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가에서

에스키아 음파렐레 지음 | 배미영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12월 13일 | ISBN 978893202940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4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정치의 별이라면
에스키아 음파렐레는 문학의 별이다.”

 
차별과 억압 속에서 자신의 빛을 찾다 민족의 빛이 된 작가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 게토에서 보낸 성장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가이자 영문학자이며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 체제를 비판한 활동가 에스키아 음파렐레의 자서전 『2번가에서Down Second Avenue』(대산세계문학총서 139)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현대 아프리카 흑인문학의 아버지 에스키아 음파렐레의 유년 시절부터 망명길에 오른 30대 후반까지, 1920년대에서 1950년대 후반까지를 기록한 자서전이다. 음파렐레가 성장한 ‘마라바스타드 2번가’는 인종별로 거주지를 지정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의 흑인 빈민가로 당시의 사회 모순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남아공 자전문학의 신호탄이 된 이 작품은 세계대공황과 인종차별 정책 속에서 더 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이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절을 헤쳐 나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로 큰 고초를 겪었지만, 음파렐레는 놀랍게도 자서전에 울분을 새겨놓지도, 불쑥불쑥 터뜨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가난과 잔인한 제도, 그리고 그로 인한 공포 뒤에 도사린 불의를 깨쳐가는 한 소년에게 깊이 공감하게 된다. 정직함과 솔직한 유머 감각이 가득한 자서전이다.

_『옵저버』

 

 

 

2번가에서 시작된 50년의 길고 긴 오디세이

 

“고향에 대한 향수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어린 ‘에스키’는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라다가 프리토리아의 흑인 빈민가 마라바스타드 2번가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다. 에스키의 가족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의 차별과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지만, 에스키는 차츰 인종차별 정책의 비인간성과 부당함을 깨닫고 분노한다. 마침내 교사가 되고 대학도 마치지만, 흑인을 백인을 위한 도구로만 키우는 교육 정책에 항의하며 맞서다가 정부에 의해 교직을 금지당한다. 아프리카민족회의 활동 전력 때문에 그토록 원하는 교직을 얻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에스키는 자신의 꿈을 위해 1957년 망명길에 오른다.

이 책은 여기서 끝난다. 작가는 망명 2년 뒤 1959년에 영국에서 이 책 『2번가에서』를 출간했으며, 남아공 정부는 1961년 음파렐레에게 국가전복죄를 씌워 작품 출판을 전면 금지하고 가족 모두 입국을 금지했다. 음파렐레는 프랑스, 케냐, 잠비아 등지로 망명 생활을 이어갔고, 미국 덴버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착할 수 있었으나, 1977년 새로운 남아공 건설에 도움이 되고자 인종차별과 저항으로 혼란스러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학 측의 노력으로 위트워터스랜드 대학교의 최초의 흑인 교수가 되었으며, 토착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에 평생 힘을 쏟았다. 본명은 성서의 선지자에서 따온 이름인 이지키얼Ezekiel(에스겔)이지만 남아공으로 돌아온 후 어릴 때부터 집에서 부르던 아프리카식 이름인 에스키아로 개명했다.

 

 

한 독립적 인간(세대)의 성장기내면화된 억압에서 벗어나기

 

극적인 무엇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상적인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것들을 이제 내 인성이 거부했다._233쪽

 

“평생 구덩이 속에서 폭군에게 사다리를 내려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희생자가 품어야 할 화두가 아니다. 우리는 피 흘리는 희생자의 처지에서 자신이 진정 바라는 변화를 잘 알고 있는 진취적인 선구자의 위치로 나아가기 위해 아직도 정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남아공에서 인종분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는 길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종 탄압과 인권 박탈로, 백인들과 권력자들은 교육을 통해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의 논리를 내면화시켜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연장했다. 남아공의 교육은 흑인을 백인을 위한 단순노동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목적으로, 흑인들은 이 체제하에서 자존감과 정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인의 교육 업무도 교육부 관할이 아니라 원주민행정부 관할이었을 정도이다.

