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이는 울지 않는다

전아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4월 6일 | ISBN 9788932030906

사양 변형판 125x192 · 257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다시 한번, 하지만 이젠 정말 끝이기를……
코너에 몰린 자들이 내뻗는 절박한 펀치 한 방!

 

전아리의 세번째 소설집 『옆집 아이는 울지 않는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각종 청소년문학상 수상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이래 작가는 수많은 단행본을 출간하며, 그의 문학적 역량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얌전한 줄만 알았던 금수저 언니의 일탈(『어쩌다 이런 가족』), 여대생과 시간강사의 파격적 멜로(『달이 뜨면 네가 보인다』) 등 소재의 한계 없이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온 전아리. 작가는 이 저력을 바탕으로 『주인님, 나의 주인님』(은행나무, 2012) 이후 6년 만에 소설집을 펴냈다.
이 책은 차라리 지옥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잔인하고 강렬한 서사를 중심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의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한편, 고양이를 무는 쥐처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격을 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8편이 실렸다. 펑펑 울어도 이상할 것 없는 절벽 앞 같은 상황에서도 좌절로만 끝내지 않는 강한 마음가짐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의 삶과 사회의 병폐를 되돌아보게 한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전아리 작품 속 “옆집 아이는 울지 않는다”.


 

물러날 곳 없는 절벽 앞에 놓인 인생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을 끝내기 위한 결단들

 

땅꾼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소년은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작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 옆으로 낙타의 눈을 닮은 커다란 독을 열고 망태기를 하나 건져냈다. 잿빛 무늬 뱀이 망태기 속에서 꿈틀거렸다. 소년은 안방 문을 열고 망태기를 던져 넣었다. 꽉 조여 있는 주둥이의 끈 안에 작대기를 걸고, 힘주어서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독사가 방바닥으로 기어 나오기 무섭게 소년은 망태기를 거두어들이고 방문을 닫았다. (「뱀」, p. 29)

그로부터 며칠 뒤.
신문에는 유괴되었던 소년이 유괴범을 살해하고 가까스로 탈출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유괴범은 근방의 공사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의 범행 동기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닭장 앞의 오후」, p. 207)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이야기로 좁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과 감정을 소설화하는 작품을 우리는 적지 않게 봐왔다. 전아리의 소설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잔혹한 사건 하나하나를 포착하고, 그를 중심으로 화자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삶의 모서리, 그 긴장과 고통으로 범벅된 개인의 감정을 묘사하며 인물을 끝없이 코너로 내모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 속에서 소년은 자신을 납치한 유괴범을 살해하고 그의 집에서 탈출한다(「닭장 앞의 오후」). 또 다른 소년은 악행을 일삼던 어른의 방 안으로 독사를 들여보내고, 그 어른은 죽음을 맞는다(「뱀」). 경악할 정도로 잔인한 결말은 끝 간 데 없이 내몰린 화자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모하는 최대한의 발버둥처럼 간절하게 그려진다. 직접 발 벗고 나섬으로써 그 지옥에서, 감옥 같은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감정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탈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몸부림으로 작가는 서사를 이끌어낸다.
이처럼 감정에서 행동으로 전환하는 방식의 서사 구조는 이번 소설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채 개인의 감정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함몰된다면, 전아리의 소설은 스스로를 구출하기 위한 적극적 행동을 용인함으로써 개인에게 스며든 병폐를 기어이 사회적 사건으로 확장시킨다.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변화를 이끌지도 못한 채 잊힐 수 있겠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무언가를 실제로 했다는 사실은 몹시 중요하다. 이들의 결단을 통해 사회 표면으로 불쑥 돌출된 사건은 특수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것으로 환원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설화적 상상력
곪아버린 사회의 상처를 해결할 출구로의 걸음

 

그렇다면 개인의 문제로 이야기를 좁혀 그 감정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하나의 사회 문제로 넓히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 책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그의 소설이 품고 있는 ‘설화적 분위기’에서 그 답을 찾는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전해 듣듯이 때로 작가는 한 여자의 기구한 일생을 조곤조곤 여자 스스로의 입을 통해 전하고(「잉어」), 때론 어머니의 옛이야기를 되짚으며 일기를 써 내려가듯 기술하기도 한다(「겨울 이야기」).

