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19년 가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8월 30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88쪽

책소개

가을호를 펴내며

까방권과 관료제

‘까임방지권’에 대해 생각한다. 이 단어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이 속된 현실의 유행을 추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하나의 신조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 개념의 형이상학적인 본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일명 ‘까방권’으로 축약되어 불리는 이 권리, 아니 권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좌표 없는 이 세계에서 죽은 지 이미 오래인 초월신의 대리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까방권’은 아직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종교의 징표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불특정 다수로부터 혹독하게 ‘까일’ 수 있는 현실에서 일군의 열성적 지지자들에 의해 ‘까방권’을 부여 받은 예외적인 인물─혹은 이념─들은, 말하자면, 새로운 올림포스산 정상에서 유유자적하는 신들과도 같다. 이 새로운 신들의 출현은 오랜 세월 히브리적인 것에 의해 억압되었던 그리스적인 것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올림포스산은 사실상 아수라계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신들의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온갖 간계와 음모, 술수가 시시때때로 교차하고 결사하며 또 충돌하는 곳이 올림포스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리스의 신들은 단지 그들끼리만 서로 질투하고 시기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낱 하류 존재이며 무기력한 유한자에 불과한 인간들 중 몇몇이 선별적으로 보인 빼어난 재능과 두드러진 면모마저 그냥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뛰어난 인간이 조금이라도 교만한 기색을 보이면 그들은 가차 없이 그를 짓밟고, 나아가 그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몰아갔다. 게다가 그들끼리의 싸움에 번번이 희생되는 것 역시 인간들이었다. 반면 신들이 입는 피해는 고작해야 자존심에 약간의 생채기가 나는 정도였을 뿐이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분명 모종의 ‘까방권’을 갖고 있었지만, 이는 그들 내부의 이전투구로 인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들 스스로가 앞다투어 서로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형해화된 권력이라도 여전히 그것은 본질상 신적인 것이어서 그 앞에서 인간의 판단이나 도발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새로 솟은 올림포스산의 신들은 어떤가. 우리가 줄곧 목도해온바, 그들은 싸우지 않는다. 설령 내심으로는 서로 극렬히 질투하고 시기할지언정─십중팔구 그럴 것이다─그들은 웬만해서는 드러내놓고 싸우지 않는다. 실상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신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다만 뒤늦게 그러한 존재로 추대되었을 뿐이기에 그렇다. 아니, 차라리 그런 역할을 (억지로) 떠맡아 (의도치 않게) 무대 위로 떠밀린 것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이 원한 것은 선하게(가 아니라면 적어도 무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력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올림포스의 신들은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다만 세상을 이롭게(가 아니라면 적어도 나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희구했을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소망─바람직한 것이든 추악한 것이든─은 결국 ‘까방권’으로 남김없이 흡수되고 만다. 오직 그 권력만이 그들의 시간을 든든히 지탱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비(非)신적인 면모를 할 수 있는 한 감추고 가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비로소 획득할 수 있었던 그들의 ‘까방권’은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적인 단 하나의 ‘까방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그들 역시 언제까지고 싸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의 화복과 신들의 행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인 것das Politische’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것’이 곧 궁극의 ‘운명moira’인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정의상 절대적인 ‘까방권’의 부재를 전제하며 또한 요청한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이란 곧 상대적인 ‘까방권’들의 부단한 대결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는 역설이다. 우리의 신이 ‘까이는’ 일을 막기 위해서 상대 진영의 신이 가진 ‘까방권’을 ‘까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올림포스의 신들이 이 사태를 인식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싸움을 회피하면서 대신 자신들의 지지자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도록 부추기며, 그러는 사이 정작 그들 자신은 서로 은밀히 공조하여 그들만의 올림포스 안에 거대한 비밀의 성을 축조한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싸움은 종종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종국에는 애당초 그 싸움을 위한 명분이었던 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나아가 그의 후광을 산산조각 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 경우 정체가 까발려진 신은 가장 처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를 열렬히 지지했던 자들이 가장 앞장서서 그에게 돌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의 ‘까방권’이 폐기되는 사이, 가깝고 먼 여러 영역에서는 새로운 ‘까방권’들이 부단히 발급되어 서로 격렬히 부딪친다.
말할 것도 없이, 생성되는 모든 ‘까방권’은 절대를 꿈꾼다. 실제로, 비록 극소수일지언정 절대의 가상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까방권’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도 건재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제아무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권력이라 해도, 결코 절대의 지위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 어떤 세력도 결코 관료제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초월적 유일신에 의한 직접 통치가 이뤄지거나 세상이 갑자기 거꾸로 뒤집히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 세기도 더 전에 막스 베버는 이렇게 적었다.

완전히 발전한 관료제의 권력 위상은 언제나 매우 크며, 정상적인 사정에서는 훨씬 더 크다. 관료제가 받들어 모시는 “지배자”가 “법률 발의안”, “국민 투표” 및 관리 파면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국민”이든, “불신임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나 사실상 불신임할 수 있는 구속력으로 무장한 의회이든 (한층 더 귀족제적인 기초에서 선출되었든 한층 더 “민주적인” 기초에서 선출되었든 간에), 법에 따라 또는 사실상 자기들 내부에서 보충하는 귀족제적 합의체이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든, 세습적인 “절대” 군주나 “입헌” 군주이든 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지배자가 행정 운영을 담당한 훈련된 관료에 대해 처해 있는 상태는 “전문가”에 대한 “아마추어”의 처지이다. *

