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변―소란한 세상에 어눌한 말 걸기

김찬호 지음

출판사 문지푸른책 | 발행일 2016년 6월 20일 | ISBN 9788932028750

사양 신국변형 137x210 · 248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폭언, 극언, 망언, 실언, 허언이 넘치는 세상을 향한
   사회학자 김찬호의 어눌한 말 걸기
   『모멸감』 『돈의 인문학의 저자 김찬호의 신작!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생물학적 유전자보다 그가 성장한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말이다.” 『모멸감』 『돈의 인문학』 『문화의 발견』 『사회를 보는 논리』 등을 펴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자리매김해온 김찬호가 그동안 꾸준히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빚어내는 일상의 문법을 추적해온 까닭이다.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신작 『눌변―소란한 세상에 어눌한 말 걸기』 또한 그간의 작업과 궤를 같이한다. 그에 따르면 “‘아우토반의 욕망’으로 내달려온 근대의 질주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잔혹한 현실을 빚어냈다. 외형적 성과에 대한 맹신은 스피드 숭배로 이어져 삶을 도구화했다. 그 결과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싱크홀’이 발견되고 사람됨의 근본이 무너지고 있다.”
   이 책 『눌변』은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 풍경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문명의 얼개를 교차하는 작업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저성장 시대, 고령화, 세대갈등, 외국인 및 여성 혐오증 등 당면한 사회문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재난이 끊이지 않는 위험사회로 치닫는 흐름에 우리의 통념과 습속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개개인으로 파편화되어 빠르게 소멸되어가는 ‘사회’ 자체를 어떻게 복원 내지 생성할까.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 등 수많은 압박 속에서 개개인의 존엄이 확인되는 안전한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인의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암묵적 전제들을 짚어보면서 좋은 삶의 조건을 탐색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관행, 바쁘게 살다 보니 곧잘 잊게 되는, 혹은 알고도 애써 외면하고 마는 삶의 본질과 가치를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끌어올린다.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 말길을 찾아 나서다

   이런저런 일들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세상, 인터넷의 위력이 날로 거세지고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언어’는 점점 더 무력해진다. 여러 책을 펴내며 글로서 생각을 빚고 대화를 청하는 저자 김찬호는 이런 세상에서 “글쓰기는 난감한 일”이며, 그래서 점점 ‘눌변’이 되어간다고 고백한다. 제목의 ‘눌변’은 사전적 의미로 “더듬거리며 하는 서투른 말솜씨”를 가리킨다. 단어의 풀이를 찾아보면 “말을 더듬거리다”라는 뜻과 함께 “입이 무거워 말을 잘하지 않는다”라는 뜻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눌변’의 의미를 말재주가 없는 것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실행에 옮기기 전에 숙고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맹목적인 스피드 숭배에 제동을 걸고 마음의 속도를 늦출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이렇듯 “더듬거리며 하는 서투른 말솜씨”로 소란하고 난해한 한국 사회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들을 찬찬히 풀어간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다루는 주제는 실로 다양하다. 개인에서 언어와 소통, 관계의 문제, 세대, 고령화, 교육, 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싱크홀’을 담백하고 차분하게 되짚으며 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제목 ‘눌변’에서 암시하듯 ‘언어’의 문제에 더욱 주목한다. 한 사회에서 ‘언어’의 풍경은 그 사회 전체의 ‘풍경’이기도 하며, ‘언어’는 곧 소통과 관계의 매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 사회는 온갖 폭언들로 넘쳐난다. 인터넷의 악성 댓글,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괴담, 끼리끼리 모여서 부풀리는 험담, 특정 집단에 대한 악담과 혐오 발언, 사소한 갈등에도 곧바로 터져 나오는 욕설, 상황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며 내뱉는 극언, 해괴하고 허황된 논리로 점철된 망언 등등. 언어의 격조가 사라지는 시대, 다름 아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살풍경이다. “오늘 우리의 언어가 거칠고 상스러워지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차 있다. 불안, 두려움, 질투, 적개심, 열등감, 죄책감, 수치심, 자기혐오처럼 탁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 타인에게 금방 전염되고 사회로 확산된다”는 김찬호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한국인들의 불행 감각은 왜 날카로워지는가

