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E. W.

김사과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8월 8일 | ISBN 9788932034546

사양 페이퍼백 · 변형판 128x188 · 288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모든 것은 지나치게 그럴듯했다

도시, 먼지에 뒤덮인 최신식 황무지에서
우리, 기묘한 방식으로 동거하는 완벽한 유령들에 대하여

선명한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호한 세상을 신랄하게 포착하는, “우리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소설”(문학평론가 김영찬)을 쓰는 작가 김사과의 미연재 신작 소설이 출간되었다. 2013년 『천국에서』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인 『N. E. W.』에서 김사과는 당신이 발 디딘 여기의 오늘을 살피고 다음 세대가 맞이할 ‘멋진 신세계’를 가늠한다.
“세계의 파괴!” “날것의 문장들!” “지독한 폭력!” “낯선 충격!”…… 한때 김사과의 소설을 수식하던 느낌표 가득한 말들은 가끔 그의 소설보다 더 격렬했다. 하지만 더는 이미 망한 세상에 대고 파괴를 말할 필요가 없다. 감정의 분출에서 냉철함으로, 김사과의 변화가 두드러진 건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지 끈질기게 물었던 지난 장편소설에서부터였다. 그간 “이 세계는 끝난 것이 아니라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갈 여지가 남아 있다”며 내비쳤던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남은 자들의 세계’는 『N. E. W.』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형상화된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요,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새로운 세계에 걸맞은 환상이요.” 새로운 시대가 더 나은 세상일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언젠가 그 ‘멋진 신세계’를 맞닥뜨릴 때, 김사과는 세계의 결함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일 작가일 것이다. 세상엔 분명 그런 통쾌한 비극의 자리가 있다.

악몽중독자들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사람 같은 표정으로, ‘엔, 이, 더블유, 뉴N. E. W.가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 그게 무슨 약자인지 아세요? 신경학neurology, 전기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2. 믿어지세요? 제 아버지가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유치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데 사람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죠. 그게 다 아버지의 연기에 속고 있는 거야.” (pp. 201~02)

“결론은…… 사기도 결국 힘으로 치는 거라는 얘기지……
[……] 개소리를 늘어놔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싶어.” (p. 182)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인 이야기 외에 총 3부로 나뉜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대기업 오손그룹의 후계자인 정지용은 아버지 정대철 회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덜떨어진 자식이라는 세간의 평을 받고 있다. 멀끔하지만 어딘가 의뭉스러운 정지용과 학벌과 미모와 집안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는 그의 아버지 정 회장과 그녀의 어머니 홍 교수의 설계대로 순조롭게 결혼한다. 신혼집은 서울 근교 L시에 오손그룹이 세운, 999대의 CCTV와 첨단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통제되는 스마트아파트 ‘메종드레브’다. 그곳은 다양한 계층을 섞어 완벽한 통제 속에서 고도의 균형을 달성한 인간을 키워내려는 정 회장의 사적 욕망이 투영된 실험장이자 오손그룹의 미래 계획을 집약시켜놓은 주거 시설이다. 메종드레브의 2백 평짜리 펜트하우스에 사는 정지용은 5평 원룸에 사는 인터넷 BJ 이하나를 로비에서 우연히 맞닥뜨린다. 이하나는 우아한 여왕 같은 최영주와 거울상처럼 대비되는 인물로, 정지용은 매사 반응이 즉각적인 이하나에게 강한 흥미를 보인다. (“하나 씨, 먹고 싶어요.”) 최영주가 정지용의 아이를 임신할 무렵 이하나와 정지용은 내연 관계가 된다. 외도를 알아챈 최영주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왜, 애초에, 결혼 따위를 한 걸까!”) 급기야 최영주는 정지용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단체 채팅방을 떠돌아다니는 치정 루머 같은 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은 인물들이 드러내는 현실이다.

