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지 이야기

최시한

출판사 문지푸른책 | 발행일 2017년 11월 24일 | ISBN 9788932030500

사양 양장 · 변형판 116x186 · 193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구름 그림자」 등이 수록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이후 20여 년 만에 오랜 침묵을 깬 소설가 최시한의 신작!

“아버지는 농부였으나
우리 동네 바람에서는 늘 갯내가 났다”

‘무의미’와 ‘망각’에 맞서 한 세대의 색깔과 무늬를 오롯이 되살린,
최시한의 자전적 연작소설!

1996년 「허생전을 읽는 시간」 「구름 그림자」 등이 수록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소설가 최시한의 신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는 전작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번민과 방황, 욕망과 우정, 고독, 삶에 대한 성찰 등을 특유의 섬세하고도 정교한 문체로 그려내는 한편, 열악한 우리 교육 현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교과서에도 실리며, 지금도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후 20여 년 만에 발표하는 소설인 이 책 『간사지 이야기』는, 최시한의 소설가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간사지는 ‘간석지를 둑으로 막아 개간한 땅,’ 즉 ‘간척지(干拓地)’를 가리킨다. 실제로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장곡리의 간사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자신의 고향을 소설의 주요 무대로 옮겨 왔다. 그는 실제 자신의 가족과 이웃, 고향의 들판과 바다, 갯벌, 그곳들을 훑고 지나간 시간들을 더듬어 14편의 이야기들을 완성해냈다.
이 책에 실린 연작들은 60~70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나’의 유년기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이 된 이후까지를 그린다. 각 편의 에피소드들은 얼핏 따로 떨어진 듯 보이지만, 후반부에 가서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통합되면서 세월의 흐름과 한 시대의 변화를 아울러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간사지’는 주인공 ‘나’의 고향이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정체성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구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간사지’ 땅은 그 시작이 인간이 바다를 개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곳이지만, “시간을 되돌려 둑을 허물고 바닷물이 도로 들어오게 한다면,” 자연의 순리대로 게가 기어 다니는 “바닷가 이름 없는 갯벌로 돌아갈” 강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소설 곳곳에서 시간의 흐름과, 이에 적응해가는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우리 삶과 사회, 인간성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소설과 수필의 경계에 있는 14편의 연작들
작가로서 문학이론가로서 최시한이 시도하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적 실험!

바다가 간사지의 논이 되었으니, 왕소나무 숲도 쑥대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소나무처럼 덩치가 큰 것들이 어째 그리 약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래되고 아름다운 게 왜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문득 사라질 수가 있는지, 그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_「왕소나무 숲」에서

