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Chae Mi Hee

문학과지성 시인선 541

장현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6월 10일 | ISBN 9788932036373

사양 변형판 128x205 · 200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제1회 박상륭상 수상자
장현의 첫 시집

2019년 제1회 박상륭상을 수상한 장현의 시집 『22: Chae Mi Hee』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자체로 충만한 “시적 에너지”와 “단단한 이미지 세공술”을 갖췄다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문학적 아성을 자신만의 창작 기법으로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을 보겠다는 취지에 걸맞은 뜻깊은 수상이다.
시집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씌어진 시편들을 모은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각종 문제들이 가시화되었으며 한국 문학장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한쪽에 문학장 내부에서 기획한 공개 토론의 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장현이 문학장의 경계에서 시 쓰기를 수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록들에 2020년에 씌어진 시편들까지 더해 우리는 이 시집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적나라한 토로와 제언을 엿볼 수 있다. 쩍 갈라진 세계에서 반복해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도 같은 시편들이 가득하다.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

기억해? 그날 기억하냐고
당연히 기억하지
네가 했던 말

이런 세계라면, 이제 그만 무너져도 되지 않을까,
세계 씨

[……]

지붕 있는 집이라면 누구라도 다 읽지 않을까 물이 새고 번개가 치니까 무서워서 뭐라도 읽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 세계가 다 이렇게 쩌억 벌어졌는데 왜 사이렌 들으면 그렇게들 지진 대피 훈련은 잘하지 않았냐
―「비」 부분

어른들은 옆집 사는 젋은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젊은이들은 어른들에게 자신은 인사성을 잃어가는 중이라고 답한다(「선생님께」). “이런 세계라면, 이제 그만 무너져”버리라는 직설적인 언행에서도 엿보이듯 시집 속의 공간은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의아하지 않은 곳이자, 이미 쩍 갈라진 세계이다.

채미희는 사무실에 도착하면
선임자의 컴퓨터 전원을 켠다
아침에 아버지에게서
넌 말라서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갈비뼈가 드러나는 동물은
학대를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뉴스를
읽었는데 그는 갈수록 뉴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채점표」 부분

쩍 갈라진 세계는 무엇보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운동으로 제기된 한국 사회와 한국 문학장의 문제적 현상들과 궤를 같이하며 시적 공간을 장악한다. “넌 말라서 예쁘다”는 말을 듣는 채미희, 화장을 지우는 여자들의 대열 속에서 화장을 지울지 말지 고민하는 채미희, “민낯 쌩얼 성형 미인”이라는 단어들에 둘러싸인 채미희가 시집 곳곳에 산발적으로 흩뿌려져 있다. 장현은 여성적 화자 ‘채미희’를 등장시킴으로써 시인이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체험해온 과정을 그려낸다.
아마도 더 이상 인사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이 갈라진 세계에서 울리는 사이렌을 듣지 못하는 사람 혹은 외면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불균형 속에서 학생 신분의 시적 화자가 세계의 저편에 있는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존경이나 애정 가득한 말이 담길 수 없다. 화자들에게 남은 말은 선생님의 소설을 더 이상 단상 위에서 읽지 말아달라는 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겠다는 말(「선생님께」)뿐이다.


“네가 제일 앞에 쓴 것처럼. 다시 앞으로 가.”
index, 다양한 매체를 참조하는 시 쓰기

기억해? 그날 기억하냐고
당연히 기억하지
네가 했던 말

이런 세계라면, 이제 그만 무너져도 되지 않을까,
세계 씨

[……]

「문학이냐 지식이냐」
사진 찍어 히스토리 업로드 그리고 클라우드 비활성화 함부로 삭제할지 검토하지 마

마치 Pax Americana
마치 한국 문학의 지배에 의한 나의 비명 혹은 나의 기쁨 나의 질문 나의 도망 나의 혐오
―「문학이냐 지식이냐」 부분

