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의 대담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아리엘 키루 지음 | 권오룡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1월 24일 | ISBN 9788932030722

사양 변형판 125x200 · 140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통째로 바뀌는 4차 산업 시대가 다가온다!
임박한 고용의 몰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이 운명을 희소식으로 만들 방법은 무엇인가?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고 실현하기 위한
세계적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독창적 사유

“향후 20년 안에 임금제 고용 형태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프랑스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자동화 기술의 확산과 그로 인해 초래될 임금 고용의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언하는 책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권오룡 옮김)가 출간되었다. 저널리스트 아리엘 키루와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책은 자동화 기술에 관련된 스티글레르의 여러 아이디어들을 응축해 담고 있다. 자크 데리다의 제자이기도 한 스티글레르는 『기술과 시간』 『자동사회』 등의 굵직한 저서를 통해 이미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로서 기술만능주의나 기술혐오증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실천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선보이며 앞으로의 행로를 찾아나간다.
이 책은 거스를 수 없는 자동화의 추세 속에서 고용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 혹은 퇴화되고 있는가를 밝히고, 이런 변화 과정 속에서 일의 의미를 새롭게 포착하여 창조성에 기초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철학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들을 점검한다. 고용의 위기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 직면해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의 길을 개척하는 데 반드시 참고해야 할 소중한 지침서다.

 


고용의 죽음, 그것은 또한 실업의 죽음이기도 하다.
고용을 죽여 일을 살리기를!

 

전 지구적 경제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위기가 몰아닥치자,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2008년 10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섰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오리라고 전혀 예견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자동화된 기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스티글레르는 이 순간 그린스펀 스스로 모든 ‘경제적 앎’을 잃어버렸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린스펀은 수백만 달러의 봉급을 받았지만 자본주의 관료제의 피고용인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더 이상 명확한 앎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일 역시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고 스티글레르는 해석한다. “앎은 곧 일이고, 일한다는 것은 언제나 앎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고용emploi과 일travail을 대비시키는 부분이다. 스티글레르는 노동자가 봉급을 받는 활동을 ‘고용’으로 규정하고, 보수를 받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앎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 앎의 표현을 ‘일’이라고 규정한다. 진정한 일이 개인화, 발명, 창조, 사유 등을 의미한다면 현재의 피고용인들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고용은 표준화, 기계적인 반복, 동기 박탈만을 양산하며, 오직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실업의 위협을 가함으로써 사람들이 계속해서 고용되기만을 바라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을 궁핍하게 만들고 바보로 만드는 고용은 일의 해체일 따름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고용의 죽음은 오히려 희소식일 것이다. 스티글레르는 고용의 몰락을 일을 재발명할 기회로 삼고, 우리를 서서히 탈진시키는 무관심의 경제를 대신할 ‘기여경제’를 수립하는 계기로 만들자고 호소한다.

 


자동화 기술의 범람과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미래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데 반드시 참고해야 할 지침서

 

2014년 미국 퓨 리서치 센터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1896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지금부터 2025년까지 자동화되고 상호연결된 인공지능과 로봇 장치가 창출할 일자리보다, 그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결과는 무승부. 절반은 그렇다고 답했고 나머지 절반은 아니라고 답했다.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자동화 기술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자동화 시대는 시작됐다. 메르세데스사는 전 자동 방식으로 엔진을 만들고 있으며 아마존은 창고 관리의 완전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얼마 안 가 자율주행 차가 상용화되고 슈퍼마켓에서는 계산원이 사라지며 숙련공에 대한 필요도 줄어들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스티글레르는 향후 20년 안에 자동화가 물밀듯 밀려와 인간의 일자리를 파괴할 테지만, 임금제 고용을 수호하기 위해 디지털 시대의 다양한 자동기계들과 정면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정신의 자동화’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할 일은 자동화와 비자동화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프리웨어 개발자의 사례처럼 비궁핍화에 도움이 되는 자동화를 받아들이고 ‘비자동화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다. 비자동화 능력이란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자동성을 획득하고, 기존의 자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뭔가 새로운 것을 발명하게 해주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나 장인이 오랜 연습과 노력 끝에 숙달의 경지에 이른 자동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주법이나 작업 방식을 창조해내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자동화를 바탕으로 창조적 해석과 방법을 만드는 능력이 바로 비자동화 능력이다. 스티글레르는 이러한 ‘비자동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기초교육의 재편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일 개념과 재분배 방식을 모색하고
무관심의 경제를 넘어 기여경제를 수립하기 위한 실험과 제언

