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노벨레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 백종유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5월 8일 | ISBN 9788932036274

사양 변형판 120x188 · 170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감추어진 욕망, 거의 예상치 못했던 욕망,
가장 명징하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한가운데에 있어도
위험천만한 돌개바람에 휘말릴 수 있는 눈먼 욕망”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원작 소설이자
아르투어 슈니츨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

안정되고 단란한 부부의 무의식에 잠재된 에로스적 욕망을 그린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대표작 『꿈의 노벨레』(백종유 옮김)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슈니츨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꿈의 노벨레』에는 세기 전환기 빈에서 이상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안정된 직장, 행복한 가정, 시민사회의 규범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남편은 현실에서, 아내는 꿈속에서 내면적 욕구를 자극하는 에로스의 모험을 겪는다.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히스테리와 최면 등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를 다루는 정신의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러한 관심은 그의 문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적 독백’과 같은 혁신적인 서사 기법을 통해 인간의 은밀한 내면과 무의식을 여과 없이 이끌어내며, 프로이트로부터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작가로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얻기도 하지만 도박과 낭비로 수차례 어려움을 자초했고, 젊은 시절의 여성 편력은 카사노바의 환락과 모험을 옮겨놓은 듯했다. 슈니츨러는 14세 때부터 죽는 날까지, 처음 3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정신과 의사가 병든 영혼을 대하듯 자신의 내면을 기록했다. 이렇듯 슈니츨러 문학은 자신의 체험과 내면을 생체 해부하듯이 관찰하고 진단해낸 결과이고, 이를 통해 그가 말하는 메시지는 모든 양상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한 자루의 칼”
에로스적 충동과 결혼 제도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주인공인 남편 ‘프리돌린’은 “유능하면서도 성실하고 전도양양한 의사”로서 “최고의 남편감”이며, 그의 아내 ‘알베르티네’는 “천사와 같은 눈빛에 가정주부의 자태와 모성”이 흘러넘친다. 남편은 보다 안락한 삶을 위해 온종일 진료에 매달리고, 남편 못지않게 아내도 집안일로 쉴 틈이 없다. 부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남편의 안정된 직장과 아내의 헌신이 그 전제다.
소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화책을 읽는 총명한 딸아이,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는 부모의 손길, 남편과 아내가 주고받는 부드러운 미소, 붉은 등불은 행복한 가정의 상징이다. 아이가 잠든 후, 부부는 지난밤 가면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잡담을 나누다가 점점 더 진지한 대화로 빠져든다. “감추어진 욕망, 거의 예상치 못했던 욕망, 가장 명징하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한가운데에 있어도 위험천만한 돌개바람에 휘말릴 수 있는 눈먼 욕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의 대화는 비밀스러운 영역에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남편은 현실에서, 아내는 꿈속에서 에로스의 모험에 몸을 던진다.
『꿈의 노벨레』에는 부부가 겪는 에로스의 체험이 대칭적으로 나타난다. 남편의 경우 에로스적 체험이 공공연한 현실 세계의 것인 데 반해, 아내의 경우에는 그것이 내면의 의식 또는 꿈의 세계라는 점이 흥미롭다. 덴마크 해변의 휴양지에서 프리돌린은 우연히 마주친 나체의 소녀를 향해 손을 내밀지만, 알베르티네는 젊은 장교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없고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그에게 접근할 수 있다. 알베르티네의 꿈속에서, 사회적 동반자로서의 남편과 성적인 파트너로서의 남자는 완전히 분리되어 별개의 인물로 나타난다. 그녀의 꿈에 등장하는 프리돌린은 마땅히 성실한 남편의 책무를 다해야 하고 그 결과는 죽음이다. 남편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는 동안 뭇 남성들과의 에로스를 즐기던 알베르티네는, 프리돌린이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할 수 있는 한, 날카롭고 큰 소리로” 비웃음을 보낼 뿐이다. 프리돌린도 비밀리에 열린 에로스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하지만, 그 모험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분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정체 모를 여인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프리돌린을 구하는데, 그 여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프리돌린은 그녀에게서 알베르티네의 얼굴을 무의식중에 떠올리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에로스의 파티에 참석한 여인과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여인은 분리될 수 없는 한 사람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건강한 남녀 공동체에서 에로스적 충동과 사회적 책임 의식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규범적인 결혼 제도가 이를 가르는 “한 자루의 칼”이 되면, 결혼에 의한 부부 관계는 서로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길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이 작품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말미에서 아침이 밝도록 남편의 모험 이야기를 듣던 아내는 “이제 우리는 정말 깨어났군. 앞으로 한동안은”이라고 말하며 남편을 깊이 끌어안는다. 그러나 뒤이은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 부부란 에로스적 욕망과 사회적 책임 의식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관계인 것이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안정된 직장, 행복한 가정, 규범적인 생활 등은 세기 전환기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가정’의 단면도였다. 그러나 작품에 반영된 이상적 가치는 많은 부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결혼 생활, 나아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전반에 대한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다.


