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24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11월 30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96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겨울호를 펴내며: 여기 귤 한 조각이 있다

논평을 업으로 삼는 평론가가 바보 되기 십상인 표현이 있다. ‘뭔가 달라지고 있다.’ 타인의 글말을 평가하지 않는 척하지만 은근히 들여다보는 논평가들의 리그. 이 안에서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관점은 ‘실은 예전부터 있어온 시도입니다’라는 그것에 밀리기 일쑤다. 한데 국내 개봉작을 챙겨 보면서 나는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1 바보 되기 쉬운 표현을 꺼내고 싶었다. 박평식 영화평론가가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2018)를 보고 남긴 20자 평은 근래 한국 영화의 재현에 관한 내 속마음과 비슷했다. “닮았으나 다르게 흔든다.” 이는 『문학과사회 하이픈』 특집 기획인 ‘재현–현재’와 결부된 내 소신이기도 하다. 소신을 상세히 밝히기 전 영화를 재료 삼아 재현의 근황을 좀더 펼쳐보고자 한다.
근작들에서 두드러진 재현의 양상은 ‘실종을 시도하기와 구원’이다. 일단 실종은 타인이 초래하는 범죄 가능성에, 구원은 종교에 밀착된 용어다. 그러나 거론할 작품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실종의 의미를 남달리 다룬다. 「미씽: 사라진 여자」(이언희, 2016)에서 지선과 한매의 관계는 실종된 자식을 찾아 나서는 엄마, 누군가의 자식을 유괴한 조선족 여성 간의 적대로 끝나지 않는다. 한 아이의 실종은 두 여성의 사연을 헤아리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스릴러의 얼개를 고수하되, 살아온 처지가 다른 두 여성의 유대 가능성을 놓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여운을 선사한다. 크랭크인 전, 두 여성의 유대를 암시하는 마무리 때문에 충분한 제작비 마련에 난관이 있었다는 비화는 역설적으로 영화 속 결말의 의미를 더 주목하게 만든다.
「미쓰백」(이지원, 2018)에서 여성의 유대감은 나이 차, 세대 차를 초월한다. 살인 미수 전과자 상아는 학대에 시달리는 소녀 지은을 발견하고 유괴에 가까운 시도를 벌인다. 국내에서 리메이크된 바 있는 일본 드라마 〈마더〉(사카모토 유지 원작, 2010)처럼, 「미쓰백」은 소녀에게 쏟아지는 가혹 행위를 주시하며 소녀를 걱정하는 누군가의 유괴가 차라리 나은 상황임을 조성한다. 이 영화에서 상아의 준(準)유괴를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상아는 지은처럼 자신을 향한 성폭력을 방어하다 결국 전과자가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어른인 여성과 소녀인 여성의 관계를 모성성으로 쉬이 설정하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김소희의 지적처럼 「미쓰백」은 “모성을 새롭게 쓰기 위해 일단 모성을 쓰는 것을 거부”2하려는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는 이른바 ‘어바웃 어 보이’류의 작품과 달리 연령대와 그에 따른 경험치에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지은은 어른인 상아에게 종종 통찰력과 용기 어린 말을 건네고, 상아는 지은의 말에 기운을 얻어 동반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한다. 지은을 악독한 어른들의 품에서 실종시켜서라도.
어른이 한 소녀의 실종을 도우며 소녀를 통해 구원의 감정에 가닿는 맥락은 해외 영화에서도 발견된다. 바로 「너는 여기에 없었다」(린 램지, 2018)이다. 전쟁터와 가정 폭력의 상흔을 안고 사는 살인청부업자 조는 실종된 소녀 니나를 찾아 나선다. 국내외 영화 저널을 통해 거론됐지만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B급 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해 「택시 드라이버」(마틴 스코세이지, 1976)를 일부 변용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 초반부에 잠깐 언급된 「사이코」(앨프리드 히치콕, 1960)가 영화 속 두 주인공을 새로이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어찌 보면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자신의 어머니와 처음 만난 여성 마리온을 해친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역발상에서 비롯된 영화다. 큰 집에서 고령의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조는 노먼 베이츠와 닮았다. 노먼 베이츠가 다중인격, 즉 해리성정체장애에 시달렸다면 조는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 누군가를 죽이며 돈을 벌지만 얼른 이승을 뜨고 싶은 조는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이때 화면에 자살 시도를 하는 조의 모습이 비치면서 그가 목숨을 끊을 수 없도록 영화는 나름의 장치를 마련한다. 장치는 조의 어머니와 니나다. 두 사람이 조의 자살을 직접 막진 않지만, 우연을 통해 조의 어머니와 니나는 조의 구원자가 된다. 특히 니나는 극적인 반전을 이끄는 가운데 스릴러의 속성과 살인청부업자인 조에게 으레 예상된 행위 도식을 깨는 인상적인 여성이다. 소녀 니나는 「미쓰백」의 지은이 상아에게 그랬듯, 우울감에 찌든 어른 조에게 구원의 한마디를 던진다. 영화는 스티븐 쇼어의 사진이 생각나는 사진적 장면을 통해 조의 구원자인 니나와 조가 행할 실종에 간접적인 응원을 보낸다.
