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ãn

킴 투이 지음 | 윤진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11월 29일 | ISBN 9788932035871

사양 변형판 116x183 · 219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그녀는 그릇 하나하나마다 이야기를 담았다.
베트남인들의 고난, 추억, 그리고 사랑을

2018년 뉴 아카데미 문학상(대안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 장을 열며 국제적 작가로 부상한 킴 투이
음식과 사랑에 대한 매혹적인 사색

열 살 때 베트남을 떠나 말레이시아 난민 수용소를 거쳐 퀘벡에 정착한 보트피플로서, 자전적 소설 『루ru』로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 장을 열며 국제적 작가로 부상한 킴 투이Kim Thúy의 데뷔작 『루』와 두번째 장편소설 『만mãn』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
킴 투이는 변호사, 대사관 직원, 레스토랑 경영 등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삶의 무게와 성찰이 담긴 그의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8년에는 첫 작품을 낸 지 10년 만에 심사위원과 연관된 성추문으로 취소된 노벨문학상을 대신하는 뉴 아카데미 문학상 최종심에 오르며 세계 최고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킴 투이가 세계 문단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울림이 있는 동시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의 체험이 녹아든 그의 작품들은 무겁고 고통스러운 역사가 배어 있음에도 섬세하고 감성을 건드리는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미적 감동을 선사한다.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늘 이렇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늘 혼자이고 외톨이인 그는
나를 위해 자기 옆에 자리를 만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만mãn은 어머니가 셋이다. 전쟁 중에 그녀를 낳고 버린 어머니, 채소밭에서 그녀를 구해낸 수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스파이가 되었던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성장한 딸 만을 위해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정착한 베트남 남자에게 시집보낸다. 단 세 번의 만남 후 한 남자에게 닻을 내리고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만은 요리사로서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요리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손님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녀는 단순히 식사 이상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그녀의 요리는 기억과 감정, 시간과 장소를 떠올리게 하고, 심지어 고객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은 성공적이고, 캐나다에서 따뜻한 친구들도 만나고 베트남에서 어머니도 모셔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베트남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는 게 거짓말인 것만 같다. 그리고 음식마다 사연과 감정을 담은 베트남 요리책을 출간하고 작가로서 파리도서전까지 간 만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가슴이 움직이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격동의 시기 베트남에 머물던 프랑스인으로 둘은 고통의 역사를 바탕으로 공감한다. 이 책은 사랑과 음식이 어떻게 얽힐 수 있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명상과 시적인 아름다움의 성취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우리의 조리법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몬트리올의 베트남 식당 만mãn. 그곳의 메뉴는 단 두 종류이다. 단골손님들의 요구, 그리고 ‘만’ 식구들의 추억. 주인공 ‘만’은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자리 잡은 남편에게 신붓감으로 선택받아 이주한 여성으로, 사연과 감정이 담긴 그녀의 요리는 삶에 지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전작 『루』가 격동기의 역사를, 특히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두 베트남의 전쟁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만』의 경우 전쟁은 좀더 흐릿한 배경으로 주인공의 삶 뒤에 펼쳐진다. 역사적 사건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자리, 그 무대의 전면에 자리 잡은 것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베트남의 색깔과 향기다.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드러내는 베트남의 내밀한 속살,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베트남 음식이다.
“새가 날갯짓 한 번 하는 짧은 순간에 얇은 껍질이 입안에서 녹아 사라져버리는” ‘반쌔오bánh xèo’,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태어”나는 자리를 함께하는 ‘째chè’, 바나나 잎에 싸여 익어가는 냄새만으로 두고 온 고향의 명절을 되살리는 ‘반뗏bánh tết’, 누군가에게는 베트남과 동의어가 된 강렬한 냄새의 ‘느억맘nước mắm’까지, 모든 음식은 그 향과 색을 통해, 무엇보다 그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기록이 다 담아내지 못한 베트남을 그려낸다.
여러 음식에 들어가는 땅콩은 “늘 있기에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베트남 여인들을 닮았고, ‘서우리엥sầu riêng’(‘개인적인 슬픔’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나무의 열매 두리안은 “두꺼운 껍질 아래 따로따로 밀폐된 방들에 봉인된 과육”처럼 가슴속에 묻혀 있는 베트남 여인들의 슬픔을 닮았다.


