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나이

E.T.A. 호프만 지음 | 김현성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5월 8일 | ISBN 9788932036281

사양 변형판 120x188 · 259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모든 것, 삶 전체가 그에게는 꿈과 예감이 되었다”

현실 속 환상, 환상 속 현실의 세계를 그려낸
꿈과 환상의 작가 E.T.A. 호프만의 대표 단편선!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T.A. 호프만의 소설집 『모래 사나이』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현실의 시공간을 신비와 몽상으로 가득 채우고, 환상이 현실이 되는 삶을 꿈꾸는 인물들을 그려낸 호프만은 “꿈과 환상의 작가”로 불리며, 도스토옙스키, 고골, 보들레르, 발자크, 포 등의 대문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바그너와 차이콥스키 등의 작곡가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모래 사나이』는 그런 그의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세 편(「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을 선별해 묶은 책으로,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계몽주의의 밝은 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의식적으로 간과되는 심리 현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작가 호프만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밤에는 화가, 작곡가, 작가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예술은 범속함을 신성함으로 바꿀 수 있고 황량한 삶을 아름다운 시로 만들 수 있지만, 예술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에서 혼란과 분열을 겪게 된다. 따라서 호프만의 작품은 대개 그러한 예술가의 운명을 그린 예술가 소설이며 운명비극이다.


꿈, 환상, 예감, 비밀, 광기……
이성의 밝은 빛 저편에 있는 어두운 심연을 살피는 날카로운 시선

이 책의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는 호프만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편으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원작 소설이자 프로이트의 유명한 분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모래 사나이’는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작품 속 주인공 ‘나타나엘’은 어린 시절 유모에게서 모래 사나이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 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서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 먹는단다.” (12~13쪽)

이후 나타나엘은 아버지의 작업실에 찾아오는 변호사 ‘코펠리우스’를 모래 사나이라 믿으며,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모래 사나이에 대한 공포는 성인이 된 뒤에도 ‘눈’이나 코펠리우스를 연상케 하는 사건을 겪을 때마다 생생히 되살아나며, 종국에는 나타나엘을 광기로 몰고 간다. 광기는 공포와 함께 호프만이 일생에 걸쳐 깊이 천착한 주제다. 평생 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 그는 “광기에 대해 광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두번째 작품 「적막한 집」은 「모래 사나이」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유년기의 체험에서 유발된 공포가 광적인 상상으로 인해 주인공의 강박관념이 되고, 이탈리아 상인에게서 구입한 시각 기구인 거울이 환상과 마성의 도구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에 이끌려 이성을 잃게 되는 등 「모래 사나이」에서처럼 고립되고 확대된 시선이 마성과 결합하여 주인공인 ‘테오도어’를 광기로 끌고 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모래 사나이」와의 주된 차이점은, 나타나엘은 광기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 반면에 테오도어는 치유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력과 의사의 충고로 강박관념을 몰아내고, 마침내 영혼의 안정을 찾은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세번째 작품 「장자 상속」은 호프만 자신의 현실이 많이 투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호프만과 마찬가지로 법관이면서 시인, 음악가인 소설의 주인공은 변호사로 일하는 작은할아버지를 따라 로시텐 성을 방문하고 이곳에서 기이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과장된 사랑의 열정, 비밀스러운 살인, 유령의 등장, 우연, 다양한 사건 고리, 가문에 내려진 저주 등은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다. 그러나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알 수 없는 어두운 힘이 운명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시기, 교만, 증오, 복수심, 물욕, 권력욕 등 인간의 성격과 행동이 불행을 초래한다. 음울하고 통속적인 공포 소설의 소재에 비밀스러운 암시와 작은 예시 기법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며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놓는 이 소설은, 정확한 성격 묘사와 정밀한 묘사 기법으로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로 꼽힌다.


■ 책 속으로

친애하는 독자여! 다른 모든 것을 몰아내고 그대의 마음, 감각,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는 무언가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그럴 때 그대 안에 끓어넘치는 열정은 불이 붙어 피가 솟구치고 그대의 뺨은 붉게 물들어, 그대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허공에서 붙잡으려는 듯이 기이하며, 그대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슬픈 한숨만 지을 것이다. 그때 친구들은 그대에게 물을 것이다.
“왜 그래, 이 친구야. 무슨 일이야?”
그러면 그대는 온갖 불타는 색채와 빛과 그림자로 휩싸인 내면의 형상을 말하려고, 적어도 시작이라도 하려고,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곧 첫마디로 그 모든 경이롭고 비범하고 놀랍고 재미있고 무서운 일을 단 한 번의 전기 충격처럼 적절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도 그대에게는 색깔이 없고 얼어붙고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리라. 그대는 찾고 또 찾지만 아무리 중얼거리고 더듬거려도 냉정한 친구들의 질문만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처럼 그대 안으로 파고들어 그대의 열정을 식히리라. 그러나 그대는 용감한 화가처럼 처음에는 몇 개의 대담한 선으로 그림의 윤곽을 그리고 그다음엔 좀더 쉽게 점점 빛나는 색깔을 칠하다 보면, 살아 있는 다양한 형상들의 혼란이 그대의 친구들을 사로잡게 되고 그들은 그대의 정서에서 나온 그림 한가운데에 그들 자신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30~31쪽)