「박화영」(이환, 2018)과 「죄 많은 소녀」(김의석, 2018)는 「미쓰백」 「너는 여기에 없었다」와 사뭇 다른 정조(情操)를 풍긴다. 「박화영」은 부모의 곁을 떠나 사실상 실종되고 싶은 또래를 받아주는 십대 여성 박화영의 이야기다. 화영은 자신의 집을 찾는 학우들에게 엄마로 불리며 즐거워한다. 화영은 모두의 엄마이고 싶으면서도 특히 무명 연예인인 미정의 엄마이고 싶다. 카메라는 퀴어 관계가 연상되는 화영과 미정의 감정 변화에 주목한다. 그런데 미정은 자신에게 유독 약한 화영의 마음을 간파하여 또래에게 우위를 확인받고자 화영을 이용한다. 미정의 마음을 읽은 화영은 미정의 곁을 지키며 감내한다. 화영은 자기 집에 드나드는 친구들이나 미정이 본인을 삶의 구심점이자 구원자로 생각하는 줄 알고 엄마 역할을 수행하나, 훗날 이용만 당했음을 알고 환멸감에 빠진다.
「죄 많은 소녀」는 딸 경민의 실종 및 죽음에 아파하는 경민 엄마, 경민의 죽음에 관련 있다고 모함당한 고교생 영희에 대한 이야기다. 「곡성」(나홍진, 2016)의 하이틴 버전으로 봐도 무방한 이 영화는 여태껏 살핀 작품 중 가장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의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유제분·이훈상 옮김, 현대미학사, 1997)이 떠오르는 「죄 많은 소녀」는 십대 여성 공동체 내부의 죄의식, 감정의 전염, 정화, 구원을 조망한다. 영화는 한 학급에서 벌어진 일들을 마녀사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해프닝으로 나타낸다. 「죄 많은 소녀」에서 십대 여성들이 공동체에 쏟아낸 요동치는 감정과 행위는 부족의 의례를 보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영희는 윤리적 화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또래의 가학에 맞대응하는 자기 핍박을 시도한다. 영희의 자기 핍박은 공동체 내부에 반향과 충격을 낳고, 영희를 향한 시선은 180도 달라진다. 영희 일을 비롯하여 경민의 죽음까지 영화 속 남성 인물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사건을 처리하지만, 영희는 수많은 오해와 가해를 견디며 왜 경민이 비극적인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진정한 설명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상은 경민 엄마다. 모두 패배자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감독의 인터뷰를 상기할 때, 경민의 실종·죽음에 스민 연유를 내밀히 품어온 영희의 타들어가는 목소리는 부채감을 덜어내고 구원적 감정을 느끼려는 이들의 기대를 배반한다.
이처럼 근래 실종을 재현하는 영화는 과거의 작품들과 “닮았으나 다르게 흔든다”. 십대에게 암울한 사회 현실을 증언토록 하는 영화가 늘어났고, 납득 가능한 실종 시도와 삶의 구원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여성의 유대와 연대를 도모하는 작품이 연이어 등장했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자면 한국 영화를 비롯 대중문화와 사회 현상에서 곱씹어볼 대목은 ‘가시권에서 스스로 멀어지려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2017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전력실종〉은 집과 회사에서 천대받는 한 가장이 실종을 제안하는 할머니를 만나 스스로 사라져버리는 서사를 펼친다. 소위 자기 실종은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사진가 스테판 르멜의 『인간증발Les evapores du Japon: Enquete sur le phenomene des disparitions volontaires』(이주영 옮김, 책세상, 2017)에 나오는 ‘죠–하츠(烝發, 증발)’라는 용어와 연결된다. 죠–하츠를 감행하는 일본인들은 경제 활동 불능 때문에 겪는 ‘수치심의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제 자신에게 실종을 선언한 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동네로 숨어버린다. 포토저널리스트 후카다 시호는 2014년 「일본의 일회용 노동자: 넷카페 난민」이란 작품을 통해 경제적으로 실패한 인간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왜 24시간 인터넷 카페에 자발적으로 숨어 사는지 경청한다. 이에 덧붙여 『사회학적 파상력』(문학동네, 2016)에서 박솔뫼의 소설을 통해 사라지려는 청년의 세태를 ‘탈존’으로 명명한 사회학자 김홍중의 견해는 시각예술가 히토 슈타이얼이 「지구의 스팸: 재현에서 후퇴하기」3라는 글에서 강조하는 ‘가시권에서 퇴장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이처럼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서 비롯된 가시권에서 맹렬히 벗어나려는 부재를 모색하며, 시각적 재현의 영역에서 사라지길 욕망하는 ‘자기–실종자’가 자주 등장하는 점을 나는 간과할 수 없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오늘날 사회에서 재현은 어떻게 통용되고 있을까. 재현은 사회가 구성하는 가시권에서 퇴장과 부재를 선언하는 현대인의 실천을 읽는 수단인가. 재현을 이러한 실천과 연관된 숨김/드러냄의 경계를 오가는 삶의 한 관측으로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는 영화를 통해 사회학의 렌즈로 범박하게 재현의 현황을 살폈음을 시인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시인’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일찍이 재현에 관해 고민해온 문학·예술의 목소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간 내 삶에서 재현은 조금 먼 화두였다. 나는 3년 전 문학 일을 시작하면서 재현을 둘러싼 논의에 접근했다. 