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17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7년 3월 13일 | ISBN 9771227285006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7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봄호를 펴내며

 

나 –회의주의 + 키보드–문학
1.   나는 사실상 펜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머리는 종종 내 손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문화와 가치』에서 말했다. 나는 한글 창을 열어 ‘문학성’이라고 쓴다. 내가 서문을 맡은 이번 계절 『문학과사회』의 키워드는 문학성이고 , 나는 사실상 키보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키보드가 문학성이 무엇인지 생
각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마도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따라 새벽닭이 울기 전에 Backspace 키를 세 번 누른 뒤 편집부를 향해 눈물의 메일을 보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마감의) 날은 밝았고 , 대신 나는 새 창을 열어 이 글을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Backspace를 세 번이나 누르는 것보단 Ctrl + Alt + T를 누르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2.   문학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 –키보드가 망설인다면, 그것이 내게는 리처드 로티가 말하는 “최후의 어휘final vocabulary”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로티에 의하면 “누군가가 이러한 어휘들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 이를 사용한 사람이 순환 논리에 호소하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할 때” 문제의 어휘는 “최후의” 것이 된다. “이 같은 어휘들은 언어를 가능한 한 극한까지 몰아간 예다. 이 경계 너머에는 단지 난처하고 무기력한 상태만이 또는 무력(武力)에의 호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1 그것은 닫힌 언어, 고여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언어다. 로티는 충고한다. 그런 과거의 견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어휘를 찾는 일이 언제나 더 유용하고 유익하며 재미있는 법이오.2
3.   언젠가 소설가 김중혁은 내게 당신이 쓰는 워드 프로세서를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는데 그에 따르면 양쪽 정렬한 9포인트 바탕체로 설정한 한글을 쓰는 나는 영락없는 아저씨다. 그는 신세대는 MS워드나 페이지스나 스크리브너 같은 프로그램과 돋움체와 왼쪽 정렬을 선호한다고 말했다.3 김중혁은 문학계의 브리야 사바랭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왼쪽 정렬한 돋움체로 MS워드 창에 뭐라도 써보려 했지만 좀처럼 써지지 않았고 , 조금 침울한 기분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4.   문학성이라는 개념이 의문에 부쳐진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배적인 문학성 담론에 비판이 가해질 때마다 문학성은 가변적인 것, 구성되는 것, 비어 있는 것,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 거듭 물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똑같이–새롭게 정의되어왔다. 저마다 표현은 달라도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이나 조너선 컬러의 『문학이론』 같은 개론서 첫머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놀랄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 화장실에 다녀올 때면 손을 씻어야 하고 하루 세 번 식후 30분 이내에 3분 동안 양치질을 해야 하며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된다 등등도 가끔 (실은 자주) 까먹으니까. 물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게는 18세기 말엽으로 , 가깝게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수상쩍은 문학성 개념이 여전히 지배적인 담론으로 유통되는 이유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로티가 말하는 아이러니스트보다는 지젝이 말하는 냉소주의자에 더 가깝기 때문은 아닐까. 즉, “우리는 권위에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물들의 일상적인 주행을 교란하지 않기 위해서 그 게임에 참여하고 그것에게 계속 복종한다……” 지젝은 이어서 굵게 쓴다. 오늘날의 적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냉소주의자이다.4
5.   레이 커즈와일은 모든 새로운 생각이 처음에는 열렬한 환영을 받다가 실행 능력의 한계로 잠잠해지지만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현재화된다고 했다.5 마셜에 의하면 엘리엇과 파운드에게 타자기는 구술적 도구이자 신체의 움직임을 그대로 전달하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같은 악기로 극에 달한 테크놀로지는 구어적 반전을 가져왔고 ,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코드가 자모음 코드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알파벳이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으며 스크립트는 문학을 수장시키기 위한 장송곡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6

 

 

