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

장-클로드 카리에르, 다니엘 비뉴 지음 | 고봉만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7월 27일 | ISBN 9788932033303

사양 사륙변형 124x188 · 252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수백 년 넘게 회자되어온 세기의 재판!
누가 진짜 마르탱 게르인가?”

실화 바탕의 동명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소설로 만나다

1560년,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세기의 재판이 벌어진다. ‘마르탱 게르’라는 한 남자의 정체를 둘러싼 이 재판은 이후로도 수백 년 넘게 회자되며 소설・영화・희곡・오페라・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유명한 이야기를 마침내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장-클로드 카리에르와 다니엘 비뉴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고봉만 옮김)이 그것.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집을 나간 마르탱 게르는 8년여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로부터 3년여 뒤 마을에 마르탱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고, 그 의심은 나날이 증폭되어 결국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수년간 마르탱 게르 행세를 한 ‘가짜’ 마르탱 게르에 대한 재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희대의 사건은 놀람과 의혹, 대립과 반전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신의 섭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우연으로 ‘진짜’ 마르탱 게르가 재판 말미에 출현하면서 끝을 맺는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나탈리 바이가 주연한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1982)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영화의 자문 역할로 참여한 역사학자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의 동명 저작이 2000년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은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감독 다니엘 비뉴와 시나리오 작가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영화를 ‘소설’로 옮겨 새롭게 구성한 작품으로, 16세기의 가장 유명한 재판으로 손꼽히는 마르탱 게르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이며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소설은 주인공인 마르탱 게르와 베르트랑드 드 롤스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농부가 서로의 재산을 합치고 자손을 갖기 위해” 올린 여타의 결혼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이 결합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마르탱이 ‘가짜’ 마르탱으로 밝혀지면서 “희극과 비극이 뒤얽힌 한 편의 드라마”로 막을 내린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시종일관 게르 집안의 하녀 ‘카트린’의 입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로 전해지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으로 흡사 미스터리 소설을 읽듯 흡입력 있게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간다.
겉으로 보기에 이 소설은 뛰어난 기억력과 거침없는 입담을 가진, 어느 매혹적인 사기꾼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진짜 비밀은 ‘가짜’ 마르탱의 정체가 탄로 나고 사건이 해결됐다고 여겨지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대체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그 아래에 더 큰 진실이 숨겨져 있듯, 결말에 이를수록 독자들은 이 흥미로운 작품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기이한 사건은 우리에게 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새삼 일깨우는 한편, 법이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성과 삶의 불가해함,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실린 마르탱 게르의 재판!

마르탱 게르 이야기는 당시 툴루즈의 사법관이었던 장 드 코라스라는 인물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이 재판의 담당 판사로서 『툴루즈 고등법원의 잊을 수 없는 판결』이라는 책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방대한 주석과 함께 전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인 많은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미셸 드 몽테뉴로, 그는 『수상록』 제3권의 「절름발이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를 언급하며 이 사건이 당황스러웠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실제로 ‘가짜’ 마르탱은 아내에게 더없이 충실한 남편이었으며 집안과 마을의 테두리 안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가족과 친지, 어릴 적 친구들도 돌아온 마르탱을 알아봤으며, 적어도 3년여 동안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진짜’ 마르탱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매우 기이할뿐더러 심지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생각한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새삼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확인하게 된다. 더군다나 지문 날인이나 신분증, 출생증명서와 같은 신원 확인이 될 만한 것들이라곤 없던 시대에, 어떻게 한 인간의 정체를 일말의 의심 없이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몽테뉴는 이 사건을 언급한 글에서 “법이 과연 그러한 진실을 판단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진실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불확실한 도구인지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진실과 거짓은 같은 얼굴, 태도, 취향,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소설은 ‘누가 진짜 마르탱 게르인가’를 두고 흥미로운 공방이 펼쳐지다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들에게 놀라운 결말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진정한 미덕은 무엇보다 인간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성찰로 가득하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이 왕이나 귀족도 아니고 기껏해야 피레네 부근 마을의 한 농민에 불과한 그의 이야기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까닭일 것이다.

 

희극과 비극이 뒤얽힌, 진실한 사랑에 관한 한 편의 드라마!
여성주의 시각에서 바라본 마르탱 게르사건

이 책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은 시종일관 ‘누가 진짜 마르탱인가’를 둘러싼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며 사건 자체에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진정한 사랑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재판의 담당 판사 장 드 코라스는 소설에도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가 마르탱의 아내 베르트랑드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동의하듯 “아내에 대한 남편의 손길을 착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 과정 내내 베르트랑드의 진술은 다른 증언들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고, 그녀의 증언으로 인해 돌아온 마르탱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재판 막바지에 이르러 기적적으로 ‘진짜’ 마르탱 게르가 등장하면서, 진실의 행방은 이제 마르탱을 떠나 그의 아내 베르트랑드에게로 가닿는다. ‘과연 베르트랑드는 돌아온 마르탱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러한 물음은 소설을 읽는 데 보다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천재적인 사기꾼과 그에게 사기를 당한 여인의 구도가 그동안의 독서였다면, 베르트랑드라는 인물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이러한 해석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이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아마도 베르트랑드는 돌아온 마르탱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 그녀는 가족을 무책임하게 버린 몰인정한 ‘진짜’ 마르탱 대신에 자신에게 충실하고 헌신적인 ‘가짜’ 마르탱을 ‘진짜’ 남편으로 선택하고, 그와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 진정한 결혼 생활을 영위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소설의 표면적인 관심사는 ‘누가 진짜 마르탱인가?’이지만, 결말에 이를수록 정작 중요한 것은 ‘베르트랑드의 진짜 남편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존중과 교감,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짜’ 마르탱이야말로 진정한 부부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은 ‘진짜’와 ‘가짜’가 빚어가는 역동적이고도 모순적인 관계를 통해 제도로서의 결혼과 진실한 결혼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또한 결말에 이르러 ‘진짜’ 마르탱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독자들은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에 대해 오래도록 곱씹어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장-클로드 카리에르와 다니엘 비뉴는 1982년 영화를 바탕으로 단행본 소설을 출간했으며,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시 쓴 책을 2010년 라루스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라루스판을 저본으로 삼아 펴낸 것이다.

