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10월 26일 | ISBN 9788932037868

사양 변형판 125x192 · 224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눈치 보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뭐든 참지도 말고. 더 늙기 전에”

엄마 혹은 아내가 아닌 나의 진정한 이름을 찾아서

생의 민낯을 가감 없이 묘사하는 방식으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김이설의 연작소설집 『잃어버린 이름에게』(문학과지성사, 2020)가 출간되었다. 김이설은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젊은작가상,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집 두 권과 경장편소설 네 권을 펴냈다. 네 개의 중단편을 연작으로 묶은 『잃어버린 이름에게』는 두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김이설은 이번 연작소설집에서 중부지방 신도시에서 거주하는 중년 여성들이 느끼는 소외와 상실의 감각을 세밀하게 다룬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사회적 요구를 따른 후 서서히 “낡아가는 몸과 마주”(「우환」)하며 느끼는 좌절과 슬픔을 조망한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이름에게』를 읽는 일은 가정 내 사각지대에서 “행복하고 기뻤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미아」)나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아내이자 엄마의 삶을 고스란히 경험해보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사소하지만 따스한 위로만이 외로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임을 목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이름에게』의 여성들은 각자 고립된 섬이다. 낯선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에 고립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관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바깥의 존재들과 연결되는 법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울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건네는 손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손만이 물길을 낼 수 있다. 작품 속 여성들의 손에서 손으로, 눈에서 눈으로 전달되던 감정을 경험하는 동안 내 손도 몇 번이나 움찔했다. _박혜진(문학평론가)


“회사는 월급이라도 주고, 아이들은 성적표라도 받아 오지.
나는? 누구도 알아줄 리 없었다”

『잃어버린 이름에게』는 중년에 접어든 네 여성의 이야기가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집이다. 그녀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삶의 방향을 잃은 채 멈춰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가족들의 무관심과 신체적 노화로 인한 우울증이다. 「기만한 날들을 위해」의 선혜는 연년생으로 자녀를 낳아 기르고 남편을 위해 23년간 새벽잠을 줄여가며 아침상을 차린 전업주부이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걱정할 필요 없도록” 집안일에 충실하는 것이 “공정한 분담이고, 공평한 관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아들의 입대와 딸의 대학 기숙사 생활로 집에 홀로 남겨지면서 그녀는 이유 모를 허망함에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다. 뒤틀린 일상의 원인을 찾아가던 중 오랫동안 외면해온 남편의 외도라는 사실과 직면한다.

나도 남편을 속이고 싶었다. 남편을 신나게 배신하고 싶었다. 나도 다른 남자를 만나고, 어린 남자애들과 뒹굴면 공평해지는 걸까. 그럼 억울하지 않을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똑같은 인간이 되겠다니. 그렇게 무참한 생각을 하다니, 내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pp. 97~98)

「우환」의 근주 역시 두 아이를 기르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주부이다. 그녀는 자궁경부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을 듣고 조직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딱 3년 전에 내가 그랬잖아” “30년이 넘도록 생리를 했는데 고장 나야 정상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도 근주의 엄마가 자궁경부암을 앓다가 돌아가셨기에 그녀의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근주는 작년부터 이상 신호를 보내는 몸 때문에 자주 울적해졌다. 이렇게 아프게 될 줄, 이런 검사를 하게 될 줄,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나. 나이 든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만 쌓인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낡아가는 몸과 마주하는 일이란 걸, 근주는 근래 들어 절실히 깨달았다. (p. 25)

이렇듯 소설 속 인물들은 중년 여성이 겪기 마련인 가족 내 소외와 육체적 쇠락에 자존감을 잃고 조금씩 무너져간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기분과 상태를 설명하지만 처방되는 약은 감정을 “종이 한 장 자르지 못하는”(「우환」) 칼처럼 무디게 만들 뿐 근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김이설은 오늘날 여성들이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고민과 갈등 속에서 어떤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모두가 엉망이라는 걸
나는 그 젊은 여자에게 속삭여주고 싶었다”

