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한유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8월 6일 | ISBN 9788932035581

사양 변형판 124x189 · 228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그러므로 너는 있고,
하지만 너는 있고,
그런데 너는 있고,
그러나 너는 있고,
그리고 너는 있다.

“나는 언어를 탕진하고 싶다”

“쓰고 지우며 쓰고 지우는” 문학적 실험을 거듭하면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한유주의 네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나의 필경사』(2011) 이후 소설집으로는 8년 만이다. 한유주의 소설을 말할 때 또렷하게 떠오르는 방식이 있다. 단어와 문장이 반복, 나열, 부정, 역전을 거듭하면서 직조되는 이야기, 온전한 의미에 가닿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패를 향해 내딛는 걸음. 이번 소설집에서도 한유주는 마음껏 언어를 낭비하고 탕진한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발표한 소설 8편이 묶인 새 소설집 『연대기』는 한유주 소설의 발걸음을 기록한 연대기chronicle이자 짧은 지면에서 다 말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 이후 ‘우리’가 연대(連帶)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해 여름 ‘우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얼굴들

같은 작업실을 공유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인 「그해 여름 우리는」에서 오늘의 ‘우리’를 발견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대신 썩어가고 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우리는 서로의 밑바닥을 보고 싶지 않아 피상적인 질문만을 건넨다. 우리는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내면서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복권을 사거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납부하는 간접세도 일종의 사회 공헌이라며 우스개를 던지기도 한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수십 번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그래도 우리는 전반적으로, 대충, 보통 정도로, 어쩌면 평균 이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유쾌”하다. 우리는 죽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저 이게 다일까, 싶으면서도 실은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늙기를 원한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헐겁지만 확실한 연대의 조건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에 매몰되어 이름 없이 죽어갈 것이다. 구체적인 개인은 어디에 있는가. 한유주는 『연대기』에서 구체적인 개인, ‘존재했다가 사라진 누군가/무언가’의 이름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자문자답하며 끊임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아직 네 이름을 찾지 못해서 미안해”

“존재하다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을 때부터 셀 수 없는 것들을 세려고 하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의 이름을 알려고 했던 거예요.” (「식물의 이름」)

『연대기』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들은 서로 다른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힌트처럼 읽힌다. 이름이 비슷한 사람의 집에 대신 살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여자의 이야기인 「식물의 이름」에서 한유주는 위 문장을 빌려 자신의 문학적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구체적인 개인/대상에게 그 대상의 모든 의미를 포괄하는 단 하나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그것이 아주 어렵거나 웬만해서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이를테면 개를 말할 때 ‘개’라는 명사나 ‘포메라니안’이라는 품종으로는 ‘내가 길렀던 개’를 말할 수는 없다. 그 개의 이름이었던 고유명사를 넘어 개의 오렌지색 털 빛깔과 두툼한 앞발, 풍성한 꼬리털, 개의 짖음과 미소와 기타 등등을 모두 의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름을 찾고 싶은 것이다(「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이는 법적 이름과 생몰 연월일, 성별 따위의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존재하는 이름, 하나의 이야기가 닫히고 나서도 존재하는 이름”(「낯선 장소에 세 사람이」)이다. 그리고 이름 붙임의 계기가 되는 것은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 죽음 혹은 사라짐이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 겪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작가는 붙들 수 없는 것을 열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죽음에 대해 쓰고 싶다.” “나는 많은 죽음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쓸 수는 없었다. [……] 그들과 개는 추상적으로 죽었다. 그리고 쉽게 쓴 문장들로 남았다”(「한탄」). 구체적인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을 앞둔 한순간을 늘려놓은 소설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에서 그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데이트폭력에서 도망치려는 인물이 머리채를 잡힌 채 계단에서 한 발을 뗄까 말까 하고 있는 아주 짧은 순간은 마치 영원처럼 길다.


