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21년 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2월 26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8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봄호를 펴내며

서문: 문학을 하는 ‘우리’의 행복을 찾는 일

어떤 ‘장’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그 장을 둘러싼 변화의 양상들을 쉽게 눈치채기 어렵기도 하지만, 전면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직감했을 때 오히려 그것을 모른 척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게 작동하기도 한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이 어렵고 불편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판단이 선 이후에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익숙한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다른 장으로 잠시 몸을 옮겨볼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무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고안해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 변화에 성실히 동참하며 새롭게 변해가는 나를 누려볼 것인가. 누구라도 자신이 정말로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끝끝내 지켜냄으로써 행복해지고자 할 것이다.
‘한국 문학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다’라는 문장들은 정말로 낡디낡은 수사에 가깝기도 하지만, 2015년의 신경숙 표절 사태와 2016년의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 사건으로부터, 작년 초 이상문학상 저작권 침해 사건과 김봉곤의 사적 대화 무단 인용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단은 그간 다양한 국면을 통과해오며 최근 몇 년 사이 말 그대로 전면적인 재편의 과정을 겪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평의 권력이 신랄하게 비판되는 동시에 비평의 효용 또한 의문에 부쳐지는 역설적인 상황들도 이어졌고 , 페미니스트독자들은 오랫동안 공고했던 한국 문학에서의 미학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사이 관계와 기준을 다시 설정하도록 촉구했으며, 다양한 위치에 있는 한국 문학장의 종사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갖는 실질적 의미가 무엇일지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산발적인 논의들은 흥미롭게도 비평의 ‘세대 교체’라는 어찌 보면 익숙한 쟁점으로 최근 새롭게 점화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비평장의 무거운 논쟁들과는 무관하게 전에 없던 혁신적인 방법으로 작가와 독자 들은 몸 가볍게 만나는 중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태들을 겪으며 한 명의 여성 비평가로서 나는 비평의 책임과 보람을 가장 무겁게 느끼기도 했으며, 한편 더없는 환멸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나 최근에는 수많은 말을 경청하는 가운데 복잡한 심경이 되기도 했는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무엇일까,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 말이다. 문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이 바로 저 정직한 질문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가장 정직한 답변들이 지금 의 한국 문학장을 최대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닐 것이며, 간혹 누군가의 정직한 답변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로와 환멸을 안겨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문학이라는 공통의 장에 놓인 우리들은 적어도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학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일보다는 ‘문학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방향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에 『문학과사회』가 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문학과사회』가 시도한 다양한 기획이 그런 노력의 결과였음은 당연하다. 문단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사실상 변하지도 않는 그 구조의 성실한 수행자가 되려는 사람보다는, 스스로가 ‘문학이라는 수행성’을 온전히 실천하고자 하는 주체임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편에 서고 싶다. 떠나려는 자가 아니라 남아 견디려는 자, 되돌리려는 자가 아니라 의미 있는 변화에 동참하려는 자들 곁에, 결국 타인의 행복 없이는 나의 행복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자들 곁에 서고 싶다.
치열하게, 촘촘하게 씌어진 논쟁의 글들 틈에 이러한 소박한 생각들을 적어보는 것이 부끄럽지만, 짧은 지면이 허락하는 한에서 나름의 다짐을 재차 확인할 시간도 필요했다고 변명해보고 싶다. 문학을 통해서 ‘우리’의 행복을 찾는 일이 무엇인지 더 열심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당분간은, 그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란, 이제껏 어디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누릴 수 없었던 자들에 가깝다고 말해보고 싶다. 『문학과사회』와 함께 그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 각자의 자리에서, 더 치열하게, 더 천천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이번 호 하이픈에서는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 열한 명의 작업을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하였다.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히 모호하긴 한데, 최근 2~3년 사이 최소 한 권 이상의 시집을 묶은 시인들 중 앞으로의 작업이 더 궁금해지는 열한 명의 시인을 동인들 사이 오랜 독해와 토의 끝에 추려본 것이다. 강혜빈, 김유림, 문보영, 안태운, 오은경, 이다희, 이설빈, 이소호 , 임솔아, 임지은, 주민현 시인이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는 짧지만 흥미로운 시작 노트를 보내주었고 , 개별 시인들에 대해 박혜진, 김정빈, 홍성희, 김보경, 임지훈, 김영임, 이철주, 선우은실, 전영규, 정기석, 김지윤 평론가가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인론을 작성해주었다. 