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17년 겨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7년 11월 24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220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겨울호를 펴내며

순진한 결의문

2016년 가을 『문학과사회』가 혁신호를 낸 뒤 1년이 지나고 또다시 겨울이 되었다. 그간 동인들이 세대, 페미니즘, 문학성, 시인, 이론 등의 키워드를 통해 한국 문학의 현실을 다각도로 살펴보아왔음을 독자들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1년 넘게 지속되어온 이러한 작업은 2015년 여름의 신경숙 표절 논쟁과 이듬해 겨울의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거치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 문학이라는 땅을 멀리서 조망해보고 미래의 지형도를 그려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음 또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련의 작업이 종료되고 난 후, 지난 1년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지며 동인들은 다시 저자와 작품에 대한 비평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문학과사회』 동인들에게 저자와 작품에 대한 비평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갈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자리에 서서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오늘날 저자의 의미와 위치를 돌아보고자 했다. 익히 알다시피 평자들은 저자 –작가를 향해 의미의 고리매듭을 던져 그 매듭에 포착된 언어를 적시해보려 하나, 작가들은 그 매듭을 풀어 자신이 준비해둔 매듭 모양으로 건네어 평자들을 당황케 해왔다. 이번 하이픈의 제목이 “저자 –루프”인 것은 바로 이러한 오래된 관계를 나타냄과 동시에 동인들이 기꺼이 그 루프에 걸려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좀더 솔직한 버전의 이야기는 이렇다. 어떤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을 찾아나갈 것인가? 작가론이나 작품론이 아니라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여섯 명(한 명은 해외에 있어 참여가 힘들었고 대신 관련 에세이를 보내주었다)의 동인 모두가 저자를 만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기존의 인터뷰와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 속에서 공통 질문을 마련하고 각자의 만남을 준비했지만 우리는 내내 불안해했다. 이 불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었을까 ? 저자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형식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이전의 인터뷰들과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불안은 인터뷰가 끝나고 녹취록을 정리하는 내내 지속되었고 마침내 작업을 끝마쳤을 때에는 낭패감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 낭패감은 인터뷰의 내용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섯 명의 작가들과 다양한 대화를 시도하고 얻어진 결과물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생겨날 어떤 효과를 기대해보자고 마음을 추슬러볼 따름이었다.

그 불안과 낭패감을 공유하며, 나는 이 질문이 애초에 그에 해당하는 답을 찾기 위해 던져진 것이 아니었음을 서문을 쓰고 있는 지금에야 깨닫는다. 동일한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보내온 네 분의 에세이를 살펴보자. 소설가 김유진은 “투 머치 토커”인 어머니와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통해 “이야기라는 것은 적어도 그것을 시작하여 끝을 맺는 동안엔, 마치 커다란 파라솔처럼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소박하고도 비강제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이러한 것은 왜 사소할수록 귀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고백하며 글을 맺는다. 이 은근한 질문 속에 실은 바로 그러한 저자로 남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음을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다. 편집자 김필균은 저자를 상대하는 편집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력을 정리하며 최근 계약서상의 ‘갑’이자 ‘선생님’으로 불리는 저자가 되었음을 밝히고 그 말의 무게를 아는 “그런 저자가 되고 싶다”는 ‘다짐’으로 끝맺는다. 장강명은 추상적인 질문이 던지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비유로 대응하겠다며 이 절망의 바다 위에서 승객을 태우고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여객선”이 되겠다고 ‘결의’한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이런 것이다. “내가 더 멀리서 죽을 테다.” 심보선의 시 「말들」 중 “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오늘은 그중 하나만 보여주마”에서 시적 허풍을 읽어내면서 조효원은 “영혼의 저자, 즉 세계와의 싸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으로부터 구해내는 사명”을 갖는 것이라 결론 내린다.

결국 네 명의 필자들은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생략돼 있던 ‘나에게’를 복원해내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질문이 불러온 것은 어떤 답이라기보다는 결의가 아닌가? 동인들에게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

작가들에게는 자신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름을 얻은 작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는 그 때문에 편견이 생겨서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반대인 경우는 문단의 상업주의 탓에 형편없는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업고 후하게 평가되고 있다고 불만이었다.