언제나 사리에 밝은 에스키의 할머니조차도 보어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덜란드계 백인들)들이 영국 사람들로부터 흑인들을 보호해줬다고 생각하고, “백인은 우리의 신인데, 뭘 달리 생각할 수 있었겠”냐며 체념이 몸에 배어 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일할 수도, 배울 수도, 가족이 함께 살 수도 없게 제약받으며 노동 기계가 되어버린 인간은 인간다운 정신이나 사고력, 창의력을 유지하기 힘들고, 결국 자신이 인간성을 박탈당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에스키는 점차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기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달리 수많은 사상의 세계를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최소한 정치적 압력을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 있다고 한다.

음파렐레는 백인들의 욕망의 희생자 역할만 했던 흑인들이 능동적인 행위자가 되기를 촉구하며, 희생자라는 수동적 위치를 벗어던지는 것이야말로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이뤄내야 할 일임을 지적한다. 탄압과 차별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저항하는 인간. 이 책은 학교에서 매 맞는 걸 두려워하고 가난을 힘겨워하던 한 평번함 소년이(그의 세대가) 노예를 벗어나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현대 아프리카 흑인문학의 아버지

 

상황이 가져온 소름끼치는 긴박감 때문에 우리는 전통문화의 어떤 면을 복원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 문화적 자급자족 현상은 이 세상 모든 게토 생활의 힘이다.

 

『2번가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문학적 중요성을 띄는데, 우선 남아공 흑인들의 전통적 삶을 잘 옮겨놓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는 남아프리카 지역의 전통적 삶이 풍부하고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독특한 풍습과 민담이 많이 삽입되어 있으며,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등장하는 토속적인 표현이나 속담들은 매우 기발해서 그들의 상상력을 가늠하게 만든다. 우리는 탄자니아나 짐바브웨라고 개별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저 ‘아프리카’라는 대륙 명으로 그 지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하나하나 개별적이고 고유하여 그곳에도 엄연하게 독창적인 삶과 문화가 꽃피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네이딘 고디머, 존 맥스웰 쿠체 등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백인 작가들은 노벨문학상도 수상하고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으나, 흑인문학은 그렇지 못했다. 오랜 아파르트헤이트의 차별적 교육 때문에 흑인이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 한계가 분명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흑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에스키아 음파렐레의 문학에는 서구 중심적인 역사가 쌓아온 문명의 혜택은 덜 들어갔을지언정, 아프리카 특유의 생활상과 특징이 드러난다. 그는 백인 작가라면 동일한 시각에서 절대 그려낼 수 없는 아프리카인 인생의 여러 국면을 그려냈다. 그리하여 에스키아 음파렐레는 아프리카 흑인 문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남아공 자전문학의 신호탄

 

“남아공이라는 나라의 맥락 안에서 내 인생을 적은 이 책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포의 방에 갇힌 모든 아프리카인들의 자서전이라는 사실 외에 이 책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우리 흑인들의 강인함을 상기시키며, 이는 내게 유익한 가르침이다. 이 책은 내가 이제껏 쓴 것 중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_에스키아 음파렐레

 

에스키아 음파렐레가 망명하던 1950년대 말부터 아파르트헤이트와 흑인을 노예로 교육시키는 반투교육이 더욱 본격화되었고, 흑인 작가들은 본격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백인 정부는 유색인들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그로 인해 그 시기 남아공 문단사를 ‘망명의 문단사’라 할 만큼 흑인 작가들의 망명이 줄을 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문학적 재현은 역사적 기록 못지않게 잔혹함을 잘 드러내고 큰 충격을 주기에 남아공 작가들의 자전문학은 그 의의가 크다. 음파렐레는 30대 후반에 나이지리아로 망명하기 전까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그 경험을 이 자서전에 진실하고 철저하게 기록했으며, 음파렐레의 『2번가에서』를 시작으로 망명과 귀국의 이야기가 담긴 아프리카 저항문학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아프리카 저항문학의 한 상징이 되었다. 남아공 국민들은 ‘정치 분야의 별’인 넬슨 만델라에 빗대어 에스키아 음파렐레를 ‘남아공 문학의 별’로 칭송했다.