전문적인 관료가 내미는 서류 앞에서 ‘까방권’은 한없이 무기력하다. ‘까고 까이는’ 관계를 둘러싼 권력 놀음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구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때 오해해서는 안 될 점은 개인으로서의 관료가 제멋대로 ‘까방권’을 기각하거나 함부로 무효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관료는 오로지 제도–기계의 비인격적인 부품으로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확실한 사실은 관료제의 시선이 항상 이런저런 ‘까방권’들 간의 치열한 권좌 다툼을 느긋하게 (하지만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그들을 소환하고 제재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발전한 관료제’ 역시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격의 힘이 도처에서 제도의 연결 구조를 느슨하게 풀어놓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처 채워지지 못한 관료제의 틈새 혹은 사각지대에서 새로운 올림포스의 신들은 일정한 운신의 폭을 확보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관료제의 현실 앞에서 ‘까방권’의 형이상학은 왜소하고 무력하다. 이렇게 보면, 다음과 같은 의혹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혹시 관료제가 절대적인 ‘까방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까방권’들의 전쟁터에서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기인가, 병력인가, 아니면 무고한 피해자, 즉 시체인가? 그도 아니라면 혹시 문학은 그저 작고 좁은 하나의 ‘대피소’에 불과한 것일까? 알 수 없다. 그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어느 것에도 딱히 들어맞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관료제라는 아르고스에 맞서 문학은 과연 ‘전문가’처럼 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문학은 관료제의 ‘까방권’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까 ? 모두가 예상하듯이, 아니 이미 뼈아프게 알고 있듯이, 답은 회의적이다.

*

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의 기획 주제는 ‘문학 –발화’이다. 인아영, 김건형, 김대성, 이병국, 조대한, 소유정, 김녕, 김요섭, 윤재민 평론가들이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 문학장에서 최근 활발히 시도되고 있는 ‘1인칭의 역습’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묵직한 이슈에 대하여 경청할 만한 ‘발화’들을 타전해주었다. 문학장 내에서 이뤄지는 상징 폭력의 문제는 무엇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사회학의 시선에 의해 분석될 때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찰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제의 해결은 문학장 내부의 힘–관계만을 타격하는 방식으로는 난망할 것이다. 무엇보다 문학의 개념 자체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다가올 거대한 태풍에 대한 나름의 성실한 관측들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거의 항상 그렇지만, 이번 계절의 창작란 역시 풍작이라 할 수 있다. 『문학과사회』에서 독자들은 송찬호 , 황혜경, 황인찬, 김소형, 임승유, 안희연, 이소호 , 장현의 시와 윤이형, 이홍, 허희정, 박선우의 소설, 그리고 정지돈의 새 장편 「모든 것은 영원했다」 연재 첫 회를 만나볼 수 있다. 눈 밝은 독자를 만나 해당 작품들이 신선한 공기를 한껏 마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리뷰〉란에는 김신식, 김영희, 김행숙, 신수진, 양순모 , 김형중, 안서현, 오은교 , 이지은, 한영인 평론가가 각각 유계영, 하재연, 김혜순, 손미, 박세미, 편혜영, 임솔아, 조남주, 권여선, 정지돈의 작품에 대한 섬세한 평문들을 보내주었다. 또한 〈메타비평〉란에서 이소연 평론가의 「문학사라는 열병」을 읽을 수 있다. 문학사의 현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충실한 이론적 점검을 담고 있는 역작이다. 문학사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번 호 〈지성〉란에 평론가 김주연의 저서 『노발리스』의 출간에 부쳐 독문학자 김태환이 보내준 「노발리스 혹은 부활의 꿈」이라는 서평 형식의 글이 실렸다. 해당 저서에 대한 꼼꼼한 서평인 동시에 독일 낭만주의의 문학사적 위상 및 현대적 의의를 잘 밝혀주는 한 편의 독립된 논고로 읽히기에도 전혀 손색없는 글이다. 또한 독일의 매체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문제적인 저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의 출간을 기념하여 철학자 박영욱이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매체 분석」이라는 글을 보내주었다. 박영욱은 탁월한 솜씨로 키틀러의 책을 압축적으로 잘 소개해주고 있다. 두 글 모두 독자 제현의 필독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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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방권’들의 가없는 투쟁과 관료제의 무람없는 통치에 의해 점점 더 위축되고 있는 문학장의 ‘잔존Nachleben’을 위해서는 『문학과사회』(를 비롯한 여러 문예지)의 ‘존속Fortleben’이 필수적인 일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 낭만 (주의)적 믿음은 아직 ‘까방권’을 얻지 못했고, 법률로 입안되지도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흡한, 아니 유치하기까지 한 수단들도 구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카프카의 말이 살아 있는 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중압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 편집동인 조효원

* 막스 베버, 『관료제』,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2018, pp. 69~70.

 

문학과사회 보기 -> http://moonji.com/book/20235/

목차

문학–발화
인아영
시차(時差)와 시차parallax— 2010년대의 문학성을 돌아보며

김건형
소설의 젠더와 그 비평 도구들이 지금

김대성
맨손 운동—생활–비평–글쓰기

이병국
Novelty Ori‐Jeans—독서할 수 있는/없는 시대의 회로 속에서

조대한
1인칭의 역습, 그리고 시

소유정
‘되기’의 움직임, 도정에의 시

김녕
낡고 적은 것을 가지고—장소상실에 대한 작은 이야기

김요섭
이후의 사람들—한정현·황정은 소설과 다원화된 세계

윤재민
‘아름다운 한국어’를 넘어서
—한강의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의 문화적 위치에 관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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