   오늘날 미디어의 혁신 속에서 소통의 회로는 날로 팽창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의 친구들은 날로 늘어나고 지구 정반대편의 친구들과도 친구를 맺지만, 정작 중대한 곤경에 처했을 때 손을 뻗칠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무한의 네트워크로 뻗어 있는 개별적 소우주들로 파편화되기 쉬울뿐더러 익명의 장소에서 그런 밀실들은 무수히 병렬된다. 가히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시대다.
   이는 한국인들의 불행 감각이 날로 날카로워지는 까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난 2011년 3월 일본에 닥친 동일본대지진을 그 실례로 든다. “지난 동일본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깨달았다. 돈은 아무 소용이 없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지역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을.” 예기치 못한 재난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유대의 밀도와 범위가 삶의 안전을 좌우함을 새삼 우리에게 일깨운다. 이는 곧 한국의 현실과도 맞물린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는 ‘타자’의 부재, 나의 고유한 사람됨을 알아봐 주고 어떤 역할을 끌어내 주는 ‘사회’의 부재가 사람들을 외롭고 고단하게 만든다. 인간은 나 홀로가 아닌 ‘타인’ 그리고 ‘사회’와 의미 있게 만나는 지점에 존재의 뿌리를 내릴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회 속에서 자아를 빚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이 책 『눌변』은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 거기에 내재한 살풍경한 언어 세태를 통해 개개인으로 파편화되어 빠르게 소멸되어가는 ‘사회’의 부재를 드러내며, 그 복원과 생성 문제를 고민한다. 인간의 삶은 안전하고 신뢰 가능한 사회적 공간 안에서 온전하게 영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경제적인 계산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 그 해결책과 협의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번잡하게 흘러가는 세태와 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문제를 진단하고 다른 가능성을 탐색해보기, 새삼 우리에게 서툴고 어눌한 ‘눌변’의 가치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 책의 1부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은 ‘몸’ ‘마음’ ‘존재’의 키워드를 주로 다루었다. 세월은 점점 가속도가 붙고 세계의 얼개는 점점 거대하고 복잡해진다. 그 격렬한 요동에 개인의 운명은 속절없이 휘말리기 일쑤다. ‘시대와의 불화’는 많은 이들의 현실이 되고 있다. 타인 또는 사회와 의미 있게 만나는 지점에 존재의 뿌리를 내릴 때 삶의 서사가 비로소 창조될 수 있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제2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은 ‘언어’ ‘관계’ ‘소통’의 키워드를 다루었다. 사회의 변화가 빠르고 정보의 유통이 거대해지면서 사람들의 생활 세계는 점점 다양해진다. 그럴수록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점점 절실해진다. 한편으로 무한 증식하는 네트워크의 연결 시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연無緣사회의 전모가 펼쳐지는 이 시대에 공감의 유전자는 어떻게 배양되어야 하는가. ‘차이’가 자아내는 긴장을 창조적인 역동으로 승화시키는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제3부 「길이 보이지 않아도」는 ‘세대’ ‘교육’ ‘돌봄’의 키워드를 다루었다. 세대 간의 접점을 찾고 돌봄과 배움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4부 「제3의 공간」은 ‘복지’ ‘유대’ ‘사회적 안전망’ ‘공동체’의 키워드를 다루었다. 복지의 핵심은 자원의 배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관계의 복원 내지 창조에 있다. 그를 통해 마음이 자라나고 연결되면서 공동의 삶이 고양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안전하고 신뢰 가능한 사회적 공간 안에서 온전하게 영위될 수 있다.
   제5부 「숙면을 위하여」는 ‘한국 사회’ ‘재난’ ‘공공성’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이 있으나 경제적인 계산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를 발견할 때 해결책과 합의의 폭이 넓어짐을 이야기한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대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의 글들은 대부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

 

   ■ 책 속으로

‘아우토반의 욕망’으로 내달려온 근대의 질주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잔혹한 현실을 빚어냈다. 외형적 성과에 대한 맹신은 스피드 숭배로 이어져 삶을 도구화했다. 그 결과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싱크홀’이 발견되고 사람됨의 근본이 무너지고 있다. 과연 나는 제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시간이 흐름이 잔잔해지는 산책로 위에서 문득 자문해본다. 깊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비추어본다. (19~20쪽)

