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전상진 지음

출판사 문지푸른책 | 발행일 2018년 1월 5일 | ISBN 9788932030333

사양 변형판 125x200 · 33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인종
, 지역, 젠더…… 이제 문제는 세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 프레임 걷어내기

MIT 경제학 교수 레스터 서로는 199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 칼럼에서 ‘어떤 혁명적 계급의 탄생’을 알렸다. “가까운 미래에 계급 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의 싸움으로 다시금 정의될 것이다.”
최근 한국의 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6년 19~75세의 국민 3,6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10년 후 고령자와 젊은이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62.2퍼센트에 달했다.” 최근 기사들의 면면을 봐도 학교, 직장, 가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서 ‘말이 안 통하는 꼰대’ ‘젊은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는 비난이 난무하며, 한국 사회가 직면한 세대 갈등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이제 해묵은 지역 갈등이나 전통적인 계급 대립보다 세대 갈등이 더 대세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결, 즉 세대들의 싸움이 이미 시작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랫동안 세대론을 연구해온 사회학자 전상진의 대답은 이렇다. “미안하지만, 아닙니다.” 그는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세대’가 무엇보다 ‘핫’한 현상이 된 데 대해 독창적이고도 흥미진진한 이론을 펼쳐 보인다. 이를테면 그는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세대 게임’이라는 틀로 분석하고 진단한다. 저자가 말하는 세대 게임에는 게임에 참여하는 ‘세대 당사자’와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하여 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세대 플레이어’가 있다. 이 중에서 저자는 ‘세대 플레이어,’ 특히 그들이 게임을 통해 얻는 ‘정치적 수익’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사회 현안을 세대의 문제로 해석하는 ‘세대 프레임’을 통해 온갖 사회문제를 ‘세대’의 부호로 변환한다. 즉 중요한 사회문제가 세대 대립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가능한 원인들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치 촛불과 맞불이 대립했던 지난 광장의 소란을 법치와 민주주의의 틀이 아닌, 세대 대립의 문제로 보는 것처럼.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의거해 저자는 질문한다. “혹시 우리도 세대 프레임의 강렬한 불빛에 현혹되어 엉뚱한 곳만 주시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최근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 프레임에 현혹되기보다 먼저 “의심하고 주저하기”를 권한다. 그를 위해서 세대가 커뮤니케이션 되는 방식과 그것의 전략적 측면, 곧 세대 게임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Playing the [generation] Card! ; ‘세대로 카드 게임하기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흥미로운 이론을 개진해온 전상진은 전작 『음모론의 시대』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음모론이 들끓는 이유와 그 사회적 기능을 막스 베버의 ‘신정론’에 비추어 분석하면서, 음모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음모론자의 여러 유형, 그리고 각각의 세력들이 음모론을 어떻게 정치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보여준 바 있다. 그의 두번째 저서 『세대 게임』 또한 그간의 작업과 궤를 같이하며,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세대 담론들을 비판적인 관점과 독창적인 분석 틀, 그리고 현실과 맞닿은 풍부한 실례들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일상적으로 혹은 학술적으로 혼재해 쓰이는 ‘세대’ 개념을 알기 쉽게 정의하고(2장), 한때 청년의 전유물이던 ‘세대’ 개념이 변화한 배경을 살피는 한편(3장),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세대 전쟁론’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펼쳐 보이며(4장), 세대 연구의 최신 성과들을 차근차근 점검한다(5장). 이와 더불어 최근 한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맞불 어르신 세대, 즉 ‘시간의 실향민’이 정치 세대로 진화하는 과정을 조감한다(6장). 이를 위해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혹은 그렇다고 믿어지는) 세대 갈등의 양상을 면면히 살피는 한편,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그 쓰임새를 보다 명확하게 살피고자 ‘세대 게임’이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제목이 말하는 ‘세대 게임’은 저자가 새롭게 뜻을 입힌 개념으로, “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뤄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활동과, 게임의 판을 짠 집단들이 어떤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세대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경쟁이나 싸움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말한다.”
특히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세대 담론이 남용되는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 ‘세대 프레임’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조지 레이코프의 유명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보여주듯, 주로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에서 만들어낸 공적 담론의 프레임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꿔왔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인종 프레임’을 활용한 사례로 미식축구 선수이자 배우였던 O. J. 심슨을 들 수 있다. 심슨의 변호인이 살인 혐의를 인종 차별의 결과로 보게끔 판을 짰던 것처럼,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세대와 별 상관없는 사안들을 세대들이 서로 다툰 결과로 보게끔 프레임을 짠다. 이렇듯 사안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원인, 책임, 해결책이 달라진다. 현실은 극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청년과 노인과 기성세대의 삶이 힘들어졌음에도 청년 대 기성세대라는 상상의 전쟁을 부각시킨다. 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의 예리한 창은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 예컨대 자본, 기업, 그에 기생하는 정치권력과 같은 원인들을 겨누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계급이나 젠더나 지역과 같은 전통적인 대립은 조명받지 못하고, 연령 차이일 뿐인 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립이 사회적 고통의 진원지가 된다.
이를 실마리로 하여, ‘세대 게임’의 기본 전략을 추출할 수 있다. 바로 이를 활용하는 사람(세대 게임 플레이어)과 그에 이용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지자를 모으는 전략(지지자 세대 게임)과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대상을 찾는 전략(비난의 세대 게임)이 그것이다.

