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후기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 김수환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7년 11월 10일 | ISBN 9788932030579

사양 변형판 125x200 · 194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보리스 그로이스의 지적 도발

“공산주의 혁명은 돈의 매개로부터 언어의 매개로
사회를 번역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실천의 차원에서 행해진 언어로의 전회다.”

 

철학자이자 예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의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대한 도발적인 해석을 담은 『코뮤니스트 후기』가 출간되었다. 그로이스는 중요성과 명성에 비해 그간 한국에서 소개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1995년 “아방가르드와 현대성”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첫 저서 『스탈린의 종합예술』 이후로는, 그의 논문이 포함된 몇 권의 책들이 소개되었을 뿐 그로이스 철학의 전모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한국에서 그는 오히려 동시대 예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는 전문 큐레이터로 더 알려졌는데, 때문에 그가 이번 책에서 ‘공산주의’를 본격적인 고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소 의외로 여겨질 수도 있다. 사실 정치와 미학의 교차 문제를 집요하게 탐색해온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전문가로 그로이스를 알아온 사람에게조차 이 책은 놀라움을 안긴다. 마르크스가 월스트리트에서 사랑받는 반면 정작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을 기념조차 하지 않게 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코뮤니스트 후기’라니 그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그로이스는 철학과 언어가 지배했던 스탈린주의적 사회야말로 공산주의적 세계였다고 단언하며, 결코 사면될 수 없는 사악한 음모적 정치가로 여겨져온 스탈린을 진정한 공산주의 철학자로 구원해낸다. 그 누구도 쉽게 동의하기 힘들 주장을 펼치며 우리의 상식과 합의를 깨뜨리는 그로이스의 기상천외한 이 책은, 오늘날 거의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이는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를 사고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마련해준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재발명
: 언어만으로 작동하는 철인들의 왕국

 

이 책이 다루는 중심 대상은 소비에트다.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나 그것의 결정적 국면으로서의 ‘러시아 혁명’이 아니라, 스탈린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다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로이스에 따르면, 공산주의 이념을 살려내기 위해 스탈린을 거부하는 일, 진짜 사회주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면서 이전의 모든 시도들이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는 소비에트에서 언어에 걸려 있는 특별한 하중에 집중하는데, “공산주의 혁명은 돈의 매개로부터 언어의 매개로 사회를 번역하는 것이다”라는 단언이 보여주듯이, 그로이스가 그려내는 소비에트는 결국 ‘언어의 왕국’이다. 경제는 돈을 매개로 기능하고 정치는 언어를 매개로 기능한다. 공산주의 기획이란 정치가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돈을 매개로 한 경제를 언어를 매개로 한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소비에트에서 언어가 지니는 절대적인 위상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다. 언어를 통해 권력을 비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의 정당성 자체가 언어를 매개로 구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소비에트 사회는 “권력과 권력을 향한 비판이 동일한 매개를 통해 작동하는 사회”였다. 공산주의 지도부는 자신들이 만일 언어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된다면 모든 걸 잃게 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 자체는 다른 매개를 통해 작동한다. 따라서 비판이 의미 있으려면 우선 사회가 바뀌어야만, 즉 언어화되어야만 한다. 그로이스는 “비판적 의식의 소유자들이 어째서 본능적으로 공산주의에 이끌렸는지가 이로써 설명된다”고 말한다.

