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의 의식

이탈로 스베보 지음 | 한리나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7년 6월 30일 | ISBN 9788932030074

사양 신국판 152x225mm · 580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나의 하루하루는 넘쳐나는 담배와
되풀이되는 금연 계획으로 끝이 났다”

 

어느 강박증 환자의 고해성사
심리소설의 개척자 이탈로 스베보의 대표작
이탈리아어 원전 최초 번역!

 
제임스 조이스, 프루스트,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스베보의 장편소설 『제노의 의식』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43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일인칭 화자인 제노 코시니의 내적 독백이 주를 이루는 이 소설은 한 남자의 의식을 따라가며 되살아난 과거의 기억을 기록한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무기력하고 신경증적인 부유한 사업가 제노 코시니는 머릿속에 온갖 병을 안고 산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의사의 권유에 따라 과거를 기록하는데, 글을 쓸수록 의식 저편에서 흐릿해졌던 잊고 싶은 기억들과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갈등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중심을 잃고 타락에 사로잡힌 자신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건강을 되찾기 위한 의식의 여행은 한 개인의 삶에 국한되지 않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전쟁과 인간성 상실을 목격한 사람들의 실존적인 문제와 모더니티의 위기가 준 충격은 제노가 항상 추구했던 건강과 돈, 힘이 부질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한 괴상한 노인의 소회가 아닌, 혼란의 시대였던 20세기 초반 유럽을 살아간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제노의 의식』은 처음에는 작가 자비로 출간하고 이탈리아 문단에서 주목받지 못했으나, 제임스 조이스와 시인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추천으로 프랑스 문단에 알려져 크게 호평받은 뒤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다. 사업가 이탈로 스베보의 영어 선생님이던 젊은 조이스는 앞선 두 작품을 실패하고 문학에서 멀어졌던 스베보의 문학적 욕구를 자극하고, 『제노의 의식』을 읽은 후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지지했다. “지금까지 두 가지가 아주 흥미롭더군요. 한 가지는 주제예요. 지금까지 저는, 흡연이 한 남자를 그처럼 크고 넓게 지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두번째는 책 속에 나오는 시간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당신의 통찰력은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아요.”

 

 

 

사실, 그를 환자로 만드는 것은 강박적인 욕망일 뿐이다

 

부유한 트리에스테 사람 제노 코시니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자신의 삶을 글로 쓴다. 의사의 강력한 권유로 시작된 이 작업에서 그의 감춰졌던 기억들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매력적인 제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담배를 끊으려는 제노의 노력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가고,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시작된 흡연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비정상적인 집착으로 드러난다. 사실상 담배에 대한 그의 태도는 흡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금연에 대한 집착으로 보일 정도이다. 제노가 표현하지는 못했으나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버지는, 진중하지 못한 아들의 행동을 오해하고는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제노에게 폭력성을 드러내어 제노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아름다운 아다에 대한 구애와, 홧김에 했으나 예상 외로 행복했던 아다의 동생 아우구스타와의 결혼 생활, 심한 죄책감 속에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이어지던 불륜. 심약한 제노의 인생은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중심을 잃고 늘 심적 갈등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우스꽝스러운 과잉 행동을 하며, 끝없이 자기를 기만하고 착각하는 인물 제노. 평생을 강박증에 시달리며 살아온 제노는 욕망에 사로잡혔으나 동시에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는 또 다른 욕구에 갇혀 번민하는 20세기 인물상을 대변한다.

 
“이 작품은 자서전이지만 내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 개인을 통해 시대를 통찰한 현대 이탈리아 문학의 걸작

 