 

스티글레르에 따르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파르마콘pharmakon, 즉 ‘약이자 독’이다. 프리웨어나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협동경제 프로젝트는 우리의 앎과 공유에 양분이 되지만 시장의 단기적 이윤만을 위해 이용된다면 우리 능력을 박탈하고 앎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스티글레르는 ‘정치적 치유술’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 일환으로 그는 프랑스의 ‘예술인 실업급여제도(앵테르미탕)’를 모델로 삼은 새로운 재분배 방식을 제안한다. 사용가치가 아닌 실용적 가치에 기초하여 긍정적 외부성을 창출하는 기여소득. 임금에 의한 재분배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여에 기초한 재분배. 여기에 문제의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여소득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본소득 또한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경제적으로 이성적인 재분배가 가능할 것이다. 자동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와 그것이 초래할 불합리성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자동화를 온전히 옹호할 수 없다. 그러니까 새로운 경제적 합리성, 자동화의 합리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여러 논의 공동체와 실험 영역, 예외 지대 등을 만들어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가기 위한 시험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용의 구조적 소멸에 직면해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젊은 세대를 위해서, 또 앞으로 근본적으로 달라질 사회,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모두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티글레르가 말하는 기여경제 모델로의 혁명적 이행이 필수 과제일 것이다. 철학적이고 폭넓은 전망을 이야기해나가는 이 짧은 대담집이 다양한 토론과 논의의 장을 여는 촉매가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자동화, 그리고 마치 먹구름이 폭풍을 몰고 오듯 자동화가 몰고 올 고용 위기가 처음에는 아주 나쁜 소식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건 아주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역사의식을 지니고 사회 협약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 사회 협약이 이런 사실, 즉 고용의 종말이 일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현실화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경제, 새로운 영토성, 다시 말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만 있다면 이건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 책 속으로

자본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 더 범위를 넓혀 말하면 지구상의 시민들 같은 이 모든 주역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투자가 투기로 대체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미래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냉소적입니다. 제 책에서 썼던 대로 말하면 체계적 불신이지요. _34쪽

일이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뭔가를 성취함으로써 앎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피카소는 그림으로 일을 한 거죠. 저는 정원 가꾸는 일로. 이건 제게 뭔가를 가져다주거든요. 제가 정원을 가꾸는 건 단지 홍당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거기서 저는 식물에 대한 앎을 키우고, 그것을 정원사나 식물학자 등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책을 쓰거나 위키피디아에 참여하거나 프리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애초에 보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건 “부자 되세요”라는 유명한 말보다 더 풍요로운 의미에서 저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죠. _39~40쪽

한편에는 무관심의 경제에 의해 극단적으로 궁핍화되는 고용이 있습니다. 이 고용이라는 것은 생산자나 소비자 개개인의 정신 상태를 파괴합니다. 그것은 개인을 일종의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바꿔버립니다. 이렇게 된 인간 존재가 만드는 것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아무런 영향력도 지니지 못합니다. 그는 자기 행위의 창조자가 아니라 그저 추종자일 뿐이죠. 생산의 측면에서 도구에 대해 성찰을 하지 않고 숙련되지도 않은 그는 단지 ‘나사못만 조일’ 뿐이죠. 이런 게 테일러주의입니다. 이 궁핍화된, 기계의 보조물인 피고용인은 그 자신이 기계가 되어버립니다. 더 이상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이제 그는 완전히 자동인형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_45~46쪽

프리웨어 공동체 역시 자동기계들을 활용합니다만, 그들이 그걸 사용하는 건 그들 자신의 비궁핍화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프리웨어 개발자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신들의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대단히 강합니다. 자신들이 앎과 개인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동기계를 자신의 비자동화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비궁핍화의 산업 시대를 건설해나가고 있는 겁니다. 프리, 즉 자유롭다는 것은 이 지속적인 비자동화에 의해 끊임없이 시스템을 개선하게 해주고, 자동기계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어떤 것을 사용자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동성을 활용하여 비자동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를 통해 고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일을 만드는 겁니다. _70쪽

