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엔도 슈사쿠 지음 | 김승철 엮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6월 26일 | ISBN 9788932036366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60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내어주는 ‘바보로서의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엔도 슈사쿠의 한 편의 동화 같은 소설!

소설 『침묵』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 엔도 슈사쿠의 『바보』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59번으로 출간되었다.

1955년에 『백색인(白い人)』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엔도 슈사쿠는 1996년 세상을 뜰 때까지 작가로서 짧지 않은 생을 사는 동안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현재 일본의 ‘엔도 슈사쿠 학회’는 『엔도 슈사쿠 사전』을 제작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엔도 슈사쿠가 사전의 발간이 요청될 만큼 학계와 사회의 주목을 받는 작가일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사전 한 권이 필요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비단 많은 작품을 남겨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타자의 고뇌와 연대하고 타인의 슬픔에 대해 공감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는 데 많은 독자가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끝없는 연민은 엔도 문학의 가장 중대한 주제인데, 이것은 가톨릭 신앙을 가진 엔도 슈사쿠의 체험과 사상의 궤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서구의 기독교 세계를 일본이라는 정신적 풍토 속에 뿌리내리고자 한 작품을 특히 많이 남겼다.

이번에 출간된 『바보』 역시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신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작가의 문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나 신앙의 물음들을 정면으로 드러지 않고, 이러한 진지한 주제들을 평범한 인물들의 삶 속에서 대중소설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바보』는 ‘순문학’이 아닌 ‘중간문학’이라 불리는 엔도 슈사쿠의 작품들이 탄생하는 신호탄이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바보, 가스통을 만나다

『바보』는 1959년 3월 26일부터 8월 15일까지 『아사히신문』 도쿄판 석간에 연재했던 신문소설이다. 작가는 신문소설의 특성상 우선 독자층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고 중고등학생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나 이 작품은 성별, 직업, 나이와 관계없이 전 연령층에게 감동을 주었고, 특히 주인공 가스통은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앞서 이 작품을 엔도 슈사쿠의 ‘중간문학’이라고 했거니와, 이것은 작가에게 평범한 일본인들의 일상에서 일본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를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일본인으로서 서구 기독교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을 철저히 해부하려는 작업을 뛰어넘어 정말로 실감하는 예수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평범한 일상성 속에서 작용하는 신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이러한 작가의 발상이 결실을 이룬 첫 작품이 『바보』이다.

어느 날 프랑스에서 가스통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의 청년이 일본에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스통은 나폴레옹의 후손이라는 사실로 일본에 도착하기 전 그를 기다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실제로 만나고 나자 볼품없는 용모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버려진 불쌍한 개 한 마리에게도 말을 걸어 친구로 삼는 성정을 가진 가스통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살인 청부업자 엔도를 따라나서게 되고, 엔도의 복수극에 휘말리고 만다. 가스통은 화해와 용서를 호소하다 결국 사건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흉기를 맞고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의 유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고, 그를 찾던 사람들은 그가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으며 싸움와 미움으로 얼룩진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사랑하기 위해 다시 나타나리라고 믿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 세상에서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그리고자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연상시키도 한다. 엔도 슈사쿠 역시 「도스토옙스키와 나」라는 글에서 “나의 이상적 인물을 그린 작품에 『백치』로부터 힌트를 얻은 『바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보』의 원제목 ‘오바카상’은 ‘바보’를 의미하는 일본어 ‘바카’에 존칭어인 ‘오’와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상’을 붙인 것이다. 이 ‘바보’라는 명칭에는 애정과 안쓰러움, 어떤 면으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세상의 작태를 은연중에 비판하는 의미가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작품 안에 줄곧 가스통을 무시했던 도모에가 살인 청부업자 엔도와 함께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떠나는 가스통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그의 본질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도모에가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바보’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일상에 숨어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