인내nhẫn와 충만함mãn 사이, 몸에 새겨지는 사랑

『만』은 무엇보다 사랑으로 가득 찬 이야기이다. 사생아로서 세상에 내던져진, 이민자로서 낯선 나라에 내던져진 자신의 삶에 다가와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배경 속에 녹아들어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온 만을 세상 밖으로 꺼내준 이들이다. 버려진 그녀를 데려가서 키우며 “다시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 캐나다 이주 후 주방과 침실만 오가던 만을 사회로 끌어내고 저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알려준 친구들, 그리고 항상 의무에 따라 살던 그녀가 내면의 소리에 따라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해준 연인 뤽. 뤽은 “음화陰畫로만 존재하던” 그녀를 “사진으로 만들어준 현상액이자 정착액”이다.
책의 전반부가 어머니와 딸의 삶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갑자기 나타나 세계의 중심이 되어버린” 남자, “수없이 많은 장소를 떠나면서도 단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던” 만에게 처음으로 영토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 연인 뤽과의 사랑 이야기다. 그녀가 뤽과 사랑하는 방식은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던 작가가 프랑스어 단어를 배워나가던 방식과 같다. 킴 투이는 작품에서 이민자로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많이 묘사하는데, 그녀에게 그 과정은 “단계적인 발달이나 논리에 따르는 정해진 길이 아닌, 곳곳에 에움길이 있고 매복이 숨어 있는 정형화되지 않은 길”을 더듬거리며 가는 시간이며, 그 더듬거림이 몸에 흔적을 남기는 순간의 쾌락이다. 그렇게 만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몸을 다 덮으려면 몇 번의 키스가 필요한지” 세어보면서, “살갗을 한 조각 한 조각 뇌리에 새겨”나가면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사랑을 한다.
킴 투이는 왜 베트남어가 아닌 프랑스어로만 글을 쓰는지 묻는 질문에 자신에게 베트남어는 유년기의 언어라고, (그녀가 여전히 배워나가야 하는) 프랑스어는 글을 쓰고 사랑을 하는 언어라고 대답한다. 한 사람의 “어휘 목록”은 삶의 구체적 체험들에 뿌리내리고 있고, 사랑은 몸에 새겨지며, 그래서 킴 투이는 그런 어휘들을 사용해서 더듬거리며 그런 사랑을 이야기로 쓴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미지, 섬세하고 조용한 힘으로 가득 차 있는 『만』은 언어와 감각, 사랑하는 삶을 음미하라고 권하는 소설이다.


■ 이 책에 대한 찬사

“이 짧고 경이로운 책은 사랑과 음식, 열정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_『맥클린스』

“섬세하고 활력이 넘치는 사랑 이야기…… 가슴이 미어지는 동시에 우직하다.” _『토론토 스타』

“영원하고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주 아름답게 전해진다.” _『위니펙 프리 프레스』

■ 본문 속으로

그는 멀리서 왔고,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 딸을 보여주려고 기다리는 집들이 더 있었다. 그는 사이공 출신으로, 스무 살 때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났다. 태국의 난민 수용소에서 몇 년을 보낸 뒤 몬트리올로 갔고, 그곳에서 일을 구했다. 하지만 완전한 고향은 구하지 못했다. 그는 캐나다 사람이 되기에는 베트남에서 산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반대로 다시 베트남 사람이 되기에는 이미 캐나다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_17~18쪽

그는 벤치에 수북이 쌓인 선홍색 꽃잎들을 조금 밀어낸 뒤 그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대로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정작 그는 꽃에 둘러싸인 자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늘 이렇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늘 혼자이고 외톨이인 그는 나를 위해 자기 옆에 자리를 만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_22~23쪽

엄마가 아버지를 본 것은 그날 두리안 나무 아래서가 마지막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 나무를 ‘서우리엥sầu riêng’이라고 부른다. 그때까지 엄마는 ‘개인적인 슬픔’이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두리안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두리안의 뜻을 자주 쉽게 잊는 것은 아마도 두리안에 담긴 슬픔이 가시 돋은 두꺼운 껍질 아래 따로따로 밀폐된 방들에 봉인된 과육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_46쪽

손님들 중에는 베트남 아내를 기다리고 있거나 베트남에 다녀올 비행기표를 사려고 돈을 모으는 독신 남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왔다. 토요일 혹은 일요일 아침에는 식당 문을 열기도 전에 와서 남편과 함께 드립커피를 마셨다. 잔 바닥에 깔린 연유 위로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 방울은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환기했을 것이다. _56쪽