작품과 작가란 무엇인지 하나하나 익혀가는 가운데 문학이 가까이하고 한편으론 멀리하는 현실과 사실의 관계를 고심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호를 기획하면서 동료들이 품어온 시각을 통해 재현에 대한 생각을 하나둘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문학과사회 하이픈』에서 원고로 함께한 필자들의 예민하고 예리한 시선 덕분에 문학·예술에서의 재현이 지닌 이점과 맹점, 쟁점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서영인, 박인성, 이경재, 노태훈, 오혜진은 최근 문학적 재현의 논점을 살피는 가운데 우리가 중요한 변곡점에 위치해 있음을 꼼꼼하고도 과감하게 역설한다. 문학적 재현에 대한 고민은 평론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한유주, 백민석, 박상영, 장강명은 작품 쓰기라는 현실에서 출발해 각자 느껴온 재현에 관한 복잡다단한 심정을 상세히 소묘한다. 거친 정리임에 거듭 양해를 구하고 의견을 밝히자면 필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닮았으나 다르게 흔든다”란 말을 재차 떠올렸다. 필자들은 최근 문학과 연계된 현장 곳곳에서 나타나는 ‘젠더적 전환’을 어떻게 좌시하지 않을 것인가 궁리했다. 아울러 이 전환과 더불어 최근 한국 문학이 뭔가 달라지고 있음을, 기존 재현–상(像)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문학의 사례가 많아짐을 언급했다. 필자들은 필자 본인을 뒤흔드는 현실, 그 현실이 재현된 작품들을 만나는 가운데 특히 독자들이 참여해 만들어내는 문학판의 ‘뭔가 다른’ 형국을 간과하지 않았다. 필자들은 작가–작품–독자–독서–체험으로 나타나는 뭔가 다른 피드백의 형국에서 발생한 동력이 지속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뭔가 다른 형국이 쉽게 불타고 사그라지는 사회적 열기의 주기에 복속되지 않도록 필요한 물음을 문장 곳곳에 넣어두었다. 이를 독자들께서는, 한국 문학이 ‘젠더적 전환’을 맞이하면서 한 작품을 다른 작품과 연결해 읽는 체험이 왜 젠더 이슈에 대한 섬세함을 기르는 중요한 실천인가(서영인), 요즘 작가들이 당대의 매체와 그 언어에 내장된 ‘감각’을 독특하게 인식하고 작품으로 담아내는 지점을 왜 주목해야 하는가(박인성), 오늘날 작가들은 어떠한 글쓰기를 통해 재현에 대한 기존 정의를 묘파하며, 이 같은 재현의 현황이 형성하는 고민의 지대는 무엇인가(이경재), 젠더와 관련된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양분된 구도에 치우쳐 간과한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태도는 오늘날 한국 문학장에서 왜 중요한가(노태훈), 최근 ‘퀴어 서사’에 대한 다양한 층위를 하나하나 검토할 때 한국 사회와 한국 문학장은 어떻게 퀴어의 복잡성과 입체성을 일정하게 규준·규정하는 한계를 낳는가(오혜진), 작가가 맞닥뜨린 사고와 사건의 충격으로 확고히 생각해온 바를 돌아볼 때 다가오는 윤리적 문제는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어떠한 계기를 마련하는가(한유주), 작가의 언어란 사회적 공기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젠더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의식해야 할 고민거리는 무엇인가(백민석), 작가의 삶에서 비롯된 재현의 오해와 오인을 곱씹을 때 그럼에도 작가가 자신을 써가는 시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무엇인가(박상영), 한국 문학에서 나타나는 재현의 유형을 살필 때 소재와 주제가 국한된 국내 문학장 내 생산구조의 문제는 없는가(장강명) 등의 화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문학과사회』는 재현 자체가 지닌 민감한 지점, 오늘날 한국 문학에서 재현을 예민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재론을 시도해보자는 의도를 다채로운 시선으로 독자들께 공유하게 되었다. 여기에 미술평론가 김정현은 전시장 체험을 빼놓고선 현대미술에서의 재현을 논할 수 없는 딜레마를 입체적인 분석과 현장기를 통해 논한다. 이는 SNS 시대의 현대미술이 꺼낸 화두와도 이어진다. 전시장 안팎에서 조성되는 체험과 재현의 의미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김정현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풍자도 곁들인다. 그리고 나는 법 현장에서 감정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감정사회학의 렌즈로 되짚어보았다. 『하이픈』으로 재현의 여러 측면을 둘러보고 감안해보았다면 본권에 수록된 문태준, 진은영, 이성미, 유형진, 황유원, 안태운, 김복희, 임지은, 장혜령의 시와 백가흠, 이민진, 진연주의 소설로 재현의 양상을 확인하는 독서를 권한다. 아울러 개성 있는 렌즈로 문학적 재현의 근황을 살피는 고봉준, 김영임, 소유정, 이진경, 강동호, 김건형, 김형중, 박혜진, 조연정의 리뷰도 일독을 제안드린다. 이번 호 〈지성〉에선 34년 만에 출간된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제4권 『육욕의 고백』에 대해 푸코 전문 번역가 겸 철학자인 심세광이 세심한 안내문을 나눠주었다. 사회학자 윤여일은 반지성주의의 그늘을 진단하며 지식·정보·지성의 구조 변동 가운데 사고하기와 언어를 검토하기란 무엇인지 사유의 힘을 독려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동인들·편집부와 이번 호를 준비 중에 나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과 김태균 감독의 「암수살인」(2018)을 보았다. 「버닝」은 네번째 관람이었는데 이번엔 종수 앞에서 귤을 까서 먹는 팬터마임을 선보이는 해미를 따라 해보았다. 우리는 해미의 바람처럼 귤이 없단 걸 잊어먹을 수 있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는 해미의 믿음을, 해미처럼 살아온 우리네 믿음을 얼마나 짙은 좌절감으로 되돌려주었던가. 우리는 사회의 응수에 당황하며 ‘버텨온’ ‘견뎌온’의 굴레로 삶을 정의·자조하는 데 얼마나 익숙해져가고 있는가. 사회에 대한 의구심, 세상에 대한 불신만 그득한 지금, 나는 「버닝」에 관한 여러 해석본이 있음에도, 해미의 믿음에서 픽션을 향한 믿음을 떠올려본다. 그런 가운데 「암수살인」의 김형민 형사는 불안해하는 동료에게 말한다. 그래도 일단 믿자. 믿고 나서 의심하자고.

