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18년 여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5월 29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96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여름호를 펴내며

지금-여기의 독자를 향하여

분리에서 오는 불안은 분리 자체가 아니라 분리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자크 라캉

장정일은 『한국일보』에 기고한 칼럼 「문학교육 2.0」(2018년 3월 7일 자)에서 최근 불거진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하여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해당 행위와 관련하여 고은 시인의 명백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장정일은 고은의 작품들이 교과서에서 퇴출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독자 일반의 여론과 다른 관점에 입각하여 자신의 글을 개진한다. 카프카의 유고를 불태우지 않았던 막스 브로트의 사례를 참조하는 과정에서 그가 재확인하는 일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작품도 자신의 운명을 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 원칙에 기초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도달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청년사, 1994)에서 “사인과 공인이 본질적으로 다른 두 세계”라며 “이 두 세계를 구분하는 커튼을 찢는 자들이야말로 범죄자들”이라고 말한다. 쿤데라의 비유는 예술작품과 창작자 사이에도 적당한 커튼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국내 첫 특별전을 열고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아내가 있는데도, 저녁이면 창녀를 찾아다니는 일을 평생 동안 반복했다. 이런 경우 예술작품과 창작자 사이에 커튼이 있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작품은 작가가 죽을 때 함께 순장되거나 무덤에 넣은 부장품 (副葬品)이 아니다.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비유이지만 “예술작품과 창작자 사이에 커튼이 있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는 결론이 철저한 이론적 검토를 토대로 도출된 것임은 분명하다. “작가에게는 [……] 작품에 대한 그 어떤 지배권(이를테면 해석의 독점권 )도 없”다는 통찰에 내포되어 있는 이론적 함의의 최종 국면이 바로 ‘저자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은 완성된 순간 ‘카프카의 유품’ 같은 것이 된다”는 장정일의 결론을 단순한 비유로 한정할 수 없는 이유는 ‘저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과 ‘독자의 위상’을 재고하는 일이 이론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이다.
오늘날 문학이론에 익숙한 독자라면, 작가의 생애를 준거로 이루어지는 실증주의적 독해 방식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학이론의 영역에서 저자의 개념적 불안정성을 지적하고 그 존재론적 불가능성을 선언하는 흐름은 비교적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저자를 의문시하는 이론의 역사는 독해의 층위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해석학적 불가지론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흔히 ‘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로 알려져 있는 통찰이 주목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작품의 형태로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는 현상, 그리고 작품의 의미와 저자의 의도가 충돌하는 사례들이다. 작품이 저자를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 자체에 의문이 제기됨으로써, 작품의 자율적 의미를 생성시키는 원천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요청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의미를 생성시키는 원천은 무엇일까? 이때, 저자에 대한 회의주의가 점차적으로 독자에 대한 이론적 강조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롤랑 바르트의 유명한 선언이 상징하는 의미 역시 그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문학이론사는 사실상 저자가 오랫동안 누리고 있던 독점적 권위를 해체하고, 그 의미의 원천을 독자의 층위로 이양시키는 해방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론사적 흐름을 염두에 두고, ‘저자와 작품의 분리’라는 대원칙에 동의할 수 있다면 저자의 삶과 작품의 삶을 서로 분리시켜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자가 느낄 곤란함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저자의 삶을 매개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외재적 관점과 태도는 그 선의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독자의 자유와 위상을 근거 짓는 중요한 원칙을 스스로 배반하는 사태를 초래할 뿐이다. 장정일이 새삼 ‘저자의 죽음’이라는 이론적 화두를 거론하며 독자 여론을 향해 비판적 문제를 제기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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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바르트의 말처럼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로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저자의 죽음’을 전제로 한 예술관이 이론적으로는 명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경험의 층위에서 여러 가지 딜레마를 양산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저자성’을 지탱해주는 제도적 장치들 (저작권이나 문학 교육을 위한 정전화 작업)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이론적 사망 선고의 현실적 유효성을 의심하게 한다. 이 같은 이론적 이념과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존 작가가 관련된 정치적, 도덕적 스캔들이 예술 작품의 향유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때 더욱 심화된다.