 

누가 세대 카드를 쥐고 우리 사회를 흔드는가

그렇다면 지금, 왜 ‘세대’인가. 유사 이래로 청년과 기성세대의 세대 갈등은 새로울 것 없는 케케묵은 단골 메뉴가 아니던가.
저자는 우선 우리 사회에서 세대 담론이 남용되는 데 대해 ‘세대’가 우리가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밝혀주는 ‘정체성’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때 우리의 든든한 정체성이던 민족은 그 효력이 약해졌다. 서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계급은 이 땅에서 변변한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세대는 그러한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웠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건강’하고 숙명의 무게를 덜어낸 세대는 그야말로 한국의 정체성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세대가 가장 ‘핫’한 정체성 상품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세대 언어가 가진 편리함, 즉 세상만사에 다 쓰일 수 있는 그것의 가소성 덕이다. 바로 그러한 속성 때문에 세대는 정치인에게 인기가 높다. 만약 정치인이 세대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칠 때, 젊은이나 노인 들은 모두 자신들을 위한 정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세대 언어의 매력”은 그것의 “분석적 명확성”이 아니라, 그것의 가소성에 기인한 불명확성, 말하자면 대상의 차이는 물론이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뒤섞어버리는” 능력에 있다. 이렇듯 세대 언어의 매력을 극대화한 것이 ‘세대 프레임’이다. 세대 프레임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세대의 틀로 정의하고, 특정 세대에게 책임을 묻고, 그 세대에게 벌을 가하거나 그들로 인해 손해를 입은 다른 세대에게 보상하는 식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
특히 저자는 현재와 미래의 세대 갈등에서 핵심 키워드는 저출산・고령화라고 지적한다. 세대 갈등은, 다른 모든 갈등이 그런 것처럼 불안과 연결된다. 불안하니 싸울 일이 많아진 것이다.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데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변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세계가 늙어가고 있다. 사회가 늙어간다는 것은 단지 사회 구성원이 늙어간다는 뜻 이상의 것을 담기에, 오늘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다. 바로 세대 게임이 활약할 ‘최고의 순간’이다. 세대 게임은 빠르게 다가오는, 알 수 없는 세계를 그만큼 쉽고 빠르게 설명해준다.
이러한 인식에 근거해 저자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염려한다. 그러나 “갈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여러 사회 갈등들이 중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자체로 무의미한 세대 갈등들을 하나로 겹쳐 보이게 만들면, 우리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일로 격하게 싸워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의심하고 주저하기”를 특히 강조하는 까닭이다.

 

책 속으로

세대는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다. 나중에 자세히 살피기에 추려 말하면, 세대는 간편함과 가소성이 그 큰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정체성과 관련해서 탁월한 매력을 뽐낸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일원임을 밝혀주고, 그러한 우리를 역사의 흐름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세대는 우리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 속에 서식하며, 그들의 시간의 서식처는 ‘너무 이르거나 늦어서’ 역사의 흐름을 방해한다. 말하자면, 세대는 차이를 만들거나 유사성을 찾는 데 유용한 정체성의 근거이자 도구다. 그 덕에 세대는 일상에 깊이 뿌리박은 최적의 정치 언어 그리고 정치적 게임의 도구가 된다. 쉽고 빠르게 우리 편과 상대편을 갈라내어, 지지자를 만들거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내세울 수 있다. _22쪽

최근 20대 후반의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들은 입사 때부터 ‘회사에서 적어도 국장 정도는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의 상사는 자신의 젊은 시절에 비추어 후배들을 대한다. “이 친구들, 내 20대와 마찬가지로 높이 오르고 싶을 거야.” 상사는 ‘내가 너희들의 미래다’라는 관점을 고집하고, 젊은 기자들은 ‘나름의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선배의 길을 따르지 않거나 못할 거라(내가 충성한다고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않아) 생각한다. 여기서 긴장과 잡음이 발생한다. 상사는 연령 세대의 관점에서 후배를 대하지만, 후배들은 동년배 세대의 입장에서 상사를 대한다. ‘내가 거쳐 온 길을 너희도 걸을 것’이라는 연속성의 입장과, ‘당신은 당신의 길을 걸었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차이를 강조하는 관점의 갈등이다. _41~42쪽

