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행

이진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5월 10일 | ISBN 9788932035352

사양 · 171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저길 봐, 바다와 하늘이 맞닿았잖아.
아마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맞닿을 수 있을지 몰라.”

어른들의 무관심과 폭력을 피해 거리로 나선 ‘소미’와 ‘세명’은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힘차게 페달을 굴린다, 저 멀리 바다를 향해―

 

몇 년 전 어느 겨울밤, 작가는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가출한 학생을 찾아 나선 한 선생님을 따라 파출소에 동행하게 된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계절에, 더욱이 그 늦은 시간에 학생은 왜 집을 나오게 되었을까? 아니, 왜 집을 떠나야만 했을까?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이진준의 장편소설 『바다행』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2019년 현재 한 해 3만 명가량의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아이들은 대체 왜 집을 뛰쳐나오는 것일까, 집을 나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소설 『바다행』은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결코 드물지 않은 청소년 가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 이진준은 집을 나오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이 작품을 통해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의 무관심과 의붓오빠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피해 집을 뛰쳐나온 신소미,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집을 나가버리고 새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김세명. 작가는 소미와 세명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려고” 두 아이를 따라 거리로 나섰고, 오늘도 집을 뛰쳐나와야만 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담아내기 위해 몇 년에 걸쳐 글을 쓰고 또 고쳤다. 그 과정은 행복한 동시에 안타까웠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무관심과 폭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생각한다.

꽃은 다 비바람에 흔들리고 때로는 꺾이며 힘차고 아름답게 피어나지요.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 역시 어찌 저절로 될까요.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지루한 시간을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견뎌낼 때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되겠지요. 10대라는 깊고도 거친 강을 건너고 있는 세상의 모든 딸과 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 이야기가 상처 입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아니라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말」에서


길에서 만난 ‘꽃’과 같은 아이들

 

편의점에서 빵을 훔치는 세명을 우연히 본 소미는 아이를 불러 세워 절반을 빼앗아 먹지만, 이내 가지고 있는 김밥을 선뜻 내어주며 집으로 가라고 채근한다. 세명은 그런 소미를 따라나서고, 둘은 어느 병원 지하실로 내려가 쌓아놓은 종이박스 안에서 지친 몸을 누인다. 그렇게 세명과 소미는 거리에서 만난다. 말은 거칠게 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소미를 따라 세명은 거리 곳곳을 누비며 폭력을 휘두른 아빠를 생각하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즐거운 마음이 더 크다. 게다가 소미에게는 자신의 꿈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다. 세명의 꿈은 초콜릿 공장 사장이 되어 가난한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실컷 나누어주는 것이다. 소미 역시 붙임성 있고 밝은 성격의 세명이 싫지 않다. 거리에서 노숙을 한 지 꽤 된 소미는 그동안 험한 꼴을 여러 번 당할 뻔했고, 그날도 세명이 아니었다면 낯선 남자에게 끌려갈 뻔했다. 두 아이는 친 오누이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도시는 집을 떠난 아이들이 살아가기에는 모질고 험하다. 잠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아이들은 장례식장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버려진 차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하며 온갖 고생을 다 하지만, 두 아이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부모로부터 ‘방치되고 버려진’ 상실감에서 비롯된 마음의 상처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며 모진 말을 늘어놓는 아빠를 증오하는 세명, 엄마가 죽기 전에는 더없이 자상했지만 새엄마를 만나면서 변해버린 아빠가 원망스러운 소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배고픔이나 노숙의 고통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 고통에 대해 이제껏 제대로 표현하지도 위로받지도 못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리에서 만난 세명과 소미는 서로에게 자기 상처에 대해 고백하고, 그 상처를 서로 보듬으며 위로를 건넨다. 어른에게 받은 상처를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치유해나가는 것이다. 소미와 세명은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세상의 끝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굴린다. 바다를 향해.


아이들은 성장한다, 흔들리면서 피는 꽃처럼

 

아이들은 바다를 향해 달린다. 세상 거칠 것이 없다.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두 아이는 방파제 끝으로 달려가 고함을 지르고 백사장으로 달려가 바다로 뛰어든다. 그러다가 세명은 문득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한 필리핀 출신의 새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에게 사랑을 줬기 때문이다. 엄마를 잊어버릴까 봐, 엄마에게 미안해서 새엄마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세명은 비로소 그녀를 그리워하고 받아들인다. 소미 역시 바다 앞에서 자신의 기억들을 정리한다. 아빠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쓴 자신, 인정받으려고 애쓴 자신. 하지만 그 아빠는 새엄마가 들어온 이후 자신을 외면했고, 그런 아빠마저 지금은 죽고 없다. 기억 속 아빠를 떠나보내고 이제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소미는 직감한다. 세명도 소미도 부모를 원망하는 동시에 사랑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거리 위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인정하는 한편, 마음속에서 서서히 솟아나오는 희망의 씨앗을 다독이기 시작한다. 꿈을 이야기하고 행복에 대해 말한다. 거리의 두 아이는 그렇게 성장한다.
작가는 두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좋은 어른들도 만나게 한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을 때 장례식장에서 만나 아침을 먹여준 아주머니, 참으로 싸온 국수를 말아 주는 시골 어른들, 그리고 폐가에서 잠을 잔 아이들을 발견해 집 밥을 먹여주고 고추도 따게 하고 용돈도 주고, 마치 외할머니 댁에 놀러온 것마냥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해준 할머니 등이 그러하다. 이처럼 소미와 세명의 여행길에는 거칠고 인정 없는 어른들도 숱하게 많지만, 그들의 여정에 실낱같은 휴식을 제공한 어른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소미는 시골 마을에서 혼자 적적하게 자식들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를 통해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따스한 희망,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마치 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따스한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주는 친구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여정은 여전히 싸늘한 겨울이다.


