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

허균에서 정약용까지, 새로 읽는 고전 시학

정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12월 10일 | ISBN 9788932034928

사양 변형판 125x200 · 223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나는 조선 사람이니 즐겨 조선의 시를 지으리!”
허균, 이용휴, 성대중,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조선의 명문장가 8인이 전하는 시학, 그 묵직한 울림!

 

방대한 옛 문헌들을 연구해 현대적 감각을 담은 해석으로 생기를 불어넣고, 높았던 고전문학 세계의 문턱을 낮춰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온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신간 『나는 나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활발한 연구와 소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조선 후기 내로라하는 시인 여덟 명의 시론을 압축해 소개한다. 허균, 이용휴, 성대중, 이언진,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빼어난 글솜씨로 잘 알려진 이들 조선 후기 문장가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민 교수는 시, 산문, 편지, 평설 등 수십 편의 문헌을 고증하여 그들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하나의 시론으로 보여준다. ‘어떻게 써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시인가’라는 화두는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이 중요한 질문이다. 이 책에서 다룬 이들의 시론은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같다. 지금 여기의 시, 조선 사람의 정신과 얼이 담긴 시, 거짓 없고 솔직한 시,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시를 추구한 것이다.


 

시를 잘 쓰고 싶거든 ‘나’를 먼저 찾아라

 

책 제목 『나는 나다』가 시사하듯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나’다. 시를 쓰는 데 있어, 조선 전기에는 형식지상주의에 빠져 있었고 조선 중기에는 학당풍이 성행했으며, 18세기 이후 비로소 조선풍, 이른바 시를 쓰는 주체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제 ‘나는 누군가,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옛것을 답습하는 대신 ‘나’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시도가 일어났으며 조선에서 한시를 짓는 일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치열한 모색이 이루어졌다.
허균은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과 두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옛사람의 글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승전결의 문장 구성이나 표현 방식이 아니라 그 정신이다. 휼륭한 시인이 되고 싶다면, 옛글을 따라 하거나 흉내 내는 데 그쳐선 안 되며, 일상에서 끌어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덕무는 아무리 시가 좋다 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 ‘나’의 진짜 슬픔과 기쁨이 담기지 않았다면 가짜 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규격화된 좋은 시만 따라 하느라 저만의 진짜 시를 잃고 말았다. 시는 좋은데 내가 없다. 내가 없으니 좋아도 허깨비 시에 불과하다.” 참으로 좋은 시를 쓰고자 한다면 남을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담아내야 한다.
이용휴 역시 좋은 시란 남들 눈을 놀라게 할 신기한 무엇이 아니라, “내 안에서 거짓 나를 몰아내고 참 나를 깃들이는 시,” “내가 나와 만나 대화하고, 나를 찾아 내가 되는 시”라고 강조한다. 이옥은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이언인」을 통해 시대별로 시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가 따라야 할 유일한 전범은 “오로지 진실의 언어를 말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곳은 중국이 아니고 일본도 아닌 조선의 한양성이 아닌가? 왜 지금의 나더러 그때를 본뜨고, 여기의 나한테 저기를 흉내 내라고 강요하는가? 나는 나고, 여기는 여기고, 지금은 지금이니, 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나의 목소리를 내야겠네.”
당대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천재 시인 이언진은 파격적인 시상과 대담한 시어, 기존의 시 문법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실험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대표작 「호동거실」에서 그의 문학 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앞선 문단의 대가들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좋은 시를 쓰려면, 시에 내 목소리를 실으려면

 