청년성이 만인이 탐하는 상품이자 좇아야만 하는 가치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곧 청년성이 더 이상 청년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젊은이로부터 청년성이 해방됨으로써, 청년은 청춘을 빼앗기고 노인은 청춘을 강요받는다. 사춘기 청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그러한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바처럼 사춘기 청년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낮은 출산율, 높은 주거비용, 고용 불안의 측면에서 다른 OECD 회원국을 압도한다. 낮은 출산율은 부모 되기를 방해하고, 높은 주거비용은 독립생활을 어렵게 하며, 고용 불안은 안정적 직장을 취득하기 힘들게 만든다. 한국의 청년들은 사춘기 청년으로 지체되면서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사춘기 청년은 세대 전쟁의 훌륭한 명분이다. 물론 명분일 뿐이다. 세대 전쟁의 해결책은 승자가 편취한 패자의 몫을 승자로부터 박탈하기 위해 그들 특권의 근간인 제도와 규제와 기득권을 창조적으로 파괴하자는 것이지만, 그러한 개혁이 실제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럽다. 앞으로 살피겠지만, 기성세대나 노년 세대를 겨냥하는 세대 전쟁론적인 개혁의 예리한 창은 문제의 구조적 원인, 예컨대 자본, 기업, 그에 기생하는 정치권력과 같은 원인들을 겨누지 않는다. 그런 탓에 세대 전쟁론이 내세우는 청년에 대한 배려는 말잔치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청년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차별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_79~81쪽

개혁, 혁명, 정의, 불평등과 같은 개념들은 오랫동안 진보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용어들을 기업이나 보수 세력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프랑크 눌마이어의 말에 따라, 이를 “개념의 점거”라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1970년대 보수 진영이 개념을 점거했다. 한 예가 바로 세대 형평성과 정의다. 그로써 계급이나 계층 또는 이데올로기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용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투쟁 구호로 사용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 담론 역시 그러한 용례를 충실히 따랐다. _140쪽

두 형식의 세대, 곧 나이에 따라 ‘분류된’ 세대와 ‘우리 의식’을 갖게 된 세대를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유명한 말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다. 여성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처럼, 세대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여성/남성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세대는 나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생물학적 성(섹스)과 사회문화적인 성별(젠더)이 다른 것처럼, 연령 세대와 사회문화(정체성) 세대도 다르다. 연령이 같거나 유사한 사람들을 세대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렇게 분류된 세대가 고유한 우리 의식, 그러니까 ‘집합적 자기의식’을 자연스레 지닐 수는 없다. 말하자면 나이는 세대가 형성되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지만, 나이가 비슷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하는 세대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질문은 세대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어떻게 세대가 만들어지는지’를 향해야 한다. _157~58쪽

베른트 바이스브로트는 독일이 20세기에 일으킨 첫번째 전쟁이 세대 형성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검토한 후에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중요한 것은 “전쟁 경험의 가공이다.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고대했던 정체성의 경험 공간으로서 그것의 ‘신화’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은 민족사회주의(나치)라는 청년 세대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의 본디 경험이 아니다. 나치 청년들은 나이가 어려서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을 결집시킨 것은 자신들이 원했던 모습으로 채색된 전쟁의 신화적 경험이었다. 이는 앞서 말한 표현 능력과 관철 능력의 문제다. 전쟁과 같은 트라우마틱한 사건은 분명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하여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는 능력이다. _171~72쪽

제발트와 부데가 말하는 시간 고향은 사전적 의미의 고향, 가령 나고 자란 곳 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 아니다. 시간 고향은 하나의 “기억된 감정의 풍경”이다. 어떤 세대에 속해 있다는 감정적 느낌이나 자각이라 말할 수 있는 시간 고향은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 곧 고향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낸 시간을 통해서 정의된다. 시가나 고향 친구들, 줄여서 시간의 향우는 공간 근접성을 통해 가까워진 것이 아니다. 시간의 향우들은 유사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공통의 감정과 감각으로, 가까운 또는 이웃한 느낌을 지니게 된다.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뭔가를,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배들과 공유하지만 명백히 언급되지 않는 ‘우리’라는 감정의 토대인 뭔가”를 나는 시간의 향우들과 공유한다. 또한 시간 고향은 “망각에 대항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제발트는 자신이 속한 세대에게 그들의 끔찍한 기원을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시간 고향은 “역사의 단절”이다. 이전과 다른 역사에서 자신과 동년배들의 결속을 찾는다. 요컨대 시간 고향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우리 감정’의 토대이고, 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단절을 통해 세대를 결속한다. _181~82쪽

