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문장

박상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6년 6월 27일 | ISBN 9788932028767

사양 변형판 144x215 · 328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2008)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직후부터 깊디깊은 침묵과 수련의 시간을 걸어온 작가 박상우가 8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비밀 문장』(문학과지성사, 2016)을 상재했다. 이 작품은 한 소설가의 영혼을 끝 간 데까지 밀어붙여, 실재 너머-의식 너머의 세계를 한국문학에 끌어온 기념비적 소설이라 할 만하다. 오래도록 ‘삶’의 근원과 ‘문학’의 존재 의미를 화두로 품어온 작가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토해내듯 이 소설에 쏟아놓는다. 소설 말미에 수놓인 방대한 ‘참고문헌’에서 보이듯 엄청난 학습의 시간을 감내하고, 무섭도록 무거운 소설가로서의 책임을 견딘 결과물이다. 그렇게 영성과 과학, 철학과 문학이 관류하며 만나는 한 지점에서, 『비밀 문장』은 빅뱅하듯 탄생했고, 이제 한국문학사에 던져졌다. 이 낯설고도 위험한 소설이 당신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생에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스토리의 세계로, 스토리코스모스의 우주로 항진하게 될 것이다.

 

 

깊은 침묵의 시간을 거쳐 조금씩 조금씩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는 우주의 비밀 문장들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걱정도 없이, 항진하라

 

강렬하게 원하는 것은 언젠가 자살의 근거가 된다는 소설의 첫 문장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유전자에 이식된 수정 불가능한 프로그램”(p. 12)처럼 오로지 ‘소설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온 스물아홉 살 문필우. 하지만 그는 ‘등단’이라는 제도적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로 서른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소설은, 그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을 향해 가던 한 시기, 인생의 항로를 뒤바꿔놓은 결정적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출판사에서 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기도 하는 주인공 문필우는 같은 회사 동료이자 과학 출판 분야 편집팀장인 ‘써니’(본명 양선이)와 사귀면서 ‘제로(0)’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제로는 무(無)이자 무한(無限)인 세계이면서, 제로로 제로를 나누면(÷) 연산 불능 상태에 빠지는 거대한 공포이다. 아무것도 없는 혼돈인 동시에 공허인 제로 때문에 그는 수학적으로 해석되는 이 3차원 세계의 이면에 거대한 혼돈과 공허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곧 써니는 아무런 이유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며, 문필우에게 우편으로 『제로』라는 장편소설을 보낸다.

 

한편, 스토리를 배제하는 스토리, 이야기성을 추구하지 않는 기이한 소설로 주목받는 소설가 문필수와의 만남은 문필우의 인생을 또 한 번 격변시킨다. 문필수는 작가가 작품의 뒤편에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여야 함에도 작가가 작품보다 앞세워 있는 현실의 문학 풍토에 염증을 느껴 절필한 상태이다. 소설가 문필수는 등반가이기도 한데, 에베레스트에 같이 올랐던 동료 대원들을 그곳에서 잃고 괴로워하다 다시 네팔로 떠나려 한다. 문필우에게 자신이 살던 집, 달동네 산 정상에 위치한 ‘초인의 집’을 한 채 남기고 떠난다.

 

문필우는 생의 마지막을 초인의 집에서 마감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거처를 옮긴다. 여기서 일종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쿄쿄’라는 영체(靈體)를 만나게 된다. 십대 후반의 단발머리 소녀 같은 그 형상은, 녹색과 은색이 혼합된 듯한 광체 안에서 소리가 아닌 뇌파로 메시지를 보낸다. 일종의 에너지 접속 상태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외계라고도 할 수 있고 의식 너머라고도 할 수 있는 곳에서 온 이 에너지는, 감히 말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었던 우주의 비밀 문장들을 하나씩하나씩 풀어내 문필우 앞에 드러낸다. 가령,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은 실재가 아니에요. 영체가 실재이고 육체는 영체가 물질우주로 들어갈 때 착용하는 환영의 의복 같은 것이죠.” (p. 86)

 

“당신은 스토리 속에서 태어나고 스토리 속에서 성장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당신 스스로 스토리를 공부하고 그것을 다른 존재들에게 전파하는 스토리텔러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지구에 태어났어요.” (p. 88)

 

이렇듯 말이다. 매일 밤마다 나타나는 ‘쿄쿄’와의 교감을 통해, 문필우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유니uni-버스verse에서 멀티multi-버스verse로 세계가 바뀌는 순간,

무상한 3차원의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주로 환하게 피어난다

 

문필우는 인간이 자기 존재를 스토리로 자각하고, 인생과 우주의 모든 운행을 스토리로 자각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인터넷상에 스러지지 않을 기구를 설치하려 한다. 그리하여 ‘스토리코스모스닷컴’이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진다.

우주의 모든 것이 순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파동 에너지의 무한 반복, 의식의 진화는 여러 차원을 거쳐가며 이루어진다는 등의 쿄쿄의 메시지에서 도움을 받아 문필우는 스토리코스모스의 전체 프로그램을 완성시킨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보기’와 ‘바로 쓰기’를 거친 뒤, 다음 단계로 ‘다시 쓰기’와 ‘다시 보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바로 보기’와 ‘바로 쓰기’가 잘못 전개된 스토리를 이해하고 해체하는 고해의 단계라면, ‘다시 쓰기’와 ‘다시 보기’는 스토리의 재구성과 재창작을 통해 의식 에너지를 리프로그래밍하는 단계이다. 그렇게 ‘스토리코스모스닷컴’ 사이트는 진동하는 우주의 스토리 저장고와 연결되어 위험하고도 진폭이 큰 폭발력을 지닌 채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 후 이 소설은 결말이 지어지지 않은 채 평행우주로 확장되는데, 그 면모는 책 속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그 즈음, 독자 또한 또 다른 입자로 진행될 새로운 결말을 지어가게 될 터이니…… 하여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끝나지 않고 이렇게 ‘순환’된다. 끝이 아닌, 무한반복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가 된다.

