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가족

고지마 노부오 지음 | 김상은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6월 5일 | ISBN 9788932036259

사양 · 256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아, 그래서 오늘의 반찬은 단란(團欒)함이다 이거지?”

‘단란한 가정’에 대한 집착이 불러일으킨 걷잡을 수 없는 균열…
1960년대, 혼란에 빠진 일본의 모습을 담은
고지마 노부오의 섬세한 블랙코미디!

일본 현대문학 작가 고지마 노부오의 대표작 『포옹가족』이 대산세계문학총서 158권으로 출간되었다. 고지마 노부오는 3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입문하여 50여 년간 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2편의 희곡과 18편의 수필 및 평론집을 펴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친 작가이다. 그는 일본 현대문학에서 ‘제3의 신인’이라 일컬어지는 세대에 속하는데, ‘제3의 신인’이란 일본에서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 등단하여, 정치와 문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실존주의적 경향을 드러낸 전후파 작가들의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소설적 경향의 작품을 쓴 작가들을 말한다. 1953년에 신초샤에서 『소총』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고지마 노부오는 1970년대 이후부터 이러한 사소설 경향이 두드러진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실존주의적 불안과 블랙 유머가 담긴 작품을 주로 썼다.


작가의 경험과 관찰을 녹여낸, 1960년대 일본

이번에 출간된 『포옹가족』은 1965년 『군상』에 발표된 작품으로,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1963년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약 20년, 일본이 연합군에 의해 통치를 받았던 GHQ 시기가 막을 내린 지 10년이 지나고, 끊임없이 유입되는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며 일본 사회가 변화에 적응하던 시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미와 슌스케는 미국 유학 경험까지 있는 영문학 번역가이자 대학 강사로, 당시의 사회적 변화와 그 한계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고지마 노부오가 이 인물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 격동의 시대를 몸소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1930~1940년대에 대학생과 사회인 시절을 보낸 그는,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징집되어 중국의 정보부대에 파견되었고, 패전 후에는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또한 1957년에는 록펠러 재단의 초청으로 1년 동안 미국에 거주하며 서양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체험했다. 『포옹가족』에 묘사된 일본의 급격한 사회적, 정신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혼란한 상황이 풍자적이고도 섬세하게 표현된 것은 작가의 경험과 관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미와 슌스케는 중류층의 인텔리로서, 평화롭고 풍족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군 청년 조지와의 교류를 계기로 가정에 균열이 생기고 만다. 아내가 그 미군 청년과 정사를 벌이는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크게 동요했지만, 곧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조지에게는 위압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그저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이고, 슌스케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위태로운 부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미와 가족은 도쿄 교외에 2층짜리 서양식 주택을 지어 이사를 간다. 그러나 서양인의 생활 방식을 모방한 그 공간에서 새 출발을 기대했던 그들을 맞이한 현실은 아내의 유방암었다. 이후 아내의 투병과 죽음, 딸 노리코의 독립 선언, 슌스케의 재혼 실패, 아들 료이치의 가출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미와 집안은 철저하게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아내의 불륜이 발단이 되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 붕괴된다는 설정은 이 작품을 자칫 흔한 치정소설로 오해하게 할 수 있지만, 고지마 노부오는 1960년대 서구화와 기존 관습의 차이로 혼란에 빠진 일본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포옹가족』을 통속적인 구도에 빠지지 않게 했다. 아내 도키코의 불륜은 가정의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소설의 흐름은 미와 집안의 뒤틀림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 소설은 외도를 저지른 아내를 처벌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구화가 야기하는 혼란을 그리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 가족의 고군분투를 담아낸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물질적 수단에 의존하여 얻는 쾌락이 얼마나 공허한지 슌스케는 아내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또한 아내가 가사를 수행하고 육아를 전담하는 일꾼이 아닌 자신과 동등한 위치의 반려자였음도 그제야 알게 된다.