 

책 속으로

겉보기에 그들의 결혼은 색다른 점이 없는 보통의 결혼이었다. 두 농부가 서로의 재산을 합치고, 자손을 갖기 위해 백파이프와 화승총 소리에 맞춰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아마도 나만 그 점을 느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나가면서 문을 막 닫으려는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마르탱이 벽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마치 우는 것처럼 어깨를 가만히 들먹이는 것을. (21~22쪽)

시골 마을에서 젊고 건장한 사내가 집을 나가면, 특히나 그가 한 집안의 외아들이라면 그것은 재앙이다. 늙은이들은 누굴 위해 일하는지도 모르는 채 전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어머니, 아내, 자식들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슬픔, 주위 사람들이 던지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시선, 동정 어린 눈길, 변죽울림, 수군거림, 비난 등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다만 아내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홀로 남겨져 ‘왜 나는 그를 붙잡아두지 못했을까?’ 하며 스스로에게 묻게 될 때, 그녀에게 일어날 감정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46쪽)

나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한 남자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새삼 삶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사랑을 많이 못 받은 소심한 아이였다. 아버지 앞에서 벌벌 떨기나 하고, 산 너머로 달아날 궁리나 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이제 유쾌하고 당당하고 성숙한 남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험담을 우리에게 들려주었고, 사람들은 귀를 세우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늘 말이 없고, 늘 숨어 지내고, 늘 외톨이였던 그였는데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은 진실로 사람의 지성과 감성을 성숙하게 하는 것인가? 죽음의 시녀인 전쟁이 인생의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는 말이 과연 사실인가? (72~73쪽)

시골에서 급사를 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유 없이 고열에 시달리다가 며칠 만에 죽거나 혹은 우연한 사고, 예컨대 나무에 깔리거나 물에 빠지거나 말의 발길질에 걷어차여 죽는 경우 말이다. 따라서 늘 죽음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신앙심 깊은 사람에게 매 순간 죽을지도 모르며, 아울러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져 영겁의 고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면서 죽을죄를 짓고 사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없는 것이다. 신부는 우리 모두가 지닌 이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베르트랑드와 이야기할 때 이 두려움을 아주 능숙하게 이용했다. (114쪽)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지적했듯이 몰지각한 주장에 대해 강하게 항변하지 않았다. 나는 인간의 나약함이 가져오는 뜻밖의 많은 일들,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라는 조건에서 비롯되는 온갖 참담함과 두려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베르트랑드만큼은 우리보다 강하고 의지도 더 확고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그녀의 태도가 정말 당혹스러웠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녀가 왜 그런 태도를 취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이해했다고도 여길 수 있게 되었다. (122~23쪽)

코라스는 사건을 곧바로 이해했다. 그는 생각이 분명하고 똑똑해서 사람들이 들이대는 증거나 확신 혹은 편견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럴 의도도 없었다.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그가 진심으로 바란 것은 오로지 사건의 진실이었다. ‘확실하다’ ‘아니다’라는 식의 얽히고설켜 있는 실타래를 푸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빛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과 통로를 찾는 것, 오직 그것만을 열망했다. (124~25쪽)

만약 법이 인간은 누구나 선하고 정직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과연 인생도 그러할까? 법에서는 전제하고 있지만, 종교에서는 문제 삼고 있고 경험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인간의 천성적인 선함에 도대체 무슨 변고가 생긴 걸까?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내 보잘것없는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 속에 어떤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회의를 겪었을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182~83쪽)

목차

서문
일러두기

마르탱 게르의 귀향

옮긴이 해설

작가 소개

장-클로드 카리에르 지음

Jean-Claude Carrière(1931~)
프랑스 소설가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 1957년에 첫 소설 『도마뱀Lézard』을 발표했고, 자크 타티, 루이스 부뉴엘 등 유명 감독들과 영화 작업을 함께했다. 1982년 영화를 소설화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쓴 이후 수많은 문학작품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프라하의 봄」 「양철북」 「시라노 드베르주라크」 「죽은 군대의 장군」 등이 있다.

다니엘 비뉴 지음

Daniel Vigne(1942~)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남과 여」로 유명한 클로드 를루슈의 조감독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82년 발표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세자르상César du cinéma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비롯한 총 3개 부문 수상 영예를 안겨주었다.

고봉만 옮김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루소와 레비스트로스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저서와 개성 있는 프랑스 소설을 번역·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문학의 고전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성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 『덧없는 행복』 『크리스마스의 악몽』 『악마 같은 여인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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