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19년 여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5월 30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40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여름호를 펴내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낭시는 『무위의 공동체』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의 공동체가 어떤 문학의 공동체이다—또는 적어도 그러한 공동체로 열려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문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읽기에 모자람이 없는 구절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공동체’가 한국 문학이 오랫동안 ‘대상 a’로 삼았던 그 공동체와는 달리 “단수적 존재들의 복수적 목소리”, 즉 하나의 단일한 이념을 만들어내지 않는 분절되고 소통 불가능한 목소리들의 공동체란 점, 그리고 그가 말하는 ‘문학’이 어떤 정의되지 않은 글쓰기, 즉 “정치적이든 미학적이든 정의(定義)와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것”이란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하이픈으로 분절된 “또는 적어도 그러한 공동체로 열려 있다”란 문장에서 느껴지는 낭시의 유보와 망설임도 이해가 간다. ‘열려 있는’이라거나 ‘도래 중’이란 말은 항상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발화된다. 그래서 슬프지만 포기가 안 된다.
그런 공동체에 대한 바람은 바람대로 놔두되 상식이 지배하는 현실로 돌아와서, 작금의 한국 문학이 마련 중인 ‘공동체’의 면모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생활 SOC 3개년 계획’이 한국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이미 존재해왔던 각종 문학 강연 및 교육 프로그램과 창작 지원 프로그램이 이전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균등하고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고 , 여러 지자체도 각종 문학 축제, 문학관 건립, 인문 (문학) 도시 추진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종의 자발적인 시민운동으로서의 문학 교육을 기획하는 이들도 있고 , 독립 서점들의 문화 공간화 현상도 눈에 띈다.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글 쓰는 이들에게도 부업이(혹은 직업이) 생긴 셈이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통치성’의 변화라는 큰 안목에서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리라. 말하자면 ‘검열’(1960~80년대)에서 ‘배제’(블랙리스트)로, 배제에서 다시 ‘지원’(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독립’)으로 이행하고 있는 문학장 관리 기술의 변화 말이다. 가난한 ‘인구’로서의 문인들에 대한 통계학적 경영 관리(이른바 ‘생명정치’)가 유예의 형태로나마 기대해 마지않는 ‘문학의 공동체’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게 될지는 꾸준히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조너선 컬러의 ‘문학 능력’이란 개념을 빌려와 달리 생각해보면, 잦아진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이 문학 공동체에 미칠 긍정적 영향에 대한 고려도 필요해 보인다. 한 사회의 문학 공동체를 이루는 두 축은 물론 작가와 독자다. 그러나 독자의 ‘문학 능력’이 최종적으로 작품에 유의미한 해석을 부여한다는 컬러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가 주도하건 개인이나 기업이 주도하건 ‘문학 교육’은 독자들의 ‘문학 능력’ 향상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 오히려 후속 세대 독자들의 문학 능력을 고갈시키는 식으로 작동하기 십상인 현재의 공교육을 염두에 두자면 더 그렇다.

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을 각종 교육 기관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독자들과 여러 가지 형태의 ‘교육적’ 관계를 맺고 있는 필자들의 글로 채운 것은 그런 이유다. 독자와 작가 사이에 ‘연결’이 있다. 그것을 일방적인 가르침의 형식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열 편의 글을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상호 교육’, 혹은 확실히 ‘연결’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연결’이란 말은 멀리 있어서 슬프지만 우리가 여전히 바라는 최상의 문학 공동체를 향해 있다 (고 믿는다).
먼저 총론 격으로 문학 교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세 평론가의 글을 실었다. 김미정의 「아리아드네의 실―독서할 수 있는/없는 시대의 회로 속에서」는 “문학 교육, 대중 독자와의 만남의 현장에서 어떤 소설들을 읽을 때 부딪히는 예상치 못한 반응들은, 어떤(특히 약자의 문제와 관련된) 제재·사안에 대한 특정 ‘인식-정동’의 회로가 이미 대중(쓰는 이 안에서도) 구축되어 있음의 증거”라고 전제한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이나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비평적 발화들은 바로 그 회로에 의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유되기도 한다. 따라서 ‘소설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중 독자들의 인식 회로를 작동시키는 지점들, 혹은 쓰는 이 스스로마저 이 교착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점들을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과 연결될지 가늠하는 일”이라는 그의 말이 최근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 논쟁에 던지는 질문은 육중해 보인다.
손정수의 「교실에서 소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간 실증적인 글이다. 필자는 실제 대학 강의실에서 현대문학 관련 수업을 진행하면서 최근 학생들의 독서 방식의 변화 양태를 살펴본다. 문학장 외부의 자극, 특히 미투운동이 독서 과정에서 비심미적 계기를 활성화시켰을 것임은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풍부한 ‘문학 능력’을 갖춘 고학년일수록 심미적 계기와 비심미적 계기를 선별적으로 활용한 독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따라서 필자가 “학생들의 독서 반응에서 심미적 계기와 비심미적 계기가 경합하면서 그 폭을 확장하고 있”다고 쓸 때, 이 문장은 차라리 수행적으로 읽힌다. 미투운동이나 페미니즘 혹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작금의 비평적 경합이 한국 문학에 약이 될지언정 독은 되지 않을 거란 믿음이 그 안에 숨어 있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김신식의 「노트―문학, 매체성, 화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영상문학과 스토리텔링’이란 강의를 진행하면서 필자가 고민했던 것들을 적은 일종의 메모note다. 그러나 말이 ‘노트’지 이 글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문학의 매체성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 제기이다. “영상 테크놀로지에 깃든 매체성이 문학이라는 매체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박민정과 이상우의 작품들을 분석한 후, 그가 제안하는 개념(이자 실천이기도 한)이 ‘문학-스크린’이다. 그에 따르면 ‘문학-스크린’은 “단지 데이터를 감각하는 문학 수용의 차원을 넘어 지면의 화면화를 도모하는 작가·편집자·디자이너 등 문학제작자의 프로세싱을 의식하는 실천”이다.
이어지는 글 일곱 편은 제도권이나 비제도권 현장에서 학생 및 독자 들과 여러 가지 형태의 교육적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체험적 에세이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글을 읽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미래의 시인들에게 백일장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문학을 돌려주어야 할 차례다”라는 강성은의 발언은 그대로 낭시와 우리의 바람이다. 이 일은 “노동이기 때문에 나는 내 시간을 기꺼이 내놓아야 하고 나의 상상력 일부와 디테일을 내주어야 한다”는 강영숙의 발언은 정직하게 문학 교육을 탈신비화한다. 금정연도 마찬가지다. 문학 교육의 현실보다 육아 현실의 수고로움을 주로 고백하고 있는 이 글의 유쾌한 (그러나 웃을 수만은 없는) 아이러니는 새삼 생명정치 시대 문학의 위상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백은선의 「평범하게 아프고 싶다」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근데 시를 가르치는 게 정말 가능할까 ?//이 질문을 계속 손에 쥐고 가야지. 들여다볼 때마다 빛나는 작은 동전처럼.”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문학 교육이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상호적인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가르치는 자는 항상 회의하는 자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오은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런 마음으로 문학 강연을 하고 , 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혼자이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싶은 마음, 내 안에 무수한 ‘나들’이 있다고 너(들)에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 제도권 교육 현장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임승유의 고민도 절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육받은 목소리’가 ‘진짜 목소리’를 지워버리거나 덮어버리는 사태다. 부디 원하는바 “가장 늦게까지 놀아줄 수 있는 문학작품에 학생들이 노출되게” 하는 교육의 방식을 그가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결국 그렇게 된 학생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 능력’을 갖춘 ‘문학 공동체’의 일원이 될 테니까. 정용준이 수업이 끝나고 나면 혼자 되뇌인다는 애틋한 그 말처럼.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지만 결국 다 만나게 될 겁니다. 다 만났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읽고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반드시 만나게 되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요.”