그날의 요리가 무엇인지는 식당에 와서 창유리에 걸어놓은 흑판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하루에 딱 한 가지메뉴였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추억만 되살렸다. 추억으로 흥분한 가슴이 접시 밖으로 넘쳐흐르지 않게 하려면 힘겨운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_59쪽

실제로 토마토와 파슬리가 들어간 수프의 맛은 조리법을 소개하는 사진들보다는 배를 타고 탈출하다 붙잡혀 몇 달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했던 아홉 살 소녀의 이야기가 더 잘 설명해주었다. [……] 홍이 간직한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은 빛바랜 노란색의 우묵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던, 토마토 한 조각과 자른 파슬리 줄기가 들어간 맑은 수프였다. 홍의 아버지가 지나가면서 아들 옆 한구석에 그릇을 내려놓았고, 홍의 오빠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두 다리를 세우고 앉아서 그 밑에 두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기다렸다. 그렇게 홍은 그 수프를 조금 마실 수 있었다. 홍에게는 먹어본 모든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_108~109쪽

그의 어머니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그 음식을 만들어 데친 양배추 혹은 둥글게 썬 오이, 그리고 밥과 함께 식탁을 차렸다. 허락 없이 저녁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뤽은 어머니가 저녁 식사로 ‘까코또cá kho tộ’를 준비하는 날이면 집에 있지 않았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느억맘 냄새인지 혹은 강박적 추억들과 무력감으로 잔뜩 무거워진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요리해줄 수 있나요?” _135~36쪽

나는 항상 일상의 일들, 엄마로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들, 그 불가능한 일들과 가능한 일들에 맞춰 살아왔다. 내 엄마가 그랬듯이 나 자신을 위한 목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스스로 계획하고 욕망한 분명한 목적지로 나를 실어갈, 무엇보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나를 환영하고 나를 받아줄 사람에게 데려갈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_169~70쪽

이름 자체가 열에 닿은 액체가 튀는 소리를 환기하는 ‘반쌔오bánh xèo’는 센 불에서 익혀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름이 끓어오르면 안 된다. 그 안에 숙주나물과 녹두콩을 수북이 채운 뒤 내용물이 부서지지 않도록 반으로 잘 접어내는 데 반쌔오의 성패가 달려 있다. 완성된 반쌔오 첫 조각을 자를 때마다 나는 늘 긴장했다. 하지만 뤽을 위해 만든 반쌔오를 자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게 새가 날갯짓 한 번 하는 짧은 순간에 얇은 껍질이 입안에서 녹아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_187쪽

뤽과 함께 있을 때의 내 얼굴은 ‘évidence(자명한 이치)’로 나와 닮았다. 뤽은 그날까지 음화陰畫로만 존재하던 내 얼굴을 사진으로 만들어준 현상액이자 정착액이었다. _188~89쪽

나의 시간은 영원했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으니 나의 시간은 무한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종류의 견과류와 볶은 수박씨로 속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단단한 껍질을 벗겨야 한다. 힘껏 깨야 하지만, 섬세한 속살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힘 조절을 잘해서 알맞은 순간에 멈춰야 한다. 안 그러면 속살까지,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사라지고 마는 꿈처럼 순식간에 전부 깨져버린다. 워낙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에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_201쪽

목차

옮긴이의 말 ․ 인내nhẫn와 충만함mãn 사이, 몸에 새겨지는 사랑

작가 소개

킴 투이 지음

1968년 베트남 사이공(현재의 호찌민)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가족과 함께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나 난민 신분으로 지내다 1979년 말 캐나다에 정착했다.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번역학 ‧ 법학 학위를 취득한 뒤 변호사로 일하고 영사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후 루 드 남Ru de Nam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베트남 음식을 소개하는 요리 연구가로 활동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첫 책 『루ru』는 출간되자마자 퀘벡과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지금까지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캐나다의 권위 있는 ‘총독문학상’과 프랑스의 ‘에르테엘-리르 대상’ 등 국제적인 상을 받고, 이후 『만mãn』 『비vi』 등을 출간하며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 2018년에는 심사위원을 둘러싼 추문으로 취소된 노벨문학상을 대신한 뉴 아카데미 스웨덴 문학상 최종 후보로 올랐다.

"킴 투이"의 다른 책들

윤진 옮김

아주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서전의 규약』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등의 이론서와 『사탄의 태양 아래』 『위험한 관계』 『벨아미』 『목로주점』 『파울리나 1880』 『알렉시 · 은총의 일격』 『주군의 여인』 등 프랑스 문학작품을 옮겼다. 현재 번역출판 · 기획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10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