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29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2월 28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37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봄호를 펴내며

우리가 남아서 해야 할 일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의 흥분으로 시작된 2020년 겨울, 한국 문학 독자를 가장 슬프게 한 소식은 ‘이상문학상’ 사태로 불거진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 조건으로 작품의 저작권을 문학사상사에 3년간 양도한다는 계약 조항에 문제를 제기하며 올 초 김금희 작가가 우수상 수상을 거부했고, 작년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은 이와 관련하여 고통스러운 심경을 표명하며 절필을 선언했다. 혹자는 절필이란 그냥 조용히 하는 것이라며 다분히 악의에 찬 비아냥조의 반응을 내놓기도 했지만, 윤이형 작가의 절필 소식이 독자는 물론 동료 문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것이 다름 아닌 ‘선언’의 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자체에 있다. 전업 작가가 절필을 선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단순히 작업에 관한 개인적 피로도나 보람의 유무로 선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저는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할 수 없습니다. 일하지 않는 것이 제 작품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그만둡니다”*라는 단호한 네 문장을 이어 쓰게 되기까지, 그간 그녀가 한국 문학계에서 겪었을 수만 갈래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헤아리는 일은 아득하지만,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할 것도 아니긴 하다.
적은 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굉장히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국 문단의 현실, 자신의 노동으로 이루어낸 성취에 대해서조차 문단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상황, 그리고 이러한 사태들이 “절대 투명하게 해결될 리 없다”(같은 글)는 완벽한 절망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지난 몇 년간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러한 사정들을 충분히 체감한 바 있다. 윤이형의 절필 선언은 그러므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겠다는 단순한 ‘개인적 결심’이기보다는, 이처럼 부조리한 문학계의 환경을 용인하지 말자는 ‘사회적 선언’으로 의미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운동 이후 줄곧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작가’라고 명명하며 작품을 통해 섬세한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 소중한 작가 한 명을 한국 문단은 불행히도 잃게 된 셈이다.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한국 문단에 던진 질문들은 다양하다.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부조리한 관행들이 불거져 나오는 가운데 한국 문단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권위가 작동하는 방식들이 질문되고 있다.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혹은 ‘생업으로서의 글쓰기’의 불가능을 점검하며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작업들도 이어지고 있다. 주로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트위터에서 전개된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 해시태그운동과 관련해서는 작가들의 ‘자기 검열’이나 작가들 사이 보이지 않는 위계에 관한 다소 민감한 지점들이 이야기되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고민거리들이 주어진 가운데 한국 문단에 관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구성원 개인에게 고통과 환멸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집단이 그 자신의 전통과 영예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구성원에게 보람보다는 수치를, 성취감보다는 절망감을 더 많이 안겨주는 집단이 그 자신의 관행을 유지할 명분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반복되는 수치와 절망과 고통과 환멸은 왜 항상 특정 사람들의 몫이어야만 할까. 변화해야 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질문이 여기까지에 이르면 한국 문단의 여러 문제들은 일시적인 해결로 봉합될 수 없다는 판단이 더욱 확실해진다. 한국 문단은 이제 반복되는 반성과 뼈아픈 각성을 넘어 변화된 행동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비평가, 소설가, 시인, 편집자가 모여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 문단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해보는 이번 호 기획 좌담 「우리에게 더 많은 미래를」에서 독자들은 여러 구체적인 대안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정권자를 향해 책임을 요구하는 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동시에 서로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질문”**해야 한다는 장은정의 최근 발언도 특별히 새겨들을 만하다. 이번 호의 좌담에서 천희란 작가가 말했듯, “자꾸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쌓이면 변화도 가져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도 새삼 중요해 보인다. 다소 불편한 것일지라도 한국 문단을 향한 크고 작은 질문들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질문과 토론을 지속하는 일과 더불어,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변화를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을 내딛는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구조로부터 찾을 수 있겠지만 그 해결은 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한국 문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문학과사회』는 이러한 원론적인 다짐을 구체화할 방안들을 모색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해본다.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면 서서히라도 변화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윤이형 작가를 비롯하여 그간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낸 자리에 우리가 남아 해야 할 일이란, 피로한 그들을 설득하여 환멸의 자리로 다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한 환경을 기필코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는 일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2020년대를 시작하는 현재,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장들을 ‘사회적인 것’이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는 ‘공동체’ ‘불평등’ ‘젠더’ ‘세대’ ‘재현’ 등의 키워드로 점검해보는 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의 기획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각자가 속한 공동체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투신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도록 돕는다.
김보명의 글은 ‘사회적인 것’이라는 관점에서 최근 리부트된 페미니즘의 의의를 짚고 있다. “페미니즘의 존재와 힘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실천의 의제와 장소 들 또한 다양하게 변주되고 확장되면서 성적 시민권sexual/gender citizenship의 정치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정확한 진단 아래, 지금의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것’의 공백을 드러내고 또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장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디어를 통한 ‘참여문화’를 점검하는 김수아의 글이 “참여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면은 최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정치·문화적 현상들을 살피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빅데이터의 통계 속으로 사라져 오히려 비가시화되는 개인들 간의 ‘동조 편향’으로 인해, 다양성이 오히려 부인되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비하가 만연하게 되는 상황을 지적하는 이 글은, ‘포스트–트루스’ 시대 미디어 환경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개인을 다시 이해하는 것,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사고하는 것, 책임과 자유라는 어떻게 보면 낭만화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개념들을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탈진실의 정치학’ ‘데이터 권력의 강화’ ‘알고리즘 자동화 사회’ 등을 새로운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의 불행한 지표들로 제시하는 이광석의 글은 “인류의 생태 미래와 합목적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의 문제에 대해 어떤 합의”가 지금의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사르코’라는 자살 기계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존엄사의 문제를 다루는 조태구의 글이 궁극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은 의학이라는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온 결과로서 삶과 죽음에 관한 인간의 인식 변화에 관한 것이다. “죽음과 삶이 처음부터 서로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철학적 논제를 과학 문명의 발달로부터 증명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조효원의 글은 정의 , 무한, 계몽, 인권 등 “근대의 사회적 상상”을 지탱해온 다양한 개념들이 무화되고 있는 전 세계적 현실을 지적하며, 여러 가지 정치적 논제로 어지러운 2020년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것’의 성립과 ‘민주주의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를 비관적으로 묻고 있다.
‘조국 사태’가 쏘아 올린 한국 사회 ‘대학’을 둘러싼 다양한 불평등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천정환의 글은 문제에 대한 분석이 촘촘하고 실증적인 만큼 읽고 나면 필자의 표현대로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오랜 고민과 실천의 결과로서 그가 내린 결론은 “교수 집단과 사학의 ‘셀프 개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대학) 주체’와 ‘옆으로부터의 시민적 주체’가 나타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합당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이 더욱 치밀하게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 여섯 편의 글은 여러 혼란 속에서 2020년대를 시작하는 이즈음의 한국 사회를 다층적으로 진단해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의미 있게 일러준다.