한국에서 노인이 겪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그 고충은 사회적 고립과 함께 노인들의 삶을 힘겹게 한다. 그들은 또한 고유한 삶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청소년기나 청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을 보수적인 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국정 농단과 탄핵을 거치면서 나타난 인지부조화 역시 활용 대상이다. 말하자면, 정치 세대인 맞불 어르신은 다섯 가지 요인들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①노인으로서의 고충, ②사회적 고립, ③시간 고향에서 비롯한, 세대 대상을 중심으로 응집한 공통의 경험, ④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의 역할, ⑤시간 고향의 상실이 야기한 인지부조화. ①과 ②는 사회적 맥락, ③은 세대 형성의 필요조건, ④와 ⑤는 충분조건이다. 요컨대 정치 세대로서의 맞불 어르신들은 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의 도움과 탄핵이 야기한 인지부조화 때문에 세대로 결정結晶되었다. _215~16쪽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보여주지만 두 가지 세대 원형, 곧 독일의 기젤라 베른젠과 윤덕수(「국제시장」)의 공통점은 이거다. “역사적 산증인들의 세대 경험 이야기는 자신들의 경험과 현재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대성 연구는 과거의 체험과 마찬가지로 화자의 현재적 삶에도 주목해야 한다.” 기젤라 베른젠이 현재적 필요를 독일 전후 재건기라는 시간 고향에 투사한 것처럼, 현실의 윤덕수들도 현재적 필요를 ‘1970년대’라는 시간 고향에 투사한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자신들이 희생한 것에 관심을 가져달란 말이다. 자신들의 공헌을 인정하라는 요구다. 그에 더하여 열악한 살림살이와 악화된 건강에 대한―사회와 국가의 보살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에 대한―관심을 원한다. 따라서 “한 세대의 시간 고향은 언제나 매우 시의적절하다.” 그들의 경험이 현재의 요구라는 필터를 거쳐서 시간 고향의 스크린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이 지금의 요구에 따라 각색되어 시간 고향에 대한 추억으로 상영되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것이다. 요컨대, 1970년대 향우회원들의 세대 이야기는 그들의 현재 고충과 시간 고향에 대한 기억이 결합된 요구이자 주장이다. _231~132쪽

세대 갈등은 다른 사회집단의 갈등과 완전히 다르게 구조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전체 생애 주기를 거친다. 현재 노인은 과거에 청년이었고, 현재 청년은 미래에 노인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젊은이 역시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를 현재의 노인과 함께 고민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노인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기에 젊은이의 고민에 동참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세대 갈등은 다른 사회집단의 갈등과 확연히 다르다. 요컨대 세대 갈등은 다른 사회 갈등과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세대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대 갈등을 온갖 갈등과 뒤섞어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래야 자신들의 말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의도가 은폐되고, 나름의 목적 실현이 수월해진다. _269쪽

목차

들어가며

1장 의심하고 주저하기

2장 나이와 경험―세대를 정의하는 두 가지 기준

3장 청년은 비참하고 노년은 화려하다―청년과 노년의 이미지 변화
1. 청년은 우리의 미래다?
2. 노인, 새로운 주체
3. 청년, 몰락한 주체

4장 세대 전쟁―청년 대 기성세대의 대결
1. 세대 전쟁론의 네 가지 요소
2. 세대 전쟁의 레토릭
3. 한국으로 수입된 세대 전쟁론

5장 시간의 고향―세대 정체성의 중요한 닻
1. 세대 정체성의 경쟁자들
2. 세대 모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3. 경험의 차별성
4. 시간 고향

6장 세대 투쟁―시간의 실향민이라는 정치 세대의 등장
1. 인지부조화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2. 1970년대라는 시간 고향과 신성한 삼위일체
3. 시간의 실향민과 지지자 세대 게임

7장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1. 두 세대 게임의 차이
2. 세대 프레임 들여다보기
3. 개혁의 역설과 미래의 세대 갈등

미주

작가 소개

전상진 지음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현상들을 사회학이라는 ‘도구’로 해석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세대 문제, 음모론, 자기계발 붐 등에 관심이 많다.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세대 프레임’을 넘어서』가 있다.

"전상진"의 다른 책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3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