나와 다른 존재는 불편하고 때로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때로는 삶의 단조로움에 신선한 도전이 되기도 한다. 자기를 상대화하면서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거기에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가 빠르고 정보의 유통이 거대해지면서 사람들의 생활 세계는 점점 다양해진다. 그럴수록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점점 절실해진다. 그 유연성이 부족하기에 외국인 혐오증 같은 사악한 기운이 득세한다. ‘차이’가 자아내는 긴장을 창조적인 역동으로 승화시키는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니체의 말을 빌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마음의 습관으로 키워나가는 데서 그것은 시작된다. (63~64쪽)

한국의 공적 의례에서는 생동하는 언어를 접하기가 어렵다. 웬만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인사말이나 축사를 보자.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의 발언 순서나 자리 배치에는 무척 민감하지만, 그 메시지의 품격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담당 부하 직원이 써서 건네준 글을 무미건조하게 낭독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고 사진 찍는 데에 골몰하는 높은 양반들이 판에 박힌 식사를 연거푸 늘어놓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 민주화 시대가 열린 지 오래지만, 정치와 행정의 권위주의 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인간에게 공공 영역은 무엇인가. 국가와 시민사회의 토론과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제도가 작동하는 토대다. 그런데 공공 영역의 의미는 그러한 기능적 효용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고양감과 충만함을 불러일으킨다. 콘서트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은 관객들에게 즐거운 긴장을 자아낸다. 사사로운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만남과 교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익명의 타자들과 감정을 나누고 의미를 공유하는 기쁨은 사뭇 크다. 토크 콘서트가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까닭, 바로 공감과 소통이다. (76~77쪽)

오늘 우리의 언어가 거칠어지고 상스러워지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차 있다. 불안, 두려움, 질투, 적개심, 열등감, 죄책감, 수치심, 자기혐오처럼 탁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 타인에게 금방 전염되고 사회로 확산된다…… 언어의 격조가 사라지는 것은 진지하게 귀 기울여주는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발언이 수용되지 못하리라는 불안에 사로잡히고 그 반작용으로 자극적인 언어를 남발한다. 그럴수록 서로에게 귀를 닫아버린다.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기과시나 지배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온전히 향하는 마음을 불러와야 한다. (95~96쪽)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다. 학생들은 배움의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독서나 사유를 통해서 홀로 깨우치는 공부와 함께, 타인과 대화하면서 생각을 넓혀가는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 21세기에도 학교가 존립해야 한다면,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에 그러한 만남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학교 바깥의 다양한 공간에서 실험되는 학습 생태계가 교육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127쪽)

언제부터인가 ‘접대’나 ‘향응’ 같은 말은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성性 접대’ 이야기뿐이다. ‘접대’는 ‘손님을 맞아서 시중을 든다’는 뜻이다. ‘향응’은 ‘특별히 융숭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환대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비루하고 추악한 모습으로 타락한 것이다. ‘접객’은 ‘업소’에서만 이뤄진다. 가족끼리 누리지 못하는 단란함이 단란주점에서 경험된다. 반면에 손님의 출입이 사라진 가정은 무미건조하게 정체되어간다. 외부 세계와의 교류가 막혀 분위기가 ‘저속’해진다.