최영주―“무엇으로 이 끔찍한 절망을 감추는가”
한심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성에 차지 않는 최영주는 고민이 생기자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사진을 올린다.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부럽다, 예쁘다, 좋아 보여 등…… 아하, 그것이 나의 객관적 상태인가? 내 삶은 예쁘고 좋아 보이는군.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신의 사진에 그런 코멘트를 다는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와 비슷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또 비슷한 반응을 팔로워들에게서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처럼 지금 뭐가 뭔지, 내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인 것일까? 그들도 사실은 답답함과 허무함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예쁘고 좋아 보이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삶 속에 들어 있으니 괜찮은 걸까? 그러니까 이것으로 된 걸까?”(p. 43)
사실 “좋아요”로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그녀도 안다. 최영주는 ‘멋지고 대단한 나’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남편과 시아버지에게서 회사를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곧 남편의 외도라는 지독한 곤경을 맞닥뜨린다. ‘멋지고 대단한’ 그녀가 도움을 요청할 상대는 없다. 예상과 다른 현실에 번번이 좌절하면서도 전 생애를 통해 쌓아올린 자신의 “객관적인 능력”이 실상 쓸모없는 것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차가운 현실에 눈을 꼭 감은 채, 오류들을 높이 쌓아 올리는 길만이 유일하게 그녀가 파괴되지 않은 채 이 악몽을 통과하는 길이다. 따라서 그녀는 오판을 밀고 나갈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안다고 믿는 것, 자신이 투쟁한다고 믿는 대상, 자신이 행한다고 믿는 전략, 그 완전히 잘못된 것들을 손에 쥔 채로 나아갈 것이다.” (p. 213)

이하나―“그럼 난 뭐지? 음, 편의점용 초콜릿 같은 거?”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난 이하나는 살아가는 데 마땅한 안전장치가 없어 다른 등장인물보다 ‘우연’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연한 기회로’ 화제를 끌어 유튜버로 활동하게 된 이하나는, ‘우연히’ 정지용을 만난다. 정지용과 내연 관계가 되고 나서 이하나의 현실은 백팔십도 바뀐다. “프릴이 5백 개 달린 블라우스”를 입던 그녀는 발렌티노, 에르메스 같은 최고급 브랜드를 걸치고 갤러리아 백화점과 루브르 박물관에 출몰한다. 무엇보다 크게 바뀐 건 세상에 대한 관점이다. 이하나는 힘 있는 자, 승자의 삶을 위해 “다른 한편에 재투성이 하녀의 삶, 언제나 홍해처럼 양옆으로 갈린 채 찌그러져야 하는 모욕적인 삶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영주가 그랬듯 결국 이하나에게도 정지용과의 만남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악몽과 같다. 이하나의 조력자를 자처하는 국숫집 사장 성공자는 그녀에게 구차한 패자의 삶을 벗어나라고 다그치지만, 점점 자신이 가짜라는 인식만 커져간다. 이하나는 정지용에 대한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하길 거부한다. 다만 “도박 중독자가 화투패 앞에서 피가 끓듯이” “자신이 정지용의 세계에 중독된 것을 인정”한다.

정지용―“아버지, 저희를 위해 죽어주시면 안 되나요?”
정지용의 세계에 중독된 이하나는 또한 정지용을 부러워한다. “특히 부러운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 결여된 듯한 삶의 태도였다. 왜냐하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허리를 굽히고 조아리는데 무슨 상식이 필요해? 그는 상식 밖의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세상은 짜릿하다.”(pp. 171~72) 정 회장에 의해 균형과 통제가 체화된 정지용은 언제나 모든 것이 편안하다는 듯 심리적으로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항상 지나치게 멀쩡해 보이는 그에게는 정의나 도덕, 상식도 일말의 의미가 없다. 이하나와 최영주를 자신의 양옆에 두고 있는 것도 그저 ‘마음에 들어서’다. “그저 꾸준히, 가능한 한 길게 기분이 좋은 상태가 이어지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 아주 좋은 일도, 아주 나쁜 일도, 혹은 아주 괴상한 일도 벌일 수 있다.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을 위해서라면.”(p. 143) 그리고 그는 정말 괴상한 일을 벌이고야 만다.

