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28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11월 30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1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겨울호를 펴내며

각자의 세기를 향하여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사회는 공동체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여러 근본적인 문제와 대면하면서 깊은 갈등을 겪는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조국 정국’으로 불렸던 일련의 사태들을 단순히 정치권 내의 권력 투쟁이 야기한 내홍으로 간주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쉽게 재단될 수 없는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드러내주는 징후적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란스러운 논란과 소모적인 논쟁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새삼 주목해야 했던 것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중층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 다시 말해 각각의 주체가 놓여 있는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주어진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이 극명하게 분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 내 차이를 조명하는 논리로 ‘세대’라는 오래된 키워드가 새삼스럽게 호명되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항간에 운위되고 있는 386세대를 향한 비난이 정당한 것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세대적 경험의 차이에 의거하여 우리 사회를 진단할 수 있다는 담론이 유력한 논법으로 다시 부각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세대론이라는 방법론이 과장된 결론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모종의 배제와 갈등의 논리에 토대하고 있다는 지적은 여기서도 유효할 것이다. 이것은 세대론에 대한 상식적인 비판, 이를테면 특정 주체들의 경험에 한정된 담론이 우리 사회의 전체적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독법일 수 없다는 일반론적인 지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대론의 부상을 주목해야 했던 이유는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가치와 이념, 그리고 방향성에 관한 새로운 토론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요청하는 징후적 현상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제는 세대론 그 자체가 아니라, 생산적인 논쟁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담론에 관한 다른 상상력이다. 과거에 대한 존중을 망각하지 않되, 미래를 향한 모색을 ‘갈등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역사적 상상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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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물음은 한국 문학의 현재를 사유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일 것이다. 주지하듯 문학적 세대론은 문학사의 성립과 함께 시작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된 담론에 해당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문학사적 내러티브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세대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물론 우리는 특정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 들의 출현을 중심으로 문학사를 서술해온 기왕의 주류적 방식이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10년 단위로 분절되는 문학사에 대한 비판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앎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대론적 문학사는 문학의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키는 가장 유력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 문학, 2000년대 문학, 2010년대 문학 등, 문학 앞에 붙어 있는 시간적 표지들은 당대를 대변하는 결정적인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공통의 문학적 세대성이 정립될 수 있다는 전제를 표상하고 있다. 그것은 문학작품이 시대와 동떨어진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우리의 인식을, 나아가 모든 글쓰기가 그것이 실천되는 각자의 세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문학 텍스트 속에 각인되어 있는 시대상의 흔적이 발굴되고 , 작품과 작가 들에 대한 역사적 좌표가 부여됨으로써 문학은 비로소 연속성에 대한 감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매개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이, 그리고 작가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세기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 2000년대 문학을 빛냈던 적지 않은 작가들의 목록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러한 작가들의 글쓰기가 특정한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작품들은 저마다의 문학사적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세기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꾼다는 점에서 세대론과 근본적인 층위에서 불화한다. 이러한 이탈과 불화가 공시적이면서도 통시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세대론의 한계 역시 이중적이긴 마찬가지이다. 문학작품은 단지 자신이 씌어진 시기의 현실을 반영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작품이 처해 있는 현재적 현실의 이면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이미 자신의 시대와 불화한다. 한층 중요한 것은 작가들의 현재적 글쓰기가 한때의 자기 자신과도 불화한다는 것, 다시 말해 통시적인 양상을 띤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작가의 변화를 주목하고, 그것이 지닌 의미를 맥락화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확대와 심화의 양상으로 묘사될 수 있는 글쓰기의 지속을 통해, 많은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가 태어난 시간적 풍경을 배반하고, 그 배반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층위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요컨대, 핵심은 문학을 특정한 시대에 가두려는 협소한 세대론을 넘어서는 것, 나아가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변화의 양태까지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이다. 작품들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연속과 단절을 가늠하는 가운데, 우리 시대가 놓여 있는 역사적 위치를 정확하게 탐구하는 일이 요청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새로운 상상력과 함께 씌어지는 새로운 문학사적 세대론은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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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이번 호 『문학과사회』에서는 1990~200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하게 소설적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는 작가들을 비평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모두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한다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이지만, 이들이 그러한 세대론적 시간에 갇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특집의 전제는 작가들에게 글쓰기와 삶이 별개의 일일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삶이 지속되는 한 그들의 글쓰기 역시 멈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뛰어난 작가들일수록 변화하는 현실과 소통하는 가운데 자신의 글쓰기를 실험함으로써 각자의 세기를 반영하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최근 2~3년 사이에 소설집 혹은 장편소설을 상재한 작가들 (김경욱, 김애란, 배수아, 윤성희, 윤이형, 은희경, 이기호, 이장욱, 편혜영, 한유주)의 현재적 글쓰기를 조명하는 글을 조형래, 강동호, 이광호, 이지은, 조연정, 백지은, 노태훈, 최진석, 서영인, 김나영 평론가가 보내주었다. 여기에 더해 작가들이 직접 고백하고 있는 자신의 글쓰기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각 작가의 개성과 글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묻어나는 글들을 통해 이들이 현역 작가로서 여전히 문학적 생명력을 강렬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이유 역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계절의 창작란에서는 김근, 장이지, 기혁, 권민경, 양안다, 이설빈, 김건영, 조시현, 서호준의 시와 김엄지, 김혜진, 정영수, 서이제, 장희원의 단편소설, 그리고 정지돈의 장편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을 통해 독자들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글쓰기로 실천하는 지금 여기의 다양한 풍경이 생성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에서는 한국 문학의 생생한 현재를 조명하는 소중한 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계절에 출간된 장정일, 김안, 장승리, 조해진, 송지현, 최윤, 김초엽, 박상영, 김세희의 작품에 관한 섬세한 분석을 고봉준, 김영임, 선우은실, 김주선, 김형중, 박혜경, 박혜진, 보배, 허윤 이렇게 아홉 분의 리뷰어가 보내주었다. 다만,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대한 리뷰는 필자의 사정으로 이번 계절에 실리지 못하고 다음 호를 기약하게 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메타비평〉에 실린 양윤의 평론가의 글 또한 주목을 요한다. 지난 계절 문예지들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포스트–휴먼’ ‘SF 소설’에 관한 논의들을 재조명하는 글을 통해, 한국 문학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미리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성〉에서는 조효원 평론가가 문학의 근원적 본질에 관해 질문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말할 수 없지 않은 것’을 대면해야 했던 문학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보는 글을 통해 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근본적인 사유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사회』를 빛내준 모든 필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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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가 2010년대에 출간되는 마지막 『문학과사회』이다. 『문학과사회』는 2010년대라는 시기를 어떻게 통과해왔을까 ? 새삼 돌이켜보건대 많은 일이 있었고, 각각의 국면 속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고민들을 풀어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간 안에서 『문학과사회』가 한국 문학의 현재를 활성화시키는 데 충분히 기여했는지에 관해서도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과사회』가 대면해야 했던 시간들 앞에서 그 누구보다 정직해지려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논쟁을 마다하지 않고, 타협하려는 스스로의 욕망과 불화하며, 새로운 싸움의 형식을 모색하는 것. 이를 추구하기 위한 『문학과사회』의 고민이 2020년대라는 미래의 시간에도 계속될 것임을, 독자들께 다시 한번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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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쉬운 소식을 하나 전하고자 한다. 혁신호부터 『문학과사회』와 함께해온 김신식 동인이 지난 호를 끝으로 편집동인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문학과사회』가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싸움의 방식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과정에 김신식 동인의 각별한 노력과 고민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의 노고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그가 앞으로 자유롭게 열어나갈 글쓰기의 미래를 『문학과사회』가 응원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 편집동인 강동호

