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2016년 겨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12월 27일 | ISBN 9771227285006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9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겨울호를 펴내며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다”

 

제목을 다시 쓰며 글을 시작해본다.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다.” 예술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표현하는 스타일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손택은 위와 같은 문장을 썼다 (『해석에 반대한다』, 이민아 옮김, 이후, 2002). 예술에 대한 경험은 스타일에 대한 경험이며 예술 작품이 제아무리 뛰어난 스타일을 갖추었더라도 그것의 성공은 그 작품을 경험하는 이의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고도 말했다. “예술은 체험 주체의 공모 없이 유혹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유혹당하려는 독자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이러한 긴장 관계가 하나의 작품을 예술로 존재하게 만든다. 작품과 감상자 사이, 하물며 창작하는 자와 향유하는 자 사이에도 절대적 위계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러니까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라는 저 비유의 문장은, 예술은 가까스로 독자를 유혹할 수 있을뿐 일방적으로 , 혹은 강압적으로 독자를 온전히 집어삼키는 일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말로 읽힌다.

예술을 문학으로 , 아니 시로 바꿔 말해보자. 시는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다. 독자를 언제든 매혹당할 태세를 갖춘 대상으로 착각하며 자신의 존재를 낭만적으로 신비화하는 순간 작품은, 아니 그 시인은 우스꽝스러운 바보가 되거나 폭력적인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작품을 매개로 , 아니 문학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스스로를 둘러싼 모든 것을 신성화하거나 권력화하며 한없이 추하고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문인들을 최근 우리는 꽤 많이 목격했다. 이른바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운동은 ‘유혹하는 시’를 무색하게 만드는 ‘강간하는 시인’의 존재를 낱낱이 까발리는 중이다. “예술은 유혹이지 강간이 아니다”라는 손택의 저 문장을 흥미로운 비유로서만 읽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폭로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시인/독자, 스승/제자, 문인/미등단자, 아니 남성/여성이라는 권력관계 속에서 이른바 ‘시인–스승 –문인–남성’들은 ‘문학’ 혹은 ‘문단’, 아니 특정 출판사가 산출할 수 있는 권력의 효과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며 ‘독자 –제자 –미등단자 –여성’들을 ‘강간’했다. 특정한 개인의 졸렬하고 추악한 비도덕적 행위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상습적이고 너무나 혹독한 폭력이 난무했다 할 수 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말할 입을 얻은)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말하고 윤리를 말하고 정치를 말할 때, (말할 입을 ‘아직’ 얻지 못한)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며 문학의 오명을 저 혼자 뒤집어쓰고 있었다. 내가 해온 문학은 과연 무엇이며, 문학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아니 우리의 ‘언어’는 과연 누구의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허망함, 공포마저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한 명의 여성이자 기성 문인,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에 관계하는 사람으로서 우왕좌왕하며 한 계절을 보냈다. 아주 많은 생각을 하고 아주 많은 말을 나눈 것 같지만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자책감, 그리고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 속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그간 이런저런 문단의 관행, 혹은 관습적 인간관계 속에서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작업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문학의 행위’가 다른 작업에 비해 비교적 더 해방적이며 더 자유롭고 덜 불평등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였다.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운동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를 세련된 방식으로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한국 문단의 고질적 병폐와 젠더불평등 문제를, 나아가 문학의 근본적 속성을 다시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행한 범죄 행위와 시인으로서 그가 남긴 작품들은 무관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이번 사태로 문학의 ‘자율성’이 심하게 훼손되는 일까지는 경계해야 된다고도 누군가는 말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이처럼 치졸한 폭력을 양산하는 문학이라면 그런 문학은 없어져도 그만일 것이라고 말한다. 범죄에 연루된 시인의 작품을 처리하는 문제가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와 뒤섞여 고려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문제적 시인의 작품을 출판하고 그들에게 ‘강간’의 용기를 은연중 불어넣어준 출판사가 책임감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 해당 시집의 절판 혹은 영구 제명을 요청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출판사는 해당 시인들을 대변하는 곳이 아니라고도 말하고 시집의 판매 중지는 문학을 그저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문제적 태도이자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한꺼번에 많은 주장들이 제출되었다. 각각의 주장은 모두 각자의 맥락에서 옳은 말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주장들 모두가 우리 시대의 문학을 정의하는 어느 하나 배제될 수 없는 목소리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문학은 여전히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자율적인 것이(어야 하)고 , 누군가에게 문학은 그저 내가 내 돈을 주고 산 책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시인의 재주가 한국 문단이 지켜내야 할 만큼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 시인은 그저 범죄를 저지른 비난받아 마땅한 비윤리적 시민일뿐이다. 어느 시대 어떤 집단에서도 문학에 대한 단일한 목소리는 불가능하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할 일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주장하며 우리 시대의 ‘문학성’을 이루는 세목들을 갱신해가는 일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한 명의 여성 문인으로서 문단이라는 불리는 공간에 실재하는 젠더불평등과 ‘강간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다른 문인들과 연대함과 동시에, 한 명의 여성 평론가로서 우리 시대의 ‘문학성’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쉼 없이 갱신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보태야 할 것이다.