정확히, 그러니까 정확히,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한유주는 짐작하거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들에 대해 단언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을 발표하는 사이사이에 다양한 책의 번역 작업을 해왔다. 번역이란 가장 적확한 의미에 가닿을 수 있도록 말을 잇는 작업이며, 결국 불가능할지라도 다른 언어끼리 최대한 어울리는 ‘이름’을 짝지어주는 일이다. 한유주가 소설에서 감행하는 실험의 확장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연작처럼 읽히는 「한탄」과 「낯선 장소에 세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에서는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행위에 대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함부로 써왔다. 함부로 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러면서도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경계한다. 슬픔은 무참하지 않으며(“무참하다는 표현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것이 고갈된 기분인지 장담할 수 없다(“고갈된 기분이다. 그러나 나는 고갈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한탄」). 이렇게 작가는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과정에서 구조를 잃은 문장 몇 줄이라도, 무의미한 단어 몇 개라도 남기를 바란다”. “그것들을 너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낯선 장소에 세 사람이」).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에서 스토킹을 당하는 소설가이자 강사인 ‘너’는 소설 수업에서 “해상도가 높은 글을 쓰라”고 말한다. 오래된 모니터에 눈을 가져다 대면 글자는 도트 형태로 분리되어 보인다. 도트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도트가 작고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아진다. 한유주에게 도트란 문장들일 것이다. 문장을 비축하고, 낭비하며,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운다. 의미에서 미끄러지며 초과하거나 미만한 표현들을 너무 쉽게 써왔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이는 반성이라기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처럼 보인다. 한유주는 한없이 언어를 비축하고 낭비할 것이다.

“나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떤 사실이 말없이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요. 이름을 붙여줄 시간도 없이, 이름을 불러줄 시간도 없이 사라진 것을 나는 생각해요. 내가 너무 많이 말하고 있나요. 내가 지나치게 많이 말하고 있나요. 그래도 들어야 해요.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마지막이자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식물의 이름」


책 속으로

우리는 늙어가는 대신 썩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시장에서 토마토와 살구를 사다 냉장고에 두었다. 한두 개 남아 있던 토마토에 곰팡이가 피었다. 우리는 그것이 썩은 토마토인지 썩지 않은 토마토인지 의견을 교환했다. 손톱만큼이라도 썩었다면 썩은 것인가.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을 수 있다면 썩지 않은 것인가. 이미 썩어 도려내진 부분이 눈에 보이는데, 그것을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우리가 썩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썩은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토마토가 아닌가. 어째서 우리의 썩은 부분은 도려낼 수 없는가.
「그해 여름 우리는」(p. 19)

 

실은 나도 딱히 불행하지는 않다. 다만 행복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전에도 안 적은 없었다. 다만 짐작했거나, 착각했을 뿐이었다. 실은 불행이 무엇인지도 알지는 못한다. 다만 불행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고,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느낀다.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p. 53)

 

지금 이 순간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멈출 수 없는 시간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은 왜 이토록 긴가. 왜 이토록 기나긴 것인가.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p. 119)

 

너는 어려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모니터에 바짝 붙어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흑백 모니터였다고 했다.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글자들이 점 단위로 분해되어 보였다고 했다. 그건 도트였다. 도트 하나로는 아무런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했다. 도트가 작을수록, 그리고 도트가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는, 해상도가 높은 글을 쓰라고 했다. 수강생 하나가 정물화나 인물화, 풍경화를 그리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너는 반구상화나 추상화에도 해상도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네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너는 해상도를 초과한다. 나는 너를 가까이서 보아야만 한다. 나는 너를 가까이서 보려고 네게 다가간다.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뜨면, 나는 너를 통과한다. 나는 너를 계속해서 통과하고 있다. 너는 몇 개의 도트로 이루어져 있는가.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pp. 143~44)

 

나는 많은 죽음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쓸 수는 없었다.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개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개는 추상적으로 죽었다. 그리고 쉽게 쓴 문장들로 남았다.
「한탄」(p. 179)

 

개는 하얗고 몸집이 컸다. 품종을 물었더니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일한 종. 개가 유일한 종이어서 나는 기뻤다. [……] 우리는 개를 사랑했다. 나도 개를 사랑했다. 가끔 나는 개의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p. 211)

목차

그해 여름 우리는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
식물의 이름
왼쪽의 오른쪽, 오른쪽의 왼쪽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
한탄
낯선 장소에 세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작가 소개

한유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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