여기 귤 한 조각이 있다(부디 달기를)._편집동인 김신식

1 이 글엔 영화 속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2 김소희, 「〈미쓰백〉이 캐릭터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씨네21〉 온라인판, 2018년 11월 1일 자.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1554)
3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개정판), 김슬비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8, pp. 205~23 참고.

 

하이픈 보기 -> http://moonji.com/book/17591/

목차

겨울호를 펴내며_김신식


문태준 음색 외 1편
진은영 생일 외 1편
이성미 밤과 밤 외 1편
유형진 마트료시카 시침핀 연구회 외 1편
황유원 최대치의 기쁨 외 1편
김복희 빈 방의 빛 외 1편
안태운 천 원이기 외 1편
임지은 과일들 외 1편
장혜령 파도가 묻다 외 1편

소설
백가흠 나를 데려다줘
이민진 장식과 무게
진연주 바깥의 높이

리뷰
고봉준 차이와 반복
김영임 사막의 횡단과 우물의 무게
소유정 빈자리의 곁에서
이진경 텅 빈 얼굴의 몽상가들
강동호 포스트-휴먼-노블
김건형 소리는 물리적인 현상일 뿐입니다/알려지지 않은 농담의 역학과 예술가의 이름
김형중 고통은 재현될 수 있다
박혜진 감수성의 혁명
조연정 원망도 자책도 없이

지성
심세광 34년 만에 출간된 책: <성의 역사> 제4권 『육욕의 고백』
윤여일 반지성주의와 말기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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