 


언어철학자스탈린: 사회의 총체적인 언어화

 

그로이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언어철학자’로서 스탈린의 지위를 격상시킨다. 그는 1950년대에 스탈린이 언어학 논쟁에 개입했던 ‘사건’을 소개하는데, 스탈린은 논설을 통해 ‘언어는 상부구조의 일종이며 그 본질은 계급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마르주의의 언어관을 전면 부정하면서, 언어는 모든 구성원들의 공통의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선언한다. 그로이스가 보기에 이러한 스탈린의 언어관은 ‘사회의 총체적인 언어화’라는 소비에트식 존재론에 부합하는 것이다. 또한 스탈린은 기이하게도 ‘언어가 토대도 아니고 상부구조도 아니면서, 동시에 토대와 상부구조가 아닌 어떤 것도 아니’라고 모순적인 태도로 언어를 규정하는데, 이렇듯 서로 모순되는 명제들의 동시적인 타당성을 인정하는 논리는 총체성totality의 논리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라는 언어 왕국은 모순과 역설, 무엇보다 총체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으로,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형식논리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구별된다. 그로이스가 말하는 역설과 총체성의 논리는 이른바 ‘보편주의’의 문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파시즘 담론이 특정 인종이나 국가가 다른 인종이나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쳤다는 면에서 ‘충분히 전체(주의)적’이지 못한 반면에, 공산주의 담론은 ‘전체whole를 자신의 대상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위한 또 다른 가설

 

후반부에서 그로이스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파격적일 주장을 펼친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는 공산당 지도부가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따라 공산주의를 철폐한 결과라고 봐야 하며, 이 결정이 공산주의의 실현을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로이스로 하여금 소비에트의 종결이라는 사건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이끈 것이 어떻게 해도 종결될 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 곳곳에서 비판하고 있듯이, 그로이스는 전체를 바꾸지는 않고 무한한 점근선을 그리는 타협적인 대화를 통해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서구 좌파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는 될 수 있어도 혁명적 주체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개종이나 전향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을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개념을 통해 중단과 종결이라는 결단을 요청한다. “이전과 똑같이 하기를 그만두는 것, 지나간 길을 따르기를 그만두는 것, 악무한의 쳇바퀴 굴리기를 그만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주체의 고유한 자질이다.

 


그로이스, 사고금지를 위반하는 지식인

 

이 책의 원제는 “Das kommunistische Postskriptum(영문판은 Communist Postscript)”으로, 제목에서 170년 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선언이라는 말에 깃든 ‘시작’의 의지는 후기後記라는 말에 담긴 ‘종결’의 뉘앙스와 대구를 이룬다. 하지만 만일 이 책이 마르크스에 의해 시작된 공산주의의 최종적 종결에 ‘덧붙이는 말’이라면, 그 후기의 의도는 분명 이중적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역사적으로 유일했으며 분명 완결되어버린 현상인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개시하는, 그런 완결”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이스가 보기에 언어의 권력, 즉 철학의 왕국을 확립하려는 새로운 시도는 충분히 있을 법한 것이고, 나아가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이스는 이 책에서 소비에트 체제에 대해 기상천외한 주장들을 펼치는데, 이는 인생의 절반씩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그의 독특한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게 들리는 주장들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지금 여기’의 자본주의적 현실 감각의 바탕 위에서 구축해낸다. 이 작고 놀라운 책이 건네는 말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로이스의 무시무시한 사고실험을 지지하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기꺼이 한 가지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오늘날 만연한 사고금지Denkverbot를 위반하는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향한 노스탤지어 혹은 기대 어디에나 스며 있는 스탈린주의 없는 공산주의를 조롱한다. 절대적 악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된 스탈린주의를 구원하려는 그의 악마적인 시도를 손쉽게 품평해서는 곤란하다.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사고를 감행함으로써 그는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수고를 마다 않는다.”_서동진


본문 속으로

이 책의 주제는 공산주의다. 공산주의에 관해 어떻게 말할지는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달려 있다. 이후로 내가 말하려는 공산주의는 정치가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경제를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기획을 가리킨다. 경제는 돈을 매개로 기능한다. 그것은 숫자들을 통해 작동한다. 정치는 언어를 매개로 기능한다. 그것은 단어들, 이를테면 주장, 프로그램, 탄원들뿐 아니라 명령, 금지, 결의안과 판결문 따위를 통해 작동한다. 공산주의 혁명은 돈의 매개로부터 언어의 매개로 사회를 번역transcription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실천의 차원에서 행해진 언어로의 전회linguistic turn다. (7쪽)