6.   기존의 문학성 담론에 내재되어 있는 모종의 신비주의, 작품을 천재의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창조성의 발현으로 보는 낭만주의적 관점은 “그 어떤 시대에도 예술과 문학에 대한통찰력 있는 감식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의존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7는 리비스의 말에서 드러나듯 엘리트주의와 은밀하게(혹은 대놓고) 공모한다. 조 모란은 부르디외를 원용한다. 가령 속물적이고 시장 지향적인 천박한 “키치” 문화에 대항하여 자기네들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시도는 예술 작품을 교환이나 이윤의 영역과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존재하는 맹목적 숭배 대상으로 만들려는 목적에서, 또한 시인을 경제 자본보다는 문화 자본의 보고로 떠받들어 그에게 일종의 “카리스마적 환상”을 부여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음을 문학에 대한 부르디외적인 접근을 통해 밝힐 수도 있다고 모란은 말한다.8 에코가 인용하는 것은 게오르크 지멜이다. “그 비밀을 아는 자는 예외적 지위에 오르게된다. 그 비밀은 순전히 사회적으로 결정된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보호하는 맥락과 무관하고 ,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곧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9
7.   브뤼노 라투르는 기술이 인간 주체의 의지와 목표를 실현하는 중립적인 도구라는 생각을 비판하며 매개mediation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라투르에 따르면 기술을 통해 연결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사물 혹은 대상)는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총을 들게 되면 ‘총을 든 사람’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생겨나며, 이때 ‘사람’과 ‘총’을 연결하는 과정을 매개라고 한다. ‘총을 든 사람’이 만일 누군가에게 복수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면, 그 혹은 그녀는 ‘칼을 든 사람’과는 다른 성격의 목표를 실행할 수 있게 되고 , ‘사람 손에 있는 총’ 또한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는 총’과는 다른 목표를 수행하는 비–인간 행위자가되는 것이다. 라투르는 이를 번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0 매개 혹은 번역이라는 라투르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인간 –펜과 인간 –키보드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인간 –펜이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때로는 인간 –수정액이 되거나 인간 –백과사전이 되어야 하는 것과 달리 인간 –키보드는 인간 –키보드인 채로 글을 쓰고 수정하고 검색을 통해 자료를 찾고 웹서핑을 하고 메일을 쓰고 트위터를 하며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못 하지만). 그렇다면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은 예전과 다른 게 당연하지 않나. 기존의 문학성에 기대 이들의 문학을 판단할 수 있나. 나아가 라투르의 생각은 문학이 인간의 보편성을 추구하고 문학성은 인간의 보편성에 의해 근거지어진다는 또 다른 (낡은) 아이디어에 균열을 일으키는데, 이제 인간 (성)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11

 

 

8.   모란에 따르면 “문학적인 것”에 대한 강박적인 물음은 상당 부분 분과학문으로서의 영문학의 지위와 관련이 있다. 영문학부 설립은 시작부터 수많은 반대 의견에 직면했다. “영문학은 셸리에 대한 잡담 이상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가볍고 우아하며 재미있기만한 학문 주제를 원치 않는다. 검토 대상이 되는 학문 주제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검토 가능한 그런 학문 주제다.” “기차를 타고 직장에 가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새로운 분과학문이 창설되어야 할 필요성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12 등등. 따라서 문학만이 줄 수 있는 문학 고유의 것(문학성)을 정립하여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찾고자 하는 영문학의 노력은 수많은 분야에 복잡하게 연결된 ‘문학’이라는 개념을 영문학이라는 분과학문 내로 축소시키며 정전canon 작업을 통해 학문적 연구 대상을 확립하는 동시에 엄격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고한 성채를 쌓았다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환상을 지닌 시인과 고독한 천재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품고 있는 신비한 비밀을 밝혀줄 수 있는 문학 교수 –평론가의 탄생. 영문학의 경우, 그들 대부분이 백인–상층 중산계급 –지식인–남성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국문학의 경우는 어떤가?
9.   로베르토 볼라뇨는 (스페인어) 문학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크툴루 신화」라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독자의 구원은 베스트셀러에 있습니다 (출판산업의 구원도 거기 있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 프루스트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철사 줄에 걸린 조이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해답은 베스트셀러에 있더군요. 아, 저 베스트셀러. 우리는 침대에선 젬병인 데다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우리한테 출구가 없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13 나는 볼라뇨를 무척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를 따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볼라뇨가 당연시하는) 문학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세기 동안 대학 –출판 복합체를 통해 재생산되어온 문학 제도에 의문을 던지는 일이고 , 학과 통폐합과 학생 수의 감소라는 외적인 이유로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분과학문으로서의 문학 이후를 생각하는 일이며, 지식인–남성–펜으로 씌어진 정전의 목록과 문학사를 다시 쓰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되어야 할 거라고 썼나? 지난가을 이후로 , 문학 (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똑같이–새롭게 자문자답하는 반복강박적인 행위가 이제 문학의 순수성(이란 게 있었다면 말이지만)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되지 않음을 우리는 (뒤늦게) 알았고 , 우리에게는 회의주의자로 남을 자유가 더는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을 ‘문학성–역사들’이라는 주제로 기획한 (다소 장황한) 이유다. 『하이픈』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다시, 문학성을 논하다〉에서는 자율성, 시와 정치 논의 이후, 문학성과 비평 등의 키워드를 통해 문학성을 고찰한다. 〈문학사 사전〉은 지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문학사의 결절점을 돌아보며 문학성이 구축되는 현장을 재탐사한다. 나는 여기서 그 원고들을 요약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내 생각에, 요약만큼 비문학적인 것도 없다 (굳이 하나를 더 꼽자면 함초롬바탕체 정도일까). 그러니 부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주시기를. 쉽지 않은 청탁에 흔쾌히 응해주고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멋진 원고들로 부족한 기획을 채워준 김나영, 장은정, 윤재민, 한영인, 우찬제, 김형중, 복도훈, 이소연, 백지은, 양윤의 열 분 필자께 깊이 감사드린다. 김신식, 강동호 두 편집동인은 각각 글을 쓰고 번역을 했다.
본권 또한 풍성하다. 문단 안팎에서 벌어지는 숨 가쁜 변화를 바라보려는 취지로 기획한 〈기획—혁명의 시대〉에는 하재연, 김사과, 양선형의 글이 실린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어느 하나 혼란하지 않은 구석이 없는 총체적 난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들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지성〉에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글이 준비되어 있다. 박진철의 번역과 해제는 녹록하지만은 않은 제임슨의 개념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편집동인 조효원의 글도 함께 볼 수 있는데, 그는 로베르트 발저의 짧은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언제나 왕성한 그의 집필력은 매번 나를 놀라게 한다. 지난 호에 이은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의 〈인문 연재〉 두번째 편을 기다리는 독자들은 분명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잡지라는 매체 만의 매력이라면 무엇보다 연재를 들 수 있을 텐데, 다음 계절을 가불해서 살아야 하는 피로와 더불어 홀로 연재란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게 한 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물론 창작을 읽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강혜빈, 유진목, 이병률, 이설빈, 이현승, 이혜미, 임경섭, 정영효의 시와 권여선, 김금희, 이기호, 허희정, 강화길, 임솔아, 정용준, 최은영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멋진 작품으로 지면을 빛내준 여덟 분 시인과 여덟 분 소설가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올해로 7회를 맞는 ‘문지문학상’ 수상작으로 박민정의 「행복의 과학」이 선정되었다. 동시대의 문제와 여성의 문제를 면밀히 탐구해온 작가에게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전한다. 봄에는 모두 기뻤으면 좋겠다.
편집동인 금정연