이를테면 듀나의 칼럼 「‘섹스의 윤리학’ 보여준 영화감독의 성범죄 이후」(『한겨레』 2018년 2월 13일 자)에는 창작자를 둘러싼 정치적, 도덕적 논란으로 인해 독자가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내적 딜레마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영화감독 이현주의 성폭력 사건을 인지하게 된 이후, 그녀의 작품을 독립적 텍스트로 바라보기 힘들게 되었다고 말하며, “등에 칼을 맞은 기분”으로 그 배반당한 심정을 표현한다. 그는 “창작자의 삶이, 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완벽하게 기능했던 영화의 교훈을 더럽”힐 수 있음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예술작품은 창작자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분리될 수 있을까? 분명한 선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있다고 해도 그 선이 언제까지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 거 같지도 않다. 예를 들어 나에게 카를로 제수알도가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한 살인자라는 사실은 그의 음악을 듣는 데에 그렇게까지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와 공간이 우리와 가까워질수록 이런 거리두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듀나의 고백처럼 저자의 문제적 삶이 독자의 삶과 시공간적으로 가까울수록 ‘작품과 저자의 분리’라는 원칙은 심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이 부인하기 힘든 독해 과정에서의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수용자를 배반하고 있는 것은 작가인가, 작품인가. 아니면 이 불안은 저자와 작품의 분리라는 원칙을 고수하지 못한 독자의 우유부단함으로부터 비롯된 퇴행적 자기 배반에 불과할까. 정작 이 글의 저자는 수용자-독자로서 그가 느꼈던 곤혹스러움의 정체를 충분히 설명하는 대신 이렇게 스스로를 다잡는 길을 선택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굳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독자가 직면했던 불편함과 딜레마가 다시 “원칙적으로 우리는 예술과 창작자를 분리해야 할 것”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소멸되는 것이다. 이 명백한 분리의 원칙은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를 처벌하고, 그의 작품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실용적이고도 안전한 해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과 저자의 분리를 가능하게 했던 기본 원칙이 무너졌던 순간의 체험, 즉 수용자의 불안에 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해소되지 않는 의문과 불안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이론적 전제와 ‘독자의 탄생’이라는 목표 사이의 간극에 관한 구체적 해명을 통해 사유될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분리에서 오는 불안은 분리 자체가 아니라 분리의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라캉의 전언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독자가 느꼈던 불안은 ‘저자와 작품의 분리’ 그 자체에서 기원하기보다, 분리의 실패에서 생성되었던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독자의 입장에서 파생되는 근본적 딜레마들을 통해 저 분리의 간극을 사유하려는 것은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 나아가 ‘문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론적 신화를 다시 성찰하고, 지금 .여기의 ‘독자성’과 관련된 현재적인 의제를 생산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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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기획 주제로 『문학과사회 하이픈』이 ‘독자-공동체’를 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작년 여름호부터 시인, 저자, 비평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문학장의 구조적 변화를 조명하고, 새로운 시대와 세대 의식에 부합하는 문학의 존재 방식에 관해 탐구해왔다. 이번 호에서 수용자로서의 독자에 주목하는 것은 오늘날의 문학장,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전환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독자의 존재야말로 핵심적인 사안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수용자로부터 발원한 새로운 문화적 요구와 욕망을 메타적으로 성찰하고, 예술에 대한 생산적인 의제들을 점검하고자 한다.
이 어려운 주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담은 원고를 필자 네 분이 보내주었다. 백지은의 「텍스트를 읽는 것과 삶을 읽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피에르 바야르의 재치 넘치는 통찰을 토대로 적극적이고 깊이 있는 독서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고, 사회에 출간된 모든 책들에 관심을 보이는 일반 의지로서 독자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렇게 ‘독자의 장소’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그의 글은 오늘날 독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수용 지평의 총체적 변화 과정,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현상되고 있는 ‘텍스트 운동의 궤적’을 조명하기 위한 흥미로운 성찰 지점들을 제공하고 있다. 조효원의 「독자 저격」은 책과 독자, 저자와 책이라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호 모순, 충돌 등에 대한 이론적 성찰을 개진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백지은의 글과 나란히 읽어볼 때 더욱 흥미롭다. 