각 계절마다 주목할 만한 한두 명의 시인 혹은 소설가를 비평적으로 조명해보는 기획이나, 신인들의 신작을 모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다른 문학잡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문학과사회』 이번 호가 특히 『문학과사회 하이픈』이라는 별권 시스템을 활용하여 고정된 코너의 한계 및 지면의 한계에서 벗어나 시인 열한 명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소개하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시인과 함께하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지만, 현재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은 자리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젊은 시인’이라는 호명 자체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겠으나 시인들의 새로운 작업들을 폭넓게 조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로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사실 이번 호의 이러한 기획은 『문학과사회』의 더 큰 계획의 일부일 수 있음을 밝힌다. 이번 호와 유사한 기획을 소설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2020년대 ‘현장의 문학’을 성실히 읽고 ‘미래의 문학’에 대해 천천히 숙고해보자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사실 계절마다 출간되는 종이 잡지 시스템의 한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말 사이로 빠르게 제출되고 빠르게 잊히는 당대의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여간해서는 쉽지 않고 당연히 많은 독자에게 노출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작품은 더 천천히, 더 많이, 더 오래 읽혀야 할 것이라고 다짐해볼 수밖에 없다. 이번 호의 ‘젊은 시인’ 특집은 그러한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쉽지 않은 작업에 기꺼이 동참해주신 스물두 명의 시인 및 평론가 들게 특별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조만간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적극적인 비평적 대화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 문학 현장은 활발하다. 본권의 창작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시절임에도 소중한 작품들 보내주신 김기택, 이수명, 김이듬, 김안, 박연준, 서효인, 심지아, 장미도 , 김선오 시인께 감사드린다. 한정현, 이유리, 구소현, 구병모 소설가께도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지난 계절에도 역시 많은 신간이 쏟아져 나왔다. 지면 관계상 〈리뷰〉 코너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들도 많지만 눈 밝은 독자들은 이미 찾아 읽으셨으리라고 짐작한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출간된 작품들을 꼼꼼히 읽고 흥미로운 리뷰를 보내주신 김수이, 이혜원, 최가은, 강동호 , 김영삼, 서영인, 이소 , 조형래 평론가께도 감사드린다. 『문학과사회』 지면에 연재되었던 정지돈의 장편 『모든 것은 영원했다』에 대해 강동호 평론가가 건네는 비평적 대화의 시도에 대해서도 일독을 권한다. 꾸준한 독자들이라면 『문학과사회』가 그간 리뷰 코너를 통해 여러 방식을 시도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이번 호를 기획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좀더 유용하고 흥미로운 신간 리뷰의 방식이 무엇일지, 현장의 작품들을 더욱 꼼꼼하게 주목할 수 있는 형태는 무엇인지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강동호의 이번 글을 그런 고민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이번 호 〈지성〉 코너에서는 2012년에 출간된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김정아 옮김, 문학동네)라는 번역서로 국내에서 널리 읽혔던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독문학자 이창남의 글을 싣는다. 건축가이자 소설가였으며, 탐정소설과 영화에 탐닉한 사회학자이자 대도시의 저널리스트–산책가였던 그의 다양한 사상적 면모를 요령 있게 소개해주는 글이다. 필자에 따르면 크라카우어가 벤야민이나 아도르노 , 루카치 등 동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독일의 사상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전 세계적인 상황이지만, 최근 들어 그에 대한 연구와 출판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글이, 국내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연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04년 제정된 이후 17회째를 맞는 ‘마해송문학상’은 신현의 『아테나와 아레스』가 수상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독자들에게 전한다. 5월에 열릴 시상식에 앞서 수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미리 건넨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변화가 시작되던 1년 전의 시점에서 썼던 서문에서는, 애정하고 의지했던 한 작가의 절필 소식을 함께 전하며 ‘만연한 불안과 공포 , 그리고 환멸’을 언급했었던 것 같다. 팬데믹 상황이 1년을 넘어가며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 나아가 이러한 불안과 공포와 환멸이라는 감정들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이 더 악화된 불행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예전의 일상을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잃은 것은, 혹은 되찾아야 하는 것은, 과연 이전의 일상뿐일까. 모두가 필사적으로 심신의 건강을 잘 돌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릴 것이 많고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은 대체로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문학 하는 일을, 아니문학을 ‘써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동인 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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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작-시인
강혜빈 나는 왜 이런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삶의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까
박혜진 잃어버리기 위한 시—강혜빈론
김유림 빨간 모자를 잘못 쓰다
김정빈 카드로 만든 모형—김유림론
문보영 도서관은 이렇게 생겼다
홍성희 무릎 닿을 듯 가까이, 멀리에서—문보영론
안태운 21. 1. 28.
김보경 시퀀스를 연습하세요—안태운론
오은경 다시 만난 세계
임지훈 여기 알 수 없는, 내 곁의 무언가—오은경의 『한 사람의 불확실』
이다희 입, 코, 눈
김영임 유쾌하고 아름답고 슬프고—이다희론
이설빈 그가 말하게 내버려둬
이철주 부재가 태어나는 자리—이설빈론
이소호 스포일러
선우은실 보(이)는 자–되기: 전시성(展示性)의 전략—이소호의 『캣콜링』을 읽는 한 방법
임솔아 물음표는 떼어버려도 그만
전영규 최선의 위악과 일말의 희망 사이에서—임솔아론
임지은 반반 시 많이
정기석 가장자리에서 만난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를 때—임지은론
주민현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며 시 쓰기
김지윤 사소한 모든 진심을 위하여—주민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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