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에 실린 인터뷰에서 수전 손택과 주디스 버틀러의 동료인 아비탈 로넬은 최근 한국 문단의 상황을 접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시는 우리를 환각에, 황홀경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또렷이 인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시는 아주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 문제는 이 위험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문제입니다.” 시의 치명적 매력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 따라서 시는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시의 위험은 보호되어야 한다. ‘시는 위험한 것이다’와 ‘시의 위험은 보호되어야 한다’라는 두 명제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소설이 아닌 시를 중심으로 ‘문단 내 성폭력’이라는 사태가 심각하게 발생했다는 사실을 참조해보더라도 ‘시는 위험한 것이다’라는 사실명제는 참임이 분명하다. 긍정적 방식으로든 비극적 방식으로든 시의 위험성은 증명될 수 있다. 그러나 ‘시의 위험은 보호되어야 한다’라는 당위명제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치열한 고민과 점검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시, 아니 문학은 절대적 존재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호되어야 할 문학은 특정한 형태로 누군가에게 공인된 문학, 즉 공인된 누군가만이 관여할 수 있는 문학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문학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학을 둘러싼 기성의 제도와 관습과 역사를 괄호에 넣고 ‘각자의 문학’에 대해 서로 말하고 듣는 일, 그것이 결국 한국 문학의 미래를 환멸에서 건져 올리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작업을 게을리할 수 없다.

이번 호에 글을 보내준 피해생존자, 지지자, 기성 문인 들은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써 내려갈 문학의 이름을, 환경에 존속되고 부여받는 성질로 내버려두지 않을것이다”(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연대 〈탈선〉). “시가 내게 그다지 숭고하거나 거룩하지는 않았다”(책은탁). “나는 오로지 시에 대해서만 생각했다”(이미라). “저는 더 이상 자부심 없이 글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윤이형). “다른 사람들의 용기가 나를 이만큼이나마 쓸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백은선). 각자에게 문학은 무엇일까. 당분간은 이런 이야기들을 온전히 듣는 것으로 , 그리고 우리가 함께 대화하는 것으로 한국 문학 현장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

『문학과사회』 2016년 겨울호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그러니까 정말로 겨울의 한복판에 출간된다. 그 사정을 조금 적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번 호의 기획은 ‘페미니즘’이다. 이 기획이 결정된 것은 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해 사건’에서 이화여대 사태에 이르기까지 올해 일어난 한국 사회 주요한 사건들의 중심에는 모두 ‘여성’이 존재한다. 올해, 한국 사회의 여성들은, 끔찍한 혐오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고 , 폭력적 진압에 대항하며 값진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다. 한편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일상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퇴행적 젠더 의식이 문제적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며, 온라인상의 페미니즘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여성 문제가 우리 시대의 주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우리는 ‘페미니즘’이라는 의제를 본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세 가지 방향으로 기획이 구체화되었다. 첫째, 여성 문인과 여성 편집자 들의 목소리를 통해 문단 내 젠더불평등의 문제에 관해 듣는 일, 둘째,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을 검토하는 일, 셋째, 페미니즘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고 점검하는 일.
청탁을 완료하고 원고를 기다리는 와중에 ‘이자혜 사건’이 일어났고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청탁을 수락했던 첫번째 기획의 몇몇 필자들이 지면을 포기했다. 아마 두번째 기획의 필자들은 이미 썼던 글을 다시 써야 했는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의 최신 이론을 담으려 한 세번째 기획은 엄존하는 폭력적 현실 앞에서 그 의의가 무색해진 듯 보이기도 했다. 피해생존자들의 SNS상 요청에 응답하여 그들에게 지면을 주기로 했다. 결정은 신속했으나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핑계로 , 문단 내 성폭력 사태의 방조자로서 우리의 책임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다짐을 약속하는 일을 유보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도 들었다. 일련의 사건과 해결되지 않는 고민 속에서 겨울호가 무려 한 달 가량이나 늦게 마무리되었다.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문학과사회』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포함하여 문단 내 젠더불평등의 문제에 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앞으로 그 결과를 공유할 것을 약속드린다.