접빈객의 문화를 다시금 살려낼 수 없을까. 식사를 차리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외식을 한 후에 집으로 와서 가볍게 차를 한잔하며 담소를 나누어보자. 손님 대우를 받으면서, 우리는 일의 세계에서 박탈되기 쉬운 자아 존중감을 회복할 수 있다. 주인 노릇을 하면서, 자기다움의 위엄을 새삼 가다듬어볼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통해 격상될 수 있음을 체험한다. 그 뿌듯함으로 가족들끼리도 정성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163쪽)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약자 친화적인’ 사회가 요청된다. 그런데 상황은 반대로 가는 듯하다. 약자들을 모두 제도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 복지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의지와 자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일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발휘된다. 일상 속에서 만나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소소한 도움들을 주고받는 이웃, 여러 가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인생을 지켜봐온 관계는 노년의 삶에서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나 품성은 사회 속에서 인지되고 형성된다. 따라서 재개발이니 뉴타운이니 하면서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삶의 생태계를 허물어버리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한국인들의 불행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는 타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고유한 사람됨을 알아봐 주고 어떤 역할을 끌어내 주는 ‘사회’의 부재가 사람들을 외롭고 고단하게 만든다.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하는 경쟁이 가속화된다. 하지만 그 게임에서는 대다수가 패자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자양분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는 작은 세계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살아 있음의 즐거움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공동의 터전이다. (169~70쪽)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초과근무가 일상화되고, 밤늦게 퇴근하는 고객들을 겨냥해 대형매장은 영업시간을 연장한다.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는 부모들의 압박으로 아이들의 학원 수업과 공부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난다. 다른 한편으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드라마, 채팅, 인터넷 게임 등으로 밤을 지새우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 이래저래 한국은 만성적 수면 부족 사회다. 그 결과 뇌기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정서 불안과 우울증이 늘어나며, 졸음운전과 같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린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 휴무일을 지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여러 지자체에서 발의되어왔다.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지만, 삶의 질을 새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고단한 몸과 몽롱한 정신이 늘어나면서 사회는 난폭해지고 경제도 허약해진다. 생활이 지속 가능하려면, 우선 인간의 생물학적인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과로와 과소비로 지탱해온 불면의 성장 모델 대신, 심신의 기운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숙면의 생활양식을 모색해야 한다. (209쪽)

경제적인 계산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를 발견할 때 해결책과 합의의 폭이 넓어진다. 아파트 경비원은 단순노동 이상의 역할이 가능하다. 아파트의 질을 높이는 데 경비원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고령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살리면서 살기 좋은 주거 공간을 만들어가는 일거리들을 찾아보자.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대, 아파트 경비원은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업으로 새롭게 디자인될 수 있다. (220쪽)

목차

서문

1부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걷기의 즐거움 | 자동차의 사회학 | 은은함의 미학 |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 아이들이 주는 선물 | 손, 마음이 오가는 길 | 몸으로 세계를 만날 때 | 자유, 자연스러운 기운의 생동 | 취미, 그 맛과 멋 | 기억과 망각 | 고독과 침묵의 어디쯤에서

2부 타자에 대한 상상력
타자에 대한 상상력 | 이야기는 힘이 세다 | 리얼리티를 빚어내는 말의 힘 | 유머의 품격 | 공적 언어에 담기는 것 | 직언에 대하여 | 고립과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협업적 글쓰기 | 언어를 넘어선 세계 |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3부 길이 보이지 않아도
다가가기 | 사람을 이어주는 것 | 무지와 미지 | 길을 잃은 진로 교육 | 토요일, 생활을 회복하는 시간 | 피피티보다 칠판이 좋은 이유 | 멍석 깔아주기 | 길이 보이지 않아도 | 무엇을 위한 평가인가 | 멘토링과 스토리텔링 | 점심,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 노년에게 말 걸기 | 위마니튀드, 돌봄의 철학

4부 제3의 공간
낭독의 공간 | 접대는 고귀한 것 |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돌려주자 |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아픔은 그냥 견디는 것 | 복지는 복의 나눔이다 | 재난의 시대, 신뢰의 힘 | 역사, 오늘을 들여다보는 렌즈 | 사회적 치유와 건강 마을 | 타인의 시선 돌아보기 | 고향과 좋은 삶 | 애물단지가 되는 기념비들

5부 숙면을 위하여
숙면을 위하여 | 노동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 | 소비자의 권력, 노동자의 권리 | 경비원은 필요하다 | 급증하는 노인 운전 사고 | 파국의 묵시록 | 의심과 신념 | 공무원의 안정, 공공의 안녕 | 실패 경험은 자산이다 | 공공선과 놀이 감각 | 방어적 비관주의

인용 시 출전

작가 소개

김찬호 지음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인류학자가 자동차를 만든다고?』 『모멸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작은 인간』 『경계에서 말한다』(공역), 『학교와 계급재생산』(공역),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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