위의 시는 앞서 인용한 시 「비」의 본문과 일치한다. 「비」의 전문을 바로 뒤이은 시 「문학이냐 지식이냐」의 도입부로 직접 인용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텍스트 하나를 참조 삼아 다른 시로 변형하는 과정은 이 시집 전체에서 계속되는 작법 중 하나이다. 장현은 자신의 시를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자(정희진)의 논문, 소설가(정지돈)의 소설 일부 등을 직접적으로 시에 인용하거나, 시를 쓰는 데 참조했던 문헌을 밝히면서 시와 참조 문헌이 연동되어 독해되도록 한다.
흥미로운 점은 시인이 웹페이지, 미술 전시, 노래 등 다양한 텍스트를 거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어로 씌어진 시구 중간에 불쑥불쑥 영어 문장을 뒤섞어놓는데 이는 마치 두서없이 다국어가 배열된 웹페이지 화면과 같은 느낌을 선사하면서 종이라는 물질로 전해지는 감각 이상의 것을 전달해낸다. 다양한 매체를 오가는 직간접적 인용들 속에서 장현은 일정한 기준 안에서 움직이기를 거부하고, 그 밖의 것을 상상하는 데 적극적으로 임한다.


■ 시집 속으로

선생님께.
오늘도 학교에 갔습니다. 아직 저는 학교입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선생님은 아시겠죠.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사성을 잃고 있습니다. 참지 못하고 그늘을 찢고 나온 학생들은. 별의 폭발음에도 호들갑 떨지 않으며 피로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며 걷습니다. 발을 절며 따라가는 신입생 그리고 학생들은 길로 들어갑니다. 학교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면 길에서 길로 길에서 오직 길로 이어집니다. 길은 말을 합니다. 제가 또 이상한 것을 듣고 있는가요. 땀을 뻘뻘 흘리는 태양이 묻습니다. 그만 이 지긋지긋한 자전을 멈출까?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여기에 없으셨습니다. 저는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께」 부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면
떠오른다 부웅
꿈속 푸른 바다

아시다시피 바다에는 띄어쓰기가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이힐 뒤축을 구기는 여자도 없다
―「플레어스커트」 부분

사랑이 많은 주인은 어젯밤 미미를 버렸다

미미는 짖었고 주인은 짖는 미미를 창밖으로 던졌다 그 일로 미미는 다리를 절고 주인 없이 혼자 살아간다 주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지 않는다

미미는 요리를 해 밥을 먹는다 속까지 따뜻해지는 계란말이와 호박볶음 양배추볶음을 즐겨 먹는다 눈이 다 녹으면 사람들은 책을 버렸는데 미미는 그 책들을 주워 읽었다 눈을 멈추고 눈을 감고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생각하곤 했다
―「내일의 미미」 부분

새로운 약속을 하자
그것은 가능하다

나는 감염자야
나는 찰칵찰칵 성별이 바뀌어

항문으로 가득 찬 얼굴
나와 키스를 하자
구멍들이 음란하다면
다시 시작하자
―「네 이름」 부분

■ 뒤표지 글(시인의 글)

Eun Joo: You might regret this moment. Keep in mind.

■ 시인의 말

log 2019.
Pattern or patterns
log 2018.
動機–附與
log 2017.
여러분들은 성폭력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모르는 것*입니다

2020년 6월
장현

✽ 정희진, 「젠더 사회와 미투」, 『문학동네』 2018년 여름호, p. 331.

목차

시인의 말

In 2017, 22
선생님께 /바벨 /⊞ /산하 /칠월 /과학탐구 /플레어스커트 /마미손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정확한 자리 /시간

In 2018, 23
내일의 미미 /그날 /시네라리아 /채미희 /분갈이 /네 이름 /누드 크로키 /유리병 /아마존식 종이접기 /비 /문학이냐 지식이냐 /강릉 /채미희 /공기와 꿈 /글을 읽어드립니다 /가능한 주말 /불한당 /구의 중심 /이 거울을 돌리시면 /여름 방학 /행복한 사전 /몰래카메라 /폭염 /이성애 /채점표 /세입자 /카나리아 /케이크 /정차 /작명 /전염 /언니 /624호실 /호두는 몰라도 돼 /Mer /십이월,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 /셋 /악보 /패턴들

index.

작가 소개

장현 지음

시인 장현은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9년 제1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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