신혼 시절 세 들어 살던 집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침이면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신 볕이 스며들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노란 살구 알들은 아내의 배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올랐다. 벌레가 너무 많아요. 살구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아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 채 익지 않은 살구 알들이 마당 위로 떨어졌다. 마당을 넘실거리던 나무 그늘은 사라지고 사람 골반을 닮은 형태의 그루터기만 남았다. 바닥의 열매는 주인집 아이들의 신발 밑에서 으깨지며 묽은 즙을 쏟아냈다. (「공이 울리면」, p. 36)

무엇보다도 전아리의 소설을 설화적으로 구성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도구로 정과리는 ‘은유적 기법’을 꼽는다. 쪼그라든 눅눅한 영혼을 닮은 물고기의 이미지와 축축한 방 안에 갇힌 청년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어항 속에 갇힌 듯 축 늘어진 젊은이의 삶(「던전」)을 그리거나, 채 익지 않은 살구를 미숙아에 비유하며 젊은 부부에게 닥친 상황을 감각적으로 느껴지도록 한다. 젖도 물려보지 못한 채 갓난아기를 떠나보낸 두 부부의 삶에 들이닥칠 불행함, “주인집 아이들”의 신발에 짓밟힌 살구처럼 으깨져버린 일상 등, 전아리는 사회 곳곳에 도사린 재앙적인 상황을 주변의 소리, 냄새, 사물 등으로 비유한 표현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소설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직접적으로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들, 하지만 상징적인 소리를 통해 익히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을 통해 짐작되는 은밀한 진실. 설화적 상상력을 갖춘 전아리의 소설들은 이러한 사건 사고가 비단 개인의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의 일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공동체의 경험으로 환원되는 서사는 사회 구성원 스스로 그들이 속한 곳의 문제를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을 시작하기를 촉구하듯, 비밀스럽지만 강력한 외침을 전한다.

“신화는 구성원들이 구축하는 것이며 동시에 구성원들에 의해 각성되어야 할 그들 자신들의 질병이다. 전아리가 사회의 문제를 설화로 부풀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독자가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그 깊이가 가늠되고 그 출구가 희미하게 문의 형상을 구성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정과리)


■ 본문 중에서

 

샤넬은 알을 밴 독사와 누룩뱀을 주문했었다. 땅꾼은 독사만 두 마리 푹 고아도 입에 도는 쓴맛이 그리 역겨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말했지만, 샤넬은 기어코 누룩뱀과 섞어 쓴맛을 제거하라고 명령조로 못을 박았다. 샤넬은 선글라스를 벗고 영 꺼림칙한 표정으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에서 주문을 해 먹는 뱀탕을 그녀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꾼들이 뱀탕을 달여 팔 때 국물 뽀얀 초탕은 제 가족들을 먹이고 재탕한 것을 팩으로 담아 판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탕 달이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아들 비위에 맞는지 살피고 돌아갈 심산으로 기어코 강원도까지 차를 몰고 온 것이다. _「뱀」에서

얻어맞아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약한 부위를 알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약점을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보완하려는 의지로 강해질 수 있다. 10분은 버틸 거라던 상처는 한 라운드가 끝나기 무섭게 아가리를 쩍 벌리고 피를 쏟아냈다. 박 코치는 보조 세컨드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섣불리 내게 경기를 포기하라고 말하지 못한다. _「공이 울리면」에서

처녀는 아까까지 노파의 침을 닦아주던 거즈 수건을 집어 손가락에 대고 둘둘 감는다. 양 손가락으로 노파의 입을 벌린다. 파먹고 버린 밤 껍질 속처럼 텅 빈 입속. 수십 마리의 잉어가 흘러들어간 입속. 처녀는 뭉쳐진 거즈를 노인의 입안에 집어넣고 힘껏 목구멍까지 찔러 넣는다. 노파의 눈이 커지며 팔다리가 미약하게 움칠거린다. 시퍼런 살기를 뿜어내던 처녀의 눈빛이 서서히 희미해져갈 무렵, 쑤셔 넣었던 거즈를 꺼낸다. 노인은 젖을 빠는 아이처럼 가쁘게 숨을 들이마신다. _「잉어」에서