이탈로 스베보의 고향 트리에스테는 오스트리아의 도시였는데 스베보가 출생하던 해에 이탈리아에 편입되었다.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이 이국적인 항구도시에서 작가 스베보 역시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때로는 모호성과 불안 혹은 우유부단함으로, 때로는 다양하고 폭넓은 철학적 정신을 포용하고 심화시키는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스베보는 유럽 문화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쇼펜하우어와 키르케고르 철학에 심취했으며, 19세기 후반 유럽 문학에 영향을 준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20세기 초반 정신 문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흡수했다. 이러한 당대 사상계의 특성은 『제노의 의식』에서 그 모습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내면 분석을 통해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를 예리하게 통찰하는 이탈로 스베보는 ‘제노’라는 인물을 통해 도시의 화려함과 부흥을 인간과 세상의 병과 결부시켜 해부하는데, 시간적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제노’라는 한 개인의 내면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따라가는 기법은 프루스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의식의 흐름”과 같고, 주인공 제노가 보여주는 실존적이고 인간적인 위기는 인간의 보편적인 위기의식과 맞물려 있다.
그가 인지한 문제의식과 그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작가가 살아간 당대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탈로 스베보는 『제노의 의식』을 통해 당시 유럽의 심각한 위기를 드러낸 유일한 이탈리아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유럽 현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통과 사랑, 그리고 인생은
괴롭다는 이유로 질병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무기력한 권태와 고질적인 병폐를 되풀이하는 불안하고 신경증적인 제노의 모습은 부(富)와 편리함에 대해 강박적으로 이기심을 드러낸 인간 세계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결말에서 잘 드러나는데, 제노의 시각은 한 개인의 병에서 인류의 병으로 확대되며, 세계가 인류의 탐욕이 만든 진정한 ‘병’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예언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제노는 평생을 ‘건강’에 집착하며 살았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얻었으나, 말년에 이르러 (이탈로 스베보는 50대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항상 추구했던 건강과 돈, 힘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현실의 삶은 뿌리부터 타락”했으며, 건강을 외적 조건의 완성으로 오해한 인간이 창조주가 지구에 부여한 법(자연의 순리)을 어기면서 인간들의 횡포 아래 지구는 멸망하게 되리라는 묵시론적인 결론에 이른다. 격동의 시기를 유럽 한복판에서 살아낸 이탈로 스베보는 탐욕과 이기의 결과인 인간 세계의 발전과 성취는 외형적 조건만으로 스스로 건강하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고, 내적 성찰 없는 세계는 오히려 병으로 가득 차 있어 파멸의 길을 가고 있음을 경고한다.

 
■ 본문 속으로

당연히 나는 순진하지 않고, 내 삶을 병의 한 징후로 보는 의사를 용서한다. 위기와 포기를 거쳐 진행되고, 날마다 좋아졌다 나빠지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삶은 어느 정도 병과 닮았다. 질병과 다른 점은, 삶은 언제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삶은 치료를 견디지 못한다. 삶을 치료한다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구멍들을 상처라고 믿으면서 틀어막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치료되자마자 질식해서 죽을 것이다.
현실의 삶은 뿌리부터 타락해 있다. 인간은 나무와 짐승들의 자리를 차지했고, 공기를 오염시켰으며, 자유로운 공간을 빼앗았다. 앞으로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안쓰럽고 활동적인 이 동물은 더 강력한 힘을 지닌 것들을 찾아내 억압할지 모른다. 이러한 위협이 공중에 감돈다. 거기에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막대한 부가 따를 것이다. 모두들 좁은 땅을 나누어 서로 차지할 것이다. 누가 공기와 땅의 부족을 치유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_555~56쪽

목차

1. 서문
2. 프롤로그
3. 흡연
4. 아버지의 죽음
5. 나의 결혼 이야기
6. 아내와 연인
7. 사업 이야기
8. 정신분석

옮긴이 해설 _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이탈로 스베보 지음

이탈리아 북동부 트리에스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토레 슈미츠. 필명 이탈로 스베보는 “슈바벤 출신 이탈리아인”이라는 뜻이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근교와 트리에스테에서 상업을 공부했다. 생계를 위해 문학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도 소설과 희곡 등을 습작하며 신문에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1892년 첫 소설 『어떤 인생』과 1898년 『노년기』를 자비로 출판했으나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혼 후 장인의 회사에서 일했다. 전작 소설들의 실패로 창작활동을 멀리했으나, 영어 선생님으로 만난 제임스 조이스와 교유하며 다시 문학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사업이 중단된 시기에, 20세기 초반 정신 문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의 영향을 받은 『제노의 의식』을 저술하여 1923년 볼로냐에서 자비로 출간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조이스가 프랑스에 소개하여 큰 반향을 얻으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학가로서의 삶도 잠시, 1928년 67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리나 옮김

문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기를 바라면서 이탈리아 문학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연수를 마치고, 고려대학교에서 ‘프리모 레비와 번역’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릴리트』 『소수의 고독』 『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 『그대로 있어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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