정대철―“그를 둘러싼 소문들이 그를 천재 기업가로 만들었다”
정지용은 번번이 시선권력으로서만 존재하는 허깨비라며 아버지 정 회장을 비난했지만 일면 그것은 동족 혐오에 가깝다. 정대철은 수많은 익명의 눈들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성공했고, 같은 방식으로 정지용을 키웠다. 다시 말해 정대철은 자신에 대한 루머를 수집하고 그 루머에 영감을 받아 행동하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암 투병 중이라는 루머가 돈 뒤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나타난다거나, 제주도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한다는 루머가 돌면 갑자기 제주도에서 모호한 목적의 행사를 개최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pp. 229~30)
소설 후반부, 정지용과 최영주는 마침내 독자적인 괴물이 되어간다. 정지용은 정대철에게서 오손그룹이라는 ‘왕국’을 이어받으며, 놀랍게도 현실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혹은 그것을 완벽히 가장해낸다). 최영주 역시 광기를 선택하고, 정대철의 방식을 훌륭하게 재현한다. 사람들은 최영주에게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가 느끼는 절망을 “성공적으로 목격”한다. 그것은 물론 최영주가 제공한 이미지다. 최영주는 신혼 시절 결혼을 통해 “모든 것이 새롭게, 진정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며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되뇌었지만,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금 세대는 과거 세대를 재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짓을 또 다른 거짓으로 교체하고 환상을 새로운 환상으로 대체하면서, 정대철은 자신의 왕좌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N. E. W.』는 비교적 친절한 문장으로 씌어진 비관의 소설이 아닐까.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 깨었다. 그런데 여전히 여긴 악몽 속이다. 김사과의 소설은 우리의 눈을 밝히고 등을 떠민다. 별수 없이 이 안개 속을 걸어가야 할 뿐이다.

 

■ 책 속으로
물론 진정한 화젯거리는 정 회장과 은 여사 그리고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 정지용이었다. 그들과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 너무나도 멀쩡해 보여서 놀랐다. 그들은 멀쩡하게 생겼고, 멀쩡하게 옷을 입었고, 멀쩡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그 지나친 ‘멀쩡함’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뭐랄까, 그들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접할 수 있는 상상 속의 ‘부르주아’처럼 행동했다. [……] 완벽하게 상상이며, 가짜이고, 인위적인 존재들이 버젓이 살아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광경은 사람들의 정상적인 사고력을 천천히 무장해제시켰다. 가장 무서운 점은 초대된 사람들 또한 그 가짜 유령들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유령이 벌인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 유령이 아닐 수 있는가? (pp. 19~20)

이하나는 새삼 루브르의 압도적인 넓이에 감탄했다. 마치 온 세상의 궁전을 합쳐놓은 듯하지 않은가? 그 넓은 궁전은 그림과 조각, 그리고 관광객 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명한 작품들 앞이면 어김없이 몰려들어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작은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무식하고 힘 빠지는 경험을 교양이라 부르는 것인가? 그렇다. 이하나가 처음으로 겪어본 교양 체험이라는 것은 막연한 기대와 달리 지적인 행위보다는 체력 싸움에 가까워 보였다. (p. 133)

최영주는 잡지를 건성으로 넘기면서 대학생 시절 함께 수업을 듣던 약간 이상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학기 초반에는 『뉴레프트리뷰』를 품에 안고 다녔는데, 학기 후반이 되자 『킨포크』를 가슴에 안고 다녔다. 잡지 판매상의 자식인가? 그녀는 의문을 가졌으나 금방 잊었다. 다시는 그 남자와 같은 수업을 들을 일이 없었다. 사실상 함께 수업을 듣던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고, 그도 별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녀는 문득 그에게 동정심이 들었는데, 지금 자신이 타인에게 동정심을 가질 만한 처지가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그녀는 『뉴레프트리뷰』를 내려놓고, 역시 오늘 아침 도착한 미국판 『보그』 최신호를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p. 192)

각각의 인간 존재가 다양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정 회장의 경우는 제로가 분명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 속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살과 뼈 삼아 자라난 특이한 괴물이었다. 어쩌면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기한 기생충이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그런 괴물이 되었는지 정지용은 관심이 없었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렇게 처절한 일인가? 그 문제에도 그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이상한 괴물의 품 안에서 아무런 처절함을 모르고 자라난 스스로가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별다른 복수심을 느끼지 않았다. [……]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저열한 부모를 동정했다. 동시에 그 저열함이 나 정지용의 고결한 삶을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기꺼이 눈을 감을 용의가 있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부모를 용서했다. 하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그가 용서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pp. 230~31)

목차

이야기의 시작
1부
2부
3부
악몽의 끝

작가 소개

김사과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단편 「영이」로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을 쓰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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