「미아」의 소영은 항우울제로 간신히 일상을 유지하던 중 느닷없이 터져 나온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병원을 찾아간다. “남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맨날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이야기를 의사에게 털어놓고 좀더 강한 약을 처방받지만 “후련한 게 아니라 가슴이 더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소영이 진료실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고 대기실의 한 중년 여성이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 건넨다. 소영은 그 작은 호의에서, 다른 여성이 보내는 “다 알겠다는 눈빛”에서 약물로는 얻지 못하던 위안을 느낀다. “살아 있음은 함께 느끼는 순간, 연결됐다고 느끼는 순간 찾아온다”(문학평론가 박혜진)라는 말처럼 어쩌면 김이설은 여성이 다른 여성과의 연대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는 「경년」의 ‘나’가 중학생 아들과 잠자리를 가진 여자애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는 장면에서 반복된다. 남편이 “어린 것들이 발랑 까져서 밝히기나” 한다며 “빤한 것들 꼭 봐야 알겠느냐고” 쉬쉬하며 외면해버린 이름들을 화자가 애써 찾아내 호명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남성적 시선에 의해 폄하되고 뭉뚱그려져 있던 여성들을 오롯한 개별 실체로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헤픈 것들” “싸가지 없는 년들”이란 수사로 무참하게 지워진 이름들을 현실로 차례차례 불러내는 과정을 통해 ‘나’ 역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고유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이름에게』는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사고에 짓눌려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온 여성들에게 연대를 통한 위로와 성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야기이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에게 건네는 따뜻한 포용과 현실 극복의 의지를 담은 여성 서사이다.

세상의 안녕과 안전을 염려하는 요즘,
당신은 부디 굳건히 건재하시라.
또한
당신만큼은 당신의 이름을 잊지 마시라. _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산통의 끔찍함도 잊힌 지 오래였다. 그러나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떨림이나 처음으로 젖을 물렸을 때의 그 묘한 감정이 아니라 아이를 받은 의사에게 당한 추행이었다.
―「우환」

부끄러움이나 창피함 같은 마음이 있기는 한 걸까. 딸을 키우는 인간이 그따위 영상을 훔쳐보고, 짐승 같은 짓을 하러 다니는 게 과연 가능한 건가. 머릿속에 그 생각만 들어차 있다는 건가.
―「기만한 날들을 위해」

소영과 도현은 아이를 갖지 말자는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부부가 되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아이를 못 가지는 부부가 돼버렸다. 적극적인 어떤 의지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너무 쉽게 소영을 문제적 인간으로 간주했다.
―「미아」

꽂고 다닐 정신 있으면 그런 책임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한다고!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사랑 없는 섹스에 대해 중2짜리 아들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정말 아들아이의 말처럼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이라는 타협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던 탓이었다.
―「경년」


■ 추천글

『잃어버린 이름에게』의 여성들은 각자 고립된 섬이다. 낯선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에 고립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관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바깥의 존재들과 연결되는 법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울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건네는 손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손만이 물길을 낼 수 있다. 작품 속 여성들의 손에서 손으로, 눈에서 눈으로 전달되던 감정을 경험하는 동안 내 손도 몇 번이나 움찔했다. _박혜진(문학평론가)


■ 작가의 말

병리적 인간이었던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소설들을 묶는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변명도 사족으로 남긴다.

나의 영원한 손정혜, 윤규미,
해설을 써주신 박혜진 선생님과
봄날의 벤치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들어준 최지인 님과
세심하게 소설을 읽어준 박선우 님의 이름을
천천히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세상의 안녕과 안전을 염려하는 요즘,
당신은 부디 굳건히 건재하시라.
또한
당신만큼은 당신의 이름을 잊지 마시라.
그랬으면 좋겠다.

내게 잃어버린 이름이었던 김지연에게 이 소설집을 바친다.

2020년 가을
김이설

목차

■ 차례

우환
기만한 날들을 위해
미아
경년

해설 | 네 여자 이야기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이설 지음

1975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열세 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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