 

 

책 속으로

 

마을의 남자 어른들과 사내아이들은 여자와 계집애들과 떨어져서 이런저런 일에 대해 얘기하려고 공동 화로에서 만났다. 여자나 계집애들이 근처로 올 수 있는 때는 표주박에 저녁밥을 담아 날라 올 때뿐이었고 그때도 나이 어린 축들이 왔다. 아내는 아픈데 밥해줄 딸이 없는 남자는 화로 옆에서 다른 사람의 음식을 함께 먹었다. 그 사람의 병든 아내에게는 다른 여자들이 밥을 해줬다.

우리 같은 남자애들은 초원에서 염소나 소, 당나귀를 데리고 돌아올 때 나뭇가지도 주워 와야 했다. [……]우리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을 때부터 화로 주위에서 역사와 전통과 관습, 행동요령, 공동의 책임감, 이웃과 잘 지내는 법 등에 대해 참 많이 배웠다. _17~18쪽

 

도시에서는 인간들이 서로 형제가 아니라는 거야. 흑인은 백인 집에 들어갈 때 뒷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흑인은 더러운 일만 도맡고. 학교에 가지 않는 백인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그 백인은 ‘내가 카피르냐!’라고 한다지 뭐냐. 흑인은 거리를 청소하지만 그 길을 마음대로 걸을 수가 없고, 흑인은 백인의 집을 지어야 하지만 그 집에서 살지 못하고, 백인의 음식을 만들면서도 백인들이 먹고 남긴 것을 먹어야 한다는 거야. 흑인과 백인이 형제라며 우리를 속이는 사람들 말을 듣지 말라더군. _20쪽

 

세인트피터스 학교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서서히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백인들의 방식과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학교에서는 우리들과 백인 교사들, 그리고 백인 교사들과 아프리카인 직원들 사이가 아주 조화로웠다. 하지만 로저 형제나 교장, 지역 신부들 중 학교 바깥의 백인이나 백인 당국자들에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서히 내가 학교 바깥의 백인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전에 프리토리아에서 아프리카너들이 피부가 까만 아프리카인 도로보수 일꾼들을 감시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어깨가 구부정한 어떤 백인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저 이따금 떨리는 집게손가락으로 지시만 내리며 서 있었다. 나는 그 백인이 거기서 그냥 손가락질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비슷한 길거리 노동자를 만나게 되면 무기력한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_179쪽

 

나는 불안정했다. 나의 감수성이 이번에는 내 적이 되었다. 어떤 백인의 사소한 말도 조금이라도 나를 향한 것이다 싶으면 나는 공격에 나섰다. 나는 만성적으로 정서가 불안해져서 생각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급하게 분통이 터지곤 했다. 나는 밤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고 어둠 속에 앉아서 그날 낮에 백인들과 무슨 언짢은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내려고 했다. 끝도 없는 대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는데, 나는 낮에 맞닥뜨린 그 백인에게 했어야 했지만 기회가 없었거나 내뱉을 배짱이 없어서 하지 못한 말들을 떠올렸다. 옆방 직원에게 전화해서 아프리칸스어로 “○○씨, 여기 서류를 들고 온 카피르 말예요”라고 하던 그 백인 여자. 비실비실 걸어와서 “짐, 중앙우체국이 어디야?”라고 묻던 그 노인네. 그 우체국 직원은 계산대 너머에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었다. “당신들 카피르 말이야, 줄 똑바로 안 서면 처리 안 해준다.” 낮에 당했던 이런저런 모욕들이 계속 새롭고도 불쾌하기 짝이 없게 되살아나 잠을 이루지 못하게 나를 괴롭혔다. _196~97쪽