‘가족’이라는 불편한 진실

『포옹가족』이 드러내는 가족의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인물들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해와 오해가 계속해서 겹치면서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는다. 고지마 노부오의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는 이러한 불편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러한 불편함 속에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그러나 결코 외면하고 놓아버리지도 못하는 관계. 흑과 백으로 명백하게 나눌 수 없는 감정이 가족 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와 가족의 이야기가 조금 과장되어 보여도, 동시에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나 다시 출간한 책의 ‘작가의 말’에서 고지마 노부오는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이 『포옹가족』 역시 읽을 때마다 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면 그 작품은 만들어진 시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동시에 그 작품을 둘러싸고 있던 잡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간도 작품을 자유롭게 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1960년대 일본의 가족을 2020년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것은 그래서 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휘몰아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엇나간 선택으로 몰락해가는 미와 가문의 모습을 냉정하고도 코믹하게 그려내는 『포옹가족』. 기존의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서 벗어난 미와 슌스케와 그의 아내 미와 도키코의 모습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외국 문화 속에서 갈등하고 혼란을 겪는 1960년대 일본의 모습은 지금 여기, 우리의 가족은 무사한지 되돌아보게 한다. 정서적 교류의 결핍, 자기모순에 둘러싸인 소통의 부재, 그리고 갈등. 여전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관습과 정신은 이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포옹가족』의 미와 가족 속에서 길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그때 슌스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남자를 집에 데려온 거, 내가 당신을 외국에 데려가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뭐? 당신이 나를? 아, 그 얘기였어?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정말로 그래서였을지도 몰라. 아, 힘들어. 난 정말이지 당신이 힘들어. 매사에 그런 식으로 생각하더라.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로 그런 것 같잖아. 아…… 당신이랑 함께 있기만 하면 내가 평소에는 생각도 안 해본 것들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져.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라’ 하고 명령한 것 같아. ‘저 남자를 집 안으로 끌고 와라’라고 말한 것도 당신일 거야. 틀림없어.”

“난 잘 알지도 못했어. 그리고 그걸 막을 여유도 없었단 말이야.”

“아니, 그렇지 않아. 당신이랑 함께 있으면 꼭 그렇게 명령받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 똑같은 거야.” _p.37

미치요 덕분에 내 집이 여기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종종 슌스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정부가 없어지면서 생긴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과 아내가 괴물처럼 느껴질 때 이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몸이 온통 바늘로 뒤덮여 있어서, 그것으로 서로를 찔러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바늘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슌스케는 자신이 늙은 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도키코한테서도 어딘지 모르게 추하고도 혼탁한 기운이 풍겨와서 그녀의 노쇠를 감지할 수 있었다. 도키코는 아침에 간신히 일어난 뒤에도 침상에 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곤 했다. 슌스케는 우뚝 선 나무처럼 버티면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도키코는 손을 내저으며 “저리 가!”라고 사납게 외쳤다. 그럼에도 슌스케가 그 자리에 끝끝내 버티고 있었던 것은 첫번째로 아내를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아내가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지금처럼 가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주부로서 가사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는 주저앉아 있는 도키코에 대한 걱정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그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자, 때마침 도키코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한숨을 푹 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저 행동은 나를 놀리는 건가? 만약 놀리는 거라면, 도대체 뭘 놀리려고 하는 거지? 오늘도 불안한 하루가 시작된다면, 나는 지금부터 뭘 해야 하나? 우리 집에 정상적인 일상이 돌아오려면, 멍청해 보이는 짓이더라도 해야만 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슌스케는 아내를 지켜보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당시에 그는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울분을 품고 있었다. 한편 도키코는 불쾌한 일을 겪더라도, 남편과 거리를 두고 있는 한 대체로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 _pp. 63~64

목차

포옹가족

작가의 말
옮긴이 해설 · 서구와 일본 사이에 놓인, 어떤 가족의 몸부림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고지마 노부오 지음

1915년 일본의 기후현 아나바군 카노초에서 3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1938년 도쿄국제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1941년 대학을 졸업한 후 사립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이듬해에 징집되어 중국 동북부 지방으로 파병됐다. 당시 베이징의 연경대학의 정보부대에서 복무했던 체험은 소설 「연경대학부대(燕京大学部隊)」, 「소총(小銃)」 등에 담겨 있다. 패전 후에는 기후사범학교, 치바현립사하라여학교 등에서 교사 생활을 이어갔으며, 1952년에 문예지 『신초(新潮)』에 「소총(小銃)」을 발표하고 이듬해 신초샤를 통해 출판하였다. 1954년에『문학계』에 게재한 중편 「아메리칸 스쿨(アメリカン・スクール)」로 제32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초기에 실존주의적 불안과 블랙유머가 드러나는 소설을 써온 그는 1970년대 이후 자기 자신이나 친구 등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직접 겪은 사건을 다루는 사소설 계열의 작품을 집필했다.

2006년 10월 26일, 향년 91세에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2편의 희곡과 18편의 수필 및 평론집을 펴내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가 태어난 기후현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고지마 노부오 문학상’을 제정했다.

김상은 옮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일번역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유관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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