『바보』는 종교와 신앙에 무관심한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와 신앙의 본령을 전달하려는 작품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특정 교리를 무모하게 강요함으로써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 익명의 존재로 숨어서 활동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톨릭 소설가로서 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가 보여주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렇게 『바보』는 특정 종교의 신조나 전통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이른바 ‘호교문학’의 틀을 벗어나, 신앙의 현실과 일상적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후자를 비하하려는 경향을 지니기 쉬운 종교인들에게 신앙과 종교의 가능성,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초월적 존재의 가능성을 묻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여기에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작가 특유의 유머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침묵』이나 『예수의 생애』와 같은 무게감 있는 작품으로 엔도 슈사쿠를 기억하는 한국의 독자에게 그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나아가 종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꼭 말[馬]처럼 생겼잖아……’
말이 벌떡 일어서서 이쪽을 향해 걸어왔을 때, 이것이 도모에의 목구멍으로 울컥하면서 올라왔던 말이었다.
그리하여―
어두운 선창의 둥근 창에서 흘러들어 오는 흰색의 광선을 등으로 받으며, 온몸 가득히 기쁨을 드러내면서 다카모리에게 손을 내민 이 남자의 얼굴은 백인인지 동양인인지 모를 정도로 햇빛에 그을렸고, 더욱이 정말 말처럼 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만 긴 것이 아니라 코도 길었다. 그리고 잇몸을 슬쩍 드러내면서 씩 웃을 때 벌리는 큰 입까지…… 정말 말상도 보통 말상이 아니었다.
도모에도 젊은 아가씨인지라 자기 집으로 맞아들이는 프랑스 청년에 대해서 공상이랄까 꿈이라고 할 만한 것을 이것저것 남몰래 그려보곤 했다. 하물며 나폴레옹 황제의 후예라면 샤를 부아예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우아하게 잘생긴 얼굴에, 그러면서도 어딘가 늠름한 매력을 사정없이 발산하는 남자라면 좋겠다고 내심으로 바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랬던 것이 정말 모든 점에서 꽝, 제로, 제로, 제로였다.(54쪽)

그 밝은 햇빛이 내리꽂히는 개 사육장 안에서 거적때기 위에 내버려진 나폴레옹의 시체를 보았을 때―
가스통은 갑자기 엔도의 얼굴을 떠올렸던 것이다.개의 죽음과 살인 청부업자의 영상이 왜 겹쳐졌는지는 그도 잘 몰랐다. 개의 시체를 살인 청부업자가 이제 죽이려 하는 남자로 생각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움직일 줄 모르는 나폴레옹의 눈을 보면서 산야의 비 내리는 길에서 쿨룩거리던 그 불쌍한 청년을 떠올렸던 것일까?
사육장 안에 있던 개들의 울음소리. 머지않아 살해당할 이 동물들의 운명을 엔도도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도 나폴레옹처럼 빳빳한 시체가 되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지 모른다.
가스통은 이러한 기분을 도모에에게 전하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서투른 그의 일본어로는 어려운 일이었다.(240~41쪽)

‘바보가 아니야! ……바보가 아니라고. 저 사람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야.’
처음으로 도모에는 우리 인생에서 바보와 위대한 바보라는 두 가지 말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꾸밈없이 모든 사람을 믿으며, 비록 자기가 속고 배반을 당해도 그 신뢰와 애정의 등불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사람, 그 사람은 요즘 세상에서 바보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발산하는 작은 빛을 사람들의 인생에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비추는 위대한 바보이다. 도모에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254쪽)

목차

■ 차례

1. 나폴레옹의 후손
2. 주인공께서 등장하시다
3. 이 사람은 누구일까?
4. 외로운 사나이
5. 동양의 은자
6. 산야(山谷)의 밥
7. 함정
8. 믿음과 의심
9. 별이여 빛나라
10. 북쪽 지방으로
11. 지도
12. 어두운 늪
13. 백로

옮긴이 해설 · 일상 속의 초월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엔도 슈사쿠 지음

1923년 3월 27일, 도쿄의 스가모(巢鴨)에서 태어났다. 1926년,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전근으로 만주의 다롄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부모의 불화와 이혼이라는 어두운 체험을 하고, 1933년에 어머니와 함께 일본 고베로 돌아온다. 이때에 가톨릭에 귀의한 어머니를 따라서 니시노미야(西宮)에 있는 슈쿠가와(夙川) 가톨릭교회에 출석하게 된 그는 1935년 6월에 세례를 받는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 어머니의 말을 따라 자신의 결단 없이 받았던 세례는, 향후 엔도 문학 전체를 결정짓는 근본 체험이 된다. 게이오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후 1950년부터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현대 프랑스 가톨릭 문학을 전공하던 중 결핵으로 인해 1953년에 귀국한다. 1955년에 『백색인(白い人)』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지만 1960년부터 세 번에 걸친 수술과 입원 생활을 하다가 이후 자택에서 요양한다. 그러다 1962년, 스스로를 코리안 산인(狐狸庵 山人)이라고 명명하고 유머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 1978년 『예수의 생애』로 국제다그함마르셀드상, 1980년 『사무라이』로 노마문예상 등을 받았으며, 특히 『침묵』은 2016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화하여 다시 한뻔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6년 9월 29일,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던 그는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사에 맞닿은 작품 세계와 타자의 고뇌와 연대하고 타인의 슬픔에 대해 공감하려는 자세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김승철 엮음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및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했다. 부산신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긴조학원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난잔대학 인문학부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는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벚꽃과 그리스도: 문학으로 보는 일본 기독교의 계보』 『遠藤周作と探偵小説:痕跡と追跡の文学』, 옮긴 책으로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소리』 『전쟁과 사랑, 사치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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