 

강렬하게 원하는 것은 언제나 초월의 근거가 된다.”

스토리는 너에게서 나와 나에게로 흐른다.

네가 뜻하면 내가 답하리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리니.”

 

작가 자신 이 소설의 이론적 근거를 크게 세 가지로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각몽’이라고 들고 있는바(「작가의 말」), 이 영역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분야들이다. 놀랍게도 이 세 영역은 『비밀 문장』 속에서 병행되고 교직되면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소설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스토리-스토리텔링-스토리텔러-스토리코스모스’라는 연결고리를 고안했는데, 이것이 근간이 되어 새롭고 낯선 이론에 다가가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생로병사의 틀 안에서 인간이 저마다 다른 스토리로 전개되는 것처럼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입자 단위도 모두 스토리를 지닌”(p. 322)다고 보았다. 이 말은 곧, 자그마한 한 알의 사과 씨앗 속에 온 우주의 바람과 햇볕과 인간의 땀이 들어 있듯, 인간 역시 타인과 나뉘어서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작가가 간절하게 알고자 갈구한 모든 것들은, 결국 타인과 나누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상우는 제 자신의 것을 나누고자 이 소설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은 책이, 끝날 수 없는 질문들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작은 영감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소설가 박상우의 새로운 변모/탄생을 예고하는 이 소설이 무척 위험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나는 감지하고 있다. 그가 이 소설에서 만들어놓은 ‘우주만물의 변화를 스토리 전개 과정으로’으로 간주하면서 ‘스토리코스모스’를 만들어놓은 이유가, 나에게는 바로 자신의 소설에 대한 그 자신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읽힌다. 엄청난 에너지가 담긴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 질문들을 버릴 수가 없어 무섭다.” ―홍정선(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측정이 측정되는 계를 교란한다’는 양자역학의 기이한 원리를 사랑에 대입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혼돈이 가중된다’는 원리가 된다. 사랑의 행위가 곧 측정하는 행위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교란은 사랑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측정하는 사람의 목적에 부합하는 한 가지 측면으로의 몰두는 결국 나머지 아흔아홉 가지의 가능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원하는 걸 측정할 수 있지만 그 한 가지를 얻는 대가로 나머지 모든 가능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무서운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p. 58)

 

—자유의지에 대해 당신은 불신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없다면 3차원 우주의 설계는 무의미한 공허로 전락하겠죠. 3차원 세계는 물질적 경험을 통해 의식적 진보를 도모하는 훈련장이에요. 이원성을 진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죠. 인간이 육체의 옷을 벗고 나면 물질과 비물질 세계의 차이를 확연히 알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게 돼요. [……] 모든 것은 프로그램이고, 그것은 스토리로 구성되죠. 그것을 인간들은 운명이라고도 하고 팔자라고도 하죠. (p. 89)

 

—자신이 무아의 상태로 빠져들 수 있는 스토리, 그것이 최선의 창조이다. 세속적이고 지상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스토리는 전개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초월성을 얻는다. 스토리의 목적, 명분, 가치를 따지지 말라. 그와 같은 3차원 세계의 제약이야 말로 스토리의 흐름을 숨 막히게 하고, 질리게 하고, 창의력이 고갈되게 만드는 불순한 명목들이다. (p. 132)

 

—인간은 물질적인 스토리와 정신적인 스토리의 완벽한 결합체이다. 이것이 3차원 세계에 구현된 가장 명징한 기적이다. 당신은 물질인 동시에 의식이고, 의식인 동시에 물질이다. 삶인 동시에 꿈이고, 꿈인 동시에 삶이다. 신이 당신을 꿈꾸고, 당신이 신을 꿈꾼다. 그것이 지금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스토리의 다중성이다. (pp. 134~35)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분리되어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건 하나의 정신에 담겨 있지만 3차원의 물질적 분리에 익숙해진 인간들은 그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래서 고통이 시작되는 거죠.”[……]

“그 깨친 존재들이 남긴 표현이라는 게 뭐지?”

“불이(不二).”

“둘이 아니다?”

“틀렸어요. ‘두번째 없는 하나’라고 해야 상대성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절대적 존재성을 표시할 수 있어요.” [……] (p. 145)

 

—“나는 작가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실성한 인간처럼 나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에서 깨어나 진정한 나를 만나는 순간 [……]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깨치는 순간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

내가 나를 낳은 창조주가 되는 순간  (p. 261)

목차

비밀 문장 9

[발문] 낯설고 위험한 소설 앞에서/ 홍정선(문학평론가) 314

작가의 말 320

참고문헌 324

작가 소개

박상우 지음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사랑보다 낯선』『인형의 마을』 등의 소설집과 『호텔 캘리포니아』『내 마음의 옥탑방』『가시면류관 초상』 등의 장편소설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작가』등이 있다.

독자 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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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9 =

  1. 들불
    2016.07.18 오후 3:36

    단순한 소설이 아닌 통합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단한 스토리입니다.
    현재까지 인류의 지적 성취의 정수를 모아야만 가능한 작품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지금 여기 차원에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표현해 내려는 각고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작가 선생님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궁금한 점을 문의드릴수 있는 작가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감히 청해봅니다.

    1. 문학과지성사
      2016.07.18 오후 4:55

      이메일 주소는 저자의 개인 요청으로 알려드리기 힘듭니다. 감사합니다.