우리 시스템은 전부, 소득세에서 사회보장비는 물론 의무공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고용과 임금제에 기초해 있습니다…… 고용이 죽었다는 것, 그러니까 이런 시스템이 몰락했다는 걸 인정하고, 그런 다음 다른 가치에 기초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많은 집단주의를 깨뜨리는 걸 전제로 합니다. _103쪽

이행의 시기에는 지금 사라지고 있는 과거에 기반을 둔 미래를 확신시켜야 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투신해야 합니다. 또 그 미래의 출현에 대해서도 ‘협상’해야 합니다. 방향 전환에 대해 파트너들 간에 협상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게 핵심적 난제이고 따라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아직은 세제, 구매력, 자금 유통에서 돌아오는 것을 내일 아침을 위해 가능한 한 유지하고 기존의 일자리들 또한 가능한 만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보호 조치들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환상을 키워줘서는 안 됩니다. 그 너머에 사회적 파트너들과 함께, 직면한 현실에 부합하는 참된 답을 세워야 합니다. _106쪽

제가 자동화의 발전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저는 프랑스 정부에서 교체된 여러 경제 장관들과 마찬가지로 그 길로 단호히 매진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건 정부와 함께 하든 하지 않든, 다소 장기적 관점에서 정부가 그것에 제동을 걸든 더 전진하도록 박차를 가하든 상관없이 발전될 것이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현안은 이런 자동화의 진실을 합리적 방식으로 포괄하는 새로운 모델을 구상하고 실험해보는 것입니다. 110쪽

거시경제 시스템의 주변부를 제외하고는 구조적으로 더 이상 실업도, 임금제도 없다는 걸 인정합시다. 이제 돈을 주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야 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동화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스템의 상환 가능성에 유리하고, 로봇과 (앵테르미탕 제도에서처럼) 비정기적으로 임금을 받는 생산직 종사자들이 만드는 상품을 파는 시장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 우리가 실용적 가치라 부르는 네겐트로피적 가치를 만들어내며 모든 형태의 앎, 앞으로 도래할 사회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이루게 되리라는 걸 모두 인정하고 동의하는 앎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111~12쪽

목차

머리말 _아리엘 키루
대담 _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아리엘 키루
해설 _이지훈
작품 목록

작가 소개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지음

프랑스의 기술철학자이자 문화 이론가. 은행 강도 혐의로 5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이십대 시절에 철학을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던 철학자 제라르 그라넬 교수로부터 자크 데리다를 소개받았고, 이후 1992년 고등사회과학원에서 데리다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철학학교 연구 주임, 콩피에뉴 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6년 국립 오디오-비주얼 연구소INA 부소장, 2002년 현대 음향/음악 연구소IRCAM의 소장으로 일하다가 2005년에는 산업 정책과 정신의 테크놀로지를 위한 국제 협회인 아르스 앵뒤스트리알리스Ars Industrialis를 창설했다. 2006년 퐁피두센터 문화 발전 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혁신연구소IRI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2010년에는 철학 학교인 pharmakon.fr을 만드는 등 기술철학에 바탕을 둔 여러 정치적․문화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티글레르는 기술과 매체에 관한 독창적이고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철학, 정치학, 미학을 넘나들며, 급변하는 현대 기술의 진화와 발달 양상을 이론적으로 분석․종합한 수십 권의 책을 펴냈다. 대표작으로 자크 데리다와의 대담집 『에코그라피』를 비롯해 『기술과 시간』 『상징적 가난에 대하여』 『자동사회』 등이 있다.

아리엘 키루 지음

저널리스트 겸 라디오 진행자. 신기술, 전자음악, 공상과학 전문 에세이스트 겸 작가. 파리 정치대학을 졸업했으며 1995년 프랑스의 초기 웹사이트 중 하나인 ‘버진 메가웹Virgin Megaweb’ 창립에 참여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악튀엘Actuel』지의 편집장으로 일했고 이후 『크로니카르Chronic’art』 『멀티튜드Multitudes』 등 여러 지면에 기고했으며, 현재 ‘모바일 문화Mobile Culture’ 사이트의 편집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테크노 혁명: 전자음악의 세기』 『구글 신: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빅브라더』 등이 있다.

권오룡 옮김

권오룡은 1952년 경주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불어물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평론집 『존재의 변명』 『애매성의 옹호』와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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