좋은 시를 쓰고자 한다면 이러한 깨달음에 덧붙여 학력과 식견, 공부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옛것을 널리 통하여 익히는 데서 학력은 갖추어진다. 그리고 선배들의 시를 많이 읽고 음미해야 하며 좋은 스승을 만나 배움으로써 식견이 생겨난다. 이에 더해 끊임없는 습작과 퇴고를 하는 공부 과정이 병행되어야만 지극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성대중은 수사의 기교가 아닌 내면의 충실을 중시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자극적인 언어를 싫어했으며, 온유돈후한 공부의 바탕 위에서 은은히 울림을 주는 묵직함을 선호했다. 그런 무게와 울림을 지니려면 시인의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은 정약용의 시론과도 상통한다. 정약용은 시의 길, 문학의 길과 삶의 길을 구분하지 않았다. “사람이 되어야 시도 된다. 뜻이 서야 시가 산다. 좋은 시를 쓰고 싶으면 좋은 생각을 먼저 품어라.” 정약용은 표현의 기교는 가장 말단의 일이며, 시를 잘 쓰고 싶다면 우선 정신이 건강하고 뜻이 바로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제가 또한 시인이란 자기만의 맛과 빛깔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가 힘이 있으려면 식견을 기르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이 책에서 소개한 8인의 시론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때 그들의 고민은 몇 백 년 후의 우리와도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 보인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보여주기 위한 것, 정형화된 것, 화려한 기교에 치중한 것을 추구하지 말고 자기 본연의 목소리를 내는 것, 내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론은 비단 시 짓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정약용이 말했듯 이러한 시를 둘러싼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시인은 진실을 담아 시대를 비출 뿐, 당위로 가공의 현실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시인의 목소리는 시대의 거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정민 교수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 조선 후기 문장가들의 고뇌와 삶의 흔적을 생생한 톤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며, ‘나는 나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듯하지만 잊히기 십상인 진리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좋은 시는 평범 속에 비범을 담고 있다. 일상에서 끌어왔다 해서 천박하지도 속되지도 않다. 때로 기이한 것을 끌어와도 괴벽한 데로 흐르는 법이 없다. 그 사물을 노래하되 그 외양에 집착하여 얽매이지 않는다. 길게 설명하는 듯싶어도 언어의 가락은 그대로 살아 있다. 보다 나은 표현을 위한 배려가 전달하려는 이치를 손상시키지 않고, 더욱이 자신의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러할 때 시는 비로소 나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 그리하여 그 시를 읽는 이들이 시를 쓴 나의 마음자리를 알고, 나의 사람됨을 알게 되는 시, 이러한 경계가 바로 허균이 추구했던 ‘허자지시’의 궁극적 도달점이었다. (1장 「남의 집 아래 집 짓지 않는다」, 27쪽)

이용휴는 늘 ‘나’를 앞세운다. 내가 중요하지 남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귀할 뿐 사물은 귀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가장 잘 알고 가깝고 귀한 저 자신을 내버리고, 오로지 알량한 남 비위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하고픈 말이 있어도 꾹 참아 삼킨다. 그러면서 남 좋아할 말만 한다. 비위를 맞춰 환심을 사서, 스스로 노리갯감이 된다. 몸뚱이는 내 것이 분명한데, 하는 짓은 남의 것이 틀림없다. 내가 해서 기쁜 것을 하는 대신, 남이 보아 기쁠 것만 한다. (2장 「나는 나다」, 50~51쪽)

모두들 튀고 싶어서 괴상하고 현학적인 논리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 애쓸 때, 그는 묵직하고 진중했다. 가볍지 않았다. 그가 18세기 시단에 무게 중심을 잡아준 셈이다. 그의 시학 주장은 듣기에 밋밋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잊기 쉽고 간과하기 쉬운 것들에 대한 고려를 일깨운다. (3장 「시로 징징대지 마라」, 58쪽)

이언진은 이용휴의 시 제자다. 어떤 사람이 이용휴에게 물었다. “그의 시재는 어떻습니까?” 이용휴가 손바닥으로 벽을 문지르며 말했다. “자네, 이 벽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가? 그는 이 벽과 같네.” 이용휴는 이언진의 문집에 써준 서문에서 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세상에 알려짐을 구하지 않았다. 알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을 이길 마음도 없었다. 족히 이길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기로 유명한 이용휴가 자신보다 32살이나 어린 이언진을 이렇게 고평했다. (4장 「나는 투식을 거부한다」, 85쪽)

옛사람을 따라 하면 근사하다고 하고, 제소리를 내면 왜 이렇게 하느냐 야단친다. 규격화된 좋은 시만 따라 하느라 저만의 진짜 시를 잃고 말았다. 시는 좋은데 내가 없다. 내가 없으니 좋아도 허깨비 시에 불과하다. 진짜가 아닌데 좋을 수도 있나? 가짜를 하면 떡을 주고, 진짜를 하면 야단을 맞는다. 그래서 진짜 슬픔과 진짜 기쁨은 깊이 감춰두고, 떡이 되고 엿이 되는 가짜 슬픔과 가짜 기쁨을 잘 포장해서 펼쳐 보인다. 어른들이 좋아하고, 세상이 기뻐하니 이보다 큰 보람이 없다. 과거에 급제하려면 진짜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는 사이에 진짜 나는 영영 사라지고, 가짜 나만 설쳐댄다. (5장 「진짜 시와 가짜 시」, 117쪽)

