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테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 송의경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7년 7월 27일 | ISBN 9788932030289

사양 변형판 126x195 · 139쪽 | 가격 12,000원

분야 외국문학

책소개

모든 음악에는 느닷없는 호출, 시간의 독촉,
마음을 뒤흔드는 역동성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동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음의 원천을 찾아가게 만든다.

본래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물로 뛰어드는 욕망이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거목이자 공쿠르 상 수상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부테스Boutès』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끊임없이 음악과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는 키냐르에게 이 책 『부테스』는 매우 중요한 책이다.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서 오르간 연주자의 소명을 저버리고 작가의 길을 걸어온 키냐르는 노년에 이르러 마음의 빚을 청산하고자 이 책을 썼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이 음악에 관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는 단언도 서슴지 않았다.
책을 쓸 때 신화나 역사에서 과소평가되었거나 망각된 인물을 끌어내 조명해온 키냐르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생트 콜롱브가 그러했듯) 이번에도 지혜로운 오디세우스나 효율적인 오르페우스가 아닌 무모한 ‘부테스’를 선택했다. 그를 통해 ‘물로 뛰어드는 욕망’의 뿌리를 살피고 파멸의 음악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에서 음악의 본질을 탐구한다.

 

 

 

‘구원의 음악’과 ‘파멸의 음악’

미케네 문명 말엽부터 신비한 전설이 전해져왔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매료된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뱃사람들은 밀랍으로 두 귀를 막고 바다를 건넜다.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의 50명의 선원 중에는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오르페우스 외에도 부테스가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오르페우스는 키타라 연주로 노랫소리를 덮어 자신과 선원들을 치명적 매혹에서 구한다. 부테스는 노랫소리를 쫓아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한다.
키냐르는 아폴로니오스의 말을 빌려 음악을 두 종류로 나눈다. ‘구원의 음악’과 ‘파멸의 음악’. 부테스를 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파멸의 음악인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매혹적인 짐승의 목소리로 집단에서의 이탈을 부추긴다. 선원들을 구한 구원의 음악인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사람이 만든 키타라의 음악으로 집단으로의 귀환을 명령한다. 오르페우스의 남성적 음악이 공동체의 일체감을 고취시켜 선원들이 신속하게 노를 젓게 만드는 분절된 음악이라면, 세이렌의 소프라노 노랫소리는 경계 없이 연속된 음악이다.
키냐르에 따르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르페우스의 군악(軍樂)이나 심포니, 테크노 음악 같은 사회적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반(反)사회적이고 치명적 위험을 내포한 세이렌의 노래와 같은 음악이다. 그런데 키냐르는 왜 파멸의 음악을 옹호하는가? 부테스의 ‘물로 뛰어드는 욕망’을 파헤쳐 오르페우스의 사회적 음악이 억압하고 희생시킨, 그리하여 은폐된 본래의 음악과 그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음악은 그리스 음악에서 로마 음악으로, 그리고 기독교 음악으로, 다시 서양 음악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오르페우스적이고 주술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기악으로 변해버린 서양 음악은 옛날의 핵에 속하는 시원(始原)의 춤을 희생시켰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트랜스 상태의 포기이며, 노 젓는 자들의 대열에서 이탈하기를 단념하는 일이다. (34쪽)

『부테스』가 발아되는 과정에서 탈고까지의 흔적을 출간한 『물로 뛰어드는 욕망에 대하여』(2011년)에서 키냐르는 독자들이 『부테스』를 읽고 음악에 대한 개념이 변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장르며 서열, 지금까지 본질이라 여겨온 것들을 모조리 쓸어내어 세이렌의 노래처럼 ‘깊은 노래’에, 단순하며 장식이 제거된 순수한 노래에 주목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부테스』는 키냐르가 지속해온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로 뛰어드는 욕망에 대하여…

‘최초의 세계’(자궁)의 원소는 ‘물’(양수)이며, 그곳에는 ‘청취’(음악)만이 존재한다
부테스는 왜 목숨을 담보로 음악(세이렌의 노랫소리)을 따르는가? 왜 ‘물’로 뛰어드는가? 두 질문은 ‘최초의 세계’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스 철학자 클레옴브로토스, 신화 속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 파에스툼의 다이버, 시인 사포 등, 이 책에는 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키냐르는 이 책을 쓰며 ‘물이 음악과 극도로 밀접한 지극히 중요한 원소’이고, 음악은 ‘물과 연관될 뿐 아니라 최초의 세계, 이 세계에 앞선 세계, 이 세계보다 오래된 다른 세계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음악(청취)의 본질을 깨닫는다.
인간은 모두 최초의 세계인 자궁, 즉 양수 주머니 속에서 살았었다. 말도 시각도 없고 청각만 존재하던 시기에 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감정이 양수에 미치는 파동을 감지하면서 그 물결에 따라 춤을 추었었다. 이 최초의 세계의 흔적은 목소리뿐이다. 갓난아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를 인지하는 것은 목소리에 의해서이다. 음악(어머니의 목소리)이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이며 강력한 예술이라는 키냐르의 믿음은 여기에 근거한다.

부테스는 노래를 들으려는 열망이 타올라 기운차게 헤엄친다
물로 뛰어드는 욕망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자신을 사로잡은 것 속으로 잠수하려는 욕망의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잇는가? 위험을 무릅쓰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과감하게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데는? 용의주도한 온갖 대비책을 저버리는 데는?
음악은 우리의 힘을 능가하는 유혹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으로 소용돌이치며 우리의 기반을 이루는 무엇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신화의 인물들 중에서 오직 부테스만이 음악에 자신의 몸과 영혼을 송두리째 던진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경솔하다고, 무모하다고 표현한다. 닥쳐올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대열에서 이탈했다 …… 그러나 키냐르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본성의 지고한 솔직함을 따랐다. 많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본질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부테스가 뛰어내리듯 “무조건” 뛰어내린다.
『부테스』는 이러한 본성의 지고한 솔직함을 따라간, 본질에 다가가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만가(輓歌)이자 헌사이다.