지난 혁신호부터 새롭게 선보인 『하이픈』은 문예지의 고정된 형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담아내기 위해 특별히 공들여 기획하는 『문학과사회』의 별책이다. 이번 호 『하이픈』의 주제는 ‘페미니즘적–비평적’이다. 한국 문단의 남성적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문학성을 사유하기 위해 페미니즘이 비평의 최전선에 서야 함을, 나아가 페미니즘이 단순한 비평의 도구가 아니라 비평 정신 그 자체일 수 있음을 숙고해보는 제호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비평 정신을 강화하며 우리가 주장하려는 것은 보편적 인간 해방이라기보다는 여성 해방이라고 말해보고도 싶다. 비평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여성주의적 독법을 좀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 좌담 (「2016년 한국 문학, 다시 배워나가는 운동」, 〈문장웹진〉 2016년 12월호)에서 제안되었듯 최근의 사태와 관련하여 비평은 빠른 “이해와 통합”보다는 “갈등과 적대”를 전면화하는 일도 필요해 보인다. 2000년대, 2010년대 문학을 읽으며 우리는 왜 그토록 ‘여성화의 과잉’을 경계했는지, 그러니까 여성이라는 저자성을 무화하고 텍스트에서 젠더의 신호를 될 수 있는 한 무시하는 일에 열심이었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적 독법은 왜 그토록 억압적인 것으로 , 나아가 덜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텍스트를 무성화하는 독법이 결국 한국 문단을 남성화하는 것에 일조한 것은 아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화보다는 ‘적의’를 강조하는 ‘페미니즘적–비평적’ 태도를 통해 기존의 텍스트들이 재평가되고 새로운 텍스트가 새로운 문학성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도 기대해본다. 이번 호의 기획은 그러한 미래의 작업을 위한 밑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1980년대 여성주의 무크 동인지 『또 하나의 문화』에 동인으로 참여했던 고정희는 한국 문단이 해결해야 할 급선무의 과제로 여성문학을 지지해줄 여성 평론가의 부재 현상에 대해 여러 번 지적했다. 현재 한국 문단의 여성 문인과 여성 평론가는 수적으로 남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한국 문학의 현재 모습은 30여 년 전 고정희가 꿈꿨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는 것일까. “저에게 한국 문학계의 성별은 남성입니다”(윤이형)라는 고백은 왜 하나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것일까. 아비탈 로넬을 다시 한 번 인용하자면, 그녀는 밸러리 솔래너스에 관한 글에서 니체에 관한 하이데거의 논평을 인용하며 “때로는 자신의 말을 들리게 하려면 비명을 질러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번 호 『하이픈』의 게스트 에디터로 참여한 여성학자 김주희는 여성 개개인의 단말마의 비명을 폭발적 반란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여자들의 수”라고 말한다. 『문학과사회』는 앞으로 문학을 둘러싼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다짐해본다. 비명이 모여 반란이 되고 , 그 반란을 통해 진정으로 자유로운 문학이 생성될 때까지 말이다.
편집동인 조연정

 

『문학과사회』 보기 -> http://moonji.com/book/11813/

목차

문학과사회 하이픈』 2016년 겨울 | 차례

서평사전 – 혐오

이경진 혐오는 왜 도덕적 감정이 될 수 없는가
강동호 언어적 수행으로서의 혐오
금정연 혐오라는 공기
김신식 혐오, 나만 추락하지 않겠다는 감정

이론과 개입

김주희 속도의 페미니즘과 관성의 정치
조서연 남성 연대의 구성과 균열— 성폭력 폭로 해시태그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부쳐
김애라 소녀들의 디지털 노동 로맨스— 신경제 징후적 여성노동
김미정 여성교양소설의 불/가능성— ‘한국 – 루이제 린저’의 경우 (1)
재스비어 K. 푸아 퀴어한 시간들, 퀴어한 배치들
마야 믹다시 재스비어 K. 푸아 퀴어 이론과 영구적인 전쟁
이진화 지구적 적대의 퀴어한 재배치를 위하여
아비탈 로넬 도착적 복수— 밸러리 솔래너스의 조준점들
아비탈 로넬과의 미니 인터뷰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생 연대 〈탈선〉
문학의 이름으로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7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