나는 애타게 갈망하던 것을 마주하거나 얻게 되면 정작 마음 놓고 즐기기는커녕 겁부터 집어먹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몇 달 동안 돈을 모아 미니 카를 겨우 구입하고 나서는 기껏해야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 들고 가서 작동시키거나 책가방에 숨기고 다니며 혼자 만족하는 것이 전부였다. 미니 카를 꺼내 보이면 모두들 꼴에 어울리지 않는 걸 갖고 다닌다며 비웃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 카가 고장이 나면, 그제야 비로소 내 것이 된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_「던전」에서

 

■ 작가의 말

 

나를 울게끔 하는 사람은 내게 상처나 아픔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무심코 침을 삼킨 순간 목까지 채워두었던 단추가 툭 떨어져 나갔을 때
왜 옷을 그렇게 단단히 여며 입었느냐 묻지 않는 사람.
떨어진 단추 하나가 아깝다며 울고,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찾다가 머리를 탁자에 부딪쳐 그게 아프다 울고, 실과 바늘이 없어 울고. 그러다 문득 이렇게 우는 스스로가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오기 시작하면 눈을 마주 보고 함께 웃어줄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을 보다 보면 아무리 자기 관리에 능하고 행동거지가 철저한 사람이라 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재차 깨닫곤 합니다. 모두 저마다의 빈틈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영리한 사람들은 굳이 자신의 틈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빈틈은 이곳입니다’ 하고 소개한 뒤 상호 관계에 집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눈에 띈 사물이나 사건을 향해 흔들리는 찰나의 눈빛, 얼떨결에 섞여 나오는 부적절한 단어,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할 말이 없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꺼내는 뻔한 이야기의 주제, 그리하여 사라진 정적의 시간만큼 생겨난 거리감의 모순된 어색함, 그런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나는 좋아합니다.

이 책 속 이야기에는 허구와 사실이 섞여 있습니다. 소재를 취재하다 보면 차라리 허구였으면 좋겠다 싶은 현실 속의 수많은 사건 사고를 눈앞에서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소신 있게 움직이고 강단 있게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곤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선택들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의지를 기르려 노력 중입니다. 예정보다 시간이 조금 길어졌음에도 꼼꼼히 책을 함께 만들어주신 문학과지성사에 감사한 마음을.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일과 별개로 작년엔 송진선 PD님 덕분에 이런저런 새로운 주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겨, 인상 깊고 기쁜 인연이었습니다.
예리하면서도 아름다운 글로 해설을 써주신 정과리 선생님, 유머 넘치는 정명교 교수님의 수업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깊이 공부할 과제를 받은 기분입니다. 선생님께 종종 전화를 드릴 때 흘러나오는 분위기 좋은 컬러링을 들으면 ‘이런들 저런들 어떨까’, 하는 묘한 여유와 흥겨움에 빠진답니다.
요즘은 종종 ‘백 세 시대’라는 말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구라는 별에 백 년이나 머무른다는 건 여러 의미로 참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읽는 당신이나 나나, 울고 싶을 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2018년 봄
전아리

목차


공이 울리면
잉어
당신과 당신의 당신
전원 일기
던전
닭장 앞의 오후
겨울 나들이

해설|사회적 문제를 설화화하는 일의 의미 _정과리

작가 소개

전아리 지음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며, 2008년 제3회 디지털작가상 수상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즐거운 장난』 『주인님, 나의 주인님』, 장편소설 『시계탑』 『직녀의 일기장』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팬이야』 『김종욱 찾기』 『앤』 『한 달간의 사랑』 『헬로, 미스터 찹』 『간호사 J의 다이어리』 『미인도』 『어쩌다 이런 가족』 『달이 뜨면 네가 보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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