■ 책 속으로

“우린 분명 눈길이 마주쳤었지. 그 남잔 미소를 짓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표정이 어두워진 것처럼 보였는데, 내 표정도 분명 비슷했을 거야. 내 마음이 그렇게 흔들린 건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난 꿈속을 헤매며 온종일 해변에 누워 있었지. 그 남자가 날 불러준다면 난 뿌리칠 수 없었을 거야. 그 당시 내 생각으론 확실했어. 모든 걸 다 각오하고 있었지. 당신, 아이, 나의 미래, 모두 내던질 생각이었으니까,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거나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동시에 말이야. 당신이 이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당신은 내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했어. 바로 그날 오후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당신도 분명 기억할 거야. 우린, 운명을 따라야 한다는 듯이 온갖 잡다한 일들을 정말 두서없이 주절거렸어. 우리가 함께할 미래,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도.” (12~13쪽)

“우리는 아마 10초 동안 입을 반쯤 벌린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어. 엉겁결에 난 그녀에게 손을 뻗었지, 그녀의 눈에서 헌신과 환희의 빛을 읽을 수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아이는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하더니 팔 하나를 벽에서 떼어내 손짓으로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했어. 그리고 내가 뜸을 들이며 곧바로 움직일 생각을 않자, 그녀의 어린애 같은 두 눈에 몸을 돌릴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한 부탁과 애원의 빛이 어리는 것이었어. 난 가능한 한 재빨리 내 길을 계속 갔어.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 그러나 그건 말이야, 그녀를 배려해서도 아니고 그녀의 명령에 순종해서도 아니야. 그렇다고 무슨 기사도 정신에서 그랬던 것도 아니야. 그 이유는 단지, 그 아이의 마지막 눈빛에서 내가 여태껏 체험한 그 모든 걸 뛰어넘는 흔들림을 느꼈기 때문에 난 민절해서 쓰러질 뻔했어.” (16~17쪽)

그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섰다. 그리고 특별히 서두르지 않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우선 집으로 전화를 해서 자신에게 넘겨진 환자가 있는지, 우편물이 왔는지, 그 밖에 무슨 새로운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녀가 채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알베르티네가 직접 전화를 받아 프리돌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하녀가 이미 말한 것을 모두 반복하더니 천연덕스럽게 자신은 조금 전에 일어났고, 아이와 함께 이제 막 아침 식사를 하려던 참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아빠가 뽀뽀하더라고 전해줘.” 이어서 프리돌린은 “맛있게 먹어”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를 기쁘게 해주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는 원래 알베르티네에게 오늘 오전에 무엇을 할 생각인지도 물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지금 자신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외면적인 생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그녀와의 관계는 이미 끝나지 않았던가. (117쪽)

인적이 끊긴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그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스물네 시간 전과 마찬가지로 진찰실에서 옷을 벗고, 몇 분이 지나서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고 부부 침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알베르티네의 편안하고 고른 숨소리가 들렸고, 포근한 베개 위에는 그녀의 머리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 애정의 감정, 아늑하고 포근한 감정…… 자신이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런 감정들이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 치밀어 올랐다. (155쪽)

그는 그녀 곁에 몸을 길게 뻗고 누워 그녀 얼굴 위로 몸을 숙이고, 미동도 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해맑고 커다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눈동자 위로 이제 막 솟구쳐 오르는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의혹에 빠져 주저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가득 안고 그녀에게 물었다.
“알베르티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리의 운명에 감사해야겠지, 그 모든 모험으로부터 우린 무사히 빠져나왔잖아. 현실에서의 모험 그리고 꿈속에서의 모험, 이 두 가지에서 모두.” (157~158쪽)


■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소개

 


문지 스펙트럼

문지 스펙트럼은 빛의 파장처럼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펼쳐드립니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작지만 확실한 고전

다채로운 세계 문학과 사상의 향연,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2차분 다섯 권출간!

2020년 5월,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2차분 다섯 권이 독자들 곁을 찾아온다.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1996년 황순원의 『별』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모두 101권의 책을 펴내며 시대와 영역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 보였다. 2018년 11월 5일, 오래도록 독자들 곁을 지키며 사랑받은 책, 현재에도 유의미하며 앞으로도 계속 읽힐 책들을 엄선하여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1차분 다섯 권을 독자들 앞에 선보인 바 있다. 세심한 개정 작업을 거쳐 모던하고 세련된 장정으로 새롭게 태어난 <문지 스펙트럼> 목록은 2차분 다섯 권의 출간으로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앞으로도 계속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다양한 빛깔과 무늬로 우리 삶과 사회의 면면을 비출 것을 약속드린다.

-2차분-
“사랑이 당신들을 망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첫사랑』
“베른하르트의 세계는 한번 접하고 나면 도저히 피할 수 없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원작 소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
꿈과 환상의 작가 호프만의 대표작!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젊은 날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와 광기의 기록!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실비/오렐리아』

-1차분-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 없는 세대』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목차

꿈의 노벨레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가 소개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1862년 오스트리아 빈의 상류사회에서 태어나 몇 번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평생 빈을 떠나지 않았다.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병원까지 개업했으나 결국 의사의 길을 버리고 생의 대부분을 작가로 활동했다. 수련의 시절부터 히스테리와 최면 등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를 다루는 정신의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러한 관심은 그의 문학에서도 드러난다. 슈니츨러는 ‘내적 독백’과 같은 혁신적인 서사 기법을 통해 인간의 은밀한 내면과 무의식을 여과 없이 이끌어낸다. 작가로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얻기도 하지만 도박과 낭비로 수차례 어려움을 자초했고, 젊은 시절의 여성 편력은 카사노바의 환락과 모험을 옮겨놓은 듯했다. 실존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낯선 또는 병적인 그의 삶은 14세 때부터 죽는 날까지, 처음 3년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에 담겨 있다. 주요 작품으로 오늘날 독일어권 어문 교육의 필독서인 『꿈의 노벨레』 『엘제 아씨』 『구스틀 소위』 외에도 『카사노바의 귀향』 『회색빛 아침의 유희』 등 소설 60여 편과 희곡 30여 편, 작품 노트, 잠언록, 자서전, 일기 등을 남겼다. 바우어른펠트 문학상, 그릴파르처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1931년 10월 빈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백종유 옮김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에서 「슈니츨러 소설에서의 공간 기능」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 서강대, 숙명여대에서 강의했다. 옮긴 책으로 『나는 누구인가』 『미래를 읽는 8가지 조건』 『엘제 아씨』 『블랙아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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