맛이란 변화하는 사물과 만나 내 눈과 내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작용 같은 것이다. 혀끝만으로 맛을 말하는 것은 몰취미한 일이다. 공부도 제대로 하면 맛이 있다. 일도 할 맛이 나야 한다. 시도 쓸 맛과 읽을 맛이 나야 마땅하다. 맛없는 시, 맛없는 공부, 맛없는 일은 맛도 멋도 다 없다. 네 맛도 내 멋도 없는 시를 써서 무엇하며, 읽기는 누가 읽겠는가? 맛있는 시를 판별하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있다. 굳이 방법을 따질 것도 없이 혀끝이 먼저 알고 얼굴 표정이 덩달아 말한다. (6장 「시의 맛과 빛깔」, 146~47쪽)

지금은 춘추전국시대가 아니고, 당나라 송나라도 아니요, 다름 아닌 청나라 건륭 연간이 아닌가? 이곳은 중국이 아니고 일본도 아닌 조선의 한양성이 아닌가? 지금 여기를 사는 나더러 어째서 그때 거기처럼 시를 쓰지 않느냐고 말하면 곤란한 것이 아니겠나? 왜 지금의 나더러 그때를 본뜨고, 여기의 나한테 저기를 흉내 내라고 강요하는가? 나는 앵무새는 싫네. 광대놀음은 하기 싫으이. 나는 나고, 여기는 여기고, 지금은 지금이니, 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나의 목소리를 내야겠네. (7장 「공작새가 눈 것이 똥인가 부처인가」, 183쪽)

정약용은 재주 소리를 혐오했다. 번뜩이는 재기로 시 짓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학문하듯 시를 썼다. 진정성을 벗어난 괴팍함을 싫어했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그의 시론은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정공법으로 설파하고 있어 감동스럽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당연한 것을 우습게 알고, 새롭고 괴상한 것만 찾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 다산에게 ‘왜 시를 쓰는가’ 하는 질문은 ‘왜 사는가’와 같은 의미다. ‘어떻게 쓰는가’는 ‘어떻게 사는가’와 함의가 같다. 그는 시의 길, 문학의 길과 삶의 길을 구분하지 않았다. (8장 「좋은 시를 쓰고 싶은가」, 201쪽)

목차

서문

1장 남의 집 아래 집 짓지 않는다
허균(許筠, 1569~1618)의 「시변詩辨」 외
높은 안목, 활달한 자유주의자 | 허자許子의 시를 짓겠다 | 시에 내 목소리를 실으려면 | 깨달음이 없이는 | 이무기의 못 이룬 꿈

2장 나는 나다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 「환아잠還我箴」 외
문단의 저울대가 그의 손에 있었다 | 참 나로 돌아가자 | 나를 찾아 내가 되는 시 | 따라 하지 않고 제 말을 한다

3장 시로 징징대지 마라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의 「영처집서嬰處集序」 외
날렵한 논리와 깊은 행간 | 시는 언어의 엑기스다 | 시와 사람이 같아야 | 부귀어를 써야지

4장 나는 투식을 거부한다
이언진(李彦瑱, 1740~1766)의 「호동거실衚衕居室」
벽을 걸을 수 있는가 | 불 속에서 건진 원고 | 정문일침 촌철살인 | 사물의 행간 읽기

5장 진짜 시와 가짜 시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선서재시집서蘚書齋詩集序」 외
해오라기 같은 사람 | 진짜 시와 가짜 시 | 내 시는 내 얼굴, 답습할 수 없다 | 어린이와 처녀처럼

6장 시의 맛과 빛깔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시선서詩選序」 외
샛별처럼 빛나고 반짝였다 | 물의 맛을 아는가? | 천성이 다른 것은 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 시는 삶 속에서 생겨나는 것

7장 공작새가 눈 것이 똥인가 부처인가
이옥(李鈺, 1760~1815)의 「이언인俚諺引」
18세기 문단의 이단아 | 「일난」, 시는 내가 짓는 것이 아니다 | 「이난」, 남녀의 정이 가장 진실하다 | 「삼난」, 이름이 어찌 촌스러울 수 있는가?

8장 좋은 시를 쓰고 싶은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시선서詩選序」 외
시와 학문은 두 길이 아니다 | 문장은 꽃과 같네 | 불우해도 아무 후회가 없습니다 | 뜻이 서야 시가 산다

작가 소개

정민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은 책으로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죽비소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한시 미학 산책』 『삶을 바꾼 만남』 『일침』 『오직 독서뿐』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우리 한시 삼백수』 『책벌레와 메모광』 『우리 선시 삼백수』 『다산의 제자 교육법』 『돌 위에 새긴 생각』 『석복』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등이 있다. 우호인문학상, 지훈국학상, 월봉저작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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