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페도클레스의 죽음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10월 1일 | ISBN 9788932035680

사양 변형판 137x205 · 356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불길 속에서 그대는 생명을 찾고 있네, 그대의 마음이 명령하며 뛰고 있고
그대는 이를 따르네. 그리하여 그대는 바닥없는 에트나에 몸을 던지네.

생의 절반을 정신착란의 질곡 아래 살았던 비운의 천재 횔덜린
시대를 앞서가고 현실과 화해하지 못했던 그가
엠페도클레스의 입을 빌려 남긴 변화와 쇄신의 절규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반평생을 정신분열증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20세기 초 후기 시들이 발굴되고 재평가되면서 현대적 시인으로 부활한 프리드리히 횔덜린(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의 희곡과 논고를 엮은 『엠페도클레스의 죽음-한 편의 비극Der Tod des Empedokles』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횔덜린은 지난 반세기 동안 독일 시인들 중 가장 많이 번역 소개된 시인이다. 희곡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은 미완의 작품이지만, 횔덜린의 성숙한 후기 문학으로의 진전을 보여주기에 독일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독일 이상주의 철학과 낭만주의 문학에 크게 기여했고, 20세기와 21세기의 사상가와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세 개의 초고로 남은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과 이에 대한 이론적 숙고를 담은 논고들은 횔덜린이 독일어로 시를 쓴 가장 뛰어난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죽음과 혁명의 비극-횔덜린의 엠페도클레스

신의 은총을 받고 시민들에게 추앙받던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신과 자연으로부터 이반해버린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했으나, 지나친 열의와 오만으로 추방당한 그는 에트나 화산으로 가 몸을 던진다.
이 책은 횔덜린이 미완성으로 남긴 희곡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초고들과 관련 논고들을 엮은 것이다. 신과 시민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의 시대를 탄식하며 반평생을 정신착란으로 비참하게 살다 간 횔덜린의 모습과 닮았다. 횔덜린은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고귀한 신성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궁핍한 시대’에 사는 시인의 참된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신과 인간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고대 그리스 세계를 이상으로 삼은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로 향한 발걸음이었다. 그에게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은 쇄신을 향한 신호탄이자, 쇄신의 조건이었다. 횔덜린은 이 작품을 통해 혁신은 낡은 것의 해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모든 소멸 안에 새로운 생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랑스혁명의 이상에 대한 횔덜린의 깊은 공감도 이 미완의 비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횔덜린, 그가 남긴 미완의 희곡과 그 희곡에 대한 논고들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은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이 1797년 자세한 집필 계획인 「프랑크푸르트 계획」을 세운 뒤 1799년까지 약 3년에 걸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한 편의 비극이다. 횔덜린은 이 비극의 창작에 몰두했으나, 세 개의 초고(草稿)로만 남고 말았다.
이 비극의 소재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가 에트나 화산 분화구에 투신해 자살한 사건이다. 이 소재의 선택 자체가 이미 횔덜린 문학의 심오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 상황과 이에 대한 ‘각성한 개인’의 응답, 자발적인 죽음이 가지는 초개인적・역사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숙고, 새로운 질서의 생성을 위한 소멸의 필연성과 같은 역사철학적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을 한국 최초로 번역한 이 책에는 이 희곡의 집필 계획인 「프랑크푸르트 계획」과 제2초고와 제3초고 사이에 쓴, 비극에 대한 횔덜린의 시학적 논고 「비극적인 것에 관하여」, 제3초고에 이어서 쓴 「몰락하는 조국……」 등을 함께 실었다. 이 논고들에는 비극적 드라마의 개념을 나름대로 명확히 하고 엠페도클레스의 사상과 행위의 비밀을 조명하려는 횔덜린의 노력이 담겼다. 따라서 이 논고들은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과 한 덩어리를 이루는 일체로 다루어야 한다. 이 미완의 비극과 관련 논고를 읽으면 이것들이 우리의 지금-이곳과 섬뜩할 만큼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인물과 줄거리의 구성보다는 등장인물의 자기성찰적인 진술을 앞세우며 전통적인 희곡의 범주를 넘어서는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에서는 철학이 문학이 되고 문학이 철학이 되는 분화 이전의 문학의 생태를 복원하려는 횔덜린의 시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왜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가?
-혁명가 엠페도클레스

“지금은 더 이상 왕의 시대가 아니다.”
[……]
“아직도 왕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라. 그대들 스스로가 자신을 돕지 않으면
그대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다.” _본문에서