『문학과사회』 창작란은 풍성하다. 장정일, 신해욱, 장승리, 김종연, 성다영 다섯 시인이 시편들을 보내주었다.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특별히 장정일이 오랜만에 시를 발표하는 지면이 『문학과사회』여서 즐겁다. 고종석, 박형서, 양선형, 김봉곤 네 작가가 단편을 보내주었다. 신예부터 중견까지 골고루 훌륭한 읽을거리들이지만, 역시 고종석이 오랜만에 소설을 발표하는 지면이 『문학과사회』여서 기쁘다.

지난봄에는 유달리 많은 시집과 소설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리뷰 대상작을 선정하는 데 애를 좀 먹었다는 말을 이렇게 고백하는 셈인데, 조해주의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박소란의 『한 사람의 닫힌 문』, 임지은의 『무구함과 소보로』, 송재학의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윤대녕의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 한정현의 『줄리아나 도쿄』,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에 대한 리뷰를 싣는다. 김영임, 오연경, 정기석, 최현식, 김주선, 노태훈, 선우은실, 양윤의 이렇게 여덟 분의 리뷰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결과물에 비해 들이는 품이 많은 일임에도 옥고들을 보내주었다.

〈메타비평〉은 황호덕이 맡아주었다. 애초에 우리는 그에게서 지난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 특집 ‘메타–문학사’에 대한 충고와 격려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보내온 글 「멜랑콜리 이후의 중동태들, 다시 문학사 병원에서」는 그 기대를 훌쩍 웃돌았다. 지난 호 특집에 실린 각각의 글에 대한 논평과 그 글들이 놓인 문학사적 위상에 대한 명쾌한 정리는 물론, 그 자체로 ‘새로운 문학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수행적인 글이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각별히 일독을 권한다.

〈지성〉에는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는 일본계 작가 다와다 요코와 번역자이자 서울대 교수인 최윤영의 인터뷰를 실었다.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고 , 유수의 상들을 수상했음은 물론,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이 작가의 근황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맞춤한 읽을거리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한다. 올해도 『문학과사회』는 두 분의 신인을 문단에 내보낸다. 올해의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자는 김지연 씨(「애도 캠프」 외), 소설 부문 당선자는 이원석 씨(「없는 사람」)이다. 평론 부문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그보다는 이 두 당선자의 분투가 더 기대된다. 아홉번째 ‘문지문학상’ 수상의 영예는 정용준에게 돌아갔다. 자세한 심사 경위는 본문에 실었으니, 여기서는 다만 열한 편의 작품이 모두 출중해서 심사에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만 전한다. 세 수상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 편집동인 김형중

 

문학과사회 보기 -> http://moonji.com/book/19545/

목차

문학-연결

김미정
아리아드네의 실―독서할 수 있는/없는 시대의 회로 속에서

손정수
교실에서 소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김신식
노트―문학, 매체성, 화면의 관계에 대한 고찰

강성은
백일장에 가기 위해 시를 쓰나요, 시를 쓰기 위해 백일장에 가나요?

강영숙
마이 에듀케이션

금정연
센티멘털 에듀케이션

백은선
평범하게 아프고 싶다

오은
하이픈hyphen의 마음으로

임승유
늦게까지 놀아줄 수 있는 친구

정용준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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