미러』(문학과지성사, 2021)가 출간되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첫 소설집 『급소』(문학과지성사, 2017)로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제23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한 뒤 4년 만의 신작이다. 표제작 「사이드미러」를 포함하여 그동안 신중히 고치고 다듬은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가상과 실상의 고리를 능숙하게 연결하여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을 묘사해온 김덕희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객관적 현실감각을 잃지 않으려 분투하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자신이 누군가가 쓰고 있는 유치한 성장기 속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온갖 작위투성이인” 세계를 응시하는 이들을 통해 실재와 허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찰력 있게 묘사한다(「추」). 그러므로 『사이드미러』를 읽는 일은 익숙한 체계와 질서가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붕괴되는 과정을 작가의 치밀한 문체를 따라 감각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고정된 인식의 바깥에서 돌올하는 세계의 이면을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 소설집에 관한 한, 현실이 허구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허구가 현실을 조작하기도 한다는 발상은 더 이상 망상이 아니다. 그것은 그간 몰랐던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이제 임박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중요해진 것처럼 보인다.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를 다시 따져볼 수 있지만 그 결과에 관계없이도 이러한 세계 감각의 연원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은 불가피하다. 강경석(문학평론가)


견고한 믿음이 무너지고 깨지는 순간들

김덕희의 작품 속 인물은 부지불식간에 전혀 다른 세계에 뚝 떨어진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을 둘러싼 배경과 인물들에게서 불현듯 생경한 기척을 느끼고 그것의 원인을 집요하리만치 탐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제외한 이들이 전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구평면설」이 한 예다.

“손님, 지금 지구가 둥글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이, 제가 아무리 택시나 몰고 있다지만 그런 농담에 넘어가려구요. 지구는 평평한 게 맞죠.”
“네?”
나는 아내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읽어보느라 기사의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
“지구는 평평한 거란 말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요.” (pp. 164~65)

술자리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던 친구와 말다툼을 벌인 주인공은 집으로 향하는 도중 택시 기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그거야말로 미친 소리 같다는 투로 주인공에게 핀잔을 준다. “저는 살다 살다 지구가 둥글다는 얘긴 첨 듣습니다. 좀 취하셔서 반대로 말씀하고 있는 게 아닌지 싶네요”(p. 165). 만약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판단력과 이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실재와 허위를 변별하는 기준으로서의 현실감각이 일거에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란은 화자인 ‘나’가 알고 보니 내 몸의 주인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눈부신 날」, 사진을 가공하면 실제 인물의 외양도 함께 변화하는 「모르는 얼굴」, 쓰는 자와 씌어지는 자의 위치가 끊임없이 뒤바뀌는 「추」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김덕희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통해 어떠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없는 사실에서 비로소 발생하는 이야기들

「사이드미러」는 가난한 시인인 ‘나’가 친구에게 불려 나간 술자리에서 저지른 실수로 시작된다. 만취하여 그날 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친구는 수입 승용차의 사이드미러 수리비를 변상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리하여 나는 자존심을 굽히고 출판사의 창고 관리 직원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사이드미러는 파손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친구가 꾸며낸 거짓이었음이 밝혀진다.

벤츠의 사이드미러는 처음부터 멀쩡했다. 앞쪽에서 가격한 바람에 그대로 접혀버려 약간 긁히기만 했을 뿐 파손되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모두가 부서졌다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p. 204)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허위는 두 인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균형을 회복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친구의 농간이 실은 오래전에 내가 그에게 저지른 유사한 잘못에 대한 복수였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균열 상태였던 나와 친구의 관계는 거짓을 경유하여 도리어 봉합되면서 지난한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이드미러』는 허구가 초래하는 혼란과 파국뿐 아니라 그것의 긍정성 또한 짚어내며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無)에서 유(有)가 탄생하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통해 깊이 있는 문학적 서사의 모범을 보여준다.

상진은 자신을 타인으로 경험하는 지금이 어쩌면 생에 단 한 번 올까 말까 한 아주 특별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여태 모르고 살던 것을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은 볕」, p. 271)


■ 책 속으로

만다라.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것들은 형상 이전의 그곳, 영원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눈부신 날」

사내의 언가가 저 혼자의 힘만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종이 하나둘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지금까지 견고했던 물줄기에서도 갈래가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이미 안핵사 자신부터 사내의 언가가 만들어놓은 균열을 감지했다. 틈을 내고 그 틈을 메우는 일이 바로 난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쇄록(瑣錄)」

나는 좋은 일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기어코 불운한 일을 떠올려 감정의 균형을 약한 강도의 우울에 맞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가라앉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벗어나려 애썼다. 시상을 떠올리는 데 좋다고 해서 들인 습관이었다.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이제는 그냥 습관일 뿐이다. 희로애락은 언제나 습관성이고 만성이다.
―「사이드미러」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점점 무서워졌고, 무서워하자 그것은 정말로 무서운 것이 되었다.
―「식은 볕」


■ 작가의 말

소설은 백스페이스키로 쓰는 것이다.
‘소설 쓰기는 파지 내는 일’이라는 선배들의 말을 흉내 내봤다.
술술 써질 때보다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때가 당연히 더 많다. 그럴 땐 그냥 써본 문장과 애써 써낸 문장이 구분되지 않는다. 돌아보니 여기 수록된 여덟 편은 무수히 지워낸 글자들을 깔고 앉아 있다.
「식은 볕」의 초고를 완성한 뒤 갔던 겨울 바다가 기억난다. 해변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면서 낚싯대를 휘둘렀다. 초심자에게 만만한 원투(遠投) 낚시에 갓 빠져든 때라 추운 줄도 몰랐다. 누가 봤더라면 어지간히 미쳐 있는 꾼으로 보였을 걸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도 나는 저 망망한 바다에 자꾸 뭘 던져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21년 5월
김덕희

목차

눈부신 날

모르는 얼굴
쇄록(瑣錄)
지구평면설
사이드미러
새 식구
식은 볕

해설 | 타이핑된 자아 ‧ 강경석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덕희 지음

1979년 출생. 2013년부터 작품 활동을 해왔다.
소설집 『급소』로 제23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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