 

나는 그 규범이 노예 종족을 위한 것이고, 환경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환경에 의해 변화되리라 기대할 수도 없으며 그저 순응만 할 뿐인 학생들을 위한 것이며, 정착 농민이나 도시 공동체가 되어야 할 필연성 없이 그저 이곳저곳 떠도는 불안한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교육부가 아프리카인 학교에서 사용하라고 명령한 교과서들을 비난했다. 백인의 식민 정책과 국경 지대의 전쟁, 아프리카 종족들의 패배와 백인 지배를 찬양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진 여러 왜곡들로 가득 찬 역사 교과서, 저 카피르가 칼을 훔쳤다, 저것은 게으른 카피르다, 같은 예문만 가득한 아프리칸스어 문법책, 비백인 여자를 가리키는 아이아, 비백인 남자를 지칭하는 오우타 같은 듣기 거슬리는 말뿐인 아프리칸스 문학들, 경멸당하고 조롱받는 야만인 아니면 어정쩡한 바보천치들인 비백인 인물, 또는 도시 생활에 별수 없이 낙담해 ‘집’ 그러니까 리저브로 돌아가기로 한 좌절당한 주인공으로 가득 찬 문학 작품 따위 말이다._238쪽

목차

1. 부족
2. 레쇼아나 강의 모래
3. 슬럼으로
4. 공동 수도
5. 로케이션
6. 토요일 밤
막간극

7. 뒤처진 아이
8. 폭스단원들
9. 행상꾼의 딸
10. 마-레보나
11. 마-보틀즈
막간극

12. 이웃집 여자의 주술
13. 빅 아이즈
14. 컬럼비아 댄스홀
15. 이모와 압둘의 대결
16. 공포에 질린 딩쿠 디카에
17. 세인트피터스 학교
18. 백인들과의 마찰
19. 애덤스칼리지
막간극

20. 결혼
21. 교회 헌금
막간극

22.『드럼』 잡지
막간극

23. 나이지리아행 비행기 표
에필로그

옮긴이 해설 _ 게토가 품은 ‘남아공 문학의 별’ 에스키아 음파렐레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에스키아 음파렐레 지음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과 차별을 이겨내고 교사가 되었으나, 반체제 활동으로 해고당한 뒤 사무보조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1955년부터 잡지 『드럼』의 기자이자 편집자로 일했다. 1957년 사우스아프리카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정부의 탄압을 피해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1959년 영국에서 자서전 『2번가에서』를 출간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나, 1961년 남아공 정부는 음파렐레에게 국가전복죄를 씌워 작품 출판을 전면 금지했다.

프랑스, 케냐, 미국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미국 덴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7년, 인종차별과 그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혼란스러운 조국 남아공으로 돌아와 어릴 때 쓰던 아프리카식 이름인 에스키아로 개명했다. 1979년 위트워터스랜드 대학교 최초의 흑인 교수가 되었으며, 남아공의 토착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에 평생 힘을 쏟다 2008년 영면했다.

1947년 첫 단편집 『인간은 살아야 한다』를 출간한 뒤, 자서전과 소설, 연구서를 여럿 출간했으며, 1969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팔름 훈장과 세계경제포럼이 수여하는 예술·교육 분야의 크리스털 어워드를 수상했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에게 남아공 최고 훈장인 서던크로스 훈장을 받았다. 2002년에는 음파렐레의 작품과 사상을 토대로 남아프리카의 전통문화를 발굴, 보존하는 민간단체 에스키아 인스티튜트가 설립되었다.

배미영 옮김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한다. 옮긴 책으로 『교수』 『국경의 로큰롤』 『센티멘털리스트』 『너 어젯밤에 뭐 먹었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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