―은희경, 『태연한 인생』, 창비, 2012, p. 40

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을까 ? 그 가운데 강력한 하나를 소설에서 빌려와 살펴보자. 인용 부분은 주인공인 요셉이 예술대학의 시간강사로 소설 창작을 가르칠 때 조교였던 이안의 견해다. 그는 졸업 후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영화로 진로를 바꾸었으며 이제는 요셉에게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출연을 제안하러 온 참이다. 그는 조교 시절 수많은 작가들을 상대하면서 알게 된 바를 위와 같이 간단히 정리한다. 여기에서 피로감으로 인한 이 안의 날 선 감정을 제거하고 이분법적인 구도만을 남겨보자. 상업성과 문학성, 혹은 대중성과 순수성. 우리가 저자에 대해 생각할 때 이 구도에서 과연 멀리 벗어날 수 있을까 ? 작가에 대해 논의할 때면 언제나 그래왔지만 특히 최근에는 더욱더 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에 세게 걸리고야 만다. 섬세하거나 정확할 수 없다는 각오를 하고 이 구도의 진위가 아니라 위력을 받아들이며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어느 쪽이 조금 덜 고통스러울까 ?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팔리는 작가들 쪽일까, 문학적이라고 인정받는 작가들 쪽일까. 답하기에 앞서 한 가지 조건을 덧붙여야 한다. 상업의 규모는 초라하고 비평 역시 다를 바 없다는 현실 말이다.

이 서문을 쓰기 위해, 저자를 인터뷰한 동인들을 다시 인터뷰하고 싶다고 반쯤은 장난스럽게 대화를 시도했을 때, 동인들은 하나같이 인터뷰를 ‘망쳤다’라는 표현을 써서 스스로를 평가했다. 살펴보건대 이 대답은 겸손함에서 오는 것도 , 그렇다고 결과물에서 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망쳤다’라는 평가가 가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동인들이 마주하게 된 자신만의 ‘결의’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비평의 측면에서 우리는 작가를 덜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같은 것. 예컨대 어떤 작품이 흠 없이 씌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흠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한 비평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작품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와는 관계없는 예외적인 지점을 말하기 위해 비평은 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조차 헤매며 겨우 ‘시도’나 ‘실험’ 따위의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을 심상하게 번역해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비평을 쓰려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한 작품에 대해 그러한 비평이 씌어지지 않았다면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지점에 가본 적이 있으므로 . 아마 그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강력한 비평가 그룹 중 하나인 『문학과사회』의 동인으로 자신을 옮겨놓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현세대 일곱 명의 동인들 중 전통적인 의미에서 한국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졸업한 동인은 두 명,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외국 문학 전공자, 신문방송과 영상이론 전공자, 서평가, 그리고 편집자. 외부의 미심쩍은 시선과 스스로의 멋쩍음을 동시에 느끼며 우리는 어쩌면 한국 문학에 대한 비평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지워내려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저자와 직접 대면하는 일은 ‘나’의 비평적 과제를 확인하고 수락하는 곤란한 과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올여름, 현세대 동인에 합류하여 지난 두 계절을 함께 보낸 내가 나를 포함한 동인들을 관찰하며 도달한 결론이다.

*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저자들은 매번 처음인 것처럼 겪는다. 이번 겨울호를 위해 그와 같은 시간을 견뎌내고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저자들에게 어느 계절보다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서 인용한 소설에서 작가의 말은 다음과 같은 바람으로 끝난다.

누군가 말하기를 어떤 언덕에서 바라보면 나무는 없고 자라남만 있으며 강은 없고 흐름만 있으며 춤추는 자는 없고 춤만 있다 한다. 쓰는 자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잘 안될 것 같다.

―같은 책, p. 268

서문 안으로 옮겨 온 저자의 바람은, 쓰는 자를 구속하며 불행하게 만드는 힘에서 놓여나 오직 쓰는 동안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태만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읽힌다. 『문학과사회』 동인은 자라남, 흐름, 춤 이러한 찰나적인 상태를 잊지 않는 비평 쓰기에 집중할 것을 약속드린다. 이것은 지난 1년 동안 이루어진 혁신의 과정을 잇는 또 다른 의미의 혁신, 그러니까 동인 내부로부터 시작되는 변화가 될 것이라 감히 말씀드린다. 누구나 알다시피 결의란 순진한 것일 테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니까.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마주하고야 만 이 순진한 결의를 부디 다정하게 지켜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편집동인 황예인

『문학과사회』 보기 -> http://moonji.com/book/14162/

목차

<저자란 무엇인가>

인터뷰
김금희x황예인 작가란 되어가는 존재
박민정x이경진 흥신소적 취미와 세대적 자의식
윤해서x김신식 작정하고 만났으나 무작정을 보여준 작가에 대해
김엄지x금정연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 가운데
임솔아x조연정 ‘애도’의 글쓰기
정지돈x강동호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에세이
조효원 영혼의 저자
김유진 사소하게, 가능한 사소하게
장강명 저자란 무엇인가
김필균 ‘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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