한국 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고민하는 와중에도 현장의 문학은 활발하다. 본권의 창작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김언, 김행숙, 김상혁, 서윤후, 유계영, 윤지양 시인께 감사드린다. 2020년을 시작하는 봄호의 소설란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다. 이승우, 최윤, 한강, 박솔뫼, 김세희, 이원석, 정지돈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작년 일본의 가와데쇼보 출판사의 잡지 『문예』로 먼저 발표된 한강과 박솔뫼 작가의 한국어 원작 소설을 이번 호에 소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모두 한국 문학의 동시대성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연재 3회째를 맞은 정지돈 작가의 장편도 흥미를 갖고 지켜봐주시기를 바란다. 지난 계절의 신간들을 성실히 읽고 흥미로운 리뷰를 보내준 김정현, 오연경, 조대한, 김대산, 김형중, 이소 , 전기화 평론가와 하재연 시인께도 감사를 드린다. 〈지성〉 코너에 실린 김건우의 글은 최인훈 연구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주는 글로서 손색이 없으며,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을 두고 번역자 김수환이 연구자 김항과 나누는 대화도 지적으로 알차다.
만연한 불안과 공포와 환멸이 2020년대를 향한 새로운 희망을 잠식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다른 내일을 위해 모두가 건강하고 분명한 한 걸음을 오늘도 내딛기를 바라며, 짧은 서문을 마친다. 『문학과사회』가 선보일 2020년대의 작업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관심과 냉정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 편집동인 조연정

*윤이형, 「윤이형입니다」, 2020년 1월 31일.
(https://docs.google.com/document/d/1qcs47mFXSVq9Ie3jty3Kg3PlvbMIYK93NrIen4e_sHY/edit)
**장은정, 「질문은 계속돼야 한다 : 작가·출판사 그 너머, 이상문학상 사태 다르게 보기」, 『한겨레21』 2020년 2월 14일 자.

 

하이픈 보기 -> http://moonji.com/book/22183/

목차

봄호를 펴내며


김언 인생 외 1편
김행숙 돌 속에 돌이 있고 외 1편
김상혁 불과 행운 외 1편
서윤후 녹조덤불 외 1편
유계영 잠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듯이 외 1편
윤지양 가위 외 1편

소설
이승우 마음의 부력
최윤 숨바꼭질
한강 교토, 파사드
박솔뫼 수영하는 사람
김세희 외출
이원석 무덤 밖으로
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장편 연재 3회]

리뷰
김정현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는’ 세계들
—황인찬, 『사랑을 위한 되풀이』
—김승일,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오연경 망가진 세계, 망가진 마음, 망가진 쓰기
—이영주,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김민정,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조대한 거꾸로 걷는 사람—이설빈, 『울타리의 노래』
한 번 더 걷는 사람—김유림, 『양방향』
하재연 미래 시제로 수행하는 빛의 투시, 그리고 비휴머니티적으로 웃기
—송승언, 『사랑과 교육』
—신해욱, 『무족영원』
김대산 우리는 닮았는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향하여
—최제훈, 『위험한 비유』
—윤해서, 『0인칭의 자리』
김형중 소설과 SNS
—백민석, 『버스킹!』
—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소 종말과 서른의 현상
—김미월, 『옛 애인의 선물 바자회』
—천희란, 『자동 피아노』
전기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빠르고 꼼꼼한 전진—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지성
김건우 신화적 만남과 우리─최인훈의 『하늘의 다리』와 자기동일성의 길
김수환 × 김항 어떤 ‘영원했던’ 세계의 종말과 그 후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색인
정기구독 안내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6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