횔덜린의 엠페도클레스는 프랑스 혁명가에 가깝다. 엠페도클레스는 민중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급진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회적, 종교적 혁신자이다. 정치적 혁명에 대한 촉구는 엠페도클레스의 유언이다. 횔덜린은 ‘황금시대’와 같은 사회가 되려면, “모든 것이 근본으로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낡은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질서와 제도는 총체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보다 나은 사회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 ‘혁신’은 낡은 것의 해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엠페도클레스는 새로운 질서로 ‘자유’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소유에서의 평등’이라는 기본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경제적 혁신 또한 요구한다.
시민들을 향한 엠페도클레스의 이 같은 요구에는 횔덜린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뼈저린 외침이 숨겨져 있다. 횔덜린이 살던 18세기 독일은 태생적 신분이나 직업상의 신분 차별로 보편적인 평등의 원칙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엠페도클레스의 평등의 요구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독일의 현실과 대비하여 성찰하려는 횔덜린의 의지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혁명에 대한 요구’로서 엠페도클레스의 자발적인 죽음은 초개인적, 역사적 의미를 얻게 된다. 그 죽음은 한편으로는 쇄신을 향한 신호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쇄신의 조건이다. 그의 죽음은 아그리겐트 시민들의 눈앞에, 모든 죽음 안에는 새로운 생성이, 그리고 모든 생성 가운데는 옛것의 소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등대의 역할을 한다.


‘불경’ 혹은 ‘혁신’-프로메테우스적인 인간 본성의 복원

“인간들에게는 스스로가 회춘하려는
거대한 욕망이 주어져 있다.
인간 스스로가 제때에 선택하는
정화의 죽음을 통해서 마치 아킬레우스가
스틱스 강에서 그러했듯 민중들은 되살아나는 법이다.”_본문에서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을 사회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는 실존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길을 찾은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사제를 통해 그를 추방하고 저주할 때 저주로 되갚기도 한다. 엠페도클레스에게 가장 강렬한 성향은 미개한 시대에 깨어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궁극적으로는 대단히 사적인 천국의 회복을 향한 애착이다.
엄청난 신의 은총을 받다가 자신을 신격화한 오만을 비난받으며 아그리겐트에서 추방당하는 엠페도클레스. 그러나 ‘말’을 통한 자신의 신격화라는 죄업은, 더 엄밀하게 말해서 ‘사상’을 통한 죄업은 도덕적인 과오가 아니며, “우리 내면에 있는 신”이 절대화되는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인식 단계와 상황의 표현일 뿐이다. 이 비극에서 엠페도클레스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인간 본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신의 제약을 넘어서고자 하는 엠페도클레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사상과 감정에서 진실로 위대한 자는, 한번 신적인 삶을 경험한 자는, 무한함을 그리워하도록 비극적으로 심판받는 법이다. 이것이 그의 몫으로 주어진 저주인 것이다.
횔덜린은 신이 사라지고 자연과의 조화도 무너져버린 자신의 시대를 탄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성의 부활, 모순과 대립이 지양된 조화로운 공동체라는 이상을 노래했다. 그는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고귀한 신성을 일깨우는 것을 시인의,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역시 엠페토클레스와 같이 동시대인들과 융화하지 못했다. 양상은 다르나 유사한 일이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될 것이다. 에트나 화산은 엠페도클레스의 BC 5세기에서 횔덜린의 18~19세기를 거쳐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타고 있다.


목차

옮긴이 서문

제1부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제1초고
제2초고
제2초고: 첫 부분의 정서본 제3초고

제2부「엠페도클레스의 죽음」 계획, 장면들, 이론적 초안
프랑크푸르트 계획
비극적인 것에 관하여
제3초고에 대한 계획
제3초고의 계속을 위한 스케치
몰락하는 조국……

주해
옮긴이 해설 ․ 횔덜린의 엠페도클레스, 죽음과 혁명의 비극
작가 연보

작가 소개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독일 서남부 라우펜에서 태어났다. 튀빙겐 신학교 시절 헤겔, 셸링 등과 교유하면서 칸트의 비판철학, 그리스 문학과 철학 공부에 매진하고 프랑스혁명을 지켜보면서 혁명의 이상에 심취했다. 졸업 후 성직자가 아닌 작가의 길을 택한 뒤, 1796년 프랑크푸르트 은행가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여주인인 주제테 부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이후 횔덜린의 작품에 인간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를 상징하는 인물인 ‘디오티마’로 등장한다. 1802년 정신착란의 징후를 보이면서 귀향했고, 1806년 튀빙겐의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했다. 이듬해부터 성구 제작 목수인 에른스트 치머 일가의 보살핌 속에서 남은 생을 보냈다.

소설 『휘페리온』, 미완의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과 「빵과 포도주」 등 많은 서정시를 남기고, 핀다르의 송시,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등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괴테와 쉴러의 동시대인으로서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반평생을 정신분열증으로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으나, 20세기 초 그의 후기 시들이 발굴되고 재평가되면서 현대적 시인으로 부활했다. 릴케, 첼란과 같은 독일 현대 시인들은 횔덜린을 자신들의 선구자로 여겼으며, 횔덜린은 지난 50년 동안 독일 시인들 중 전 세계 각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 소개된 시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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