그때 나타나엘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눈알 두 개를 보았다. 그것은 나타나엘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스팔란차니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것을 움켜잡아 나타나엘을 향해 던졌다. 눈알은 나타나엘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 순간 불타는 발톱처럼 그를 사로잡은 광기가 내면에 파고들어 그의 이성과 사고력을 갈기갈기 찢었다.
“휘, 휘, 휘! 불의 동그라미여, 불의 동그라미여! 돌아라. 불의 동그라미여, 신나게, 신나게! 나무 인형이여. 휘, 아름다운 나무 인형이여, 춤추어라!” (61쪽)

“도대체 일상적인 삶이라는 게 뭐지? 아, 코가 사방에 부딪히는 좁은 원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인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의 규칙적인 걸음에서 도약을 시도하려고 들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예지능력을 매우 탁월하게 갖고 있는 듯한 어떤 사람을 알고 있어.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걸음걸이나 옷차림새, 목소리, 시선에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찾으면 그들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고, 고려할 가치도 없고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정반대되는 일들을 종합해서 아무도 생각지 않는 연관성을 상상해내곤 하지.” (72~73쪽)

어느 날 거울이 흐린 것 같아 닦으려고 거울에 입김을 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맥박이 멈추고 황홀한 전율로 온몸이 떨렸지! 그래, 내 입김이 거울에 닿자 푸르스름한 안개 속에서 가슴을 에는 듯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을 때 엄습한 그 느낌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94~95쪽)

“…… 때로는 사악한 악마까지도 즐거워할 만큼 기쁘고 유쾌한 순간에도 남작은 그의 삶을 파괴하고 내게도 해를 끼칠 어떤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해요. 사람들은 장자 상속법을 만든 선조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어대죠. 난 이 성안에 숨겨져 있는 가족의 어두운 비밀이 무서운 유령처럼 소유자를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짧은 기간 동안 난폭하고 떠들썩한 소란 속에서 지내는 것만이 가능할 뿐임을 잘 알아요. 그러나 난! 이 소란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지! 모든 벽에서 스며 나오는 기이함이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170~171쪽)


■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소개

 


문지 스펙트럼

문지 스펙트럼은 빛의 파장처럼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펼쳐드립니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작지만 확실한 고전

다채로운 세계 문학과 사상의 향연,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2차분 다섯 권출간!

2020년 5월,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2차분 다섯 권이 독자들 곁을 찾아온다.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1996년 황순원의 『별』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모두 101권의 책을 펴내며 시대와 영역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 보였다. 2018년 11월 5일, 오래도록 독자들 곁을 지키며 사랑받은 책, 현재에도 유의미하며 앞으로도 계속 읽힐 책들을 엄선하여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1차분 다섯 권을 독자들 앞에 선보인 바 있다. 세심한 개정 작업을 거쳐 모던하고 세련된 장정으로 새롭게 태어난 <문지 스펙트럼> 목록은 2차분 다섯 권의 출간으로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앞으로도 계속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다양한 빛깔과 무늬로 우리 삶과 사회의 면면을 비출 것을 약속드린다.

-2차분-
“사랑이 당신들을 망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첫사랑』
“베른하르트의 세계는 한번 접하고 나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원작 소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
꿈과 환상의 작가 호프만의 대표작!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젊은 날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와 광기의 기록!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실비/오렐리아』

-1차분-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 없는 세대』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목차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가 소개

E.T.A. 호프만 지음

1776년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등을 거쳐 폴란드 지방에서 법관으로 일했다. 1806년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관직을 잃은 호프만은 음악에 몰두하여 밤베르크와 드레스덴에서 지휘자, 비평가, 음악 감독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 오페라 「운디네」 등을 작곡하여 음악가로서의 평판도 쌓았다. 1814년 다시 관직에 나선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밤에는 화가, 작곡가, 작가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1814년 단편들을 모은 『칼로풍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822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놀랄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악마의 묘약』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소설집 『세라피온 형제들』 『브람빌라 공주』 『벼룩 대왕』 등이 있다. 환상적이고 독특한 호프만의 상상력은 도스토옙스키, 고골, 보들레르, 발자크, 포 등의 대문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바그너와 차이콥스키 등 작곡가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김현성 옮김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 대학에서 수학했다. 옮긴 책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페터 퓌츠의 『페터 한트케론』,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어슐러 구디너프의 『자연의 신성한 깊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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