 

 
『부테스』는 키냐르에게 매우 중요한 책이고,
음악에 대해 쓴 아홉번째 책이며, 아마도 마지막 책이다

키냐르는 자신을 짓누르는 부채감을 청산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프랑스에서 2008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17세기부터 대대로 오르간 주자인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므로, 의당 음악가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역시 오르간 주자로 출발했지만, 1968년 그의 첫 책이 출간되고 출판사의 독서선정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의 결속을 저버렸다는 죄책감, 음악을 고통에 방치했다는 회한으로 평생 가책에 시달린다. 그래서 생의 말년에 이르자 가족과 음악에 대한 해묵은 빚을 갚으려는 의도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생의 말년에 이르자 수치심이 난처한 걸음걸이로 소리 없이 다가왔다. 우리 가족처럼 나는 오르간 연주자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치욕이 아니었다. 심지어 죄의식도 아니었다. 어슬렁거리는 과오였다. 글을 쓴답시고 내 운명을 완수하지 못한 거였다.
음악을 고통에 방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쪽)

 

 

■ 본문 속으로

그런데 나는 서구적 사유의 주인공들을 잠시 잊고자 한다. 밧줄로 손과 발을 꽁꽁 묶은 율리시스를 잊으려고 한다. 키타라의 가지런한 현들을 팽팽하게 당기고 잡아 뜯기를 되풀이하며 음조를 맞추는 데 몰입한 오르페우스를 잊으려고 한다. 아주 잠깐, 책 한 권의 시간, 그것도 이렇게 분량이 작은 책, 음악에 바쳐진 신작인 이 짧은 책을 쓸 동안이라도 나는 훨씬 덜 알려진 부테스라는 인물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_16쪽

삶이 전개되는 세계란 남성의 세계에서 겪는 변성기가 없는 오직 여성만의 세계이다.
부테스는 바로 이 세계를 향해 돌진해 간다. 아폴로니오스는 첫번째 세계의 임계 부재의akritos 소프라노라는 오래된 음역에 팽팽하게 당겨진 악기의 현들을 긁어대는 시끄럽고 빠른 리듬을 대립시키고 있다. 후자는 노를 젓는, 계속해서 노를 젓는 오직 남자들만의 그룹을 위해 박자를 맞추고 있는 중이다. _18~19쪽

부테스는 갑판으로 올라가 뛰어내린다.
음악은 사고思考가 두려움을 느끼는 곳에서 사고한다.
음악에 앞서 여기 있는 음악, ‘길을 잃을’ 줄 아는 음악은 고통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파멸’에 노련한 음악은 이미지나 명제로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도, 환영이나 몽상으로 자신을 기만할 필요도 없다.
음악이 고통의 밑바닥에 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언어에 앞서 존재하는 노랫소리는 애도에 잠긴 ‘길 잃은 본성la Perdue’으로 다이빙한다. 무조건 뛰어내린다. 부테스가 뛰어내리듯 그저 뛰어내릴 뿐이다. _21쪽

류카트 곶에서 다이빙하는 사람은 대기로 혹은 허공으로 혹은 바다로 혹은 죽음으로 뛰어내리는 게 아니다. 시간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불가역성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그가 서두르는 까닭에 불가역성은 촉진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덧붙이기를, “그것은 쾌락에서 사정射精으로 쾌락 특유의 긴장이 불시에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다음 말을 인용한다. “시작되는 쾌락에 저항하기란 우리를 사로잡는 노여움을 억누르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_61~62쪽

음악은 숨을 죽인 채―혹은 귀로 숨 쉬면서, 청각으로 호흡하면서―물속에서 들었던 어느 옛날을 가리키다. 얀켈레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우리를 감싼다. 그렇게 우리에게 스며든다. 바다처럼 광대무변하기 때문이다.” _90쪽

편집자 리뷰

제1장 아폴로니오스
제2장 플루타르코스
제3장 그리스 역사
제4장 이솝
제5장 요한
제6장 아이게우스
제7장 세네카
제8장 사포
제9장 옛날
제10장 리코프론
제11장 티마게네스
제12장 브라스모스
제13장 이자나기
제14장 셀시
제15장 음악Mousikè
제16장 슈베르트
제17장 아리스토텔레스

옮긴이의 말 ․ 물로 뛰어드는 욕망에 대하여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작가 소개

파스칼 키냐르 지음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나 1969년에 첫 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출간했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열기, 실존주의 · 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 · 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그리고 20여 년 가까이 계속된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이 그의 작품 곳곳의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귀환한 뒤 글쓰기 방식에 큰 변화를 겪고 쓴 첫 작품 『은밀한 생』으로 1998년 ‘문인 협회 춘계대상’을 받았으며, 『떠도는 그림자들』로 2002년 공쿠르 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표작으로 『로마의 테라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섹스와 공포』 『옛날에 대하여』 『심연들』 『빌라 아말리아』 『세상의 모든 아침』 『신비한 결속』 『뷔르템베르크의 살롱』 『음악 혐오』 『소론집』 등이 있다.

송의경 옮김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 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화여대와 덕성여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다. 『은밀한 생』『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로마의 테라스』『혀끝에서 맴도는 이름』『떠도는 그림자들』『섹스와 공포』『사랑, 소설 같은 이야기』『달을 따는 이야기』『슬픈 아이의 딸』『당신도 나도 아닌』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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