 

 

*각주

1 조 모란, 『학제적 학문 연구』, 장경렬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p. 58에서 재인용.
2 움베르토 에코 외, 『작가와 텍스트 사이』, 손유택 옮김, 열린책들, 2009, p. 19 참고 .
3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다시, 문학성을 논하다〉와 〈문학사 사전〉으로 나뉘는데,
김중혁의 분류를 따르면 전자의 편집은 ‘구세대’적이고 후자의 편집은 ‘신세대’적이다.
4 슬라보예 지젝,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 주은우 옮김, 한나래, 1997, p. 24.
5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이 하나의 예(열렬히 환영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가 될 것이다.
자동기술을 하기에 인간 –펜은 너무 느렸고 , 결국 잠잠해졌지만, 그것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사이에 인간 –키보드의 트위터가 되었다.
6 정지돈,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김동신, 『인덱스카드 인덱스 2』, 동신사, 2016,
pp. 210, 223.
7 조 모란, 같은 책, p. 66에서 재인용.
8 조 모란, 같은 책, p. 113.
9 움베르토 에코 외, 같은 책, pp. 52~53.
10 브뤼노 라투르 ,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p. 372
「용어해설」 참고 .
11 인간성의 문제 역시 문학성만큼이나 (보다 더) 오래되고 지겨운 이야기라고 해야겠지만.
12 조 모란, 같은 책, p. 41 참고 .
13 로베르토 볼라뇨 , 『참을 수 없는 가우초』, 이경민 옮김, 열린책들, 2013, p. 176.

 

 

하이픈 보기 -> http://moonji.com/book/12506/

목차

봄호를 펴내며


강혜빈 등헤엄/Bonne nuit
유진목 무환자나무/삼나무
이병률 목마들/담장의 역사
이설빈 의자 밀어주던 사람/ 일 방 통 행
이현승 슬리퍼/바다 사슴
이혜미 발생/하이람
임경섭 Mr. Vertigo/서막
정영효 열람실/일 층

소설
권여선 손톱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이기호 한정희와 나
허희정 인컴플리트 피치
로베르트 발저 구직서
강화길 우리는 사랑했다
임솔아 신체 적출물
정용준 물거품
최은영 601, 602

기획: 혁명의 시대
하재연 옥희의 언어
김사과 트럼프 0년의 단상
양선형 근대인이 하는 문학

인문 연재
김현경 재생산의 문제 설정

지성
프레드릭 제임슨 단독성의 미학
박진철 세계 없는 세계의 딜레마들
조효원 이어 쓰기와 베껴 쓰기―위조문헌학을 위하여

제7회 문지문학상발표
박민정, 「행복의 과학」

제13회 마해송문학상 발표
김아영, 난생처음 히치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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