그가 ‘저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마도 책과 독자 사이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환상을 해체하고, 진정한 독서 행위에 내포되어 있는 ‘파괴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책을 통한 삶의 변화를 경험해봤던 독자라면, 독서 행위를 둘러싼 근본적 딜레마에 관한 그의 이론적 성찰에 또다시 저격당하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허윤의 「로맨스 대신 페미니즘을!: ‘김지영 현상’과 ‘읽는 여성’의 욕망」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나타난 『82년생 김지영』 열풍,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미학적 논란에 주목한다. 이러한 징후적 사례들을 통해 허윤은 그간 ‘여성 독자’를 향해 던져졌던 수많은 환상과 오해의 기제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한편, 해방을 위한 무기이자 실천의 일환으로 읽기를 모색하는 새로운 독자층을 분석한다. 그의 글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연대와 실천으로서의 책 읽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지금 현재의 문학장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줄 것이다. 이영재의 「대중주권과 영화, 그 이후: 「곡성」과 「1987」, 관객성의 두 가지 문제」는 영화 예술에 있어서 관객이 지닌 중요성, 나아가 관객을 통해 표명되었던 영화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재현의 위기가 도래한 오늘날, 대중을 통해 표출될 수 있었던 영화의 정치적 이념이 어떤 위기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항간의 화제였던 「곡성」과 「1987」의 분석을 통해 재현 체제의 몰락 이후의 영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개진시키는 이 글은, 민주주의와 재현이라는 근본적 테마에 대한 논의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이어 ‘잡담회’라는 테마로 마련한 좌담에서는 편집동인 김신식의 주재로 제현주, 안인용, 차우진 세 분을 초청하여 오늘날의 독자 .저자에 관한 경험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스케치를 그려보고자 했다. 각 분야의 중요한 저자 .독자로서의 삶을 이어오고, 일선 현장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했던 세 분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새로운 ‘독자-공동체’를 기획하기 위한 현장에서의 진지한 고민과 딜레마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특집 기획에 참여해준 모든 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계절에도 본권에는 풍성한 창작란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중식, 이원, 조인호 , 김현, 주하림, 최지인, 문보영, 윤은성 시인이 시들을 보내주었고, 소설란에서는 이승우, 기준영, 이상우, 김성중, 이갑수, 은희경, 이장욱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은희경 작가는 이번 호에 이르러 장편소설 연재의 대단원을 맺게 되었다. 길고 긴 연재의 시간을 견뎌낸 작가의 특별한 인내에 경의의 마음을 표한다. 그의 소설이 조만간 완성된 책의 형태로 독자와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호부터 새롭게 정비한 <리뷰>에서는 김현, 황혜경, 문태준의 신작 시집을 다뤘다. 기혁, 김영임, 송민우 평론가의 꼼꼼하고도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각 시인들의 새로운 시 세계를 조감할 수 있는 비평적 실마리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성>란을 위해서는 윤여일, 이승철 두 분이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었다. 윤여일의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동아시아라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지, 다시 말해 비서구권 세계에서의 이론적 실천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비서양이라는 항구적 조건 속에서 사상의 가능성을 다시 탐사하는 그의 글은 실천적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승철의 「“도박자”의 인류학을 위한 연구 노트」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비트코인 열풍’을 소재로, 최첨단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인류학적 분석의 가능성을 논하는 흥미로운 글이다. 그는 도박자의 형상이 근대 자본주의가 내세웠던 합리적 주체 이면에 은폐되어 있던, 그러나 사실상 늘 공존해온 근본 요소였음을 이론적으로 규명한다. 근대 민주주의와 합리적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 환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그의 글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가설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올해로 18회를 맞은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두 분의 새로운 소설가와 평론가를 소개할 수 있게 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소설 부문 수상자 서이제 씨와 평론 부문 수상자 민경환 씨에게 각별한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두 분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심사평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아쉬운 소식을 하나 전하고자 한다. 혁신호 때부터 『문학과사회』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던 이경진 씨가 지난 호를 끝으로 편집동인의 자리에서 물러났음을 말씀드린다. 이제는 『문학과사회』의 편집동인이 아닌, 순수한 ‘저자-독자’로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지만, 깊은 우정의 시간 속에서 그와 나눴던 고민과 문제의식은 이후의 『문학과사회』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을 약속드린다. 그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편집동인 강동호

 

문학과사회』 보기 -> http://moonji.com/book/15692/

목차

<독자-공동체>

비평적 에세이
백지은 텍스트를 읽는 것과 삶을 읽는 것은 다르지 않다
조효원 독자 저격
허윤 로맨스 대신 페미니즘을!―‘김지영 현상’과 ‘읽는 여성’의 욕망
이영재 대중주권과 영화, 그 이후―「곡성」과 「1987」, 관객성의 두 가지 문제

좌담
안인용 제현주 차우진 김신식 일의 읽음, 읽음의 일―독자 · 독자상 · 자기조직화에 대한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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