그동안 문학교육 권위자로 문학이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스토리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소설의 해석과 교육』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 등 여러 편의 문학연구서 및 교육서를 펴낸 작가는, 이번 작품인 『간사지 이야기』를 통해 그간 가슴속에 품어온 이야기 타래를 풀어낸다.
주인공 ‘나’가 거쳐 간 삶의 궤적은 작가가 걸어온 길과 닮아 있다. 충남 보령의 간사지 마을 출생인 ‘나’는 아버지의 결단으로 국민학교 때 서울로 전학 가, 대학 졸업 후 국어 교사가 된다. 작가인 최시한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대학 교수가 된 바 있다. 내년 2월 정념퇴임을 앞둔 그는, 작가로서 문학이론가로서 교육자로서 그간의 삶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가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한 바를 통해 깨달은 바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된, 시어(詩語)와도 같은 문장으로 쓰인 14편의 연작들은 각기 고유의 빛을 발하며, 인간과 한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을 엿보게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전학 간 친구, 갑작스레 고향 집에 찾아온 문학 동아리 여학생, 서울 공장에 취직하려 기차에 오르던 동네 누나 등-과 사건들은,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다. 작가는 “사실에 상상을 버무려 빚어낸 형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들, 동네 이웃들의 면면을 작품 속에 녹여내어 완전히 새로운 자신만의 ‘이야기’(소설)로 창조해냈다.
작가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구수하고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 속에는 내 가족과 이웃, 내가 자란 곳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소설가로서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예전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내 속에 존재하는 고향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 사건 들을 “망각”하지 않고 그것들을 문학적으로 되살려 내려는 노력과, 문학이론가로서 소설과 수필의 중간 단계인, 새로운 형식의 문학적 실험을 시도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 이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끝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현실은 끝이 잘 안 보이니까”
‘간사지’를 무대로, 자연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주인공 ‘나’의 성장과 그 흐름을 같이한다. 뒷동산에 우거진 오래된 왕소나무 숲과 갯벌을 덮은 물이 치런 대던 바다, 친구들과 돼지 오줌통을 차고 놀던 추억, 첫사랑의 떨림 같은 개인적인 서사들에 더해, 60~70년대 급변하는 세태 속에 경제적 궁핍과 암울한 정치적 형국에 휩쓸린 지방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설의 무게를 더한다.
1부에서는 1960년대 초 국민학교 6학년을 앞두고 서울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나’의 유소년기 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이던 명절날의 풍경(「왕소나무 숲」), 어른들 눈을 피해 보름달이 뜬 밤에 바지락을 캐며 정분을 나누던 동네 처녀총각의 연애(「봄 바지락」), 쥐불놀이를 하며 아랫도리가 흙투성이가 될 때까지 들판을 뛰어다니던 정월 대보름날(「밤」), 곱고 인정 많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어머니」) 등이 그려진다.
2부에서는 사춘기에 접어든 ‘나’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대학생이 된 이후까지 다룬다.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봉제 공장에 돈을 벌러 아버지 몰래 가출을 감행한 건넛마을 누나(「서울 길」), 노동운동에 앞장섰다가 고문을 당한 뒤 자살한 동네 형(「서울 길」), 싼 수입 밀가루와 석탄에 밀려 고향에서 더는 먹고살 길을 잃은 사람들(「첫눈」)의 이야기를 통해 달라진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을 마주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3부는 도시로 승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잔치」라는 작품 한 편으로 되어 있지만 1, 2부에서 등장한 인물과 사건 들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잔치」에서,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가 된 ‘나’는 친한 친구 ‘수복’의 주최로 벌어진 ‘성미 누나’의 결혼식 잔치에 초대된다. 결혼식 잔치라지만 실상은 수복이 상경한 간사지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건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서울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과 비애가 섞여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간사지 마을도 간사지 사람들도 변화를 겪는다. 변하여 가는 것들을 막을 수 없지만, 자연이 그것에 순응에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길 반복하며 새로운 생명을 움 틔우고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반면 “처음부터 서울 사람인 사람이, 지금 서울서 몇 되나유?”라는 ‘나’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난 자리를 살피지 못하고 끊임없이 물질적 욕망에 이끌려 다닌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우리 삶은 더욱 고단해진 것을 보며, 작가는 그것이 과연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넌지시 되묻는 듯하다.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 담긴 깊은 통찰과 세월의 무게가 독자들에게 공감과 더불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속으로

“아저씨는 왜 서울루 안 가유?” / “왜 안 가너냐구? 안 가넌 게 아니구 뭇 가는 거여…… 배운 게 차 모는 건디……” / 그 뒷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 “괜찮어유. 처음부터 서울 사람인 사람이, 지금 서울서 몇 되나유?” / 어쩐지 나 자신한테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 “그게 아니구, 운전이야 워디서건 허겄지만, 부모님이 뭇 떠나니께 갈 수가 웂어.” / 부모님이 왜 못 떠나느냐고, 나는 물을 수 없었다. / “탄광이 문 닫어도 연탄은 땔 테니께, 배달 일이야 있겄쥬.” / “탄광이 왜 문 닫넌지 아남? 외국 석탄이 더 싸구 좋으니께그려. 그런디 값이 싸나 안 싸나, 앞으루는 연탄이 아니라 기름허구 가스를 땐다넌디, 그러먼 배달허구 말 것두 별루 웂겄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도대체 워처케 돌아가는지……”_첫눈101~102

바다에 노을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빛에 젖은 금희의 어깨가 바다를 배경으로 번져 보였다. 금희 머리에 꽂혔던 꽃이 바람에 날려 갔다. 금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내가 왜 왔나, 그게 궁금할 거야.” / “응. 그랬어.” / 나는 솔직히 말했다. / “진짜 좀, 촌스러운 거 같네.” / 금희가 잠시 망설였다. / “……네가 누구하고 사귄다는 말을 들었어. 하지만 이제 그 얘긴 필요 없어. 네가 누구와 사귀든, 네 마음 다 알았으니까.” / 여자애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어도 나는 누구와 따로 ‘사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얘긴 필요 없다고 하니, 굳이 하려고 들면 또 촌스러운 짓이 될 터였다. / 금희가 알았다는 ‘네 마음’은, 이미 금희 속에서 굳어져 있었다. 나는 사귀는 애가 없으니 누구하고든 사귈 수 있겠지만, 금희와 그럴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네 마음’이 혼자 무슨 일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 마음’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되었다. /그때 버스가 나타났다. / “마음에 참샘이 있었습니다. 그 샘물 스스로 솟아, 밤낮으로 바다로 흘렀습니다…… 어때, 나도 제법 시를 쓰지?” / 금희가 그 희고 연약해 뵈는 손으로 버스를 세웠다. / 그리고 그림자처럼 안으로 사라졌다._참샘117~118