10대라는 깊고 거친 강을 지나는 세상의 모든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야기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소미와 세명이 어느새 부쩍 성장했음을 눈치채게 된다. 특히 독감에 걸린 세명을 허름한 여인숙에 눕혀놓고 밤새 간호해주는 소미, 광한루에 놀러갔다가 벤치에서 잠든 소미의 얼굴 위로 내리는 빗줄기를 손으로 가려주는 세명, 버려진 차 안에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에 차서 눈물 흘리는 세명에게 부모 대신 “미안해” 하고 사과하는 소미, 마지막 남은 돈으로 살아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사서 바다에 풀어주는 소미의 모습을 바라보는 세명, 그리고 이 이야기의 백미로 여겨지는 마지막 대목. 소미가 길에서 잠든 세명을 지그시 바라본 다음 집에 갈 수 있도록 경찰서에 연락해주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묵직한 감동을 느낄 것이다. 소미와 세명은 서로의 여정에서 위로가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이제 서로에게 소년이, 소녀가 되어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느덧 이야기의 결말에 다가서게 되는데, 불빛이 아름다운 저녁 부두에서 소미는 이제 세명과 이별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세명에게는 아직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탁월한 감각을 발휘하는데, 마치 영화의 트릭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버랩시킨다. 세명이 눈을 뜨니 경찰서에 누워 있고 소미는 사라진 상태다. 눈물을 흘리며 소미를 애타게 찾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전화상에서 소미와 이별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 이후 그것이 세명의 꿈이었음을 소미의 혼잣말을 통해 암시하고, 이어 소미가 세명을 데려가라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로 향해 가는 마지막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러한 장치로 인해서 독자들은 이미 소미와 세명의 이별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까운 미래이기에 더욱 안타깝고 아련하고 또한 아름답게 여겨진다. 물론, 소미와 세명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아이는 좀더 성장한 뒤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에……


■ 책 속으로

여자애는 남자애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문득 정말 이런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훨씬 덜 외로울 것 같았다. 동생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가출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순간 남자애가 따라와준 것이 고마웠다.
남자애가 자다 말고 여자애의 품에 파고들면서 “엄마, 엄마” 하고 잠꼬대를 했다. 여자애가 그런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참 따뜻했다. 그 애를 안은 채 여자애는 곧 잠이 들었다. (31쪽)

 

생각할수록 세상이 얄궂기만 했다. 남자애 아버지는 제 자식을 개 패듯이 패고 친엄마는 바람이 나서 자식을 내팽개치고 새엄마는 아이를 끼고 돌고. 도대체 어른이란 게 뭔지 여자애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모습이 진짜 어른의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 진짜 부모 모습인지 그려보려 해도 그려지지 않았다.
“하여튼 다들 개새끼들이야.”
여자애는 결론을 내리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51~52쪽)

 

마침내 멀리서 바다 냄새가 풍겨왔다. 콧구멍으로 비릿한 냄새가 스며들자 아이들은 더욱 세게 달렸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다.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이 두 아이를 사로잡았다. 자전거 위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어디든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70~71쪽)

 

“아빠가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엄마도.”
“짜식.”
그 말을 하며 여자애가 남자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만두자. 마음만 심란해진다.”
그 말에 남자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진심이야.”
잠시 후 여자애가 남자애의 젖은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빗소리가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다. 남자애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여자애의 말에 남자애를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 한쪽이 깨져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148쪽)

 

여자애가 남자애의 옆구리를 가볍게 쳤다. 두 아이는 서로 쳐다보며 웃고는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끝에서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도 끝없이 가다 보면 저 하늘과 바다처럼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을까?
여자애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른과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수평선 같은 것이 우리 삶에도 있을까? 이 아이와 나도 언젠가 저 수평선처럼 만날 지점이 있을까? (152쪽)

 

“어디야?”
“어디면? 여행은 여기까지야. 집에 돌아가. 남은 여행은 이다음에 다시 하자. 니 전화번호 내가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절대로 번호 바꾸지 마. 알겠지? 생 까면 죽어.”
여자애가 협박하듯이 말했다.
남자애는 여자애가 앞에 있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는 가출하지 마. 약속해.”
여자애가 말했다.
“약속할게. 그런데 누난 어디야? 언제 올 거야?”
“못 가. 초콜릿 공장 지으러 가야 돼.”
“나도 같이 데려가.”
“안 돼. 넌 배를 타야 되잖아.” (168쪽)

목차

바다행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이진준 지음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한국예총에서 발행하는 『예술세계』 신인상(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예술세계』 편집위원이며,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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