 

하이픈 보기 -> http://moonji.com/book/21155/

목차

겨울호를 펴내며


김근 미처 다물지 못한 외 1편
장이지 속속들이는 알 수 없어도 외 1편
기혁 떨어진 면적의 먼지를 털며 외 1편
권민경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외 1편
양안다 중력 외 1편
이설빈 들판, 접혀 있는 외 1편
김건영 둘라한 외 1편
조시현 무중력지대 외 1편
서호준 저수지 외 1편

소설
김엄지 벽 배 배꼽
김혜진 3구역, 1구역
정영수 두 사람의 세계
서이제 사운드 클라우드
장희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장편 연재 2회]

리뷰
고봉준 게릴라, 내재하는 외부—장정일, 『눈 속의 구조대』
김영임 달리트와 하리잔—김안, 『아무는 밤』
선우은실 시 읽기의 어려움—장승리, 『반과거』
김주선 타인을 이해한다—조해진, 『단순한 진심』
김형중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성장하기—송지현,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박혜경 길이 끝난 곳에서 시작되는 여행—최윤, 『파랑대문』
박혜진 인간이 가장 나중에 지닌 것—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보배 우주의 등에는 기억이 있다—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허윤 그 여름, 사랑하는 너에게—김세희, 『항구의 사랑』

메타비평
양윤의 PB+SF+FS

지성
조효원 문학과 결의론의 미래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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