“이제 바다가 땅보다 이로울 때가 온다는데, 간사지는 그만 막고……” / “공부는 자네가 잘해도, 농사는 내가 잘 아는구먼. 세상에 땅만큼 소중한 게 워디 있나? 짜디짠 뻘 바닥이야 암만 넓어 봐야 무슨 소용이여? [……] / “나라가 잘돼야 자네두 잘되는 거니께, 좌우간 서루 협조허구 협동해야 되어. 오늘 테레비 보니께, 서울서 시끄런 일이 또 일어난 모냥인디, 부모님 걱정하실 일은 하지 말어. 내가 자네 생각헤서 허는 소리여.” / 나를 생각해주는 아저씨의 마음은 알겠으나,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주 허전하였다. 새마을운동 다리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저물어가는 들판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 그때 갑자기 커다란 합창 소리가 온 들판에 울려 퍼졌다. ‘잘 살아보세!’로 시작되는, 요사이 방송에서 무수히 들었던 그 ‘건전 가요’였다. 창수 아저씨네 지붕에 얹혀 있던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문득 서울이나 여기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_농게129

건전지를 사용하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국내에서 많이 생산되어 ‘약값’ 걱정하지 않는 시절이 되어도 아버지는 여전히 뉴스만 들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길게 탄식을 하셨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다섯 시만 넘으면 방 안이 어둑어둑하던 때였다. 뉴스란 게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웂어. 말두 어렵지먼, 엉뚱헌 소리덜만 허니께 말여. 고기를 잡으먼 보관헐 냉동 창고라두 지어준다덩가, 쌀 내먼 지값을 받도록 헤준다덩가…… 나라에서 그런 건 안 허구 원…… 나야 뭇 배웠으니께 그렇다지먼, 배웠다넌 사람덜이 도대체 뭔 생각으루다 사는 거여. 이러다 또 왜늠들헌티 당허지……_이모158

“돈 있으세요? 집 살 돈 말예요.” / “웂다. 그냥 집값을 보는 거여. 논을 팔먼 되니께.” / 그냥 본다면서 논을 판다…… 애매하지만 놀라운 말씀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하셨어도 아버지는 어디까지나 농부였다. 농부가 논을 팔다니! / “논을 팔면 어떻게 하죠?” / “워척허긴 뭘 워척혀. 정부에서 논값, 쌀값 안 올리기루 작정을 헸으니께, 인저 논은 소용웂어. 집값은 날마다 올러가는디, 논값은 밤낮 제자리인 거, 너 여태 물르네? 지금 논 붙들고 있으면 날마다 손해 보는 심여.”…_아버지160~161

“너희들 말야, 그럼 안 돼!” 수복이가 친구들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냐? 은행나무 땜에 이 동네는 땅값이 안 오를 거라구? 차라리 없는 게 좋다구? ……어떻게 그런 소리를 헐 수 있냐?”
“가르쳐주면 잘 배워라, 이놈아. 옛날 생각만 하지 말구. 요새는 개발 제한이라는 게 있어. 저런 오래된 나무나 문화재 같은 게 있으면, 근처에 집을 맘대로 못 짓는다구. 네가 이 동네에 관심이 많길래 가르쳐준 건데, 고맙다구나 할 것이지 웬 큰소리냐?”
갑자기 수복이가 그렇게 말하는 친구를 밀쳤다. “내 말은, 내 말은 그게 아냐!”_잔치187~188

목차

간사지

제1부
왕소나무 숲
봄 바지락
물레방앗간 사람

똥섬
어머니

제2부
서울 길
첫눈
참샘
농게
이모
아버지

제3부
잔치

작가 소개

최시한

1952년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장곡리의 간사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토리텔링 연계전공 주임, 의사소통센터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연구서 『가정소설 연구』 『현대소설의 이야기학』 『소설의 해석과 교육』『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소설집 『낙타의 겨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그리고 독해력 학습서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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