 

어쨌든 이와 같은 사회의 총체적인 언어화total linguistification는 사회적 대립의 근절을 약속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대립을 더욱 첨예화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조건하에서는 역설이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매개로 한 절충안을 통해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그 역설이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를 매개로 한 사회에서는 역설이 돈으로 해결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만약 공산주의를 언어라는 매체로 사회를 번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약속하는 것은 목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모순 속에 놓인 삶, 최대치의 내적 분열과 긴장의 상황이다. (94쪽)

 

반대로 혼종적인 정치적 장이 자본에 의해 축소되었다고 한탄하는 부르주아 좌파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일 뿐 혁명적 주체는 아니다. 그들이 시장에 항의하는 이유는 시장이 유한하고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혼종적인 것을 동일화한다고, 즉 열린 것을 닫아버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의 힘에 맞서 그들이 수호하길 원하는 것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끝없는 혼종성, 차이의 무한 작동, 계산될 수 없음, 경제화될 수 없는 급진적 타자성 등등. (121쪽)

 

총체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의 기획에서 그것의 맥락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맥락이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다음 실현 단계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절대로 해당 기획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체계적이고 최종적인 구현에 해당한다. (130쪽)

 

메타노이아는 일종의 포기로 이어진다. 즉 이전과 똑같이 계속하기를 그만두는 것, 지나간 길을 따르기를 그만두는 것, 악무한의 쳇바퀴 굴리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바디우는 혁명적 사건에 대한 충실성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혁명에 대한 충실성이란 사실 변절에 대한 충실성이다. 시간의 금욕주의는 충실하지 않을 의무, 이행을 야기할 의무, 변화의 의무, 즉 메타노이아의 의무를 수반한다. (139쪽)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소비에트 연방은 주로 ‘러시아 제국’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이 제국의 해체는 독립을 추구하는 다른 나라들과의 투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이때 이상하게도 망각되곤 하는 한 가지 사실은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한 것이 다름 아닌 러시아였다는 것이다. (144~45쪽)

목차

서문

제1장 사회의 언어화
제2장 역설이 지배할 때
제3장 밖에서 본 공산주의
제4장 철학의 왕국: 메타노이아의 관리

옮긴이의 글
추천의 글_서동진

작가 소개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철학자이자 예술비평가. 1947년 동독의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1965년 구소련의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철학과 수학을 공부한 후 소련에 정착한다. 1976년부터 모스크바 대학 구조응용언어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훗날 ‘모스크바 개념주의’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될 비공식 예술가 그룹과 교류한다. 1981년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이른바 ‘서방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방문 연구를 한다. 1992년에 뮌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4년부터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에서 미디어철학 및 예술이론 전공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9년부터 뉴욕으로 이주했다. 현재 뉴욕 대학 러시아 및 슬라브 연구 글로벌 석좌교수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기획과 스탈린의 정치적 기획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통찰한 첫 저서 『스탈린의 종합예술Gesamtkunstwerk Stalin』(1988, 한국어판: 『아방가르드와 현대성』)을 통해 동시대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로 떠올랐다. 그 후로도 『아트 파워Art Power』『형식이 된 역사: 모스크바 개념주의History Becomes Form: Moscow Conceptualism』『흐름 속에서In the Flow』 등 현대 예술 및 매체에 관한 흥미로운 이론적 성찰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로이스는 2011년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러시아관의 책임 큐레이터로 활약하는 등 동시대 예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는 전문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역사 이후: 사진 작가로서의 알렉상드로 코제브」라는 전시 프로젝트로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수환 옮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 문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책에 따라 살기』 『사유하는 구조』 등이, 옮긴 책으로 『문화와 폭발』 『기호계』 『영화와 의미의 탐구』(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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